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자 그녀 1 - 801 시리즈
펜타부 지음, 서수진 옮김, 신바 리제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소설판을 먼저 살까 만화판을 먼저 살까 살짝 고민하다가 가격이 조금 저렴한 만화판을 잡았습니다. 지하철에서 읽다가 몇부분에서 뻥터져서 대폭소해서 좀 민망한 상황도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만화는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개그입니다. 다만 강도로 본다면 <이웃집~>보다 <망상소녀~>와 <부녀자~>가 더 위인거 같습니다. 아무래도 전자는 동종업자(?)간의 간극의 차이지만, 후자쪽은 동종업자(?)가 아닌 다른 이 세계의 사람의 시각이니까요.
작화를 담당한 신바 리제님의 만화는 처음 봤는데요. 남자 캐릭터의 목선이 참 이쁘다고 생각했는데, 원작 저자인 펜타부 씨도 그렇다고 해서 살짝 놀랐습니다. 사실 표지의 화풍은 그다지 저의 취향이 아니라서 망설였는데요. 흑백 원고는 상당히 취향이라서요. 펜선도 스걱스걱 그은 느낌도 좋고... 뭐 덕분에 더욱 즐겁게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타이가씨의 그녀의 커밍아웃에 대해서 저의 관점으로 보자면, 해당 업계사람이 아닌 사람에게 자신의 그런 취향을 알아주기는것을 넘어서서 함께 즐기를(?) 바라는 모습이었습니다. 즉, 알아주는 커밍아웃적인 입장이라기보다는 취향을 강요하는 쪽의 느낌이 더 강했습니다. 뭐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아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모든것을 이해하고 함께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의 저의 생각이거든요. 그걸 그대로 존중하는 것과 그런 부분으로 비집고 들어와서 강요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요. 뭐 사실 저 자신도 그 부분(그녀와 일맥상통하는)에서는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래도 상대방의 리액션이 없으면 그렇게까지 넘어가지 않을거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타이가씨는 자폭을 한 것과 매한가지 일지도. 아니면 거대한 떡밥을 던졌다던가. OTL
그래서 <부녀자 그녀>는 민폐계열의 만화의 분류에 들어갑니다. 뭐 <망상소녀~>나 <이웃집>도 넓게 보면 그렇지 않냐고 하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뭐 거기는 그정도 까지는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상대방이 실신하거나 기절하는 묘사는 없었던 걸로 기억하거든요.ㄱ-;; 과장은 과장이지만 불편한건 불편한거고 찔리는 건 찔리는 거 입니다. 여튼 이 작품의 모에 포인트는 문외한인 타이가씨에게 그녀가 끝없이 그 이야기를 계속하는 정신 공격과 그리고 그런 그녀를 좋아해서 괴로워하면서도 견디(?)는 것이 포인트 인것 같습니다. 아니면 그런 대상이 없는 분들을 위한 망상극장이라던가. 사실 뭐 저는 <망상소녀~>쪽은 취향도, 커플링도 같은 그 친구의 등장에 진심으로 부러워했거든요.
