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다나베 세이코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지민·남주혁 주연, 김종관 감독 영화인 <조제>로 리메이크 되면서 다시 주목을 받게 된 다나베 세이코의 원작 소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이 새로운 표지로 돌아왔다.
바뀐 표지를 보고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시간의 힘일까. 솔직히 예전 표지는 좀... 촌스ㄹ...... 개정판이 나와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누도 잇식 감독 일본판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도 '일본영화 추천' 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스토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영화에 푹 빠져있던 고등학교 시절(러브레터가 쏟아올린 작은 공...) 안타깝게도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내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내 취향은 따뜻하고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힐링영화인데, 이 영화는 뭐랄까...... 우울함이 더 느껴지는 영화였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흘러서 성인이 된 지금, 넷플릭스에 영화가 있길래 다시 보게 되었는데 여전히, 역시나 내 취향과는 조금 멀다 생각했다. 우울하고 찝찝해.
이러한 탓에 원작 소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찾아 읽어볼 생각을 안했던 것 같다. 그래서 원작 소설을 직접 읽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의외의 사실을 마주했다. 아니 이거 단편이었나요?
놀랍게도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은 9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책이었다. 물론 책의 메인 제목이 된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도 그 속에 포함된 단편 중 하나일 뿐이다.
게다가 이 단편들, 모두 하나같이 핵매운맛의 사랑 이야기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이 정말 순한맛 처럼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사실 소설이 영화보다 훨씬 더 순한맛, 아니 어쩌면 매운맛 한스푼 들어가지 않은 그냥 저냥한 평범한 사랑이야기에 불과하다. 정말 소설이 가진 기본 베이스에 마늘 한스푼, 고춧가루 한스푼 넣어 좀더 강렬하게 만든 것이 영화라고 해야할까.
영화와 비교했을 때, 소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은 정말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소설도 읽고 영화도 보고자 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소설을 읽은 후 영화를 감상하시기를 바란다.
다리가 불편한 조제는 휠체어와 그 휠체어를 밀어주는 할머니가 없다면 움직이지 못한다. 그래서 바깥으로 나가본 적이 얼마 없었고, 할머니의 힘을 빌려 나가는 산책이 허락된 것은 밤 뿐이었다. 할머니는 조제가 휠체어 탄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날, 잠시 뭔가를 사기 위해 가게에 들린 할머니는 조제를 혼자 길에 남겨놨었다. 그리고 그 사이, 악의를 가진 어떤 사람이 조제가 타고 있던 휠체어를 내리막길 아래로 밀어버렸다. 하염없이 미끄러져 내려가는 휠체어를 잡아준 것이 근처 연립주택 단칸방에서 자취하고 있는 대학생, 츠네오였다.
그 이후로 츠네오는 시간이 날 때마다 조제를 찾아와 휠체어를 밀어주었다. 하지만 츠네오는 조제에게만 묶여있던 것은 아니었다. 대학생활도 하고, 여행도 갔다. 졸업이 다가오는데 취업은 되지 않자 조제의 집에 가던 발걸음을 끊기도 했다.
어찌저찌 취업을 한 후 다시 조제를 찾아간 것은, 이미 조제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였다. 집도 옮기고 혼자살게 된 조제에게 츠네오는 예전과 같이 자주 찾아갔다. 또한 조제가 보고 싶다던 호랑이를 보러가고, 수족관에도 갔다.
제목인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은 주인공 조제가 좋아하던 것, 혹은 바깥으로 나가 한번쯤 보고 싶었던 것의 나열이다.
이름인 '조제'마저 그렇다. 원래 이름은 '야마무라 구미코'이며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을 질겨 읽던 그녀가 어느날 츠네오에게 대뜸 자신을 '조제'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조제가 되었다.
호랑이를 보며 두려움에 덜덜 떨었지만, 조제는 호랑이를 봤다. 츠네오가 그런 조제를 보며 그렇게 무서워 하는데 왜 보냐고 물었을 때, 조제는 이렇게 말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을 보고 싶었다고. 무서워도 의지할 곳이 있으니까.
그리고 수족관에서 물고기를 보고난 후 함께 집으로 돌아온 그날 밤. 조제는 달빛이 방을 비추는 그 밤의 풍경을 보고 해저 동굴의 수족관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자신과 츠네오도 물고기가 되었다고. 그리고 그 해저 동굴과 같은 모습을 보며 조제는 죽음의 세계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죽은 거야.'(70p)
행복은 곧 죽음이라고.
언젠가 후타바테이 시메이가 러시아 문학인 투르게네프의 『밀회』에서 사랑에 관한 대사를 '이제 죽어도 좋아'라고 번역했다는 일화가 있다.조제가 생각한 죽음의 이야기를 듣고 순간 이 일화가 떠올랐다.
소설은 둘이 함께 부부처럼 사는 장면으로 끝난다. 영화와는 다르게.
이 외의 다른 단편들을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 여러번 생각해 봤지만, 포기하기로 했다. 정말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핵매운맛 사랑 이야기라. 다른말로 하면 불륜.
특히 <짐은 벌써 다 쌌어>를 읽으면서 감정의 최고조(물론 불륜에 대한 빡침)를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다음 작품인 <사로잡혀서>를 읽으면서 책을 내던질 뻔 했다. 아니 이보쇼! 어쩜 화가나는 이야기에는 몰입이 이정도로 잘 되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핵매운 사랑 또한 사랑이라고 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재미있게 읽겠지만, 나는 평범한 사랑 이야기가 좋은지라 이 책이 무척 재미있었다. 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음, 이건 개인 취향의 차이라고 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