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앞에 놓인 《엄컷 그리고 수컷》을 보고 어머니가 물으셨다. "이건 무슨 책이니?"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오페라 카르멘으로 여, 영어공부하는 책입니다!!!" 어머니의 표정이 굳어졌다...
딱 봐도 표지가, 제목이, 문구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데. 왜 그렇게 뻔한 거짓말을 했을까? 뭐, 나 스스로 책에 대한 이해도가 무지하게 낮아서가 첫 번째 이유. 그리고 대충 펴본 페이지에 영어와 해석과 오페라 카르멘인듯한 일러스트가 있어서 오해한 것이 두 번째 이유.
하지만, 이 책을 실제로 읽어보았을 때는 상상했던 것과는 좀 많이 달랐다. 작가소개를 읽어보니 '오페라를 좋아하는 한의사가 쓴 성(性)에 대한 책'이라는 해석이 나오던데, 이 예상은 얼추 맞아떨어졌고. 그리고 카르멘을 위주로 쓰여진 책이 아니라, 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카르멘은 이 이야기를 더욱 재미있게 돋구는 에피타이저 겸 디저트 역할을 한다고 보는게 더 정확할 듯 싶다.
음, 그리고 굳이 따지자면 내가 이때까지 보았던 19금(에 가까운) 책들 중에서 가장 수위는 높다. 단어들이 직설적이고... 일반 회화 및 소설에서도 잘 드... 등장하지 않는 어휘들이 많이 나오지. (그것도 엄청난 빈도로) 하지만, 우리나라의 관습 아닌 관습처럼 돌려서 이야기하는게 아니라 직접적으로 대놓고, 까놓고 이야기하다보니 성에 대하여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은 확실히 장점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사례도 깨알같고 재미있다! 자궁이 없는 (다른 기관이었나?) 아프리카 소녀가 헤어진 전 남자친구에게 복부를 칼로 찔리고 임신한 사건이라던가, (웃긴 사연은 아닌데 너무 웃었어;;;) 한의원에 찾아오는 손님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라던가. 하는, 적절한 상황에 적절한 사례라. 이해가 120% 정도로 잘 되었다는 장점!
심지어 교미하는 동안 먹이 공급이 떨어지면 교미하다 말고 암컷이 달아나 버린다고 한다(이럴 수가!). 수컷 또한 계산이 확실하다. 교미를 마쳤을 때 아직 남은 먹이는 수컷이 다시 회수해 간단다(오 마이 갓!). 또, 형편없는 먹이를 제공하는 제비 갈매기는 금방 채이고 만단다(쯧쯧).
그리고 깨알같은 재미를 또 주는 것은 군데군데 들어간 작가의 사견. 굳이 따지자면 이 책의 분류는 설명하는 글에 가까울 텐데 감정을 마구마구 실어서 쓰셨다. 비꼬고 싶은 건 충분히 비꼬고, 두려울 것 없다, 내키는 대로 쓰겠다, 라고 정말 감정이 실려있어서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읽고나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쩌면 구X애라던가 우리에게 잘못된 성에 대한 인식, 지식이 박혀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바로잡는 하나의 측면에서 이런 책이 나온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조금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