그나저나 원작은 블로그에 연재한 연애 블로그라는데 소설이 그걸 그대로 가져왔는지는 잘모르겠습니다. 도매점쪽에서는 랩핑이 되어 있어서 속을 볼 수가 없더라구요. 쳇.-3- 그냥 인터넷을 구매해야하나 살짝 고민중입니다. 근데 전차남같으면 빡오를거 같아서... 게시판 긇어서 가져온건 좀... 뭐 그래도 개인 블러그니까 조금 다르겠지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탐나는 도다 8
정혜나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계급의 정점에 서 있는자가 계급의 피라미드의 가장 하위층의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자신을 바라보는 관계자들(가족)의 희망 혹자는 행복을 뒤돌아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계급을 관통하는(?) 질문이 던져졌다. 그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녀가 그의 마음을 받아 들여주던 들여주지 않던, 나에게 있어서는 그건 결코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되어졌다. 그런 생각을 감히 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그나저나 허세겸씨는 대안을 모색하는 소수자중의 소수자라고 생각했지만, 그 부분이 전부는 아닌거 같다는 생각. 인간이 타인과 또 다른 타인에게 차별을 가함으로서 건지는 것은 '애정'. 가족주의는 벗어날 수 없는 걸까. 그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여동생을 위한 (아마도) 대포석이 깔려있는거 같아서 조금 많이 씁쓸한 기분. 이 시대 배경에서 '이상향'을 꿈꾸는 인물이 나와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가령 뭐 홍길동 같은... 쳇. -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하트나라의 앨리스 3
호시노 소우메이 지음, QuinRose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토끼씨는 현실에 대한 도피의 그 자체로 도피에 대한 상징성이나 계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음. 그래서 그녀(앨리스가)가 그(도피)를 사랑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토끼씨) 자체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나이트 메어가 한게 아닌가 싶었다. 현실을 회피하기를 희망했고 그래서 도피(토끼)를 통해서 이 세계에 들어오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세계의 게임이라는 것은 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삶이 주어진 룰(계급)을 그대로 따르느냐 아니면 저항하는 냐의 문제인것 같다는 생각. 우연히 주어진 계급이지만, 계급이 없는 존재보다는 계급이 있는 존재로서 룰을 따르는 것이 더 의미있게 느껴지는 것. 이름없는 자보다는 이름있는 자로서의 게임이.
그렇게 보면 사실 그녀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세계의 룰을 위반하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주어진 게임(룰, 인생)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외부자)의 영향의 아래로 가는 것이 아니던가. 아마도 그녀의 사랑을 받고 자신 또한 그녀에게 사랑을 주게된다면, 시계를 가슴에 달고 살아가는 그 사람은 그 존재 자체의 이유를 찾게되고 진정으로 시계를 멈추는 것이 가능할지도. 그리하여 그의 존재(시계)는 더이상 다른 존재를 통해서 같은 룰을 따르도록 되지 않고, 그의 존재는 그 만의 존재로 끝나는 것. 개개인의 고유성을 유지하는 그것이 그들이 가장 갈구하는 삶. 그건 에이스가 그토록 바라던 삶의 그 자체 일텐데 그는 어쩐지 미묘한 시각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의미는 뭘까?
하지만 보통(일반적인) 사람들은 거기(자신의 심장이 진정으로 멈출수 있다는 것)까지 생각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세계관의 개념이 전복 될 수 있으며 그로 인하여 자신의 삶 또한 전혀 다른 삶이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이면의 진실을 모르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가장 갈구하던 세계에서 온 그녀는 그 세계를 회피하기 위해서 이 세계에 온 것을 알았을때 그들의 반응이 어떨찌 궁금해졌다. 혐오? 연민? 그 밖에 어떤 감정들이 일어날지. 그 부분을 관통해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어쩌면 에이스 일지도.
이윽고 그 부분(다른 세계의 괴리나 고통)까지 도달한다면 그들은 그 세계가 바뀌기를 희망하지 않고 그 세계에 머물러 있기를 희망할 것인가 아니면 엘리스의 세계처럼 자신만의 고유성이 있으나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지 않으면 실존에 대한 불안으로 괴로워하는 생을 선택할 것인지 궁금해졌다. 이야기는 이야기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이야기는 현실이 될 것인가. 아마 이건 게임이니까 당신만이 알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데스 스위퍼 5 - 완결
키타가와 쇼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시작에서 크게 닿았던 그 부분은 엔딩에서 반전 아닌 반전을 맞이 했음. 본인이 생각한 스토리 전개는 히로유키는 그의 형의 어둠에 대해서 알고자 했으며 그래서 스위퍼스에 들어가게 되었고, 주위에 있는 많은 어둠들과 고독, 허무, 불안 등등을 느끼게 되면서 그런 사람들의 실존에 대한 어려움에 대해서 좀더 알게 되는 방향으로 전개 되기를 희망했으나 신흥종교가 관련된 부분이 점차 늘어가면서...
특히 그 종교의 죽음관에 대한 부분은 일본에서 유행하는 신흥종교에서 캐치해왔는지 아니면 저자 본인이 느끼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기반으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도 정답이고 죽은 사람은 잊혀지기를 희망하지 않는다는 것도 정답이라면 정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국가에서는 산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공포를 치환하거나 위로하는 하나의 방편이 '제사'가 아닐까 싶다. 물론 그 제사라는 것이 한쪽 일방적으로 한쪽 성 중심으로 굴러가는 부분은 견디기 힘든 부분이지만, 누군가가 특정한 날 매년 기억해 준다면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이 요 근래에 들었다.
