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러브 유
이시다 이라.이사카 고타로 외 지음, 신유희 옮김 / 해냄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절대로 '정상적인 연애나 사랑'에 대한 것은 없는 우리 이사카 코타로씨. 《투명한 북극곰》은 뭐랄까, 그 특유의 미스테리한 느낌이 있긴 했지만, "이건 연애라기 보다는..."이라는 생각이 든 것은 역시 사실. 달달한 느낌보다는 역시 이사카 코타로, 라는 느낌. 오히려 이름 몰랐던 다른 작가들의 새로운 발견이 즐거웠던 단편집.

 

남성 작가들의 달달한(?) 연애 이야기를 담았다는 단편 모음집으로 6작가의 6가지 색이 나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것은 나카타 에이이치의 《모모세, 나를 봐》와 혼다 다카요시의 《Sidewalk Talk》, 꽤나 좋았다는 느낌.

 

나카타 에이이치의 《모모세, 나를 봐》는 레벨 2의 노보루가 레벨 99의 미야자키 선배와 재회(?)하면서 어찌어찌 일어나게 되는 얽히고 설킨 관계의 실타래. 좋아하지 않지만, 좋아하는 척하는 어린 가짜 연인들이 자라나는 모습. 마음이란, 어쩌면 그렇게 움직이는 거 아닐까?

 

"바보 같으니. 몰랐으면 좋았을 거라니, 그런 소리 말아. 얼마나 멋진 일인데."

"하지만……."

"소중한 일이잖아. 난 부럽기만 하다."

"이런 일이 멋지다고……?"

"그래. 소중히 여겨야 할 일이야."

"그런 바보 같은 일이 또 어딨겠어! 아무것도 모르는 채 사는 게 백 배 나아!"
"난 알고 싶어. 네가 느끼는 지금의 감정을 말야. 태어나서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 감정을. 아직 난 몰라. 언젠가 나도 그런 병에 걸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때 가서, 지금 내가 참으로 무지한 어린애였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후회하고 경멸하고 싶어질 만큼 괴로울지도 몰라. 하지만 난 그런 감정을 알고 싶어."
"거울을 봐. 우리가 그딴 걸 알게 되면, 돌아오는 건 파멸밖에 없어! 네가 말하는 그 감정은 괴물이나 마찬가지야! 가슴속에서 제아무리 날뛰어도 우리 같은 부류의 인간에겐 어쩔 수 없는 일일 뿐이라고!"
"나도 알아. 하지만 그 괴물, 올 테면 오라지. 너도 부디 그 괴물을 죽이지 말아. 그건 소중히 다뤄야 하는 거야."

 

《뚫고 나가자》 같은 경우는 조금 기묘한 내용이기는 했지만, 중간중간에 마음에 드는 구절이 많았다. 계산적인 연애를 어쩌면, 하고 있는 (이름의 존재감이 없는) 오노와 순진하고 냄비요리를 잘 하는 사카모토, 그리고 성격은 나쁘지만 천성이 나쁘지만은 않은 기도씨.

 

그때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있어 그것을 여기 적어보려 한다.

 

그것은 나의 의지나 각오와는 전혀 상관없는, 단순한 감각이었다. 무척 기분 좋고, 달콤하고, 부드러운 감각. 그것은 갑자기 내게 내려와 놀랄 만큼 자연스럽게 몸에 스며들었다.

……그저 애정을 키워나가고 싶다는 바람.

 

그런 감각이 내려앉았을 때, 처음에는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하지만 그렇게 느낀 이상, 다른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조금씩 소중하게 키워나가자고, 커지거나 짙어지는 것이 아니어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키워나가자고, 그렇게 계속 바라는 것만이 애정의 교환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온 세상을 떠도는 기브 앤드 테이크 속에서 나는 앞으로도 무언가를 이루려 들겠지. 아무리 신중하게 임해도 나의 나태함이나 욕망은 누군가를 상처 입히고 말 것이다. 그리고 여러 번 내 자신에게 실망할 테지. 그렇게 때문에 언제까지고 기억해 두고 싶었다. 보름달 아래, 그녀를 통해 내게 온 아름다운 감각을 영원히 기억해 두고 싶다고, 나는 기원했다.

 

마지막 작품이었던, 《Sidewalk Talk》. 사실 읽으면서 뭔가 상당한 '반전'을 기대했던 것, 부정하지는 않겠다. 어떻게 보면 그저 순조롭게, 서서히 흘러가는 강물처럼. 그런 흐름이다. 그래도 무엇인가 애뜻한 감정, 작아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무엇인가를 건드리는 느낌. 그런 간질간질한 사랑이라는 것,

 

이 여자와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

그 점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웃으면 오른쪽 뺨에만 생기는 볼우물. 다소 건방져 보이는 웃음. 생각에 잠길 때면 윗입술을 개무는 버릇. 그 모든 것을 잃게 된 사실을 언젠가 애석하게 여길 날이 올는지도 모른다.

 

ㅡ후각을 주관하는 것은 대뇌의 구피질이야. 그리고 구피질 양쪽에 해마라는 것이 있는데, 이 해마가 기억을 주관하지.

ㅡ그래서?

ㅡ그러니까…….

스무 살의 그녀가 웃었다.

ㅡ후각은 오감 중에서도 기억과 가장 직결되어 있는 부분이야.

ㅡ흐음, 그게 뭐?

ㅡ그게 오늘 향수를 뿌리고 온 이유란 말이지. 넌 앞으로 이 향수 냄새를 맡을 때마다 오늘 일을 떠올리게 될 거야. 네 머릿속에서 언어로조차 변환되지 않는 가장 시각적인 감정을 떠올리지 않겠냐는 말이지.

엷은 시트로 몸을 감싼 그녀가 아직 색을 띠지 못한 아침의 하얀 빛 속에서 수줍은 듯 웃고 있었다. 그 미소가 내게는 기적처럼 느껴졌다. 지금까지 쌓여온 작은 기적들이 모두 이곳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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