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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퀴즈쇼 ㅣ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평점 :
판매중지
‘인생의 어떤 특별한 순간에는 비유가 현실이 된다.’
표지에 적힌 문구다. 문구대로 이 소설에는 현실이나 감정을 다른 것에 빗댄 표현들이 정말 많이 나온다. 주인공은 어릴 때부터 책 속에 파묻혀 살았고 영화나 음악도 좋아해서 잡학에 능한 남자다. 대화나 독백을 할 때 종종 신화나 역사 속 이야기들을 꺼내어 비유로 말하곤 한다(이런 대목을 만날 때마다 주인공 민수는 작가의 페르소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잡다한 지식은 많지만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정작 주인공은 번번히 취업에 실패하는 백수다. 자신의 장기를 살린 유일한 취미는 인터넷 채팅방에서 퀴즈 게임을 하는 것. 그곳에서 아이디 ‘벽 속의 요정’을 알게 되고 사랑에 빠진다. 막 행복해지려는 찰나, 그에게 예기치 않은 사건이 찾아온다.
용이나 마법사는 나오지 않지만 이 소설은 판타지에 가깝다. 우선 ‘벽 속의 요정’은 존재 자체가 유니콘 같은 캐릭터다.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에 나오는 미도리 같다고 할까. 그러고 보면 주인공 민수부터 와타나베와 꼭 닮았다. 어딘지 모르게 허무주의와 염세주의에 젖은 듯한 20대 남성, 주위의 여성들이 죄다 그를 그냥 놔두지 않는다는 것도. 후반부의 주요 배경인 ‘회사’ 역시 무릉도원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긴다는 점에서 나오코의 요양원 같은 느낌이다. 또한 친구의 죽음이 주인공의 성장 혹은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도 <노르웨이의 숲>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몰입에 방해가 될 정도로 기시감이 강하게 들지는 않는다. 예측할 수 없는 기묘한 사건들이 연달아 전개되기 때문이다. 김영하는 독특한 상상력과 필력으로 독자를 가상의 공간으로 불러들인다.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주인공이 느끼는 불안과 자괴감, 현실에 대한 무력감과 권태는 청춘의 어두운 이면을 묘사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