일본에서도 죽은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서 있는 여러가지 의식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시체를 냉동해서 보관하는 것은 산사람의 욕심이기도 하지만, 죽기전의 그 사람도 어쩌면 원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잊혀지지 않고 싶다는 그 부분이나 다시 만나고 싶다는 그 부분도... 영생이라는 것이 있는지 잘 모르겠으나, 죽은 후에는 뭐 다른것이 있어서 뭐 그 감정이 또 다르게 바뀔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레이지씨가 자신이 따뜻한 존재라는 것을 깨닿게 되었고, 인간이란 어느 한구석이라도 따뜻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안것 까지는 좋았다. 태초에 태어나지 말아야 할 존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 존재 자체가 소중하다는 것이 진리가 아니던가. 어짜피 '금지된 것'은 그 세계(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 핵심부에 있는 인간들이 만들어 낸 룰. 과거에는 그것이 금지가 아니었던 과거도 있었다. 지금의 관점에서 금지라면 근 미래적인 관점에서는 금지가 아닐지도 모르는 것이 아닌가.
실존에 대해서 불안을 느끼고 자신의 존재가 잘못된 존재라서 그 균열이 자신을 파괴하는 그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원인을 찾아서 노출하는 것은 정답이지만, 그렇다고해서 그런 엔딩을 맞이하는 것은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지진을 통해서 모든 인간에게는 죽음이란 모두 똑같이 찾아오는 것이며, 그것이 언제 찾아 올지는 신만이 알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구. -_- 그런 잔혹한 현실 앞에서 누군가는 죽어가고 누군가는 새로운 생을 얻어서 태어나지. 삶이란 것은 그런것이 아니던가.
레이지씨는 인간으로서 인간다움을 확인해서 그리고 윤회속으로 들어가서 다시 새로운 삶을 준비한다라... 그럼 히로유키는? 그에게 도움을 받은 것들에 대해서 보상하고 싶어하는 히로유키는? 그 생지옥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건만. 그는 철저하게 게스트 였나보다. OTL 
그 자연스러운 부분(인간은 모두 언젠가는 죽음과 마주한다는 것)에 대해서 공포를 느끼고 고독을 느끼게 되었고, 함께 살아가며 고뇌해야 하는 부분이 그 사람 개인에게 지나치게 취약한 부분이 되어서 그런 결정을 내린 사람들의 그 취약했던 부분에 대해서 근본적인 부분은 아니더라도 좀더 건드려 주기를 바랬었다. 1권에서 만났던 그 느낌은 점점 진행되면서 사그러 지더니 마침내는 뻥하고 터지다니. 이게 뭐람. 이렇게 실망하는 것도 실로 매우 오랜만이다. 내가 원하던 것을 만나지 못해서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이게 저자가 바라보는 세상이라고 생각하니 참으로 가슴이 아파졌다. 그건 어찌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참담한가. 살고싶은 희망이 사라지는 현실이라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우울증에 반대한다
피터 D. 크레이머 지음, 고정아 옮김 / 플래닛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트라우마>를 출간한 출판사의 책으로, 이 책에 대해서는 <트라우마>의 날개를 보고 알게되었다. 매우 강렬한 제목에 호기심도 생겼고, 어떤식으로 반대한다는 건지도 궁금해서 사서 책장에서 반년정도 묵혀두었다가 얼마전에 읽기 시작해서 오늘에야 독서를 완료했다.
책 제목은 수잔 손택의 <해석에 반대한다>를 연상시키는 제목이었다. 책의 주제는 우울증에 대해서 기존(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 편견들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으로 우울증은 명확한 질병으로 분류해야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책이었다. 
저자의 전작 <프로작에 듣는다>는 읽어보지 못했지만, 전작들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한 책. 무엇보다 광범위한 정보에 놀라고 그리고 우울증이 우리들의 신체에 미치는 광범위한 영향에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까지... 라고 생각할 정도 였다.
