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유산 - 역사와 과학을 꿰는 교차 상상력
고려대학교 공과대학 기획 / 동아시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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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프로젝트를 총괄한 고려대학교 신소재공학부 이준호 교수님의 고려대학교에서 보유하고 있는 유산들과 공과대학의 첨단기술을 연결한 대중 강연을 만들어 보겠다는 의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총 10가지의 주제를 2019년 10월부터 12월까지 매주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강연된 이야기를 책을오 엮은 것이 바로 이 책. 닮은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어울리지 않는 유산들과 첨단 기술을 잇는 다는 것이 꽤 흥미진진하다.


동궐도-드론

고려청자-디스플레이

조선백자-리소그래피

사인검-기가스틸

보성관·보성사-인공지능

대동여지도-자율주행차

수선전도-스마트시티

오마패-5G

혼천시계-양자통신

태항아리-바이오기술

옛 것과 오늘 것을 비교한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에 엮여있는 것들은 처음 들으면 좀 묘한 구석이 있다. 이게 이렇게 연결된다고? 어쩐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 속에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을 찾아낸다는 것이 어쩐지 세상을 다르게 보는 사고력을 키워주고 있는 것만 같다.


1장 시선 :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서양미술에는 투시원근법이라는 과학적 원칙에 충실한 기술을 사용했지만, 동양은 비과학작인 감각과 욕구를 우선시 했다. 그 대표적인 회화 기술이 바로 부감법이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 시점'을 그리는 기법으로 흔히 알고있는 조감법이 건축이나 토목, 조경 등 보다 넓은 개념의 표현법이며 미술계에서는 부감법이라고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기법을 사용한 대표적인 자품이 <동궐도>이다.


임진왜란 이후 창덕궁과 창경궁이 복원된 이후 그려진 그림으로, 이 넓은 광경을 위에서 내려다 보기 위해서는 현재의 종로5가 위치에서 30층 높이의 건물 위에 올라가야 한다고 한다. 이정도면 어떻게 그렸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이런 한국 미술은 일제시기와 외세의 침탈로 멈춰버렸다.

위에서 아래다본 풍경을 현대로 가져와 함께 잇는 것은 바로 '드론'이다. 나는 드론이라고 한다면 바로 떠오르는 것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인데, 드론 퍼포먼스를 보면서 저건 CG가 아닐까 생각했다.

아직까지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기술이지만 건축 및 건물 관리나 건설 현장 등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넷플릭스 영화인 <#살아있다>에서도 드론을 꽤 잘 사용하지 않던가?

앞으로는 드론의 사용 범위를 넓혀 문화재 보존하는 기술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글이 끝난다.


6장 지도 : 수단에서 주체로


대동여지도에는 실제 도로와 달리 직선으로 그려져 있다고 한다. 왜 직선으로 그렸는지 추측해보자면 첫 번째 이유는 물줄기, 산줄기, 도로가 모두 곡선일 때 특히 나란히 놓여있는 경우 가독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물줄기, 산줄기, 도로 주에서 도로만을 곡선으로 그린 것일까? 두 번째 이유는 주 지점 간 거리를 효율적으로 알려주기 위해서다. 두 지점을 직선으로 연결하고 눈금을 그려 거리 정보를 표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도로에는 실제 도로가 아닌 것도 있다. 이 가상의 도로는 두 지역사이 네트워크를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대동여지도와 이어지는 첨단 기술은 '자율주행차'이다. 사실 처음에 네비게이션이 먼저 떠올랐는데, 이제 네비게이션은 너무 오래된 기술인가...... 더 좋은 기술들이 많이 생겨났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무려 1993년 도로 자율주행기술을 공공도로에서 처음 시연했다고 한다. 세상에,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 기술이었다.


아마 지금은 유물이라 말하는 것들은 만들어졌을 당시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오는 기술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새롭게 나타나면 우와! 하는 기술들도 먼 훗날 구식 기술이 되버리는 걸까. 그렇다면 그 날에는 어떤 기술이 등장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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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 드럭스 - 인류의 역사를 바꾼 가장 지적인 약 이야기
토머스 헤이거 지음, 양병찬 옮김 / 동아시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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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약에 대해서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 백신으로 떠들썩 해서 저절로 관련 이야기에 눈길이 가기도 했고, 가장 큰 이유로 의약품 시험 기관에서 인턴 생활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조금씩 의약품에 대해 관심이 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 타이밍에 10여가지의 약의 연대기를 담은 『텐 드럭스』를 읽게 되었다. 이 무슨 인연이람.

