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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마케팅 책부터 소설까지 다양한 부분에서 독일 작가의 책을 서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유럽에서 떨어져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특별히 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미권에 비해서 확실히 유럽권 문화는 책을 비롯해서 영화나 음악까지 훨씬 이국적인 느낌이 들고 낯설다. 아마 그들이 동양문화권을 대할 때 느껴지는 거리감과 비슷할 것 같다. 하지만 독서를 하다보면 생각보다 많은 독일인물들이 우리 생활에 연계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곤 한다. 최근에 서평한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다>도 그러했다.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http://blog.naver.com/lawnrule/120188451994
해당 작품은 역사적 비극과 로맨스가 적절히 조화된 수작이다. '책 읽어주는 남자'는 독일어권 최초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던 책이다. 내용 자체도 좋지만 독자들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책이 가진 관점이 특이해서였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악에 대해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징벌의 대상으로 여기며 대개 주인공의 입장은 선한 자이며 여기에 감정을 이입하여 사건전개에 따른 희노애락을 함께한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가해자의 입장을 그리고 있다. 이런 경우 읽는 이로 하여금 굉장한 갈등하도록 만들어 마음 속을 헝클어 놓고 더욱 흡입력 있는 상태로 만들어 몰입하게 돕는다. 여주인공의 죄의 내용도 악질인데 어린 소년들을 차출해서 가스실로 보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나는 재판으로 유죄를 확정 받아 복역하기에 이른다. 읽어 보면 그녀는 홀로코스트에 일조한 문맹이란 점과 15살 차이의 미성년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점을 제외하면 지극히 평범한 여성이다.
심지어 문맹임에도 성실한 점 때문에 사무원으로 자리를 옮기고 승진의 기회도 얻기도하며 생면부지의 미하엘이 간염으로 길에서 구토하던 것을 구해주기도 하였으며 종국에는 사랑받고자 하는 보통의 여자였던 것이다. 재판 과정을 보면 그녀가 히틀러 신봉자라든가 깊은 철학적 동기로 일에 열성적인 것도 아니었다. 자신에게 죄를 물을 때 그녀는 오히려 자신의 입장이라면 어땠을지에 대해 반문하며 반성의 기미가 없는데 무지의 소산이기도 하고 동시에 내게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격언과 떠오르는 순간이기도 했다.
누군가를 이해하면 미워하기 힘들어진다는 점은 많은 부분에서 그러한 것 같다. 스톡홀름 신드롬과 비슷한 이유일지도.
스톡홀름 신드롬(Stockholm Syndrome)
유사한 맥락에서 전범국인 일본을 시대적 배경으로하는 반딧불의 묘도 책 읽어주는 남자와 함께 자주 언급되는 것 같다. 나치를 배경으로해서 피해자의 입장을 그린 작품인 영화에서는 쉰들러 리스트나 인생은 아름다워를 대비하면 책 읽어주는 남자만이 가진 특이성이 더욱 도드라진다. 가해자를 미화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을텐데 이것은 결국엔 독자의 판단에 맡겨야 될 부분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설정은 비극을 위한 장치이자 동일한 사건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본 것일 뿐 역사의 본질을 왜곡하기위한 시도는 아니라 본다.
한나는 형을 살았으며 이유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형을 마치던 새벽녘에 그녀는 자살했으니 그녀가 한 일의 결과에 대한 벌은 받은 것 아닐까. 문맹이란 것이 상징하는 것은 '무지'일 것이다. 한나는 진실이 드러나서 치부가 노출될까 직장도 그런 이유로 옮겨다닌다. 자신의 필적이 아니란 사실을 인정하면 잠깐의 수치심이 들더라도 형을 면할 수 있었기에 한나의 선택은 상당히 비이성적인 모습인데 당시 유럽사회의 광기어린 부정적 에너지가 유대인 학살로 표출된 것처럼 한나의 결정도 그와 진배 없었다.
나중에 글을 익히고 계속 책을 접하면서 그녀는 스스로에 대해 자각하고 문맹이란 개인적 부끄러움에 가려져 있던 진정한 수치의 근원을 목격하였을 것이다 더불어 사랑을 잃었음에서 오는 좌절감까지 겹쳐서 한나가 죽음을 선택하도록 하고 결국에 독자의 눈가를 적시는 것이 작가의 목표가 아니었나 짐작할 따름이다. 아무튼 백치미에 가까운 그녀의 사랑이 너무 순수해서 내게는 더 슬펐다. 그녀의 무지가 역사적인 부분에선 악이었지만 그녀의 개인적 사랑에서는 선이었으니 말이다.
관련된 영화와 나치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는 책들이다.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The Reader, 2008
나쁜 세계사 - 엠마 메리어트
http://blog.naver.com/lawnrule/120187883598
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할 교양 <안락사>
http://blog.naver.com/lawnrule/120185948098
재판정의 한나가 자신의 필적이라 거짓을 이야기할 때 그녀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서 침묵한 미하엘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과연 옳은 선택인지 법학을 전공한 내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시간도 가졌다. 더불어 만약 미하엘이 그녀를 설득해 이러한 상황을 벗어났다면 어떤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을지 상상하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대개의 독자들이 그렇듯이 나도 읽는 와중에도 그렇지만 읽고나서도 굉장히 마음이 힘들었고 여운이 큰 작품이었다.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작품 자체는 내용을 이해하고 분석하려 하기보다는 감정을 자체를 추스르는 것이 더 바쁜 가슴 아픈 이야기다. 군국주의와 제국주의가 정점을 찍던 전쟁의 시대에 개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감각의 제국이란 영화도 시간이 된다면 보길 추천한다. 1부에선 소년과 여인의 사랑이야기 2,3부는 전후에 재판을 받고 형을 살게되는 한나와 중년이 되어 테잎을 보내는 미하엘이 나온다. 미하엘이 느끼는 증오와 그리움, 사랑과 죄의식 및 수치심과 같은 모순되는 감정들은 독일인들의 자기성찰에서 오는 감정들을 대변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감각의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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