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제국 - 결혼이 지배하는 사회 여자들의 성과 사랑
노부타 사요코 외 지음, 정선철 옮김 / 이매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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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에노 치즈코라는 인지도 보다는 순전히 출판사와 제목때문에 보게된 책. 이매진의 책은 이전에 <오빠는 필요없다>를 봤었는데, 그때 이 출판사에서 나온 다른 책들도 보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표지의 힘도 있었고, 결론적으로 말하면 책을 읽은것 자체는 크게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겠지만, 저자들의 태도는 너무 불편해서 그 표지만 봐도 짜증이 밀려나왔다.
그런 느낌이 들게했던 저자는 노부터 사요코씨 보다는 우에노 치즈코씨. 이 양반의 문제는 내려다보는 느낌이 지나치다 못해서 넘처 흘러서 매우 불쾌했다는 것이다. 그녀가 바라보는 시선은 그 사회 밖에서 바라보는 시선이고 당사자들의 생각이나 느낌이나 그런것들은 아에 배제한 느낌이었다. 물론 아에 틀린 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태도가... 뭘로 비교하는 것이 적당할까 하고 생각해봤는데 결론은 역시 교만한 엘리트. 그녀의 문체에서 내내 내가 받은 느낌(메시지)은(는) '나는 너희들과 다르다. 너희들은 우민이다. 어리석은 보통(우민)들' 등등 이었다. 이 감각을 가장 크게 느꼈던 부분은 '1장 서브프라임 매리지의 시대'의 머리글을 좀 지나서 부터였다. 그 다음도 계속 그러긴 했지만, 초장부터 그래서 가장 처음이 강렬했다면 강렬했던거 같다.

딸을 살해하고 냉장고에 시체를 유기시킨 엄마의 이야기가 나오고 나서 그 이후의 전개가 계속 그런 감각이었다. 물론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하는 모든 행동이 '이타적'이라고 못을 받는 부모들을 보면 짜증이 쏟구치지만, 그래도 저런 문체로 저런식으로 모든것을 쓰레기 취급(?)하는 느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의 흐름을 분석하기에 앞서서 당신들이 해야하는 일은 대안이나 앞으로 가야할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입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계속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2부에서는 그녀(우민)들의 명품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는데, 우에노씨의 시각은 그냥 그녀의 도덕주의에 입각해서 비난하는 시각 뿐 이었다. 하나 더 더하자면 그 분위기에 휩쓸려서 명품을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언급하기도 했다. '당신은 미적 감각이라는 것이 없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에서는 노부타씨의 방어도 재미있었고 자신은 그 우민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 계속 해명하던 부분을 보고 있자니 실소가 나와서... -_-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도덕적 가치관에 입각해서 타인을 비난하자면, 걸리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당신이 누리는 것들에 대해서도 윗 세대에서는 분명 '사치' 혹은 '허영'이라고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해본적 없는지 궁금해졌다. 그 부분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나의 생각에는 아에 없다라고 생각하지만... 뭐...
비싸서 사는 사람도 분명 있지만, 그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에 반해서 사는 사람도 분명히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한 언급도 전혀 없었고 그리고 그건 노부타씨도 매한가지. OTL 그걸 그냥 튼튼해서 산다는 말을 하다니. 이건 충격이었습니다. 적어도 자기가 뭘 살때는 그 이유가 분명할텐데. 정말 그런 이유로 산다는 말인가. 이유는 분명 그것 말고도 더 있지만, 어쩐지 본인은 그런 이유를 모르는 것 같고 그걸 이유로 드는 것이 더 당연하다는 생각을 못하는 거 같았다. 그건 그녀 안에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도덕주의'에 입각해서 아름다워서 좋아서 사는 것은 용납 혹은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절대 틀리지 않다는 그 자신감에서 우려나온 문체. 그리고 그걸 잘(?) 살린거 같은 번역자분의 자상한 의도도. ㄱ- 아이 원츄. 번역에 대해서 만족스럽지 못했던 부분은 '종군위안부'를 사용한 그 부분에서 책을 집어던졌습니다. 헐. 저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그들이나 이걸 번역한 번역자 그리고 출판사의 편집자분도. 혹시 그녀의 그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극대로 보여주기 위해서 저 단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주해도 없어서 그건 저 뒤 넘어로 넘겼습니다. 

그렇게 까고나서 당신들이 던질 답에 대해서 매우 궁금했는데, 유감스럽게도 이책의 마지막까지 넘겨도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없었다. 그냥 처절한 해부만 있었을 뿐. 그래서 매우 허무했던 책. 책의 표지나 본문의 도비라 디자인은 매우 취향이었음. 본문의 배치도 그랬고... 참 이쁘게 만든 책인데 읽고나서 이런 기분이 들어서 씁쓸했음.
