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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해석 - 당신이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말콤 글래드웰 지음, 유강은 옮김, 김경일 감수 / 김영사 / 2020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타인의 해석』이라는 제목을 읽고 단순히 '타인을 이해하는 심리학'에 관한 책인 줄 알았다. 틀린 짐작은 아니지만, 친구를 만난다거나 거래처 사람을 대할 때 등 일상 생활 속에서 타인의 생각 읽는 방법을 막연히 생각하며 책을 펼쳤다.
이 책은 2015년에 일어난 '샌드라 블랜드 사건'을 처음 소개하며 시작된다. 7월 10일,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샌드라 블랜드는 장을 보러 차를 몰고 나왔는데, 차선 변경 깜빡이를 켜지 않아 백인 경찰인 브라이언 엔시니아에게 붙잡이게 된다. 엔시니아는 몇 가지 질문을 했고, 블랜드는 질문에 대답하며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엔시니아는 담배를 꺼달라고 요청했으나 블랜드는 본인의 차 안에서 담배를 왜 꺼야 하냐고 물었다. 이에 엔시니아는 블랜드에게 차에서 나올 것을 요구했고, 블랜드는 차에서 나와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면서 사건은 고조된다.
엔시니아는 블랜드에게 전기충격기를 겨누며 차에서 끌어냈고, 체포했다. 수감된 블랜드는 그로부터 사흘 뒤 유치장에서 자살했다.
엔시니아와 블랜드는 출신도 성별도 인종도 달랐다. 또한 직업적 위치(경찰간과 민간인)이라는 점에서도 반대였다. 이 둘은 서로에게 낯선 이였으며, 만약 우리가 한 사회로부터 좀 더 사려깊었다면, 낯선 이에게 접근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성찰하려고 했다면 블랜드가 유치장에서 자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타인의 해석』은 이러한 낯선 이 문제(stranger proble)의 여러 측면을 다룬다. 또한 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적용한 사례들은 범죄나 정치적인 이야기 등의 조금 무거운 주제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가 일상생활과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서로가 '타인'이기 때문에 생겨나는 인간의 어두운 면을 면밀하게 파해치는 책이다.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있으며, 전체적으로 12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제 1부 거짓말의 정체: 두 가지 수수께끼
제 1부에서는 1장과 2장이 실려있으며, 거짓말에 관한 이야기이다.
1장에서는 국가를 넘나들며 중앙정보국 까지 속이는 스파이들의 이야기,
2장에서는 히틀러를 만난 사람들의 주장을 토대로 왜 그들이 히틀러를 직접 만나보았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성향을 파악하지 못하고 속아 넘어갔는지에 대한 사례가 실렸다.
제 2부 진실의 기본값 이론의 승리: 낯선 사람을 파악하기 위한 첫 번째 도구
제 2부에서는 3, 4, 5장이 실렸으며, 왜 낯선 이에게 속을 수 밖에 없는지 가르침을 준다.
3장에서는 1장에서와 비슷한 또 다른 쿠바 스파이에 대한 이야기다. 미국 국방부에 잠입한 스파이 몬테스는 자신의 여자친구 같은 스파이들에 맞서는 남자친구는 물론 연방수사국 요원으로 활동하던 자신의 동생 까지도 속였다.
4장에서는 최대 규모의 폰지 사기 사업을 운영한 버니 메이도프를 이야기를 통해 심리학자 팀 러바인 이론을 살피며, 5장은 성폭력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어느 풋볼팀 코치 사건을 두고 벌어진 이상한 현상에 대해 이야기 한다.
특히 5장은 조금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풋볼팀 코치 제리 샌더스키가 성폭력을 가하는 모습을 본 목격자가 있음에도 이 사건이 밝혀지는데 10년 넘게 걸린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미시건주립대학의 의사 래리 나사르가 치료를 명목으로 수 많은 체조 선수 아이들을 부모 앞에서 까지 성폭행 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에 회부하는데 몇 년이나 걸렸다.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관대하다. '그 사람이 그럴 리가 없어.'라는 생각에 잘 못 본 것이라 치부하거나, 무시하거나, 범죄자를 감싼다. 끔직한 일이다.
제 3부 투명성 관념의 실패: 낯선 사람을 파악하기 위한 두 번째 도구
제 3부에서는 6, 7, 8장이 실렸으며, 사람들이 겉으로 드러내는 것에서 부터 진짜 속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6장에서는 미국 드라마 <프렌즈>와 트로브리안드인 등을 토대로 표면적인 모습(예를 들면 표정)을 보고 그들의 감정을 파악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과 분석이 실렸다.
트로브리안드인이나 므와니족 등, 고립 생활을 하는 집단에서는 흔히 찌푸린 표정의 사진을 보고 '분노'를 떠올리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 트로브리안드인들은 분노한 얼굴을 보고 20퍼센트는 행복한 얼굴, 17퍼센트는 슬픈 얼굴, 30퍼센트는 공포에 사로잡힌 얼굴이라고 불렀다.(196p) 고대에 가서 활짝 웃는 얼굴을 사진을 보여주면 그것이 '행복'이 아닌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7장에서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는가? 에 대한 대답이다. 심리학자 러바인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함정수사를 시행했다. 학생들은 상식 시험을 보게 되고, 조교는 시험장에서 나가며 답안지를 책장 위에 두고 간다. 그 후 러바인은 학생들을 면담하면서 커닝을 했는지 안했는지 물어본다.
