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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 한옥에서 치매 엄마랑 살아요
김영연 지음 / 문학세계사 / 2026년 2월
평점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낯선 이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게스트하우스일 것입니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초면의 어색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은 불편한 하루를 보냅니다. 그런데 여기 낯선 이들의 모임 속에서 가장 낯설게 앉아 있는 여인이 있습니다. 이 여인은 한때 이 곳의 주인이었습니다.
김영연 작가님의 책, 혜화동 한옥에서 치매 엄마랑 살아요 는 게스트하우스에 치매엄마를 모시며 벌어지는 일을 기록한 가족 에세이입니다. 저자의 엄마는 평생을 가족을 위해 헌신했지만 이젠 자기자신조차 케어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듣기만 해도 막막하고 아찔한 상황에서 모녀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갈까요?
아버지가 먼저 떠나시긴 했지만 저자의 가족은 부족함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엄마에게 치매라는 불청객이 찾아왔습니다. 엄마를 케어하며 화목했던 사 남매 사이에도 금이 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저자는 어쩌면 이번에 새롭게 금이 간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금이 간 것이 아니라, 그만큼 서로에 대해 또 자신에 대해 몰랐던 거죠. 사 남매는 화목이라는 껍질에 감춰져 보지 못했던 서로의 밑바닥을 확인하며 그 바닥난 밑천까지도 끌어안는 자리까지 나아갑니다. 엄마로 인해 이 가족은 허울뿐인 우애를 넘어 진짜 가족이 되어 갑니다.
우리는 언제나 잃어버린 것들만 바라봅니다. 늙어버린 엄마, 정신을 잃어버린 엄마, 함께 따라서 늙어가는 나, 하지만 가만히 보면 잃어버린 것만큼 얻어지는 것들도 있습니다.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몸이 아닌 마음으로 춤을 추고 운동을 합니다. 그렇게 매일 떠나가는 것들을 놓아주고 얻어지는 것들을 새롭게 배워가며 이 가족은 성장해 갑니다.
게스트하우스의 손님들보다 엄마가 더 낯선 황당한 상황이지만 저자는 엄마와 치매 둘 모두에게 집중해가며 하얀 눈길에 발자국을 냅니다. 이 책에는 저자가 먼저 배워낸 정금같은 지식이 가득합니다. 치매 간병인이 알아야 할 매뉴얼부터 그때 가져야 할 마음가짐, 좋은 센터를 고르른 기준까지 경험해 본 자만이 알 수 있는 다양한 팁을 틈틈이 소개해 줍니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땐 숨이 턱턱 막히는 막막한 이야기로 가득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모녀의 삶에는 매일 새로운 배움이 있고, 아침이슬같은 깨달음이 있습니다. 사랑과 존중과 가족과 인내와 신앙을 배우며 머리로만 알던 지식을 삶으로 해석해 냅니다.
나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엄마가 치매에 걸렸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치매 엄마를 어떻게 대해야 하고, 앞으로 우리 가족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요? 이 무거운 질문에 대해 한 가족이 온 몸으로 견뎌내고 써낸 에세이를 통해 가족이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작고 따뜻한 책을 꼭 읽어보세요. 진흙 속에 핀 장미를 발견하시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