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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세계문학 첫 문장 111
열린책들 편집부 지음 / 열린책들 / 2023년 9월
평점 :
영화감독이 가장 고민하는 것은 시작 5분이라고 합니다. 그 5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냅니다. 시작을 보면 영화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말은 과언이 아닙니다.
소설가 역시 그러합니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문장입니다. 첫 문장을 읽으면 이 소설이 나아갈 바를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엔 첫 문장만으로 책의 모든 것이 압축되기도 합니다. 첫 문장을 어떻게 쓰느냐에 작가의 역량이 드러납니다. 명소설의 첫 문장이 필연적으로 명문장인 이유입니다.
이번에 열린책들에서 놀라운 기획을 선보입니다. 세계문학 111권의 첫 문장을 모아 책으로 출간한 것입니다. 그냥 책이 아닙니다. 언제고 분권하고 뜯어낼 수 있는 엽서의 형태를 한 엽서 북입니다. 앞면엔 책의 표지가 있고, 뒷면엔 그 책의 첫 문장이 있습니다. 가끔 상상해 보았던 기획이 실제 실물이 되어 출간되니 놀라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전할 때, 시의적절한 문장을 담고 있는 한 장의 엽서로 전한다면 얼마나 낭만적인가요? 정말 아름다운 기획입니다.
책의 내용을 모르는 데 첫 문장을 보는 게 무슨 의미냐고 물을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책의 줄거리를 몰라도, 첫 문장은 나름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어질 책의 내용을 상상하게 하기도 하고, 뒤 내용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문장의 힘을 발산하기도 합니다. 첫 문장 때문에 해당 소설을 찾아보게 되기도 합니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첫 문장 111을 읽으며 말의 맛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잘 쓰인 말에는 말의 맛이 있습니다. 어쩔 땐 씁쓸하게, 어쩔 땐 달콤하게, 어쩔 땐 허무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묵직한 한 문장을 곱씹다 보면 생각의 지경이 넓어지고 어휘력도 더 풍성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읽었던 소설의 첫 문장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작품이 있습니다. 당연히 이번 열린책들 세계문학 첫 문장 111에도 포함되었습니다. 바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입니다. 이 소설은 이런 문구로 시작합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단 한 줄의 글귀를 읽자마자 독자는 엄청난 몰입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첫 문장만 읽고 책을 덮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단언컨대 단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아니 대뜸 이게 무슨 소리지? 무언가에 홀린 듯 뒤 내용을 찾아 읽게 됩니다.
인류를 대표하는 거장들이 뽑아낸 글의 정수가 여기에 있습니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첫 문장 111을 읽으면 기라성 같은 천재들의 액기스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문장을 뜯어 소중한 사람에게 전해보세요. 그 한 문장을 곱씹으며 그 사람은 어떤 감정을 느낄까요? 내가 느낀 그 몽글몽글한 감성을 한 장의 엽서로 함께 공유하게 될 것입니다.
너무 소중해 한 권은 소장용으로, 한 권은 낱장으로 뜯어 기분에 따라 나눠주고 싶은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180도로 쫙 펴지는 제본이라 책처럼 읽기에도 참 유용합니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첫 문장 111을 통해 시대를 넘어 영원히 존재할 인류의 위대한 유산을 영구 소장하시길 바랍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모든 분께 열린책들 세계문학 첫 문장 111을 적극 추천해 드립니다.
본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