여기서 '초조한 넬리'가 등장한다. 넬리는 누가 커닝을 했는지 물어보는 질문에 구구절절 대답을 한다. "파트너가 점수를 보려고 했는데 안된다고 했다. 정말 나는 커닝하는 사람이 아니다. 잘못된 일이니까 안된다고 했다. 파트너는 하려고 했는데 솔직하게 말했다."
넬리는 머리카락을 꼬고,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안절부절 못하며 동요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모든 사람이 넬리가 거짓말 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넬리는 모두 사실만을 이야기 했다. 우리는 거짓말쟁이가 진실을 이야기 하는 것 처럼 행동하거나, 정직한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것 처럼 행동하면 당황한다.
8장에서는 사교클럽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건을 사례로 타인이 주는 신호가 정말로 본인이 받아들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많은 성폭력 사건들이 있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동의 했다고 주장하기도 한 이야기를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것 같다. 8장에서는 이와 같은 사례가 등장하고, "성적 행위의 진도를 나가는 데 있어 확고한 동의"가 무엇인지 학생들에게 조사한 자료도 등장한다.
"성적 행위의 진도를 나가는 데 있어 확고한 동의"에 대한 자료를 보면 규칙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성들도 각각의 입장에 따라 생각이 다르고, 남성들도 각각의 입장에 따라 생각이 다르다.
타인이 보내는 신호를 자신이 정말 잘 이해하고 받아들였다고 자만하지 말라. 결국 타인은 타인이다. 나와 모든 주제, 모든 관점에서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으니 말이다. 특히 술을 먹고 취한 상태라면 더욱 더!
제 4부 진실의 정체: 또 다른 수수께끼
제 4부에는 9장이 실려있으며,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우리가 타인에 대해 알아내려고 하는 것은 어느정도 확고한 것일까. 정말 상대방의 몸 속에 들어가 기억과 생각과 감정 하나하나를 직접 보고 느끼지 않는 한 낯선 이를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결국 우리는 낯선이에 대한 진실을 절대 알 지 못할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낯선 이에게 겸손해야 한다.
제 5부 결합의 파괴: 낯선 사람을 파악하기 위한 세 번째 도구
제 5부에는 10, 11, 12장이 실렸으며, 마지막 12장에서는 이 책의 처음에 실린 '샌드라 블랜드 사건'을 다시 만나볼 수 있다.
샌드라 블랜드 사건을 재구성 하자면 이렇다.
경찰인 엔시니아는 차선 변경 깜빡이를 켜지 않아 블랜드를 잠시 멈춰 세웠고, 면허증을 받아 순찰차로 돌아간다. 곧 이어 엔니시아가 돌아오고, 블랜드는 '딱지를 끊는 것은 말도 안된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이것에 엔시니아가 처음 저지른 실수이다.
엔니시아는 딱지를 끊을 생각이 없었고 그저 경고만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블랜드에게 딱지를 끊지 않을 것이라고, 그 어떠한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다. 말을 다 끝낸 블랜드는 긴장을 풀기 위해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엔니시아는 '담배좀 꺼주시겠습니까? 좀 꺼주시죠?'하고 이야기 한다. 말에는 날이 서있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 엔니시아의 무심한 태도와 어조 때문에 시작된 사건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엔니시아의 입장을 들어보자. 엔니시아는 블랜드의 차를 세우고 정차시킨 이유를 말해주기 위해 창문 안으로 몸을 숙인다. 그 때, 엔니시아는 블랜드의 공격적인 몸짓과 태도를 발견했다. 무언가 괜찮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고 증언한다.
블랜드가 발을 구르며 앞뒤로 움직이고, 면허증을 확인하러 뒤돌아 섰을 때 시야에서 사라지거나 수상한 움직임을 보였다. 블랜드의 흥분과 동요, 변덕스럽고 적대적인 모습에 엔니시아는 블랜드가 무언가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그가 배운 '범죄자의 특징'과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엔니시아의 눈에 블랜드는 범죄자처럼 보였고, 그래서 배운대로 했다. 하지만 블랜드는 그저 화가 나 있었을 뿐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정말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이 어디에 존재하기는 한 것일까'하는 생각이 막연히 떠오른다. 어쩌면, 이에 대한 대답은 No, 다. 평생을 거쳐 함께 사는 동반자가 있다고 해도 그를 하나부터 열 까지 모두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하다. 결국 타인은 타인이다. 내가 오롯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본인 자신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책의 마지막 부분에 실린 엔시니아의 증언을 보면, 블랜드가 자신의 말을 비꼰다고 생각한 것이고, 블랜드가 경찰을 싫어하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니 결국 엔시니아는 자신의 말투도, 행동도, 블랜드를 이해하지 못해고 범죄자로 몬 것도 모두 다 블랜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소름돋지만, 천천히 생각해 보자면 그렇다고 수긍된다. 상대방이 본인의 말을 의도와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인다면 '나는 그렇게 말 안했는데 왜저러지?'하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지 않는가.
결국 타인을 마주한다는 것은 상호관계다. 나는 다른 이들에게 낯선 존재이며, 나를 완벽히 이해해 주는 사람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며 겸손하게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낯선 이들도 나를 그 만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받아들이자. 속마음에 있는 것들을 진실되게 입 밖으로 내보내지 않은 이상 낯선 이들과 100%의 진실을 가지고 이야기 하기에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