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 성폭력, 감춰진 진실
주디스 루이스 허먼 지음, 박은미.김은영 옮김 / 삼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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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트라우마>에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망설임 없이 잡은 책이었습니다. <트라우마>가 나온 출판사와 <근친 성폭력 감춰진 진실>이 나온 출판사가 달라서 그런지 저자분의 이름이 두개 책이 미묘하게 다르게 표기되어 있습니다. <트라우마>에서는 주디스 허먼, <근친 성폭력~>에서는 주디스 루이스 허먼으로 되어있습니다. 

사실 이 책은은 읽으면서 참 소화하기가 힘들었어요. 이 책에서 끊임없이 강조하고 말하는 분명한 '사실'에 대해서요. 사실 저는 <트라우마>쪽은 별거부감이 없이 읽었는데요. 저의 선생님께 빌려드렸더니 소화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해주셨습니다. 이책에서 말하는 그 성차적인 부분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서 2번째 읽었을때 좀 그 입장이 이해되었다 뭐 그런식으로 이야기 하시더군요. 전 그런 부분들은 미처 느끼지 못했는데, 이것이 성별의 차이인가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트라우마쪽에서 충격받았던 부분은 2차대전후 절멸수용소에서 살아온 그분들을 상담 혹은 분석하시던 의사들이 많은 고통을 호소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살아있는 것 자체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그분들의 그 느낌을 그대로 전달(?)되어서 상담을 하는 상담자 자신도 그런 고통을 많이 호소했다는 그 사실에 굉장히 충격받았었거든요. 이전에 상담을 해주는 직종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어려움에 대해서 굉장히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사실 이 책을 보면서 환자가 의사를 착취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사고의 비약도 있었어요. 뭐랄까 그래서 당시에 제가 종결했던 상담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선생님을 찾아가는 것이 너무 많은 부담을 주고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었어요. 물론 그런 저의 기우라면 기우인 우려는 다른분과 대화를 나누면서 비현실적인 걱정을 기반으로 확장되었다고 알게되었지만요. 뭐 그랬다는 이야기. -.,-;;

이 책을 보면서 제가 가지고 있는 성폭력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달라졌고, 그리고 흔히 하는 변명(?)이 얼마나 가해자 입장에서 하는 자기합리화식의 변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유혹적인 아이들은 존재하지 않았어요. 애정을 갈구하는 아이들만 존재하고 있었을 따름이지요.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고자 하는 아이들의 부던한 노력과 그리고 그것을 자기에게 편리하게만 해석해서 아이를 자신의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정당화 하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근친 성폭력이 발생하기 쉬운 가족의 경향에 대해서도 좀더 도식화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폭력안에서 당사자와 그리고 가해자 그리고 다른 가족들의 역활에 대해서도요. 어찌하여 그런 가족안에서 엄마의 역활이 부재하는 지에 대해서도요. 사실 엄마의 역활이나 그런 가해자를 옹호하거나 그런 사례에 대해서 이전에 읽었던 다른 책에서 굉장히 의문이 많았는데요. 이 책을 통해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읽으면서 굉장히 의아해 했던 책은 삼인에서 나왔던 성노동에 종사했던 분들의 글쓰기 책 이었어요. 친아버지의 잦은 성폭력이 원인이 되어서 가출을 하게 되었고 흐르고 흘러와서 이쪽에 정착하게 된 그분의 글에서 그분은 여전히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었거든요. 뭐랄까 그런 아버지의 성폭력에 대해서 당위성을 부가한다는 느낌도 받았구요. 이 책은 읽은지 더 오래된 책이라서 남아 있는 기억은 이런 느낌이었어요)

무엇보다 굉장히 크게 느꼈던 부분은 제가 가지고 있던 고정된 이미지에 대한 부분이었어요. 가장 크게 충격을 받은 부분은 딸은 반드시 아버지에게 애교있는 모습을 보여줘야하는 사랑스러운 존재로만 남아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화두를 던지는 부분과  자녀의 의존 욕구를 능가하는 아버지의 바램 혹은 권리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부모(아버지)에게 사랑스럽지 않아도 자식은 자식인데말이에요. 반드시 딸은 애교가 넘치는 사랑스러운 존재여야 한다는 조건적인 도식은 역시 성역할에 대해서 굉장히 제한적이고 편파적인 시각의 일환인것 같아요. 씩씩하던 무뚝뚝하던... 사랑스럽던 아이는 아이이죠. 그건 그냥 개인의 특성일 뿐. 애교가 많은 남자아이도 있는거고 ... 하나의 성향만 있을 수는 없는거니까요. 인간은 여러가지 성향을 가지고 있고... 그런것들을 균형되게 발달시키는 것이 중요한것 같아요.
