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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 드럭스 - 인류의 역사를 바꾼 가장 지적인 약 이야기
토머스 헤이거 지음, 양병찬 옮김 / 동아시아 / 2020년 11월
평점 :
사실 약에 대해서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 백신으로 떠들썩 해서 저절로 관련 이야기에 눈길이 가기도 했고, 가장 큰 이유로 의약품 시험 기관에서 인턴 생활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조금씩 의약품에 대해 관심이 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 타이밍에 10여가지의 약의 연대기를 담은 『텐 드럭스』를 읽게 되었다. 이 무슨 인연이람.
<서곡, 5만개의 알약>에서 작가인 토머스 헤이거는 "이 책은 의약품에 초점을 맞춰, '약 권하는 사회'가 도래한 과정을 설명할 것이다. 이 책은 '의학사를 바꾼 열 가지 약물들의 미니 전기로, 인류의 보편적 주체를 곁들여 기술한 일련의 간단하고 생생한 스케치라고 할 수 있다.(7p)" 라고 책을 소개하고 있다. 더불어 소개하고 있는 약물은 정확히 '열 가지'를 소개하는 것이 아닌, 설파제와 같은 단일 화합물과 더불어 스타틴 등의 약물이 속하는 화학적 그룹을 전체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열 가지 이상의 약물이 소개되고 있다.
양귀비와 아편에서부터 시작해, 천연두를 극복하기 위한 백신 접종의 등장을 거쳐 모르핀과 헤로인, 피임약과 비아그라, 그리고 이러한 약의 역사를 통해 앞으로의 신약개발로 이어지는 역사와 흐름을 담은 책이다.
무엇보다 이 책, 엄청 재미있게 쓰여져 있다. 개인적으로 번역도 잘 되어있다고 생각하는데(물론 번역에 대한 일가견은 없기에 지극히 주관적이다) 이제 막 자라나기 시작한 관심에 그리 지식이 없는 내가 읽어도 푹 빠져서 읽게된 책이다. 물론 내용이 엄청 쉽다고는 말할 수는 없겠다. 왜냐하면 읽을 때 마다 머리를 아프게하는 약물 용어의 등장에 멈칫거리고는 했으니까.
여러 이야기 중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2장 레이디 메리의 괴물>이다.
2장의 이야기는 '메리 피어폰트'라는 여성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메리는 부유한 집안의 규수이며 지적 능력도 겸비하고 있었다. 또한 강인한 독립심을 가지고 있어 그녀는 그 당시 사회에서 무척이나 희귀한 여성 작가가 되기로 했다. 그 뿐인가, 아버지가 신중하게 고른 신랑감을 마다하고 엔드워드 워틀리 몬태규와 결혼했다. 물론 그도 괜찮은 가문 출신의 사람이었지만 메리와 비교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이들의 결혼 소식은 상류층에서 가십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메리는 글을 출판하여 당대 최고의 여성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고, 남편과 사이에 아들을 얻게 되었다. 그렇게 미래가 행복으로 가득할 줄만 알았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천연두가 세상을 휩쓸었고, 메리의 남동생이 첫 번째 희생자가 되었다. 남동생을 천연두로 인해 하늘로 보낸 뒤 2년, 메리도 같은 병에 걸렸지만 메리는 그 병을 이겨낸 사람 중 한명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천연두는 한번 걸렸다가 극복하면 두 번 다시 그 병에 걸리지 않았다.
이후 메리는 남편을 따라 동방의 이국적인 당에 가게 되었는데, 그녀는 터키에서 '접붙임'을 하는 시술을 보게 된다. 이 접붙임이란 바로 인두법을 말한다.
기다란 바늘로 팔을 긁어 상처를 낸 후, 상처에서 나온 피와 '물질'을 섞어 환부에 대고 문지르는 시술을 한 후, 시술을 받은 사람은 경미한 천연두에 걸린다. 그리고 아무런 흉터 없이 회복하게 되는데 이 이후로는 두 번 다시 천연두에 걸리지 않게 되었다. 메리는 이 기법을 영국에 도입하기로 결심한다.
물론 세상 사람들은 메리가 여자기 때문에, 또 어디서 들어온지 모르는 기묘한 기법 때문에 무시하기도 했지만, 메리의 노력으로 인해 많은 과학자와 의사들이 접종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천연두에 대한 승리는 어렵게 얻은 것이고, 이로 인해 수억 명의 사람들이 죽음을 피했다. 그리고 지금, 위험을 겪어본 적 없는 현대인들은 질병은 과솦여가하고 백신 접종은 혜택이 별로 없는 것에 비해 위험이 크다라는 착각을 한다.
2장, 레이디 메리의 이야기에가 더 와닿았던 것은 코로나 백신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직 불안함이 많은 백신인데 맞지 않을 수도, 그렇다고 완벽히 신뢰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해가 다가오고 있다. 과연 내년의 상황을 어떨지, 불안함과 기대감이 뒤섞인 혼란스러운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