이 나라의 현실이나 일본의 현실이나 별다른 차이점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당신들이 그들에게 비난을 가하는 것은 역시 일본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구나 하는 생각. 종 차원에서 하는 우려라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는 유감스러움. 당사자의 입장이나 당사자의 시각은 젼혀 느껴지지 않았다는 슬픔. 물론 간간히 노부타씨가 그네들의 입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변명(?)을 하긴 했지만, 그녀 또한 내려다보고 한심하게 여기는 시각이 느껴지지 않은 것은 아니기에.
역활모델도 없고 대안도 없고 부모세대가 내세우는 가치관은 이중적이고 모든것들을 다 하도록 강요받는 가운데에서 올바로 서서 자기의 길을 그리고 우리들의 미래를 그 나라의 미래를 종으로서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고 그런것들을 행하는 사람들이 과연 보통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분명한것은 그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배우자에게 혹은 부모에게 괴롭힘을 받는데도 그 집에서 나오지 못하는 것은 그들에게 나올 만한 힘이 없는 것이고 그래서 대안이 없기에 그 집에서 그 자신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것인데, 그걸 한심하다고 여기다니. 당신도 그런 환경에서 살아보슈. 당신이 말하는 그대로 퍽이나 잘 살겠소. 누구는 과거에 살고 싶어서 이 환경에서 살고 싶어서 사는 줄 알다니.

자존감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것도 충격이라면 충격이었음. 그녀들이 이야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부분이 크게 결여되어있어서 그 부분을 메우기 위해서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방식으로 그런것들을 찾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읽으면서 내내 <셔플리>가 생각이 났음. 몇 권인지는 모르겠으나, 주인공이 흘러가는 강에서 뭔가 기둥을 잡고 늘어지는 그 감각과 비슷하다면 비슷해서인가 아니면 그녀들이 말하는 그녀들이 바로 <셔플리>의 그녀들이라서 그런거 같기도 했고, 뭐 이건 <셔플리>를 다시 봐야지 알 수 있을거 같다.
당신들이 말하는 그 부분까지 못올라가고 있다면, 그 사람에게 계속적으로 그걸 알려주고 대안이 있다고 말해주는 것이 당신들의 의무가 아닌지. 특히나 노부타씨. 모든 임상심리사는 아니겠지만, 저런 시각으로 내담자를 바라보는 임상 심리사가 있다는 것도 이쪽에서는 매우 충격아닌 충격이었음.
그런 모든 것들은 내려다 보면서 이야기 할 것들이 아니라 진심으로 유감인 태도로 그리고 가슴 아파하는 태도로 이야기 해도 접근하기 어려운 문제인데. 당신들에게는 참 쉬워서. 이쪽도 매우 유감. 하아.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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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병동
하하키기 호세이 지음, 권영주 옮김 / 시공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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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정말 오랜만에 읽은 소설책이었습니다. 좀 울었습니다. 책의 앞부분은 주인공으로 나오는 사람들의 현재가 만들어진 과거의 한 단편이 나옵니다. 그래서 다른 세사람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이 부분에서는 '단편들이 모인 책?'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본 내용으로 가면서 그 부분은 기억에서 사라졌습니다. 끝까지 읽고나서 다시 앞부분의 세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까 눈물이 나오더군요. 여러가지 의미로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해준 작품이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던 말은 병원에서는 우리들을 환자라는 대상으로만 본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병원 밖에서는 인간으로서의 삶이 있었고 그런 것들이 존재하는데 병원에 오면 그 '과거'는 사라진다는 그런 부분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병원에서 환자를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은 여러 책에서도 많이 봤었는데요. 호세이 선생님의 잔잔한 묘사에 그부분이 더 크게 왔었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인간'으로 대접받기를 희망하죠. 그게 어떤 상황이던 자기가 어떤 존재(사회에서 규정하는(가 되었던 그건 부분적인 것이고 본질적인 부분이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나의 이력이 더 생겼을 따름. 그냥 좀 아픈 사람일 뿐이고, 좀 많이 아팠을 따름이고... 그런것들을 인정하기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편협한 시각은 극복하기가 참 어려워요. 편견이라는 것은 그래서 무서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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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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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가 빅터 프랭클 교수의 책을 처음 본 것은 한 3년전 전으로, <의미를 향한 소리 없는 절규>를 읽고 난해해 했었다. 책의 광고 멘트와는 달리... 상당히 많은 문장의 구성이 이론적인 텍스트들로 무장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단순 명료한 그런 답을 찾고자 그 책을 펼쳤었는데, 내가 원하는 것은 없었던 것 같았다. 뭐 그런 기억을 떠올리면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잡았다. 책은 크게 3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는 아우슈비츠에서 생활을 2부는 그가 주장하는 이론 로고테라피에 대한 설명을 3부는 그 연장선상으로 비극속에서 낙관하는 방법에 대해서 나와 있었다.
