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의 악성종기나 개구리 재앙을 연상시키는 경고는 수세기 동안 인류의 마음 깊은 곳에서 전해내려온, 자신이 종말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믿으려는 성향에서 비롯된다. 세상의 종말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면 자신의 죽음도 납득할 만한 것, 최소한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것으로 여겨질 테니까. (p.33)
양자역학. 인간 열망의 보고이자 쓰레기장. 수학적 엄밀성이 상식을 물리치고 이성과 환상이 불합리하게 뒤섞이는 경계지대. 이곳에서 신비주의자는 자신이 필요한 무엇이든 발견하고 과학을 증거로 내놓는다. 이 천재적인 사람들에게 여가시간에 만나는 양자역학은 얼마나 영적이고 아름다운 음악이겠는가. 스펙트럼 비대칭, 공명, 얽힘, 양자 조화 진동자 - 신묘한 매력이 깃든 고풍스러운 아리아, 천체의 하모니. 그들에게 양자역학은 납으로 된 벽을 금으로 바꾸고, 사실상 무
無인 가상입자에 의해 움직이는 엔진을 탄생시켜 유해물질을 배출하지 않고도 인류의 사업을 구할 뿐 아니라 그 동력까지 제공하는 것이다. 이 고독한 남자들의 열망에 비어드는 가슴이 뭉클했다. 왜 그들이 고독하다고 생각했을까? 겸손 때문은 아니었고, 설령 그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그들은 과학자로 성공하기엔 지식이 부족했지만 대화상대를 갖기엔 너무 유식했다. 술집이나 재향군인회에서 기다리는 그 어느 친구가, 직장일과 육아와 가사에 지친 그 어느 아내가 그들을 따라 4차원 공간의 뒤틀린 깔때기 속으로, 웜홀로, 세계적인 에너지 문제의 유일하고도 최종적인 해답에 이르는 지름길로 들어가려고 하겠는가? (p.38)
멜리사는 북런던에 무용복 가게를 여러 개 - 세 개도 여러 개라면- 갖고 있었다. 그녀의 고객명단에는 런던 무용단의 직업무용수뿐 아니라 온갖 아마추어까지 포함되어 요가 강좌에 싫증난 젊은 엄마들도, 마지막으로 젊음을 느껴보기 위해 탭댄스나 탱고를 배우게 된 비어드처럼 나이 많은 남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수익성이 거의 없는 이 사업의 중심에는 영원히 나이들지 않는 작은 꿈나무들이, 대대로 이어져내려오는 무한한 코르드발레가 있었다 - 튀튀, 타이츠, 레깅스, 발레화 차림으로 마음씨 고운 프리마돈나 출신 선생님의 엄한 시선을 받으며 거울 앞에서 발레봉을 잡고 춤추고 싶다는 구식 동경을 품은 소녀들. 흠집난 마룻바닥에서 고된 연습을 하고 첫 무대에 올라 멋진 도약으로 관객의 넋을 빼앗는 그 꿈은 소녀 밴드와 텔레비전 드라마가 장악한 전자 시대에도 살아남았다. (p.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