이 책에서는 성폭력을 당한 사람들에 대한 종단연구의 일환으로 이사람들에 대한 인터뷰에 대한 부분도 있는데요. 이 사람들이 호소하는 고통과 그리고 그 고통이 몇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어떤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서도 절절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읽으면서 좀 많이 울었어요. 너무 먹먹해서 페이지를 못 넘길때도 있었고...

정말 많이 고민하고 무섭기도하고 그리고 공부할 것이 참 많은 책 이었는데요. 읽은지 벌써 꽤나 시잔이 흘러가서 기억에 남는건 일단 이정도로 많이 희석되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이책에서 받은 간접적인 공포감이 얼마나 크게 작용했는지 정말 반대의 성에 대해서 어떤 굉장한 편견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 성폭력 가해자인 특히 친부나 양부에 대해서 굉장히 분노 감정이... 아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데요. 제가 이런 느낌을 받았던건 그만큼 충격적었고 믿기도 어려운 사실을 텍스트로 접해서 그런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애교를 부리는 딸을 이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불편하거나 우려하는... 뭐랄까 색안경을 끼고 본다는 감각이라고 해야하나? 그래서 더 힘들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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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증폭사회 - 벼랑 끝에 선 한국인의 새로운 희망 찾기
김태형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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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 읽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논리에서 굉장한 비약이 느껴지기도 했고 그리고 모든 결론을 '신자유주의'와 관련시키는 건 굉장한 무리가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내내 했다. 물론 관련이 아에 없는건 아니지만 저자가 생각하는 것 처럼 원래 거의 없었던 것이 그렇게 갑자기 툭 튀어 나올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원래부터 존재했는데 체면이나 염치에 의해서 그런것들이 노골적으로 들어내는 것을 을 막아왔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는 사회가 되어버렸다는 느낌인지라. 뭐 나도 순전히 내가 주관적으로 경험하고 느낀것들을 기반으로 내린 결론일 따름. 그러는 의미에서 저자도 매한가지가 아닌가 싶다. 아닌가? -_-a
몇가지 주장에서 좀더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부분은 흥미롭기도 했으나 전반적으로 너무 한가지의 이유(신자유주의님)로 몰고간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아서 편하게(굉장히 저자에게 수긍하면서) 읽은 책은 아니었다. 가장 재미있었던 파트는 2장 불안을 증폭시키는 9가지 심리코드에 대한 부분으로 이기심, 고독, 무력감, 의존심, 억압, 자기혐오, 쾌락, 도피, 분노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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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위한 발달장애 이야기 - 소아정신과 임상 35년의 기록
스기야마 토시로 지음, 김경인 옮김 / 마고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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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 교육의 중요성을 매우 절실하게 느낀 책 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 발달장애는 학습장애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어요.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를 부모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진학하는 시점에 이미 다른 학생들과 비교해서 2-3학년정도 진도가 떨어지는데 그 사실 자체를 부정하며, 아이의 어려움에 대해서 간과(?)하거나 혹은 다른 방향으로 지나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이대로 이렇게 특수 학교에 가면 기존 사회에 소속되지 못할것 같은 공포는 사실 그 부모 개인이 가지고 있는 공포가 아니라 어느정도 사회에 만연화된 이미지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그 공포에 대해서 바라보는 마음이 참 복잡해지더군요.  

