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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사랑
문녹주 지음 / 고블 / 2025년 6월
평점 :

🌿 탁월한 상상력으로 동양적 세계관의 대체 현실을 설계해 온, 문녹주 작가의 첫 소설집 『지속 가능한 사랑』.
어떤 사랑은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 기억되는 거였다.
문녹주 작가의 『지속 가능한 사랑』은 사랑과 관계, 연대와 단절에 대해 묻는다.
책을 외우는 노예, 엄마의 가상 세계, 좀비와 기후 위기.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야기마다 아프게 박히는 건 결국 ‘사람’이었다.
🌿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어머니의 도원향」, 「금서의 계승자」, 「지속 가능한 사랑」, 이 세 편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어머니의 도원향」에서는 죽은 엄마가 남긴 비밀스러운 가상공간이 나온다. 현실에선 다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가상 세계에서는 흐릿하게 울린다. 딸은 엄마의 환영을 따라 걷고, 끝내 도달한 곳엔 말보다 깊은 감정이 있다. 기억은 끝나도 사랑은 계속된다는 걸, 그렇게 조용히 말해준다.
「금서의 계승자」는 목소리와 기억, 책이 가진 힘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지식을 지닌 노예를 ‘책’이라 부르는 세계. 그 세계에서 소년과 소녀는 책을 넘기듯 서로를 이해하려고 애쓴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 관계란 건 얼마나 쉽게 찢기고 또 어떻게든 이어지는지를 곱씹게 된다.
그리고 「지속 가능한 사랑」.
‘엄마’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복잡해지는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는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사랑은 때로 오래가는 게 아니라, 끊어졌던 걸 다시 마주할 수 있는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것. 모녀가 겪은 단절과 마주침은, 너무도 낯익고 아프다. 읽는 동안 여러 번 숨을 고르게 했다.
🌿 ‘지속 가능’하다는 말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감정은 쉽게 닳고, 관계는 균열이 생기고, 사람은 바뀌는데 그럼에도 이 책은 말한다.
지속 가능한 건 결국 마음이라고.
잊지 않으려는 의지, 이해하려는 시도, 말 대신 남은 침묵 속의 감정.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랑이 언젠가 끝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있다면, 이 책은 그런 우리를 조용히 껴안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