역시 1부를 읽으면서 받았던 느낌은 솔제니찐의 <이반~>를 읽을때의 그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기묘한 이질감. 레비 선생님의 책을 읽을때도 그랬지만, 그것이 분명히 있었던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한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음. 지금에 와서 <이반~>을 다시 읽으면 그때 느꼈던 '재미'가 지금에 와서는 '고통'으로 다가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러시아의 수용소도 생존률이 50% 미만이라고 모 책에서 읽었던 기억 때문일지도 모르고 그의 책이 소설이 아니라 그가 경험했던 것들을 담았다는 것을 알게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2부에서는 로고테라피 기법을 이용하여서 그들의 굴절된 부분을 역발상적으로 인지시켜 줌으로서 치료를 하는 예시들이 간간히 나오는데... 나는 그 에피소드들을 보면서 그냥 뭐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뭐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 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런 사고의 패턴이 생활 습관처럼 배여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런 것들이 과연 가능할까 하는 생각. 뭐 아직 3부까지 읽어본 것이 아니고 그리고 로고테라피 이론의 입문서를 본 것이 아니라 그가 아우슈비츠에서 어떻게 생환했는지가 메인인 책을 봤으니까... 그의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인간은 학살을 자행하는 존재이기도 하나 그런 잔혹한 공간에서 숭고한 모습을 보이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이야기 였다. 그래 그런 존재이기도 하지. 그런 사람은 아주 극소수겠지만. 그 공간에서 희망을 보는 그의 생각에 대해서 진중하게 탐독할 에정임. 뭐 그래서 다른 저작들도 읽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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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 - 카이에 소바주 1
나카자와 신이치 지음, 김옥희 옮김 / 동아시아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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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의 주요 주제는 '신데렐라 이야기'로 전세계에 전해지는 신데렐라 이야기와 좀 변형된 이야기들을 보면서 그 이야기 속에 남겨진 신화적 잔재들을 조합해서 그 이야기의 원형을 찾아가는 즐거움이었다. 이 시리즈를 처음 읽을때 느꼈던 그 부분, 마치 강의를 듣는 듯한 느낌으로 한 페이지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까 종장 전 파트인 인디언들이 번형한 신데렐라 이야기의 경우에는 눈물이 나왔다.
저건 분명 파라다이스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까. 그들은 박제가 되어가고  있고 그 증거로 그들의 이야기들이 텍스트로 전해지고 있으니까 매우 복잡한 기분. 신화는 구전되는 것이고 그걸 텍스트로 만들고 학문화 한 것들은 그들을 그들의 땅에서 몰아낸 사람들이니. 그래도 저렇게 생각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 안도가 되기도 했지만, 그들은 다른 그들의 문화에 침식되어서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안타까워졌다. 보호구역에서 살아야하며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는 그도 아직도 감옥에서 살고 있고... 그래도 나는 반대편 땅에서 그들의 아름다운 신화를 읽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걸까? 역시 잘 모르겠다.
신데렐라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서 여러가지로 연결된 신화에 대해서 이야기 나왔는데, 일본 만화에 변형되어서 많이 나오던 가구야 공주의 야기도 역시 등장. 그녀의 청혼자들에 요청한 것들에 대한 근원적인 이유를 알게되었지만, 역시 불편했었다. 그 이유는 크게 <월광천녀>의 그 시선 때문이기도하고 책의 저자가 이웃나라의 교수라서 인가 전세계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연결고리에 대해서 이야기 할때 항상 그들의 신화로 시작하기 때문이기도. 2권을 읽었을때도 '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때 '단군신화'에 대한 부분이 즉각적으로 떠올랐지만, 다른 나라의 신화는 다루고 있었지만, 정말 가까운 이웃한 나라의 신화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나라의 신화에 대해서 인류학적인 시각으로 다룬 책을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우리'라는 말을 정말 혐오하는데도, 불편한 부분은 그들이 '우리'에 대해서 이야기 할때 나도 '우리'를 찾아간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논리로 '우리'가 없다면 지금의 '자신'도 없다는 주장에 뭐라고 반박해야할지 모르겠는데도, 우리를 우리로 만드는 것들은 여전히 불편하고 우리가 아닌 우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가하는 '차별'로 느껴진다. 자신에(이 나라의 신화에 대해서 다룬 책을 찾아보겠다는 것)대해서 합리화를 하자면, "그냥 이땅에 오래도록 살고 있었던 사람들의 신화의 원형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졌다." 정도 이겠다.