학습장애로 어려워 했었지만 특수학교에서 교육을 잘 받고 일반학교로 전학가서 잘 지내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들의 자조모임에 대한 이야기나 그 아이들이 사회에서 사회 생활을 어떻게 적응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정신지체와 경계성 지능의 아이, 자폐증 아이, 아스퍼거 증후군 아이, ADHD 아이, 학대받은 아이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편견이나 한계는 건 어렵고 무섭고 때로는 공포스러운 이미지로 나가오지만, 우리는 항상 그 부분에 대해서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받아들이며 그 어려움을 공감하고 느끼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첫걸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 제목에서부터 소아 임상 35년의 기록이라고 말한 것 처럼, 의사이자 저자인 저자가 초기에 만났던 환자들에 대해서 특수교육의 중요성을 부모에게 강하게 말하지 못해서 그대로 제도권 교육을 받는 학교로 진학해서 더 많은 어려움속에 사는 아이들의 사례를 보면서 참... 여러가지 복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른들 입장에서는 아이의 좌절이 긴 인생속에서 가벼운 것으로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그 아이의 입장에서는 정말 큰 좌절이고 스트레스라는 것을 어른들이 좀더 시선을  낮추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회에서 그런 공포적 이미지에 대해서 개선하도록 힘써야 한다는 사실도. 공포적인 이미지의 편견이라는 건 굉장히 위험한 것이고 그대로 방치 했을때는 정말 우주로가죠. ㄱ- 수습이 불가능 할 수준까지 말이에요.
참 이책을 읽으면서 가장 감동받고 중요하다고 느낀 부분은 발달장애의 한 분류로 '학대받은 아이'에 대해서 언급한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다른 진단명과 동일하게 하나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었어요. 학대받은 아이들의 과잉행동이나 방어기제인 해리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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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꽃 1
시무라 타카코 지음, 오주원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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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무라 타카코 선생의 단행본을 처음 만난건 <푸른꽃>의 원서였다. 아름다운 그림체와 컷나눔이나 적절하게 절제된 묘사가 굉장히 인상이 깊었었다. 그래서 중앙북스에서 <푸른꽃>이 나온다고 했을때는 정말기뻐 했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이 책을 보고 나서 정말 실망했기 때문이다. 내용의 재미를 떠나서 이 작가가리는 성폭력에 대해서 시각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후미와 후미의 사촌에 대한 관계를 생각해보면... 그것이 과연 아름답게 미화되기만 해야하는 관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그녀는 자신의 인척을 범했고 그리고 버리는 것을 선택했다. '결혼'이라는 제도권에 들어가는 선택으로 말이다. 그녀가 후미와 그런 관계가 되었을때 후미는 중학생이었다.
물론 이 관계가 권력관계를 기반으로 해서 인척의 몸을 취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아래에 깔고 있는 그런 패턴은 아니지만, 후미는 아이이고 그런것에 대해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인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청소년과 성인의 성관계를 금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그런 이유가 아닌가.
그녀가 정말 후미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면, 그녀는 분명 후미의 성장을 지켜보고 기다려야 했다. 최근에 국내에 라이센스로 소개된 카리 스미코의 <상자속의 고양이>의 그 처럼 말이다. 그녀가 사랑이라고 외치고 미화를 아무리 하던 그건 눈가리고 아웅하기 이외에 달리 뭐라고 말해야 하는가. 당신은 당신의 욕망을 위해서 미성년이자 인척을 범한 성범죄자일 따름이라고. 그외에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한가? 그것 뿐이다.
