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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평짜리 숲 ㅣ 트리플 30
이소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3월
평점 :
《세 평짜리 숲》 -- 멸망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시집 《캣콜링》으로 제37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이소호 시인이 이번엔 SF 연작소설로 돌아왔다. 《세 평짜리 숲》은 자음과모음의 <트리플> 시리즈 중 하나로, '작가 - 작품 - 독자' 간의 아름다운 연결을 꿈꾸는 세 편의 연작소설이다.
첫 번째 이야기 <열두 개의 틈>은 지구가 멸망하고 두 번째 달이 뜨고, 하루가 무려 436시간인 세계에서 시작된다. 낮만 있는 데저트랜드와 밤만 있는 아이스랜드, 주인공 아진과 아린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선다. 폐허가 된 세게, 믿을 수 없는 미래, 그 안에서 우리는 누구를, 무엇을 믿을 수 있을까?
"추억은 곧 다가올 미래인데, 어째서 할머니에게는 모든 것이 금지되었을까. 왜 오늘만 살라고 할까. 오늘은 무려 436시간인데." (30-31쪽) 이 문장처럼, 소설은 단지 미래는 상상하는데 그치지 않고, '지금 여기'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두 번째 이야기 <세 평짜리 숲>에서는 데저트랜드에서 살아가는 아진과 엄마의 삶이 그려진다. 단 세 평 남짓한 숲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이들의 생존의 무게와 슬픔의 값을 묻는다. 아진은 한 평을 더 얻기 위해 목숨을 건 결정을 한다.
"슬픔에도 돈이 든다고 하지만, 아진은 이제 그 말을 다르게 고치고 싶다."(64쪽)
이소호 작가의 문장들은 간결하면서도 묵직하다. 현실의 부조리를 빗대어, 황량한 미래에서도 여전히 가치 있는 삶에 대해 묻는다.
세 번째 이야기 <창백한 푸른 점>은 아이스랜드에서 단순한 노동자로 살아가는 이린의 삶을 조명한다. 빛없는 세상에서 그는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새로운 길을 떠난다.
"나는 어둠 속에서 사색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햇볕이 이토록 그리울 줄은 상상도 못 했다."(93쪽)
그의 여정은 우리에게 '존재의 무게'를 진정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는지 묻는다.
세 개의 이야기는 각기 다른 배경을 지녔지만, 하나의 메시지로 이어진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기후 위기 이후의 세상,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도 삶의 존엄과 자유를 되묻는 이소호의 세계는 낯설면서도 묘하게 익숙하다.
긍정적인 아진과 사려 깊은 이린의 선택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 역시 삶의 기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절망과 욕망, 규칙과 자유 사이에서 길을 찾는 이들에게 이 책을 깊은 울림을 준다.
SF를 좋아하는 독자뿐 아니라. '지금 이곳'의 삶을 성찰하고 싶은 분, 기후 위기와 미래에 관심 있는 분에게 추천한다. 세상이 무너져도, 그 안에 살아가는 우리 이야기는 끝나지 않으니까.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솔직하게 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