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감이 들 때마다 진경은 이아가 생각났다. 그때 진경은 맨션의 다른 사람들처럼 덮어놓고 이아 엄마를 비난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합리적인 의문들마저 폭력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p.161)

"위로는 받았어요. 위로라고 생각하고 받았어요. 위로와 배려를 받고 나니 그걸 준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따질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결국 팔아먹은 게 됐어요. 그러니까 진경씨, 살면서 혹시 위로받을 일이 생기더라도 받지 말아요."
아니요. 위로받아도 됩니다. 위로와 배려를 받게 되면 받는 거고 받았더라도 따질 게 있으면 따지는 거고 그리고 더 받을 것이 있다면 받는 게 맞아요.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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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화씨, 재화씨는 왜 장르를 써? 얼른 재등단해. 쉽잖아. 적절한 주제에 대해 모나지 않게 쓰면 돼."
그때 재화는 상처를 받지도, 화가 나지도 않았다. 그저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 뿐이었는데, 그건 앞으로도 부적절한 주제에 대해 모나게 쓰리라는 날카로운 예감 같은 것이었다. (p.19)

인생이 테트리스라면, 더이상 긴 일자 막대는 내려오지 않는다. 갑자기 모든 게 좋아질 리가 없다. 이렇게 쌓여서 해소되지 않는 모든 것들을 안고 버티는 거다.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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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정말 이상해서 내가 자꾸 말하는데, 오늘따라 내 기억력 상태가 아주 좋아. 건강한 젊은이의 심장처럼 펄떡펄떡 뛰는 내 머리통은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어. 그런데 무슨 소린지 다는 이해가 안가. 이해한다 한들 기억 못하는 날도 있고 오늘처럼 기억은 하지만 이해가 안 가는 날도 있는 거겠지 뭐. 나는 그냥, 태어난 나와 죽을 나, 맞닿은 두 지점 사이에 접혀 들어가 삭제된 시간 속에 있는 거야. 과거의 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내가 미래에 대해 무슨 약속을 했건 그건 잘 모르고 한 개소리야. 내가 살아보지도 않은 시간을 어떻게 알고 그랬겠어. 모르니까 무서웠던 거지. 그 알지도 못하는 것 때문에 도대체 난 인생을 얼마나 허비한 거냐. (p.46, <품위 있는 삶, 110세 보험>)

동창들은 이제 그에게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가졌던 흔적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며 그 모든 것이 다 자기들 탓이라고 징징거렸다. 그들은 선생님의 인생이 망가졌다는 의미로 말한 것 같았는데, 난 내 인생이 망가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인생도 망가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인생이란 것이 누군가에 의해 그렇게 쉽게 망쳐지도록 생겨먹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그것을 그들에게 이야기해줘봐야 이해하지 못 할 것 같아 그만두었다. (p.84, <어제의 일들>)

오랫동안 지옥을 헤매던 나에게 의문이 생겼다. 내가 행복한 삶을 살았더라면 이런 것이 과연 지옥이 되었을까? 생전에 경험했던 행복을 다시 경험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에는 다른 이름이 붙을 것이다. 내가 삶인 줄 알고 살았던 그것이 지옥이었고, 지금은 사라지지 않는 그 시간들을 나는 그저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p.116, <지옥의 형태>)

"(...) 나도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게 없어요. 하지만 이 모든 게 당신 때문에 일어난 일은 아닐 거예요. 미안해요." (p.190, <엔터 샌드맨>)

"지나간 것에 미련을 두지마. 그 시간을 통과해서 난 이만큼 와 있는 거야. 그만큼 나는 변했고 모든 것의 의미는 달라졌어. (...)" (p.222, <꾸꾸루 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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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야는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었다. 제야는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제야의 생활기록부에는 ‘선하다‘ ‘참을성 있다‘ ‘배려심이 깊다‘ ‘ 화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말이 빠지지 않았다. 어른들은 제야의 그런 면을 늘 칭찬했다. 당숙이 ‘신고까지 할 줄은 몰랐다‘고 말 했을 때, 제야는 여태 어른들이 칭찬하던 자기의 그 부분들, 그래서 자신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그 부분들을 찢어발기고 싶었다. (p.124)

승호가 깁스를 풀고 목발 없이 걷게 되면, 어른이 되고 서른이 되면, 사람들은 승호의 교통사고를 거의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내게도 그럴 수 있을까? 내게 달라붙은 더러운 소문과 억측을 지우고 나를 대할 수 있을까? 승호는 교통사고를 비밀로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난, 내가 저지른 게 아니라 당한 것임에도 비밀로 해야 한다. 들키지 않으려고 전전긍긍 눈치를 보고 거짓말해야 한다. 누군가는 내게 당당하라고 하겠지. 주눅 들지 말고 떳떳하게 살라고 말하겠지. 그런 말도 역겹다. 누구도 내게 떳떳해져라 당당해져라 말할 수는 없다.(p.132)

제야는 울고 싶지 않았다. 울면 멈출 수 없고, 밤새 울어야 할지도 몰랐다. 그러면 약해지는 것 같았다. 제야는 벌떡 일어나 앉고 싶었다.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기지개를 켜고 크게 소리를 내고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다. 강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꼼짝할 수 없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없다. 굳은 채로, 무거운 채로 할 수 있는 건 우는 일 뿐이었다. 제야는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p.155)

잘해주는 게 아니라 걱정하고 아끼는 거야.
너무 노력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노력해야 해. 이모가 단호하게 말했다. 사람은 노력해야 해. 소중한 존재에 대해서는 특히 더 그래야 해.
노력은 힘든 거잖아요. 제야가 중얼거렸다.
마음을 쓰는 거야. 억지로 하는 게 아니야. 좋은 것을 위해 애를 쓰는 거지.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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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어느 텔레비전 방송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이와 같은 상황을 이상하게 여긴 미디어가 "어째서 가해자를 용서 할 수 있나요?"라고 묻자 고노 씨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들도 용서해서 이렇게 취재에 응하고 있지 않습니까." (p.136)

저는 <하나>의 각본 초고에 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설명으로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의미 있는 죽음보다 의미 없는 풍성한 삶을 발견한다."
이는 사상으로서는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단, 영화의 완성도 측면에서는 이런 점을 의식하면서 만든 <하나>보다 어쨋거나 살아있는 실감만을 포착해서 디테일을 포함하여 만든 차기작 <걸어도 걸어도> 쪽이 그 가치관을 명확하게 구현할 수 있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영화가 그런 주장을 소리 높여 하는 게 아니라 영화 그 자체가 풍성한 삶의 실감으로 존재할 수 있을 것. 지금의 제가 지향하는 바입니다.(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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