그것에 대해서 당위적 시각이나 미화하려는 태도는 우리는 항상 경계해야하며 그리고 그부분에 대해서 항상 촉각을 기울여야 할 의무가 있다. 1권만 본 내가 이런 말을 하긴 그렇지만, 만약 작가가 계속 이런 태도로 이야기를 그려낸다면... 그것에 대해서 옹호해야 할 태도를 가져야 할 필요가 과연 있을까? 이런 분위기나 패턴에 익숙해 지는 것이 가장 무서운 결과가 아닐까 싶다. 아무리 만들어진 이야기더라도 그것이 우리에게 익숙하고 당연한 느낌을 불러오는 것은 반드시 지양해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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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Simple
오노 나츠메 지음 / 애니북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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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누나 혹은 엄마일지도 모르는 그녀를 찾아서 전세계를 돌아다니는 이안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관찰자적 시점으로 풀어낸 이야기이다. 사실 <not simple>을 처음 보았을때는 이안에게 어이없는 세상과의 이별을 결정적으로 안겨준 아이린에 대해서 굉장히 짜증이 났었다. '인간'에 대한 판단을 자기만의 편견으로 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자연스럽게 하고있는 그녀를 보면서 여러가지 설명하기 힘든 혐오감이 올라왔었다. 그 혐오감때문인지 그 뒤로 이야기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은 뭐랄까 좀 분리해서 바라본다고 해야하나 굉장히 힘들게 느껴지는 이안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서 크게 반응하지 않고 넘겼고 그리고 그 책은 꽤나 오래동안 지인댁에 있다가 얼마전에야 우리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오랜만에 이 책을 다시 잡았고... 그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받았다.  

사실 이 이야기의 가장 큰 불행은 그가 그녀를 만나지 못하고 그녀의 딸에게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처음 만났을때 '인간 이하'로 취급받는 것이 아니라, 좀더 어린시절로 내려가서 그 이전에 그의 엄마이자 누나와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들로 거슬러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누나이자 친엄마인 그녀와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와 엄마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그녀가 이아을 출산하게 된 것은 아버지와 한번의 관계로 그런 결과를 불러왔는가에 대한 의문이 일었다. 아마도 거의... 그 가족의 관계는 사회에서 정상적이라고 정의하는 범위의 가족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친 성폭력 가정에서 많이 보이는 그런 패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악순환으로 태어난 아이 이안을 바라보는 호적상 엄마이지만 할머니인 그녀의 태도나 호적상 아버지이고 실제로도 아버지인 그의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아버지에게 이안은 없는 존재이나 매한가지였다. 조금이라도 유의미한 점을 찾아보려고 했으나 이안의 이야기속에 그려지는 아버지는 그런 부분이 전혀 없었다. 자신의 딸에 대한 기묘한 애정 이외에...
그의 호적상 엄마이자 할머니인 그녀는 어떤가? 그녀는 이안에게 어떤 행동을 했는가 말이다. 자신의 욕망이자 현실 도피를 위해서 그 아이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이안은 그것에 대해서 사리분별이 가능한 나이가 아니었고 그리고 그에게 그 관계후 돌아오는 것은 '껌'. 여러가지 상황 아무리 참작하고 고려한다고 하여도 어린이 매매춘은 인간이로서 결코 용서 받을 수 없는 행동이다.

이안이 태어난 것은 순전히 그녀의 잘못이었을까? 이안의 입을 통해서 그려지는 이야기는(정확히는 그녀의 어머니의 시선이지만) 그녀는 가해자로 그려지고 있었다. 어머니를 재치고 아버지와 부정한 관계를 한 딸로 말이다. 분명 '딸을 범했다'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복수심으로 너를 낳았다고 하는 부분에서 그런 확신을 받았다. 아버지가 자신이 아닌 딸을 선택한 것은 어머니인 자신의 문제도 아니고 딸인 그녀의 문제도 아니고 그건 온전히 아버지 혼자의 문제가 아닌가. 자식을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서 불문율을 붙여서 은폐하는 것도 그것은 온전히 그 집안에서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분명 아마 그녀는 아마 10대 이전부터 아버지에게 그런식으로 노출되어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은 작았을지(작았다는 말에 굉장히 어폐가 있지만;;)도 모르지만 끝은 그러했으니까. 그게 단발성 이었다고 어느 누가 말하겠는가? 그 관계에서 그녀가 그녀의 어머니에게 그 부분에 대해서 정확히 호소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어려움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안과 다른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그 시절의 그녀는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고 그건 분명 그런 이유였다. 집이 아닌 밖으로 돌고 있는건 분명 그런 이유가 아닌가. 이걸 단지 소통의 부재라고 생각해야할까?
