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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알렉상드르 졸리앙은 75년 스위스의 사비에스에서 탯줄이 목에 감긴 채 태어난 바람에 후유증으로 뇌성마비를 얻는다. 이후 3세 때부터 17년을 장애인 요양시설에서 생활했는데, 여기서 자신처럼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사람들의 통념과는 다르게 이들이 더없이 충만한 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목격한다.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학업을 이어나가 철학과 예술학을 전공했으며 몽티옹 문학철학상까지 수상한다. 다른 평범한 비장애인들처럼 2004년에는 지금의 아내를 얻었고 슬하에 아이도 셋을 두었다.
번역본이라 원문이 어떠한 분위기일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옮긴이의 실력을 충분히 신뢰한다는 가정하에 문체는 진솔하고 소박하다. 작은 소극장이나 소규모 강단에서 혹은 커다란 원형식탁에 앉아 사람들을 앉혀놓고 작가가 개인적인 생각들을 들려주는 분위기를 상상하면 비슷할 것 같다. 부드럽고 섬세한 느낌이라기 보다는 거칠지는 않지만 남성적이고 약간 단단한 느낌이다. 책에서 소개한대로 적어도 결핍과 동거하는 법을 터특하기 위한 기본 자세 정도인.
불혹에 접어든 사나이가 자신의 삶에서 얻은 깨달음과 지혜를 모아 책에 풀어놓는다. 기독교를 믿는데도 불구하고 불교적인 수양방식을 행하는 점이 특이하고 이에 대해서도 자주 언급하는 것이 눈에 띈다. 내가 철학 전문가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느낀 서구철학은 진리추구와 발견을 위해 무언가 모으고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을 통해 쌓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면 동양철학은 조화와 비움, 그리고 내려 놓음과 자비 같은 여백과 여유를 두려는 성향 때문에 사람들을 힐링하는 서적을 집필하는 작가들에게 큰 관심을 받아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저자의 생을 보면 육체적으로 장애를 가졌다는 점 특히 전신이 불편하다는 점에서 오토다케 히로타다의 <오체 불만족>이 떠오른다. 하지만 책의 구체적인 스타일은 다른데 오토다케가 자신의 지나온 일상들을 위트 있게 그려내며 스스로를 초개성적 스타일이라 칭하는 유쾌한 자서전이라면 졸리앙의 책은 개인적인 이야기가 종종 등장하긴 하지만 그의 전공인 철학을 일상에 접목한 잔잔한 느낌의 생활밀접형 철학서적으로 상당히 다른 느낌이다. 물론 모두 희망을 이야기하며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지지하고자 하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하다. 우리나라에 <지선아, 사랑해>의 저자 이지선씨의 책도 비슷하다.
사람은 분명 매순간 변하고 좋지 않은 방향일 때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모두 각자가 머릿속에 새긴 기준 때문에 셀 수 없이 많은 감정에 휩싸이고 번뇌한다. 이것은 무언가 되어야 한다는 욕구에 사로잡혀 그것이 불일치 하는데서오는 부정적 감정 때문인 경우가 다수고 이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게 한다. 저자는 그래서 티베트 불교의 가르침을 인용해 우리 안에 출몰하는 생각들을 마치 어린아이들이 노는 광경을 구경하듯 바라보라고 가르친다는 것을 전한다. 내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과도 같은 감정의 폭풍을 구경하듯이 들여다보란 것이다.
명상을 한 번이라도 시도해본 사람이라면 10분여를 무념무상으로 좌선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알 것이다. 10분 정도 가만히 생각 없이 한 자세로 있어보라면 그것도 일이냐며 비웃을 사람이 있을테지만 사람은 생각 보다 복잡하고 쓸데없이 비생산적인 잡념이 많은 동물이라 쉽지 않다. 그러니 하고자 하는 것이 많은 현대사회의 욕심꾸러기들은 얼마나 그 속이 복잡하겠는가. 그래서 작가는 질 수 없는 짐은 내려 놓고 지금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을 이야기한다. 선사에서 가르치는 명상법이 그러하다. "앉으십시오. 그리고 보다 잘 앉으려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좀 더 제대로 앉으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지금 앉은 자세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냥 받아들여 그 자세를 그대로 취하십시오."