<서곡, 5만개의 알약>에서 작가인 토머스 헤이거는 "이 책은 의약품에 초점을 맞춰, '약 권하는 사회'가 도래한 과정을 설명할 것이다. 이 책은 '의학사를 바꾼 열 가지 약물들의 미니 전기로, 인류의 보편적 주체를 곁들여 기술한 일련의 간단하고 생생한 스케치라고 할 수 있다.(7p)" 라고 책을 소개하고 있다. 더불어 소개하고 있는 약물은 정확히 '열 가지'를 소개하는 것이 아닌, 설파제와 같은 단일 화합물과 더불어 스타틴 등의 약물이 속하는 화학적 그룹을 전체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열 가지 이상의 약물이 소개되고 있다.


양귀비와 아편에서부터 시작해, 천연두를 극복하기 위한 백신 접종의 등장을 거쳐 모르핀과 헤로인, 피임약과 비아그라, 그리고 이러한 약의 역사를 통해 앞으로의 신약개발로 이어지는 역사와 흐름을 담은 책이다.

무엇보다 이 책, 엄청 재미있게 쓰여져 있다. 개인적으로 번역도 잘 되어있다고 생각하는데(물론 번역에 대한 일가견은 없기에 지극히 주관적이다) 이제 막 자라나기 시작한 관심에 그리 지식이 없는 내가 읽어도 푹 빠져서 읽게된 책이다. 물론 내용이 엄청 쉽다고는 말할 수는 없겠다. 왜냐하면 읽을 때 마다 머리를 아프게하는 약물 용어의 등장에 멈칫거리고는 했으니까.


여러 이야기 중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2장 레이디 메리의 괴물>이다.


2장의 이야기는 '메리 피어폰트'라는 여성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메리는 부유한 집안의 규수이며 지적 능력도 겸비하고 있었다. 또한 강인한 독립심을 가지고 있어 그녀는 그 당시 사회에서 무척이나 희귀한 여성 작가가 되기로 했다. 그 뿐인가, 아버지가 신중하게 고른 신랑감을 마다하고 엔드워드 워틀리 몬태규와 결혼했다. 물론 그도 괜찮은 가문 출신의 사람이었지만 메리와 비교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이들의 결혼 소식은 상류층에서 가십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메리는 글을 출판하여 당대 최고의 여성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고, 남편과 사이에 아들을 얻게 되었다. 그렇게 미래가 행복으로 가득할 줄만 알았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천연두가 세상을 휩쓸었고, 메리의 남동생이 첫 번째 희생자가 되었다. 남동생을 천연두로 인해 하늘로 보낸 뒤 2년, 메리도 같은 병에 걸렸지만 메리는 그 병을 이겨낸 사람 중 한명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천연두는 한번 걸렸다가 극복하면 두 번 다시 그 병에 걸리지 않았다.

이후 메리는 남편을 따라 동방의 이국적인 당에 가게 되었는데, 그녀는 터키에서 '접붙임'을 하는 시술을 보게 된다. 이 접붙임이란 바로 인두법을 말한다.

기다란 바늘로 팔을 긁어 상처를 낸 후, 상처에서 나온 피와 '물질'을 섞어 환부에 대고 문지르는 시술을 한 후, 시술을 받은 사람은 경미한 천연두에 걸린다. 그리고 아무런 흉터 없이 회복하게 되는데 이 이후로는 두 번 다시 천연두에 걸리지 않게 되었다. 메리는 이 기법을 영국에 도입하기로 결심한다.

물론 세상 사람들은 메리가 여자기 때문에, 또 어디서 들어온지 모르는 기묘한 기법 때문에 무시하기도 했지만, 메리의 노력으로 인해 많은 과학자와 의사들이 접종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천연두에 대한 승리는 어렵게 얻은 것이고, 이로 인해 수억 명의 사람들이 죽음을 피했다. 그리고 지금, 위험을 겪어본 적 없는 현대인들은 질병은 과솦여가하고 백신 접종은 혜택이 별로 없는 것에 비해 위험이 크다라는 착각을 한다.


