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로 피는 꽃
홍균 지음 / 하움출판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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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부러운 것이 없이 성장한 청년이 있습니다. 훤칠한 외모, 뛰어난 운동신경, 성실한 학교생활, 어디에 내놔도 자랑할 것밖에 없을 것으로 보이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고, 부러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 순간 어두운 터널에 갇혀버렸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홍균 작가의 신간, 아래로 피는 꽃은 1년여의 세월 동안 은둔의 시기를 보낸 경험을 글로 풀어낸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부풀어 있던 한 청년은 갑작스레 찾아온 어두운 시간 동안 자기 내면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됩니다.

 

오늘 하루 동안 무엇을 했는가? 묻는다면 그냥 있었다고 답하게 됩니다. 그냥 있는다는 게 무슨 말이냐 어떻게 그냥 있을 수 있냐 뭐라도 했을 것 아니냐 묻는다면 정말 그냥 있었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냥 누워있고, 그러다 잠이 들고, 아무 의미 없이 컴퓨터를 켰다가, 다시 끄고 돌아눕는 삶, 혹자는 폐인이라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시체와 같은 삶이라고 하는 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 꽤 있는 모습입니다만 그 내면을 진실하게 들여다본 적은 거의 없습니다. 그 감정과 기억들이 글로 기록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순간들은 남겨지지 않고 그냥 흘러가 버리곤 합니다. 그런데 이 책에는 참 감사하게도 그 모든 순간이 빼곡히 정리돼 있습니다.

 

저자는 솔직하게 자신의 순간들을 고백합니다. 나 자신에게 거짓말하며 내 상태를 합리화했던 일, 아버지 앞에서 눈물을 쏟아내며 마음을 토해냈던 일, 회피하고 도망치고 숨어버렸던 순간들까지 이 모든 것들을 차분히 풀어냅니다.

 

이 책의 좋은 점은 극적인 이벤트나 격정적인 감정의 폭 같은 것들만 기록돼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책의 대부분은 말 그대로 그냥 존재하고 있던 모습들을 기록해갑니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이 책이 주는 울림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나는 이러이러한 고통을 겪었지만 이러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내 마음을 바로잡았고 이렇게 성공했다고 가르치는 책이 아니라, 은둔하고 있던 순간의 내밀한 심정과 상태들을 그저 있는 그대로 기술하고 있기에 역설적으로 더 특별하고 의미 있게 읽혔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의 삶은 우리의 꿈과 기대처럼 펼쳐지지 않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세상이 바라보는 내가 다르고, 그 간극을 깨닫는 순간은 엄청난 고통이 뒤따릅니다. 현실의 나를 받아들이면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 됩니다. 누구에게나 이 고통은 따라옵니다. 어느 누군가에게는 이 고통이 특별히 크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말이죠.

 

이 책은 알을 깨고 나와 봉황이 되어 서울 번화가를 날아가는 위대한 탄생을 그린 책이 아닙니다. 그저 하루하루 시간을 견뎌낸 한 사람의 웅크림을 가감 없이 드러낸 알몸의 책입니다.

 

어디에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누구와 이야기해도 공감받을 수 없을 것 같은 낭비의 순간을 보낸, 또 보내고 있는 분들께 이 책, 아래로 피는 꽃을 적극 추천해 드립니다. 차마 글로 표현하지 못하여 흘러가 버린 우리의 어두운 시간이 차분하게 정리되어 이 책 안에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함께 시간을 견뎌 봅시다. 무엇을 하지 않아도, 무엇이 되지 않아도 지금의 시간은 의미가 있습니다. 아래로 피는 꽃을 통해 우리의 어둠을 기억합시다. 이 책을 꼭 읽어보세요.







본 리뷰는 리뷰어스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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