총 22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170페이지로 적은 분량에 판형은 일반 소설판형 약간 작다. 검은 바탕의 페이지 상측 우단에 하얀 제목이 적힌 페이지를 넘기면 좌측 상단에 유명한 격언이 하나 나오고 다음에 이어서 관련된 이야기가 너댓장에 걸쳐서 나온는 방식으로 단순하다. 특별하지 않은 편집에 분량은 적고 화려한 미사여구가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읽어 보면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이나 도움 받은 부분은 볼드체 처리하였다.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그냥 행복'하고 싶다는 것. 아이들은 행복을 따로 생각하지 않아도 행복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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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그냥 그대로 있는 것 내게 남은 모든 것을 버리다 나쁜 친구는 나를 완성시킨다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마음의 상처를 끌어안을 용기가 필요하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는가 행복한 아이는 인생의 의미를 떠올리지 않는다 자책하지도, 자만하지도 말고… 불편한 진실 끌어안기 나는 강요된 선행을 거부한다 삶을 짓누르는 사소한 것들에 대하여 타인의 아름다움을 탐하지 마라 순수한 열정을 되찾기 위하여 불가능한 것은 잊고 최선의 것을 욕망하라 긴장감을 놓아도 죽지 않는다 지금의 결심을 끝까지 지키는 법 나는 무엇을 믿는가 나를 파괴하는 생각들에 대하여 인생은 누구를 위한 연극인가 가장 비극적인 순간에도 웃음은 존재한다 질문은 그만! 그냥 행복하라 삶은 계속되고 나는 나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간다 |
학구적인 표현으로 난해하거나 고리타분하게 풀지 않고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로 엮어가는 실천적인 철학서다. 예를 들어 삶을 짓누르는 사소한 것들에 대하여라는 장에서 기차를 놓치는 상황을 제시하며 '별일 아니야'라며 불행을 쿨하게 무시하라고 조언한다. 지나간 기차를 '나의' 기차라고 외치면 350명이나 탑승해서 이미 지나간 기차가 내 기차가 되냐고 하면서. 저 대목을 읽으면서 피식했던 것 같다. 사실 사람들은 지구가 꺼질 정도의 대재앙 때문에 매일 불행한 것이 아니라 시험에서 한문제 더 틀리거나, 사소한 말다툼 때문에 하루 종일 울적한 경우가 더 많으니까.
남들은 이 책을 요즘 대세인 힐링을 위해서 집어들겠지만 나는 읽고 조금 가슴이 싸했다. 졸리앙은 장애를 가지고 있고 이들에게 살기가 비교적 좋은 선진국에 적을 두고 있다해서 장애라는 의미가 희석되거나 그 사실이 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장애가 편치않다는 점은 만국공통이기에 그는 여전히 일상생활에서 불편이 있을 것이고 도움 없이 되지 않는 일이 많을 것이다. 남과 다르다는 것은 뛰어난 부분이든 모자란 부분이든 동질감과 소속감에서 안정감을 찾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항상 큰 짐이다. 아마 아파서 단기간 행동에 제약이 있었던 사람들은 그것이 얼마나 큰 수고로움인지 알 것이고 회복 후에는 평범하고 당연한 것이 굉장히 감사한 일임을 알 것이다.
나도 오랜 기간 운동의 결과로 발바닥에 지방패드가 상한 일이 있었는데 닿기만 해도 전기가 오는 것 같아서 제대로 걷지 못한 일도 있었고 꼬리뼈가 부러져서 제대로 앉고 눕지 못한 적도 있었는데 그 불편함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기에 영구장애를 가진 그가 매알 삶과 부딪치며 헤쳐나가며 이룬 것이 더 대단해 보였다. 졸리앙이 태어나면서 장애를 얻고 비장애인이 가진 자유로움을 겪어보지 않았다하여 이를 동경치 않고 자신의 불편함이 익숙하다고 그가 마냥 자유로운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책에서 더 없이 큰 멘토가 되어주니 넘기는 책장이 오히려 무겁다. 책의 이야기는 보편적인 상념들에 관한 것이지만 졸리앙 자신의 신체적 한계와 제약에 부딪칠 때마다 느꼈을 상념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자신만의 마법의 주문과 같은 위로들을 적어 놓은 것만 같았다.