하지만 이 땅에 언제 정착했냐는 그 기준으로 '우리' 그리고 '타자'를 나누는 기준은 불편하다. 이 신화가 '우리'의 근원이고 우리의 기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불편하다는 말. 그저 이 땅에 살아갔던 사람들의 과거라고 말해주는 그런 입장을 마주하고 싶다는 것. 민족적(가족적)인 기원이 아니라 단지 그런 거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거기서 자유롭지 못하니까 불편한 것 이겠지. 나는 당신들을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가. 당신은 '이타자(외부인)'인가 아니면 우리안의 소수자인가. '국적'적인 부분을 열외로 한다고 해도 지금의 이 나라의 다수가 가지고 있는 우리(민족, 국민, 시민)에 대한 기준에는... 그래서 그 신화적 연결성에 대해서 듣는다면 조금 달라지지 않으려나. 내 안에서 우리는 같은 언어를 모어를 사용하고 있고 같은 시대적 배경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 우리이기도 하지만, 같은 땅 아래서 살고 있는 사람도 우리이기를 바라고 그래서 노력중이다. 그건 반드시 그래야하는 부분이기도 하니까 그건 길들여지지 않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마땅히 그리 생각해야 하는 것.
그래서 그 기준이 모어를 벗어나서 좀더 자유로워져서 그 기원이 모두 같다는 것까지 연결된다면 자신의 안에서 우리의 기준은 언젠가는 확장될지도 모르겠다.

그 이외에 기억에 남던 신화적 잔재는 예전에 모 방송에서 피타고라스 학파의 특이한 행동에 대해서 나온 적이 있었는데 이 책에서 그 이유에 대해서 신화적 해석을 알려주고 있었다. 콩과 제비집이 상징하는 그 의미를 알고...  방송에서도 이런 부분을 다루어 주면 참 좋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남기며 페이지를 넘겼다. 뭐 예나 지금이나 '죽음'에 대한 부분은 공포니까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고 해야하나. 그래도 좀 서글퍼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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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수놓이는 소리 2
진 토리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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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베스트가 되었습니다. 인간에게 감히 그럴 권리가 없다고 말하는 세계관이나 주장이 있는 이야기거 얼마나 될까요? 긴 토리코씨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이 세계의 균열에 대해서도 본질적으로 이해하고 이런 부분을 담아내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팬레터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 일족의 아이들이 최후의 날을 피해서 살아남기를 택했지만, 그들은 멸종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길 위에 서 있는 것이고 단지 그것을 지체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대 새인간이라는 설정이지만, 그건 인간대 자연이라는 설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혹은 문명화 된 인간과 원시적인 형태를 유지하며 살아갈려는 소수민족.
헬로가 택한 선택과 리틀 울프가 택한 선택 둘 중에서 정녕으로 그들을 위한 것은 어떤것일지 아직까지는 나오지 않았습니다만, 일족의 예언자 조차도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그들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2권의 마지막에서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 의미가 공존을 의미하는 것인지 변절(주체성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바꾸는 것을 상대 입장에서는 변절이라고 하니까 변절이라고 했습니다만, 변절도 먼가 괴리감이 느껴지는데 달리 생각나는 단어가 없네요. -_ㅜ)을 의미하는 것 인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자연(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자연과 평화적 공존)를 포기하는 선택을 한다면 그들이 그들로서 남아있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것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떠한 형태로든 존재를 이어나가는 것이 바람직 한지 아니면 그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전멸하는 것이... 그건 그들 자신의 선택이니까 제 삼자적 입장에서 그들의 선택에 대해서 주관적인 잣대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오만이겠지요.
그렇지만, 저는 그들이 끝까지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그들의 세성을 지켜가다가 그것들을 계속 소소하게라도 이어나갈 수 있는 내일이 왔스면 좋겠습니다. 현실에서는 그럴리가 만무하지만 그러기를 바라는 것이 상상속의 세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문득 했습니다. 그 세계조차 절망스럽다면 다음 페이지를 넘기기가 어려워요.
만화를 보는 목적은 즐거움과 현실도피인데 그곳에서 현실을 보게된다면 그건... 그렇다고해서 현실에서 너무 거리가 먼 균열(주인공만 예외인 설정)을 보는 것도 괴롭지만, 적당한 노선에서 타협점을 찾아서 희망을 보여주면 좋겠어요. 별로 그렇게 될것 같지는 않지만요.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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