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것과 특수한 것은 상호보완한다.
일반적인 것만을 강조하면 개별 사건의 구체적 특징을 파악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 실체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얻을 수 없게 된다. 반대로 특수한 것만을 강조하면 그 실체를 해석할 수 없게 된다. 실체를 종합적으로 해설하고 사유해서 개념화 하지 못한다면 그것 역시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그래서 일반적인 것은 특수한 것을 해석하게 해줌으로서 의미를 부여하는 한편, 특수한 것은 일반적인 것의 해석의 구체적이고 풍부한 질료가 된다.

마르크스는 일반적인 것을 강조한 사람이 아니고, 특수한 것만을 강조한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상이한 역사적 사건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각 역사를 비교하기 위한 같은 개념적 범주(일반적인 것)을 갖춘 채로, 그 구체적인 역사적 특수성을 파악(특수한 것)하고자 했다. 그래서 마르크스에게 일반적인 것이란 각 사건을 보편적 법칙으로 해석하려는 것이 아니라, 각 역사를 비교하기 위한 좋은 사유의 틀, 해석의 틀 같은 것으로서 각 역사적 사건의 차이를 규명해서 그 의미를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했던 것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magokdongP 2026-05-13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대해서 한 인스타그램 댓글은 봉준호 감독이 부자와 약자를 일반화 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아마 그것은 부자는 모두 나쁘다는 일반화를 우려 또는 비판하는 것일 테다. 그런데 봉준호 감독은 그러한 일반화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부자와 약자 사이의 관계를 개념화 한 것이라고 보아야 더 정확하다. 일반화는 모든 특수한 사실을 하나의 기준으로 획일적으로 사실판단 하는 게 아니라, 그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개념화 하는 것이다. 그래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통해서 우리는 부자는 나쁘다가 아니라 부자와 약자 사이의 관계가 계급적 관계라는 개념을 얻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사실을 단편적으로 판단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이야기다.
 

자유와 평등 사이의 정의 또는 개인적 자유와 사회적 정의 사이의 긴장… 이제 하나의 거대한 사회운동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 간의 잘못된 대립을 뜻하게 된 개인주의는 오늘날에 와서는 이익집단의 슬로건이 되어버렸고, 논쟁의 여지가 있는 그것의 성격 때문에 세계를 움직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가로막는 하나의 장애물이 되어버렸다.

개인주의, 자유방임주의는 정치의 폐지, 관계의 단절, 개인의 자유 극대화가 아니라 하나의 사회정책으로만 가능하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magokdongP 2026-05-12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가가 자신이 연구에 들어가면서 가지게 되는 입장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그의 연구를 충분히 이해하거나 평가할 수 없다. …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교육지 자신이 반드시 교육을 받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 강연에서 사실과 해석의 이분법과 똑같은 이분법을 다른 모습-특수한 것과 일반적인 것, 경험적인 것과 이론적인 것,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으로 또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역사철학은 서구의 관념론과 경험론의 대립에 큰 영향을 받았을 것. 서구의 관념론의 역사는 서구학문세계의 역사(과학, 철학, 정치학, 종교학, 윤리학)과 큰 연관이 있을 것 같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magokdongP 2026-05-12 0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가는 그의 사실들의 비천한 노예도 아니고 난폭한 지배자도 아니다. 역사가와 그의 사실의 관계는 평등한 관계, 주고받는 관계이다.
 

“영국의 역사가들이 역사철학에 끌려들어가기를 거부한 이유는 역사에는 어떤 의미도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역사의 의미란 절대적이고 자명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침략과 식민지배를 자연의 섭리이자 신의 섭리로 합리화 한 생각이 역사철학을 대신. 역사란 과거의 사건을 다양한 맥락으로 이해하고, 현재의 상황을 비교적 상대화 하며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도록 하는 것. 즉 과거를 객관화 하고, 오늘을 상대화 하며, 미래를 예측하는 것. 이를 통해서 현재를 성찰해서 더 나은 사회, 공동체가 되도록 하는 것. 19세기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역사관은 한 세기도 되지 않는 식민지배를 영원무구한 신의 질서로 확신했지만, 그것은 20세기가 되자마자 세계각국의 혁명과 경제위기, 전쟁으로 인해서 자본주의의 위기를 통해서 산산히 부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위수정 눈과 돌멩이를 읽고…

삶은 언제나 위태롭다. 단 한순간에 깨어지는 창문처럼, 우연하고도 의도하지도 않은 폭력과 상처는 매일 반복된다. 자신을 의심하고 혐오하는 낯선 이방인에게 자신의 집을 내어준 코요는 텍스트 바깥의, 텍스트가 가닿고 싶어하는 궁극의 존재처럼 여겨진다. 흰 눈 속에서 갇힌 유미와 재환을 상상하며 어떤 몰입을 했고, 어떤 감각들이 새로 되살아난 기억이었다. 더 연약해지고, 더 부드러워지는 경험. 위태로운 삶들을 유지하는 윤리는 단단한 돌로 언제나 깨어지는 것들이 곁에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 더 약해지고, 그래서 산산히 부숴지지 않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가. 코요의 윤리를 계속 생각하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