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야는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었다. 제야는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제야의 생활기록부에는 ‘선하다‘ ‘참을성 있다‘ ‘배려심이 깊다‘ ‘ 화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말이 빠지지 않았다. 어른들은 제야의 그런 면을 늘 칭찬했다. 당숙이 ‘신고까지 할 줄은 몰랐다‘고 말 했을 때, 제야는 여태 어른들이 칭찬하던 자기의 그 부분들, 그래서 자신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그 부분들을 찢어발기고 싶었다. (p.124)
승호가 깁스를 풀고 목발 없이 걷게 되면, 어른이 되고 서른이 되면, 사람들은 승호의 교통사고를 거의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내게도 그럴 수 있을까? 내게 달라붙은 더러운 소문과 억측을 지우고 나를 대할 수 있을까? 승호는 교통사고를 비밀로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난, 내가 저지른 게 아니라 당한 것임에도 비밀로 해야 한다. 들키지 않으려고 전전긍긍 눈치를 보고 거짓말해야 한다. 누군가는 내게 당당하라고 하겠지. 주눅 들지 말고 떳떳하게 살라고 말하겠지. 그런 말도 역겹다. 누구도 내게 떳떳해져라 당당해져라 말할 수는 없다.(p.132)
제야는 울고 싶지 않았다. 울면 멈출 수 없고, 밤새 울어야 할지도 몰랐다. 그러면 약해지는 것 같았다. 제야는 벌떡 일어나 앉고 싶었다.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기지개를 켜고 크게 소리를 내고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다. 강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꼼짝할 수 없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없다. 굳은 채로, 무거운 채로 할 수 있는 건 우는 일 뿐이었다. 제야는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p.155)
잘해주는 게 아니라 걱정하고 아끼는 거야.
너무 노력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노력해야 해. 이모가 단호하게 말했다. 사람은 노력해야 해. 소중한 존재에 대해서는 특히 더 그래야 해.
노력은 힘든 거잖아요. 제야가 중얼거렸다.
마음을 쓰는 거야. 억지로 하는 게 아니야. 좋은 것을 위해 애를 쓰는 거지. (p.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