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 액터 박정민 넥스트 액터
백은하.박정민 지음 / 백은하배우연구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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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산등성이를 오르내리다 뒤를 돌아보면, 높은 봉우리가 처음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습니다. 언젠가는 그쪽으로 소리를 질러도 메아리가 치지 않을 날이 올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그 높은 산은 꿋꿋하게 모진 바람과 구름과 비를 막아주고 있습니다.
‘이제 괜찮아. 그러지 않아도 난 충분히 강해. 이제 넌 거기서 너로 남아‘ 라고 위로를 건넬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나의 ‘파수꾼‘ 에게 그렇게 보답할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전 영원히 기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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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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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의 악성종기나 개구리 재앙을 연상시키는 경고는 수세기 동안 인류의 마음 깊은 곳에서 전해내려온, 자신이 종말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믿으려는 성향에서 비롯된다. 세상의 종말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면 자신의 죽음도 납득할 만한 것, 최소한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것으로 여겨질 테니까. (p.33)

양자역학. 인간 열망의 보고이자 쓰레기장. 수학적 엄밀성이 상식을 물리치고 이성과 환상이 불합리하게 뒤섞이는 경계지대. 이곳에서 신비주의자는 자신이 필요한 무엇이든 발견하고 과학을 증거로 내놓는다. 이 천재적인 사람들에게 여가시간에 만나는 양자역학은 얼마나 영적이고 아름다운 음악이겠는가. 스펙트럼 비대칭, 공명, 얽힘, 양자 조화 진동자 - 신묘한 매력이 깃든 고풍스러운 아리아, 천체의 하모니. 그들에게 양자역학은 납으로 된 벽을 금으로 바꾸고, 사실상 무
無인 가상입자에 의해 움직이는 엔진을 탄생시켜 유해물질을 배출하지 않고도 인류의 사업을 구할 뿐 아니라 그 동력까지 제공하는 것이다. 이 고독한 남자들의 열망에 비어드는 가슴이 뭉클했다. 왜 그들이 고독하다고 생각했을까? 겸손 때문은 아니었고, 설령 그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그들은 과학자로 성공하기엔 지식이 부족했지만 대화상대를 갖기엔 너무 유식했다. 술집이나 재향군인회에서 기다리는 그 어느 친구가, 직장일과 육아와 가사에 지친 그 어느 아내가 그들을 따라 4차원 공간의 뒤틀린 깔때기 속으로, 웜홀로, 세계적인 에너지 문제의 유일하고도 최종적인 해답에 이르는 지름길로 들어가려고 하겠는가? (p.38)

멜리사는 북런던에 무용복 가게를 여러 개 - 세 개도 여러 개라면- 갖고 있었다. 그녀의 고객명단에는 런던 무용단의 직업무용수뿐 아니라 온갖 아마추어까지 포함되어 요가 강좌에 싫증난 젊은 엄마들도, 마지막으로 젊음을 느껴보기 위해 탭댄스나 탱고를 배우게 된 비어드처럼 나이 많은 남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수익성이 거의 없는 이 사업의 중심에는 영원히 나이들지 않는 작은 꿈나무들이, 대대로 이어져내려오는 무한한 코르드발레가 있었다 - 튀튀, 타이츠, 레깅스, 발레화 차림으로 마음씨 고운 프리마돈나 출신 선생님의 엄한 시선을 받으며 거울 앞에서 발레봉을 잡고 춤추고 싶다는 구식 동경을 품은 소녀들. 흠집난 마룻바닥에서 고된 연습을 하고 첫 무대에 올라 멋진 도약으로 관객의 넋을 빼앗는 그 꿈은 소녀 밴드와 텔레비전 드라마가 장악한 전자 시대에도 살아남았다.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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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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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이 왜 나를 좋아하지 않는지, 왜 나만 보면 그렇게 험상궂은 표정만 짓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로 말미암은 고통의 낙인이 뚜렷이 새겨지고 부당한 분노가 서려 있는 얼굴. 그 얼굴을 볼 때마다 나는 한없이 비참한 심경에 젖곤 했다. 그지없이 고결한 주인에게 추악한 골칫거리나 떠안기는 밉살스러운 고용인, 그 혐오스러운 인간이 나인가 싶어서….…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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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소 청춘문고 15
박혜숙 지음 / 디자인이음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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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천천히, 모든 게 모두가 조금만 천천히 가면 좋겠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몇 정거장 전에 내려 걷는 게 좋다. 걷고 뛰는 걸 무척 싫어했는데 버스를 타면 금방 갈 거리도 내려서 걷다 보면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 된다. 언제 사라져버린 것과 언제 다시 와 있는 것 곧 사라질 것에도 눈을 맞추는 시간들이 대책 없이 애틋할 때가 있다. (p.53)

며칠 전만 해도 못 들은 척하던 할머니가
내가 가는 곳이 멀더냐 묻는 것이
거기 가면 친구도 많고 돈은 많이 들지 않느냐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보고 싶으면 어쩌냐
묻어둔 말이 들릴 듯 말 듯해서
어쩌면 언제나 먹을 밥처럼 내버려두었다가
언젠가 배 속 허전해오면 부를 이름처럼
빈 공기 들여다보고 서성이겠지, 보고 싶으면
그래도 누구도 몰랐다 한다 (p.56)

어쩌면 나는 그때 꿈이라는 것을 뭐 대단하고 화려하게 걸어놓고 감상할 수 있는 그림쯤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환상 같은 어쩌면 허상 같은 거.
언젠가 나를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줄 거라 믿으며 남들에게 그럴듯하게 말하기 좋을 걸 꿈으로 삼았는지도 모르겠다.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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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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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머니는 울지 않았다. 갑자기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전투에 나설 준비가 되었고 전투를 할 수 있었다. 이제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은 나였다. 내가 집에 있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정육점을 하려면 근육이 필요하다. 어머니에게는 근육이 있었다. 어머니가 우는 나를 품에 안아주었을 때 나는 그 근육을 느꼈다. (p.166)

"엄마, 그만둬요." 나는 어머니를 다시 불러내려 했다. "방금 기차에서 내리셨잖아요. 안 그래도 다 깨끗해요."
"내가 여기 있고 이 일이 필요하면 내가 하는 거야."
"필요가 없다니까요. 오늘 아침에도 제일 먼저 거기부터 청소 하더라고요."
욕실이 그럴 필요가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어머니가 그럴 필요가 있었다. 일. 어떤 사람들은 일을 갈망한다. 어떤 일이든. 가혹하든 고약하든 상관없다. 자기 삶의 가혹함을 쏟아내고, 마음에서 자신을 죽일 것 같은 생각들을 몰아내기 위해.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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