2장, 레이디 메리의 이야기에가 더 와닿았던 것은 코로나 백신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직 불안함이 많은 백신인데 맞지 않을 수도, 그렇다고 완벽히 신뢰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해가 다가오고 있다. 과연 내년의 상황을 어떨지, 불안함과 기대감이 뒤섞인 혼란스러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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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속 - 새로운 시대가 대한민국에 던지는 질문들
김대식 외 지음 / 동아시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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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이 왔다. 2020년을 돌아보면 머릿속에 남는 건 오로지 코로나 뿐이다.

2020년 초봄에는 여름되기 전에 끝나겠지 생각했고, 여름에는 올해가 끝나기 전에는 종식되겠지 했다. 하지만 새로운 해로 넘어온 지금 코로나는 끝나가기는 커녕 하루에도 800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온다. 코로나가 막 극성이기 시작했을 때는 100명도 참 많다 생각했는데, 이미 하루 확진자 수가 1000명을 넘어선 것 까지 보았기에 100명은 참 코웃음 나는 숫자다. 코로나 확산 초기에는 다들 몸을 사렸는데, 생각보다 길어진 장기전에 모두 지쳐버린 걸까.

1년이 채 안되는 시간동안 코로나는 많은 것들을 변화시키고 있다. 아마 정부는 이렇게 많은 재난문자를 보내본 적이 없었을 테고(물론 나도 이렇게 재난문자를 많이 받아본 적이 없고), 학교와 회사는 어느 때 보다 IT기술과 가까워졌을 테고,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으며 무엇보다 마스크에 파묻혀 숨막히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고작 1년, 코로나는 급격한 사회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앞으로 또 다른 변화를 가져 올 것이다.


역자학자 주경철, 사회학자 장덕진, 중국 전문가 정종호, 거시금육학자 함준호, 전략경영전문가 김동재, 그리고 뇌과학자 김대식. 이러한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공부하기 위해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공부모임을 만들고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뇌과학, 경역학, 사회학, 역사학, 경제학. 5개의 분야에서 바라본 코로나가 가지고온 변화와 앞으로 일어날 변화를 과거의 경험과 데이터를 통해 바라보는 책이다. (중국 전문가 정종호 교수님은 아쉽게도 책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한다.)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인 장덕진 교수님은 국내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한 SNS연구를 개척해왔고, 코로나19에 대한 미디어 프레임과 정치적 파급효과 그리고 코로나19의 전파 네트워크에 대한 연구를 발표해왔다고 한다.

이 글에서는 사람들의 사회 네트워크를 분석하고 데이터를 뽑아 감염 경로를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예측 가능한 방법들을 몇가지 생각해 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질본은 과부하가 걸려 이러한 역학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런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코로나 뿐만 아니라 다른 감염병이 발발했을 때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주경철 교수님은 감염병이 어떤 방식으로 전파되는지 그 역사와 함께 이야기 하고 있다.

병사들에게 예방주사를 놓기 시작했던 1904년 러일전쟁 이후에는 싸움에 의해 죽은 사람들 보다 감염병으로 인해 죽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 교통 발달은 바이러스 전파를 가속화했고, 미국에서는 질병 때문에 좋은 대학들이 생겨났다고 한다. 영구 본토에 유학을 가서 공부하는데 미국에는 없던 낯선 병에 걸려죽었기 때문이다.

흑사병이 퍼지면서 인구감소와 농촌구조가 바뀌고 봉건제가 흔들리는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변화는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이전 사회에서 천천히 변하고 있던 것들이 어떠한 계기로 인하여 가속화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현재 코로나 역시 천천히 움직이고 있던 변화 현상을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되지는 않았을까 글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로 재직중인 함준호 교수는 팬데믹 위기의 본질과 특성, 그리고 이에 대한 회복경로가 어떻게 될 것인지 살펴보고 향후 경제 변화 방향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조망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포스트코로나 시대 경제 패러다임 변화를 5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계층·산업·국가·지역 간 분절과 다극화를 심화시키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미 진행되고 있던 신자유주의적 경제 세계화와 금융주도 자본주의의 퇴조 현상을 더욱 가속화하는 기제로 작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119p)

둘째, 경제 디지털화가 가속화되면서 기존의 금융주도형 자본주의에서 기술주도형 자본주의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121p)

셋째, 공급자 중심의 팽창지향적 양적 경제에서 수요자 중심의 가치지향적 질적 경제로 전환될 것이다. (123p)

넷째, 계층간 분배구조가 악화되면서 신자유주의 기반 시장경제시스템이 약화되고 국가의 개입주의 경향이 확산될 위험이 있다. (124p)

다섯째, 국제경제와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성이 크게 높아질 것이다. (127p)

한국 경제의 변화에 관해서는 제조업 노동투입이 낮아지고 수출 감소로 인해 생산성 증가율의 하락으로 '일본화 현상'이 가속화 될 것이며, 비전통적인 통화정책 도입으로 인해 부채 위험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또한 분배구조 악화와 사회주의적 경제관이 확산되며 시장경제의 활력이 저하되고 경제의 비효율성이 심화될 위험이 있다고 한다.


