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태어나는 말들 - 우리의 고통이 언어가 될 때
조소연 지음 / 북하우스 / 2024년 6월
평점 :
어머니가 자살했다.
이보다 더 충격적인 문장이 있을까 싶습니다. 조소연 작가의 신간, 태어나는 말들 은 어머니의 자살 이후 딸이 써 내려간 어머니의 삶에 대한 에세이입니다.
부모의 사망 이후 그 삶을 회고하며 기록한 에세이는 꽤 많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여타 에세이와는 결을 달리합니다. 이런 구성의 책은 이전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일단 책의 저자는 어머니가 왜 자살했는지 이유조차 알지 못합니다. 저자는 늦게라도 이유를 알고자 합니다. 그래서 펜을 들고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은 어머니의 삶을 회고하는 것이라기보단, 추적하는 것입니다. 그녀의 죽음은 세상에서 숨겨야 하는 것처럼 빠르게 치워졌지만, 그녀의 생은 딸의 글을 통해 천천히 해부됩니다.
자살 전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보였고,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인생이라면 무언가 특별한 고통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그려진 어머니의 삶은 고됐지만 동시에 평범한 모습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네 어머니들의 일반적인 삶, 대가족에서 교육받지 못한 딸로 자라나, 원하지 않는 배우자와 결혼하고, 자신이 바라던 남성향에 아들을 투영해 기어코 작품을 만들어 내려는 집착에 가까운 교육열까지, 마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우리나라 특정 세대 여성의 전형적인 캐릭터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외할머니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내려온 여자의 삶을 들춰냅니다. 흥미로운 것은 어머니의 마음을 들춰내는 와중에 저자의 마음이 더 깊고 짙게 폭로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교양 없는 삶을 묘사하는 글을 쓸 때는, 이른바 배운 사람인 자신이 어머니에 대해 느꼈던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덧붙입니다. 포장하거나 채색하려는 의도 없이 그저 그때의 상황과 자신에 대해 가감 없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저자의 머릿속에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복원하는 과정이기에 모든 복원 과정에서 저자의 감정 또한 동시에 발굴되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책을 읽으며 이 책은 어머니의 삶을 드러내는 책이 아니라, 은폐하고 외면했던 저자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저자의 속마음을 넘어 이 사회를 드러내는 글일 수도 있고요.
기혼 여성의 간통이나 자위행위 같은 것들은 분명히 존재하는 욕망의 열매임에도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치부됩니다. 마치 모든 사회 구성원이 이런 욕망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약속을 한 것처럼 은폐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어머니를 한 사람으로 보지 않고, 그 세대의 평범한 여성의 대표로 본다면 그 죽음에 나는 어떤 관여를 했을까요? 집 안에 카메라를 비추면 어머니의 죽음을 감추는 가족이 보입니다. 카메라를 집 밖으로 빼어 드론에 실어 날리면 여성의 욕망을 감추는 사회가 보입니다.
은폐된 한 여인의 삶을 들춰내려는 시도에 놀랍게도 전혀 다른 것이 발굴되어 세상에 공개됩니다. 어쩌면 낱낱이 해부되는 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우리 사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니의 자살이라는 자극적인 소재 안에 개인을 넘어 사회를 향한 메시지를 담아낸 무거운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신간, 태어나는 말들을 통해 우리가 품고 있던 고통을 글로 확인해 보세요. 텍스트로 정리하지 않았다면 끝내 모른 체 했을 우리의 속마음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줄 것입니다.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