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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 받침 한 글자 ㅣ 사계절 저학년문고 42
김은영 지음, 김령언 그림 / 사계절 / 2016년 5월
평점 :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함께 약국에 갔었다.
씹어먹는 어린이 영양제 '*마'를 사달라고 하길래 사주고 약국을 나나서는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마는 로마에서 먹는거야."
아이의 말이 귀엽고, 말장난을 할 정도로 자랐다는 것이 흐뭇하고 기뻐서 웃었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햇살이 좋은 맑은 날이었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유쾌했던 그 날이 떠올랐다.
아이와 함께 읽는다면 한 편 한 편 시 속에 담긴 말놀이에 누구라도 미소지으면서 읽을 것이다.
내가 뽑은 시는 '결'이다.
결
엄마는 잠결에도
아기 숨결 느끼고
아기는 꿈결에도
엄마 살결 느끼고
잠결, 숨결, 꿈결, 살결. 이 단어들이 이렇게 고운 느낌이었나.
엄마와 아기 사이에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충만함을 따뜻하게 표현하고 있다.
아이가 고른 시는 '뿔', '돌', '잘'이다.
'뿔'과 '돌'은 시도 재밌지만, 그림이 한 몫 했다.
시인의 상상력이 ㄹ받침 글자들이 갇혀있던 우리의 문을 열어주어 글자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게 해주었다면, 그림 작가는 글자들이 더 재밌게 놀 수 있는 놀이터를, 언덕을, 하늘을 만들어주었다.
이런 시를 한 편 한 편 읽으며 그림을 보다보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나도 글자들과 놀고 싶어진다.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이 이 책의 첫 번째 장점이라면,
한 없이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 두 번째 장점이다.
잘
잘 가
잘 있어
참 잘했어
하는 일마다
'잘'이 붙으면
참 행복해
그런데
엄마가 말할 땐
마음이 무거워져
발표 잘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받아쓰기 시험 잘 보고.
내가 시를 다 읽자 아이가 정말 맞다고 한다.
아이가, 아이를 기르는 어른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말놀이로 엮어내었다니
시인이 얼마나 공들여 시를 썼을까 싶다.
이렇게 아이의 마음에, 그리고 나의 마음에 닿는 시들을 읽으며
한 권의 책을 읽는 기쁨을 느꼈다.
시 몇 편 읽다가 책장을 덮게 되는 시집이 아니라 여는 시 부터 마지막 시까지 놓치지 않고 읽게 되는 시집을 만나서 참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