연세대학교 국제대학대학원 교수이자 한국블루오션연구회장인 김동재 교수님은 경영의 변화 방향과 한국 기업과 산업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한국은 생각보다 늦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나마 전기자동차와 연계되는 배터리나 바이오, 인터넷 게임 분야의 업체들은 밝은 전망을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미래를 본다면 조금 암울한 편이라고 한다. 한국 산업은 전통 산업의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이 급속화되고 있는 와중 이러한 모습이면 안된다.

또한 한국 기업의 가장 큰 문제중 하나는 글로벌 강자가 보이지 않는 점을 꼽는다. 과거의 현대차, 포스코와 같이 현재 중요시 되는 산업에서는 그런 역할을 하는 기업들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이자 뇌과학자인 김대식 교수는 초가속의 시대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야기 한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제1차세계대전이나 대공황으로 20세기가 시작된 것 처럼 21세기는 코로나로부터 시작되었다고.


그렇다면 어떤 것들이 가속화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해 반세계화, 미-중 신냉전, 사람과의 관계 사이에 IT가 포함되는 형태(AI) 등등을 설명하며, 이러한 가속화 되는 것들 중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가속은 소비자의 선호도를 예측하거나 선호도를 자극, 조정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꼽는다.


앞으로 세상은 참 많이 변할 것이다. 이 모든 변화가 코로나가 단독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닌, 이전 세대에서부터 차츰차츰 변화해오던 것에 코로나가 방아쇠로 작용한 것이다.

아직 코로나는 끝나지 않았다. 세계는 아직 멈춰있고, 이 멈춰있는 가운데 어떤 방향으로 미래를 준비할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겨내야 한다. 우리는 어쨌든 앞으로 나아가야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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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라디오
남효민 지음 / 인디고(글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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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효민 작가는 <별이 빛나는 밤에><두 시의 데이트><꿈꾸는 라디오><푸른 밤><오늘 아침><오후의 발견><펀펀 라디오><FM 데이트>등의 프로그램과 현재는 <아닌 밤중에 주진우 입니다>와 MBC 캠페인 <잠깐만>의 글을 쓰고 있는 20년차 라디오 작가이다.

무려 20년! 한 직종에 20년이라는 시간을 보낸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만큼 '라디오'에 관한 추억이 넘쳐날 것이며, 이 책에는 라디오 작가에 관한 이야기, 라디오 디제이에 관한 이야기, 청취자와 사연에 얽힌 이야기 등등 라디오의 이모저모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어떻게 매일 글을 써요?

사실 나도 참 궁금했던 질문이다. 집에서 습작을 좀 써보려고 해도 그것 마저 머리에 쥐가 나는데, 어떻게 20년간 그것도 매일 글을 쓸 수 있는 걸까?

나와 같은 사람이 많았는지, 작가님은 이 질문을 라디오 작가로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라고 한다. 그리고 이 질문이 좀 웃기다고도 생각하기도 했다 한다. 매일 회의를 하는 것 처럼, 매일 보고서를 쓰고, 매일 자신의 일터를 찾아가 일을 하는 것과 같은 순리니까.

작가님은 매일 글을 쓰기 위해 '디제이가 오늘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을 걸까?'라는 질문을 생각한다고 한다. 라디오 원고는 결국 디제이의 입으로 전해지는 말이기도 하니까.


그렇기 때문에 디제이들의 클로징 멘트를 꼭 정하기도 한다. 예를들어 유희열의 '행복하세요.', 타블로의 '좋은 꿈 꾸세요.' 성시경의 '잘 자요.' 같은 끝 인사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라디오의 준비과정 부터(대본) 끝까지(클로징 멘트), 라디오의 모든 것들은 청취자와의 대화인 것 같다. 직접 대면하고 있지는 않지만, 가족이나 친구 회사 동료들과 이야기 하듯 그냥 일상속서 일어나는 말에서 부터 말로 전해지는 과정 말이다.


