[전자책] 5년 만에 신혼여행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9월
평점 :
판매중지


항상 ‘한국의 젊은 작가‘ 리스트에 올라 있어서 ‘젊은 작가의 기준 나이는 과연 몇 세일까‘ 하는 궁금증을 일으키게 하는 장강명 작가의 여행 에세이다.

작가가 결혼 생활 5년 만에 어쩌다 보라카이로 신혼여행을 가게 된 이야기가 주 뼈대를 이루지만, 단순히 여행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대신 삼천포로 빠지거나 틈틈이 자기 생각을 끼워넣기 일쑤인 책이다. 여행기도 재밌었지만 나는 후자가 훨씬 흥미롭고 웃겼다. 각 장의 제목도 내용을 예측할 수 없는 완전 생뚱맞은 문장들인데, 이를테면 ‘보라! 울트라 괴기 시리즈와 모험을 벌여야 할 때’ 라거나 ‘미친 짓거리의 뼈대와 사람 뇌로 만든 도시락’, ‘바빌론의 타락한 창녀들과 2 더하기 2는 5’ 같은 식이다. 읽고 나면 왜 그런 제목들을 붙였는지 알 만 하지만 그다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대표작 <한국이 싫어서>에서도 그랬듯 장강명은 자신과 아내 HJ의 이야기를 술렁술렁 재미나게 늘어놓다가도, 한국 사회 곳곳에 도사린 문제들을 신랄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결혼이나 행복, 죽음, 부모 자식 관계, 현실과 허구, 예술 등에 대한 몇몇 사유는 구구절절 공감이 되어 여러 문장에 하이라이트를 그어 두었다.


˝그녀에게 우리 부모님은 두 사람의 개인이 아니라, 어떤 거대한 상징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그녀를 구속하려는 한국적인 것들. 성차별. 출산과 육아. 유교. 대한민국 그 자체.˝

˝자식이 타인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자식들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정신적인 폭력을 서슴지 않는 것. 그런 폭력의 원인은 대부분은 사랑 때문이다. 안락한 감옥을 만들어 자식을 그 안에 가두고 싶어 한다. 과보호.˝

˝선글라스를 쓴 채로 점점 붉게 물들어가는 해를 바라보고 있으니 정신이 다시 멍해졌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왜 사람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다니는지, 왜 자전거를 타고, 왜 수십 킬로미터를 달리며 러닝하이를 느끼려 하는지.

사람들은 멍해지려고 그런 일들을 하는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건,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마음을 피로하게 만든다. 생각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대신 괴로움에 빠뜨린다. 이것이 선악과(善惡果)의 정체다.˝

˝나는 이 여행이 인생에 대한 비유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정의 중반을 넘기고서야 어떻게 하면 시간을 의미 있고 즐겁게 보낼 수 있는지 알게 된다. 다시 한번 처음부터 시작하면 진짜 잘할 수 있는데, 생각하면서.˝


아, 여행지에 갈 때 들고 갈 책은 ‘가벼우면서도 진도 안 나가는 물건’으로 고르라는 조언도 있었다. 글이 너무 재미있고 감동적이면 여행의 감흥이 반감된다나. 일단 나는 e북 리더 한 개만 챙겨 갈 예정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휴게소
정미진 지음, 구자선 그림 / 엣눈북스(atnoonbooks)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주 짧은 그래픽 노블. 만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어른들을 위한 동화에 가까운 느낌이다. 짧은 분량 속에서도 나름의 이야기 구조가 있고, 반전도 있다. 실내 장면들은 세피아 톤으로 채색되어 있는데 추운 겨울날 따뜻한 오두막 집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았거나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좋을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애란의 단편 8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제목의 ‘비행운’이 비행기구름을 뜻하는 말인가 보다 했었는데, 읽는 도중에는 ‘비(非)-행운’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작품 해설에도 역시 그런 중의적인 해석이 나와 있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딱한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 사정들이 소름끼치게 현실적이고, 그들이 처한 자질구레한 상황들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치밀하게 묘사된다. 아득한 절망 너머에 간혹 실낱 같은 희망이 보이기도 하지만, 손을 뻗어 붙잡기에는 허탈한 결과가 예상되는 현실이다.

하지만 작가는 단지 불행을 전시하고 주인공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바벨탑처럼 끝없이 쌓여올려지는 문명의 이기, 자본의 유혹에 하릴없이 휩쓸리는 도시인들, 그 속에서 무언가 희망을 갖고 버둥거릴수록 수렁에 더욱 빠져드는 사람들... 그들을 그저 연민어린 시선으로만 바라보기보다는 무엇이 우리를 인간답지 못하게 만드는지, 문제의식을 갖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냥 좋게 받아들이세요
마리아 스토이안 글.그림 / 북레시피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러 성폭력 피해자들의 사례를 옴니버스 형태로 구성한 그래픽 노블이다.

이 책에 소개된 스무 개의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얼마나 우리의 일상 가까이에서 빈번하게 성폭력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책에는 신체적 강자인 성인 남성이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때로는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여성이 남성에게, 미성년자가 성인에게, 동성애자가 이성애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등 특정 대상에 국한되어서 행해지는 것이 아님을 놓치지 않는다(물론 대다수가 강자에 의한-약자에 대한 폭력이라는 점만큼은 공통적이다.).

성폭력이라는 범주 안에서 형태도 다양하다. 강간, 신체적 접촉, 물리적 폭력, 언어적 폭력, 성희롱, 스토킹 등... 가해자는 순간의 쾌락과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이러한 행위를 하지만 피해자에게는 씻기 힘든 상처와 고통만을 남길 뿐이다.

작가는 한국어 독자들에게 남긴 서문에서 말한다. ‘이 책은 전 세계 어디에나 보편적으로 퍼져 있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은 특별한 소수만의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연대해야 하는 일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 책의 좋았던 점은 단순한 사례 모음집에서 그치지 않고 성폭력에 대한 대응책, 예방책을 말미에 제시했다는 점이다. 작가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도 음지에서 고통받는 피해자들에게 큰 힘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이윤기의 글들을 모은 책이다. 제목을 보면 글쓰기 비법에 대한 책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말과 글을 다루는 태도와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았다.
(제목에 ‘조르바’가 들어간 것은 이윤기가 <그리스인 조르바>를 국내에 최초로 번역하여 소개하였으며, 스스로를 조르바와 동일시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2010년 심장마비로 작고한 뒤 글쓰기와 번역에 관한 글들을 딸인 이다희 번역가가 찾아 한 권으로 묶어 내었다. 서문에는 이런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아마도 우리 팀이 가뿐히 승리할 것으로 보여집니다.”
아버지는 TV에서 ‘보여집니다’ 같은 말이 나오면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질색을 했다.
“이럴 때는 ‘보인다’고 하면 되지, ‘보여진다’고 할 필요가 없어. 응? 다희야.” 
(중략)
난 가끔은 좀 조용히 TV만 보고 싶었다.

말과 글에 관한 한 이윤기는 고집스런 원칙주의자로 보인다. 그러나 때로는 사투리나 속어나 은어 등의 사용에도 상당히 열려 있는 태도를 취한다. 어쨌든 언어의 사용에 대해 집요하게 탐구하고 고민한 사람이었다. 특히 우리말과 한글이 펄떡거리며 살아 숨쉬는 말과 글이길 바랐던 것 같다.

단어 한 개, 문장 한 줄 허투루 쓰지 않으려 노력했던 작가이기에 곱씹어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 들어 그냥 언어적으로 뜻만 통하는 것이 아닌, 군더더기 없고 아름다운 말과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인다. 그런 점에서 자극을 준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