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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ㅣ 메이트북스 클래식 10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이현우.이현준 편역 / 메이트북스 / 2020년 8월
평점 :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글자 크기가 크고 책 두께가 얇아 1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다. 책을 받아들고 순식간에 절반을 읽던 중 나는 책 읽기를 멈췄다. 이 책은 읽는 책이 아니라 생각하는 책이라는걸 깨우쳤다.
나는 철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대학 교양수업 때 억지로 읽은 몇 권의 철학서적 외에는 없다. 그러던 중 누군가의 추천을 받고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게 되었는데 약간 두려운 마음이 든다. 기존에 내가 살아온 방식에 회의감이 밀려오고, 혹시 스님이 되는게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질투하고, 시기하고, 복수하고, 탐욕해야 하는데 그런걸 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라니, 마음 한 편이 무겁다.
많은 사람들이 명상록을 수시로 읽는다고 한다. 나는 자동차에 이 책을 옮겨 놓았다. 신호대기 중 하나의 주제를 읽을 수 있으니 사고 위험은 없고, 나만의 공간에서 충분히 생각할 자투리 시간이다. 대신 매불쇼를 못 듣는게 아쉽다. *운전 중 짬을 내 듣는 매불쇼는 꿀잼이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스토아학파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의 황제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이라는 책을 쓴 적이 없다. 아우렐리우스는 내가 에버노트에 메모하듯 그 때 그 때 생각을 적었다. 그 메모들을 후대에 책으로 엮었을 뿐이다. 그래서 명상록은 논리적 구조가 아니다.
이번에 메이트북스가 출간한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6개의 테마에 맞춰 재구성했다. 기존에 출간된 원서에 충실한 명상록과 비교해보니 그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우선 첨언이 줄었다. 논리적,철학적으로 유사한 내용을 하나의 주제로 묶었으니 첨언을 한 번만 하면 된다. 둘째, 불필요한 내용을 뺏다. 나의 에버노트 메모에도 얼굴이 붉어질만큼 낯뜨거운 내용이 있다. 뺄건 빼자.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의 마지막에는 부록으로 스토아학파에 대한 얘기가 있다. 나는 철학에 털끝만큼의 관심도 없다. 하지만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다보면 스토아학파에 대해 자연스레 관심이 생긴다. 우주, 자연, 만물…. 공자, 부처와 비슷한 사상같기도 하다. 나는 철학 무식쟁이니 이해해 달라. 스토아학파에 관심이라도 가진게 어디냐.
스토아학파와 아우렐리우스에 대해 생각해보니 '강남좌파', 아니 '로마좌파'가 생각났다. 전쟁 중 로마 군인의 비참한 삶을 상상해보면 아우렐리우스가 전쟁통에 자신의 생각을 메모로 남긴다는게 어처구니 없어 보인다. 더불어 당시 황제나 하던 사치스런 사유를 지금 나같은 무지랭이도 한다는게 묘한 감정을 들게 만든다.
소개할 내용이 없는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내가 서평을 쓰는 이유는 내 생각을 정리하고 타인에게 도움이 되기 위함이다. 하지만 나는 책 한 권 읽었다는 자랑이 주된 목적이다. 친구한테하면 욕먹으니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자랑질 하고 싶다. 그래서 책에 형광펜을 긋고 마치 내가 뭔가를 이해한 듯 티내는 사진을 올린다. 그런데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그걸 할 수 없다. 핵심키워드, 주제, 결론 같은게 없다. 책 어디를 펼쳐봐도 스스로 생각해야 하는 내용이다.
책의 아무 부분이나 찍어보겠다.
이 페이지의 의미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를테다. 죽음을 생각한 적 없고, 두려워하는 사람은 당장 책을 덮어버릴테다. 하지만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 당장 내일 죽더라도 후회되지 않게 당당해지자. 어깨를 펴자!" 몇 년 후 이 문장은 내게 전혀 다른 가르침을 줄 수 있다.
나는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를 곁에 두고 수시로 읽기로 했다.
좋은 글을 남긴 '로마좌파' 아우렐리우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