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를 생각한다.

이상의 논의를 정리하자면, 2010년대 한국대중문화의 성공을 가능하게한 90년대생의 세대적 특성은 다음과 같다. 인터넷이 미디어 생산과 소비의 중심축이 되면서 그들의 결핍과 불안이 만들어낸 투쟁심을 흡수했고, 그 결과 콘텐츠의 내용과 소비양태가 투쟁적으로 변하며 대리만족 차원에서 가히 고도의 질적 상승을 이루었다. 이전 세대와 달리 90년대생들은 자신의 투쟁적 경향을 현실이 아니라 미디어에서 풀어냈던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에서 갈등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대신 그 갈등은 응축한 컨텐츠는 세계적 보편성과 경쟁력을 획득할 정도로 빠르게 진화했다.

경제위기, 계층화로 인한 불안을 부추긴 인터넷과 SNS. 이 투쟁심이 인터넷 내 컨텐츠를 통해서 대리만족화. 인터넷은 소비의 양태를 더 적극적인 컨텐츠 생산 내 개입으로. 컨텐츠 생산자들은 소비자들의 적극적 참여로 재정적 지원과 컨텐츠 그 자체의 풍부함. 이는 컨텐츠의 성공과 성장. 90년대생들의 투쟁심은 재정, 컨텐츠 소재로 그 자체로 밭이 되어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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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okdongP 2026-06-09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0년대생. 세계화로 인한 제조업 붕괴. 상층의 고부가 가치 산업만 발달. 이중경제체제. 이로 인한 극심한 경쟁, 불안, 열등감, 상승욕구를 인터넷에서 경험하고 또 해소. 실제 현실에서 정치적으로 해결하기엔 경제적으로 너무 불안정하고, 온라인으로 해소하는 것이 더 즐겁고 자극적이기도 함. 자연스럽게 가치적 사고방식보다는 당장의 자극과 흥미(감각)을 찾는 세대(인터넷의 영향). 이는 가치, 책임으로부터의 회피이지 엄밀한 의미에서 개인주의가 아님. 공정담론도 사회에 정치가 개입해 발생한 혼란에 반대하는 것이지 공정한 세대는 아님. 탈가치화 세대. 세계화로 인한 경쟁을 정보화로 인한 온라인 세계에서 해소하며 정치와 가치, 규범과 멀어지면서 증오감정을 쌓아가는 90년생들의 초상. 피해의식과 불안감정이 정치적 요구로 포장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적이고 극우적인 요구로 재탄생하기도 함. 이는 누구의 탓인가?
 

잠실시위를 목도한 뒤 하룻낮과 밤을 더럽고 불길한 우울감에 휩싸여 잠만 잤다. 그런 뒤 폴리텍을 하루 빼먹고 <K-를 생각한다>를 읽었다. <피투자자의 시간>은 산업자본주의에서 금융자본주의로 변하면서 시장경제에 참여하는 시민의 정체성이 과거 산업자본주의 시대에서의 그것과 같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임금노동자 정체성이 자기를 자본삼아 투기를 일삼는 투기꾼으로의 전환. 반면 <K-를 생각한다>는 한국이라는 국가에 한정되었지만 90년대 생들이 2000년대 신자유주의적 변화와 진보정치의 개혁조치를 겪으며 형성한 정치적 정체성을 다룬다. 신자유주의적 변화, 디지털 기술 변화를 못마땅히 여긴 진보주의자들의 개혁이 실제 현장에서 현실과 괴리된 채 보여주기 식의 이벤트로 실현되었다(장학사가 참관하는 토론학습 수업, 최신 컴퓨터를 설치한 뒤 기술시대교육을 선언하는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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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투자자의 시간. “마르크스에 따르면 산업자본주의의 기저에서 작동하는 자유주의적 인간학이 노동자에게 동일시 하도록 유도한 것은 자신의 노동을 최적의 가격에 판매함으로써 효용을 극대화하는 거래자였다. 이런 식의 동일시는 노동이 창조한 잉여 가치에 대한 수취를 규범화 하고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소외를 발생시키지만, 동시에 노동운동에 의해 전유되자 ‘자유로운 노동자들’이 협상력을 높이고 지금은 빼앗겨 버린 일련의 사회적 권리를 획득할 수 있게 해주었다.“

사용가치에서 교환가치로의 전환은 개인의 노동 생산물의 가치를 생산자의 인격, 그 사회의 전통적 가치놔 연동하던 중세의 유산을 허물고 만들어진 것. 자유주의적 인간은 노동을 상품으로 거래하는 노동 시장의 출현을 위해 필수적. 상품, 교환 거래의 불공정을 제기하며 자신의 노동 생산물을 더 높은 가격에 판매하고자 했던 것. 이는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적 이해관계자, 이익과 돈이 오가는 교환방식이라는 시장의 기본적 룰을 따르는 것은 전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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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경제학의 이야기. 수요곡선은 가격과 수요의 곡선. 공급곡선은 가격과 공급의 곡선. 가격이 너무 높게 소비자가 구매했다면 소비자의 재화가 낭비되어 기업이 더 많은 이익을 얻는다. 그런데 이것이 불공정한 교환이라는 것을 어떻게 주장할 수 있나? 기업이 얻을 수 있는 적정한 이윤을 정할 수 없지 않나? 이는 다수의 소비자들이 너무 높은 가격의 재화는 사지 않거나, 그보다 더 낮은 가격의 재화를 판매하는 기업의 상품을 사면 된다. 그런데 소비자가 얻는 것보다 기업이 이윤을 축재하는 것을 서로 간의 윈윈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기업이 막대한 부를 쌓는 것이 과연 윈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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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을 취재했던 ap 통신 테리 앤더슨 기자도 “이는 사실상 군인들에 의한 폭동이었다”고 말했다. 공수부대는 시위진압을 위해 폭력을 쓴 게 아니라 체포를 위해 폭력을 쓴 것이다. 17년 뒤 1997년 대법원은 “계엄군이 난폭하게 광주시민의 시위행위를 진압한 행위가 대란죄의 구성요건인 폭동의 내용으로서의 폭행, 협박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9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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