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천천히, 모든 게 모두가 조금만 천천히 가면 좋겠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몇 정거장 전에 내려 걷는 게 좋다. 걷고 뛰는 걸 무척 싫어했는데 버스를 타면 금방 갈 거리도 내려서 걷다 보면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 된다. 언제 사라져버린 것과 언제 다시 와 있는 것 곧 사라질 것에도 눈을 맞추는 시간들이 대책 없이 애틋할 때가 있다. (p.53)
며칠 전만 해도 못 들은 척하던 할머니가
내가 가는 곳이 멀더냐 묻는 것이
거기 가면 친구도 많고 돈은 많이 들지 않느냐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보고 싶으면 어쩌냐
묻어둔 말이 들릴 듯 말 듯해서
어쩌면 언제나 먹을 밥처럼 내버려두었다가
언젠가 배 속 허전해오면 부를 이름처럼
빈 공기 들여다보고 서성이겠지, 보고 싶으면
그래도 누구도 몰랐다 한다 (p.56)
어쩌면 나는 그때 꿈이라는 것을 뭐 대단하고 화려하게 걸어놓고 감상할 수 있는 그림쯤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환상 같은 어쩌면 허상 같은 거.
언젠가 나를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줄 거라 믿으며 남들에게 그럴듯하게 말하기 좋을 걸 꿈으로 삼았는지도 모르겠다. (p.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