비슷한 사연, 전혀 다른 반응

특히 청취자의 반응이 달라진다는 일화가 참 흥미로웠다.

아침 9시, 청취자 대부분이 주부들이 많은 시간 '짝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면 밤이나 오후 시간대와 또 다른 청취자들이 반응이 쏟아져 내린다. 감수성 어린 저녁이라면 짝사랑에 동감하며 자신의 경험 또한 이야기 하겠지만, 오전 시간의 반응은 '임자 있는 사람을 왜 좋아해!'라는 것이다.

작가님은 이러한 반응을 두고 결혼 후와 결혼 전, 시간의 흐름에 따른 반응의 변화가 아닐까 생각을 한다. 조금 더 젊었을 때는 같은 짝사랑에 울고 웃었던 청취자들이,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한 후에 조금더 현실적인 상황에 그 상황을 대입한 상황.


이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러한 반응의 변화는 시간의 변화와 함께 일어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다. 짝사랑 이야기에 열불을 내던 주부들이 저녁 시간에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면 과연 똑같은 반응을 했을까? 아니면 그 저녁 특유의 묘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에 휩쌓여 그 시절 소녀같이 절절한 짝사랑에 울었을까. 시간이라는 것은 라디오의 성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이 밖에도 라디오의 성향을 결정짓는 요소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대표적인것이 바로 라디오를 이끌어나가는 디제이.

개그맨 박명수는 호통과 함께 위로를 건내고, 타블로는 자신과 자신 주변 인물의 경험을 이야기 하며 동감한다. 성시경이나 알렉스는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며 그것은 너에게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용기를 주고, 소녀시대 써니는 자신의 판단으로 상처주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주진우는 무조건 청취자의 편이다.

디제이의 성격은 라디오에 반영이 되고, 청취자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디제이들을 이해하고 라디오의 방향을 결정지어나가는 것, 이 또한 무척이나 중요하다.


이 책은 오프닝으로 시작해서 클로징으로 끝난다. 그 중간에 라디오 대본도 있고, 디제이도 있고, 처음과 끝의 인사말도 있고, 청취자들의 사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읽는 내내 라디오 그 자체를 '듣는' 것이 아니라 '읽는' 느낌이었다.

사실 나는 라디오 세대가 아닌데(사실 '세대'라고 말하기에는 거창하다. 그저 즐기지 않은 부류라고 하자.) 그래도 라디오에 대한 로망이 몇개 쯤 이었다. 대표적으로는 응답하라 1988에서 정봉이가 사연을 엽서로 보내는 것이 그 중 하나이다. 지금은 핸드폰 어플리케이션으로 간단히 채팅만 치면 보낼 수 있는 것이지만, 어쩐지 편지로 보내는 것이 라디오, 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라디오는 곧 아날로그라는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을 읽고 나서 라디오를 사고 싶어졌다. 이제까지 한번도 가져본 적 없던 것인데, 이제 와서 라디오라니! 좀 웃기긴 한데, 새로운 취미가 될 것 같기도 하는 두근거림에 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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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다나베 세이코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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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지민·남주혁 주연, 김종관 감독 영화인 <조제>로 리메이크 되면서 다시 주목을 받게 된 다나베 세이코의 원작 소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이 새로운 표지로 돌아왔다.


바뀐 표지를 보고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시간의 힘일까. 솔직히 예전 표지는 좀... 촌스ㄹ...... 개정판이 나와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누도 잇식 감독 일본판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도 '일본영화 추천' 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스토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영화에 푹 빠져있던 고등학교 시절(러브레터가 쏟아올린 작은 공...) 안타깝게도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내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내 취향은 따뜻하고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힐링영화인데, 이 영화는 뭐랄까...... 우울함이 더 느껴지는 영화였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흘러서 성인이 된 지금, 넷플릭스에 영화가 있길래 다시 보게 되었는데 여전히, 역시나 내 취향과는 조금 멀다 생각했다. 우울하고 찝찝해.

이러한 탓에 원작 소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찾아 읽어볼 생각을 안했던 것 같다. 그래서 원작 소설을 직접 읽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의외의 사실을 마주했다. 아니 이거 단편이었나요?


놀랍게도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은 9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책이었다. 물론 책의 메인 제목이 된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도 그 속에 포함된 단편 중 하나일 뿐이다.

