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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엄마라니까 - 쉰 아재의 엄마 생각 ㅣ 세상과 소통하는 지혜 6
조항록 지음 / 예서 / 2023년 9월
평점 :
아빠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아빠였습니다. 아빠는 아빠가 아닌 적이 없었죠. 엄마도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엄마였고, 할머니도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할머니였습니다. 우리는 이 구조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아빠가 아닌 아빠는 본 적이 없고, 엄마가 아닌 엄마 역시 사진으로밖엔 보질 못했습니다. 아빠는 늘 아빠였고, 엄마는 늘 엄마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쉰이 된 아재가 쓴 엄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빠도 엄마가 필요할까요? 아빠도 온 세상에 엄마가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을까요? 생각지도 못했던 아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는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저자의 엄마는 병원에 누워 열 달간 투병합니다. 암과 싸우는 이도, 지켜보는 가족에게도 모두 괴로움뿐인 시간. 그 시간이 다 지나고 난 후 남은 이들은 또 다른 싸움을 해야 합니다. 추억과 후회와 고독의 싸움을요.
처음 책을 읽을 땐 암에 대한 투병기가 큰 비중을 차지할 거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 부분은 마치 프롤로그처럼 기록됩니다. 이 책은 병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 책은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초등학교도 다 마치지 못한 여성, 자식과 손주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어머니, 암 투병 후 병원에서 끝마친 삶. 어느 것 하나 특별한 것이 없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의 인생입니다. 그런데 이 지독히도 평범한 한 인생이 텍스트로 기록되자 놀랍도록 큰 울림을 전해줍니다. 대단한 업적을 남겨서도 아니고, 삶에 어떤 하이라이트가 강렬하게 남아있어서도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하루를 보내며, 자신에게 주어진 자녀들과 인생을 순간순간 사랑하며 보살피며 살아간 인생이, 이를 추억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관찰되고 기록되니 뭐라 설명하기 힘든 따스한 아름다움으로 피어납니다.
인민군에게 끌려가 목숨을 잃은 외할아버지, 자식들을 남기고 산 너머 어딘가로 시집가 버린 외할머니, 엄마를 그리워하며 단칸방 생활을 하던 두 자매. 저자 엄마의 인생은 평범한 한 여성의 삶이지만 그 안엔 우리 근현대사의 아픔과 질곡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대통령 기록물로 대표되는 한국사가 아닌, 진짜 대한민국을 살아간 이들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달동네에서의 삶, 전처에게서 낳은 자식까지 길러야 하는 계모의 삶. 아내로, 또 엄마로, 한 사람의 시민으로 살아가는 인생을 고됐지만 그만큼 평범한 열매를 이 땅에 남겼습니다.
이 책은 투병기나 사모곡이라기보단 한 사람의 인생을 담은 에세이 같다고 초반에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누군지도 모르는 한 사람의 인생을 우리가 왜 들여다봐야 하는 걸까요?
어쩌면 누군지 모르는 이의 인생이기에 아무런 편견 없이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의 엄마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살아간 너무나도 평범한 한 여성입니다. 그 인생을 되돌아보며, 우리의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고, 다시 올 수 없는 그때의 모습을 추억하며, 그리워하고 쓸쓸해하며 이 책만의 독특한 감성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쉰이 된 아재도 엄마를 그리워합니다. 그러니까, 엄마라니까를 통해 평범한 우리네 엄마의 모습을 기억해 보세요. 쌀쌀해지는 요즘, 따뜻한 감성으로 잊고 살았던 추억을 되살리는 기회가 되어줄 것입니다.
본 리뷰는 몽실북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