어머니와의 소통의 부재, 아버지의 자식의 몸에 대한 권력 행사, 그 관계의 정당화와 부정, 회피 그리고 그 끝에 이안이 있었다. 그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있었을까? 그녀가 마주하는 모습은 나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모습이었지만, 그녀는 분명 그녀의 부모들과는 달랐었다. 평생 술에 빠져서 자신의 딸과 자신의 남편 사이에서 낳은 자식을 착취한 엄마와 그리고 그 진실을 진실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자신의 쾌락만 찾아서 떠난 아버지와는 달랐지만, 내가 보기에 그녀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수치심을 자신이 받아서 그것들을 어떻게든 떨쳐나가기 위해서 애쓰고 있었다. 책에서 읽은 전달된 수치심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옥에 가기 전까지 엄마를 돌본것도 그렇고... 그녀가 그녀의 부모와의 관계에서 마주보려고 혹은 전달된 죄의식을 바라보려고 애쓰는 사이에 그녀의 작디 작은 아이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을까?
이 이야기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에 대해서 굳이 언급하라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이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짐이 아이린에게 그런 분노를 토해냈지만, 사실 그 분노는 아이린가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의붓 어머니이자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이자 할아버지가  들어야 하는 이야기 이었다. 물론 그녀가 잘했다고 정당화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던 것들이 바로 이런 이유가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안의 '껌'에 대해서 말하는 부분에 대해서 그들이 취했던 행동이나 느낌들도 그런 느낌들을 받았다. 그건 조심스럽게 접근한게 아니라 그걸 그저 덮어두려고 하는 패턴이었다. 보통 흔히 그런 일들을 들었을때 우리들이 방어하는 그 패턴 말이다. 이안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물어보는 선택치는 없었고 그냥 매매춘은 나쁘다는 그것 자체로만 시시비비만 남아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는 그런 구분을 할 수 있는 성인의 몸을 가지고 있지만 정확히는 여전히 그런것들을 구분 할 수 없는 아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아보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가장 슬픈 부분은 이 부분이 아닐까 싶었다. 그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싶어하는 그로부터도 이해를 받지 못했다는 부분. 타인에게 자신의 존재나 이유를 반드시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한 사람은 그 모든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사람은 있으면... 그래도 힘든 삶에 아주 큰 위안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자신의 아들을 그렇게 만드는데 공모한 자신의 애인에게 한 남자의 여인이 아닌 한 아이의 엄마로써 칼을 들은 그녀. 그리고 감옥에서 죽어가면서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졌다. 이 모든 것들이 가족이라는 만들어진 신화에 가까운 이미지에 맞추어 살기 위해서 동조한건 아닐까 하는 그런 돌아봄이 필요한게 아닐까 싶다. 살사 그것이 그녀가 살아남기 위해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하더라도 아이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나로서는 굉장히 잔혹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다.
그녀를 향해서 달려가던 이안은 이 세상이 아닌 공간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었을까? 부디 그 곳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그 공간에서는 그를 향해서 따뜻한 시선을 보내며 '존재'에 대해서 기뻐하는 사람들만 가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줘서 기뻐" 라던가 "너와 함께 있어서 행복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평범할지도 모르지만, 어느 누구에게는 굉장한 사치로 느껴지는 현실이 그저 애통할 따름. 부디 여기가 아닌 다른 공간에서 그런 말들이 당연하고 익숙하길 바라며 책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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