게다가 이 단편들, 모두 하나같이 핵매운맛의 사랑 이야기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이 정말 순한맛 처럼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사실 소설이 영화보다 훨씬 더 순한맛, 아니 어쩌면 매운맛 한스푼 들어가지 않은 그냥 저냥한 평범한 사랑이야기에 불과하다. 정말 소설이 가진 기본 베이스에 마늘 한스푼, 고춧가루 한스푼 넣어 좀더 강렬하게 만든 것이 영화라고 해야할까.


영화와 비교했을 때, 소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은 정말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소설도 읽고 영화도 보고자 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소설을 읽은 후 영화를 감상하시기를 바란다.

다리가 불편한 조제는 휠체어와 그 휠체어를 밀어주는 할머니가 없다면 움직이지 못한다. 그래서 바깥으로 나가본 적이 얼마 없었고, 할머니의 힘을 빌려 나가는 산책이 허락된 것은 밤 뿐이었다. 할머니는 조제가 휠체어 탄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날, 잠시 뭔가를 사기 위해 가게에 들린 할머니는 조제를 혼자 길에 남겨놨었다. 그리고 그 사이, 악의를 가진 어떤 사람이 조제가 타고 있던 휠체어를 내리막길 아래로 밀어버렸다. 하염없이 미끄러져 내려가는 휠체어를 잡아준 것이 근처 연립주택 단칸방에서 자취하고 있는 대학생, 츠네오였다.

그 이후로 츠네오는 시간이 날 때마다 조제를 찾아와 휠체어를 밀어주었다. 하지만 츠네오는 조제에게만 묶여있던 것은 아니었다. 대학생활도 하고, 여행도 갔다. 졸업이 다가오는데 취업은 되지 않자 조제의 집에 가던 발걸음을 끊기도 했다.

어찌저찌 취업을 한 후 다시 조제를 찾아간 것은, 이미 조제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였다. 집도 옮기고 혼자살게 된 조제에게 츠네오는 예전과 같이 자주 찾아갔다. 또한 조제가 보고 싶다던 호랑이를 보러가고, 수족관에도 갔다.

제목인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은 주인공 조제가 좋아하던 것, 혹은 바깥으로 나가 한번쯤 보고 싶었던 것의 나열이다.


이름인 '조제'마저 그렇다. 원래 이름은 '야마무라 구미코'이며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을 질겨 읽던 그녀가 어느날 츠네오에게 대뜸 자신을 '조제'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조제가 되었다.


호랑이를 보며 두려움에 덜덜 떨었지만, 조제는 호랑이를 봤다. 츠네오가 그런 조제를 보며 그렇게 무서워 하는데 왜 보냐고 물었을 때, 조제는 이렇게 말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을 보고 싶었다고. 무서워도 의지할 곳이 있으니까.


그리고 수족관에서 물고기를 보고난 후 함께 집으로 돌아온 그날 밤. 조제는 달빛이 방을 비추는 그 밤의 풍경을 보고 해저 동굴의 수족관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자신과 츠네오도 물고기가 되었다고. 그리고 그 해저 동굴과 같은 모습을 보며 조제는 죽음의 세계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죽은 거야.'(70p)

행복은 곧 죽음이라고.

언젠가 후타바테이 시메이가 러시아 문학인 투르게네프의 『밀회』에서 사랑에 관한 대사를 '이제 죽어도 좋아'라고 번역했다는 일화가 있다.조제가 생각한 죽음의 이야기를 듣고 순간 이 일화가 떠올랐다.

소설은 둘이 함께 부부처럼 사는 장면으로 끝난다. 영화와는 다르게.


이 외의 다른 단편들을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 여러번 생각해 봤지만, 포기하기로 했다. 정말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핵매운맛 사랑 이야기라. 다른말로 하면 불륜.

특히 <짐은 벌써 다 쌌어>를 읽으면서 감정의 최고조(물론 불륜에 대한 빡침)를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다음 작품인 <사로잡혀서>를 읽으면서 책을 내던질 뻔 했다. 아니 이보쇼! 어쩜 화가나는 이야기에는 몰입이 이정도로 잘 되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핵매운 사랑 또한 사랑이라고 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재미있게 읽겠지만, 나는 평범한 사랑 이야기가 좋은지라 이 책이 무척 재미있었다. 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음, 이건 개인 취향의 차이라고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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