여러 연구자들이 발표한 연구 결과들에 대한 보고들을 보고있자니... 우울증이 해당 질병의 치료를 방해하고 그리고 해당 질병을 발병하게 하는 큰 요인이었다. 암, 감염성 질병, 혈관성 질환, 심장병, 동맥경화, 뇌졸증 등등. 
우울증의 병리적 특성은 뼈, 내분비선, 심장, 혈관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는 보고와 연구가 활발히 진행중이었다. 우울증이 먼저 와서 영향을 끼치고 그 질병이 발병하면 우울증 증세가 따라오는 '후기 발병 우울증 혹은 혈관성 우울증'으로 인하여 치료가 더디고 회복력도 더디고 환자 자신이 병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기가 힘들다는 사실도 알게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연구 결과는 심장병이 있는 환자들에게 A군인 환자들은 심장병약만 처방했고, B군의 환자들은 심장병약과 우울증약을 함께 처방했다. 10년인가 20년후에 그 환자들의 생존률은 B군의 환자들이 A군의 환자들보다 2~3배정도 높았다는 결과를 보고 충격. 이 환자군은 심장병이 발병하기 전에 우울증이 없는 환자군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이 부분은 조금 가물가물. 그렇다고해도 충격적인 결과였다. 
이 나라의 이 책에서 열거한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우울증 치료도 병행받고 있는지는 매우 회의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통계치를 보지는 못했지만;;;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어서 1부에서는 저자의 내담자들의 사례들과 우울증에 대한 연구가 진해중이거나 결과가 나온 부분에 대해서 광범위하게 알려주며, 2부에서는 서양에서의 우울증의 은유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우울증은 질병이며 치료하지 않으면 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삶의 전반을 망치게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정신적, 육체적 모두가 말이다.
사실 2부에서는 나는 그쪽 사람이 아닌 관계로 아마 이 책을 읽는 이 나라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간극을 느끼리라고 생각한다. 거기서는 우울증에 대한 은유는 마치 판타지를 보는 느낌이었다. 동경이라던가 뭐 그런거 말이다. 
자살한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우울증이나 간질환자 이었고, 오늘날은 우울증의 스펙트럼에서 좀더 상세하게 양극성 장애로 분류되고 있다고 했다. 양극성 장애로 고통받는 예술가들은 조증일때는 열심히 창작을 하고 울증일때는 그 작품을 고치는 경향도 있다고 했다. 
오븐에 머리를 넣고 자살한 실비아 플러스 라던가 고흐, 버지니아 울프 등등 많은 예술가가 예전에는 우울증이나 간질로 고통받았던걸로 인식되었지만, 오늘날 학자들의 견해는 양극성 장애로 여겨지고 있다고 했다. 양극성 장애를 가지고 있는 예술가들에게 조증과 울증의 높낮이를 좀 낮추기 위해서 처방한 약을 먹게되면 창작 부분에 상당히 문제가 생긴다는 보고가 있다고 했다. 

저자는 맺는 부분에서 약이 할 수 있는 판타지(혹은 망상)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었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두뇌 유입을 막는 효과적인 약물(항당류코르티코이드, CRF 차단제)이 개발되어서 신경증인 사람들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고통이 둔화된다던가... 
우울증인 사람들이 우울증 증세가 둔화되면 성격적으로도 변화가 있어서 여러가지가 달라진다던데... 우울증의 스펙트럼을 어디까지 봐야하는지는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런 약물이 개발된다면 중증의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매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우울증 삽화를 막는 방어체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고통을 온전히 체험해야지 후에 감정의 후폭풍이 찾아오지 않을텐데 약물으로 그걸 억제한다고 해서 과연 해결이 가능한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찌되었던 그건 불완전한 것이고 약물치료와 본인의 슬픔에 대해서 애도하는 것이 함께 병행되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
읽다가 흥미로운(혹은 걱정되는) 것을 알게되었다.
인터페론으로 치료를 받는 일부 사람들에게 약물의 부작용으로 기분장애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참기 힘든 우울증을 일으킬 수 있고 그 빈도는 매우 높다고 보고되었다고 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병원에서는 환자에게 충분히 안내해주는지 그게 문득 궁금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