이 책은 모든 챕터가 내용이 짧은 편이라 구구절절 이야기를 담지 않아 자세한 사정까진 알 수 없기 때문에 내게 많은 생각을 품게하고 상상하고 추측하게 했다. 특히 나는 강요된 선행을 거부한다 부분에서 요구르트를 먹고 싶어한 자신에게 여섯살짜리 오귀스탱이란 아들이 자신에게 숟가락을 빼고 가져오자 명상용 주발을 치는 막대기로 퍼먹는 모습을 보여주어 모두를 웃게 하는 장면에거 가슴이 찡했다. 사실 아들은 아직 상대의 입장에서 사고하기엔 어리고 아빠과 남과 다르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해서 그런 것인데 졸리앙은 이를 재미나게 해결한 것이다.
다른 챕터는 그의 장애에 관한 것은 아니지만 한 번 시작된 그런 기분이 쉽게 끊어지진 않았다. 무슨 동정이나 연민에서 오는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그가 가진 '개인적 불편함'에 깊이 공감하기에 생기는 그러한 감정이었다. 비교불가겠지만 나도 몸이 불편하면 이정도 아파서 죽을 것도 아니고 무시해버리자 뭐~ 하고 최면을 걸듯이 속으로 되새기며 참는데 졸리앙은 속으로 생각하길 '이따위 장애는 이제 그냥 웃어넘겨버려야겠어.....'라고 생각한다. 몸은 불편하지만 마음은 자유로은 그다. 바로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서 나오는 몽테뉴가 말한 구절이 그래서 더욱 가슴에 남았다. 비장애인도 쓰러지긴 매 한가지니.
모든 것이
쓰러지는 곳에서는
당연히 아무 것도
쓰러지는 것이 없다.
- 몽테뉴
혹시 이 책을 읽고 철학에 흥미가 생겨서 기초부터 시작하고 싶다면 러셀의 서양철학사를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책이 깊이 있는 철학으로 파고 들어가지는 않고 중요 개념을 언급하고 가볍게 인용하는 수준이긴 하지만 말이다. 블로그에 기존에 서평한 철학서로는 두 권이 있는데 삶이 너무 팍팍해서 노근해지는 철학을 원한다면 첫번 째 서적을, 네이버 캐스트 스타일을 좋아한다면 후자를 함께 보는 것을 추천한다.
철학자처럼 느긋하게 나이 드는 법 - 대니얼 클라인 http://blog.naver.com/lawnrule/120186754965
철학의 숲 길을 열다 - 정재영, 박일호|송하석|홍성기 http://blog.naver.com/lawnrule/120163556493
나는 책을 받으면 목차부터 확인하고 마음을 확 잡아당기는 부분을 제일 먼저 펼치는데 이 책은 특이하게도 다른 책들이 페이지가 적혀있어야 할 곳에 아무것도 인쇄되어 있지 않았다. 분명히 목차에는 페이지가 적혀 있었기 때문에 중간에 한 페이지를 붙잡고 끝까지 펼쳐 꼼꼼히 살피니 그제서야 페이지의 가장 안쪽에 숫자가 있었다. 굉장히 불편하게 되어 있는데 의도된 것인지 편집상의 실수인지 모르겠지만 사소한 것에서 느껴지는 불편함 때문에 지은이의 입장이 상기되면서 묘한 감정이 들었다.
철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큰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혹시 철학이라니까 복잡하고 못알아들을 말이 나올까봐 걱정스럽다면 전혀 그럴 필요가 없으며 막상 접하면 굉장히 명쾌하고 가까운 이가 이야기해주는 다정다감한 책이라고 느낄 것이다. 선천적 뇌성마비라고 홍보를 해놔서 이목을 끌었기 때문에 장애극복 이야기가 많이 나올 것 같았는데 대부분은 지극히 일반인들의 시선에서 하는 상념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외국인이지만 불교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그런지 이질감도 크지 않다. 사회생활하는 누구에게나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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