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느린 걸음
김병훈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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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순간순간을 살아내며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우리의 현재는 과거의 순간들이 모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를 만든 그때의 순간들은 지금 어디에서 확인해 볼 수 있습니까?

 

사진작가 김병훈 선생님이 집필하신 신간 가끔은, 느린 걸음은 우리가 무심코 흘려보냈던 순간들을 사진과 글로 정리한 에세이입니다. 흑백사진과 이에 대한 작가님의 짧막한 글은 우리가 놓쳐버린 과거의 어느 장면들을 아름답고 섬세하게 그려내줍니다.

 

책에 기록된 사진들은 어느것 하나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운동장 모래바닥에서 공을 던지며 놀고 있는 아이들, 잡동사니들이 쌓여 있는 평범한 가정집 화단의 모습 등 지금 이순간에도 어디엔가 존재할 것 같은 평범한 순간들을 모아놓았습니다.

 

책을 읽으며 제가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 특별한 사건만이 기록할 가치가 있는 것이고, 남들에게 보여줄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평범한 사진과 대단한 이벤트가 없는 무난한 글을 읽어가며, 오히려 이런 것이야 말로 우리네 인생의 진짜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퇴계로의 평범한 정장 가게, 그 안에 걸려 있는 양복 마이, 여러분은 이 장면에서 어떤 특별한 의미를 발견하실 수 있으십니까? 그런데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이 양복 마이에는 우리네 아버지들의 고단한 어깨가 숨겨져 있습니다. 멈춰진 사진 한 컷과 그에 대한 작가님의 한 편의 글을 읽고 나니 옷걸이에 걸려 있는 양복 마이가 왜 이렇게 힘든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지요.

 

의미는 그 사물 자체가 본래부터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을 바라보는 내가 부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내 눈으로 보고 있는 우리 동네, 우리 집, 직장 동료, 가족들의 일상적인 모습도 한 컷의 사진과 내 나름의 글로 기록해둔다면 수십 년 후엔 다른 어떤 위대한 작가의 글에서도 얻을 수 없는 나만의 기억과 추억을 경험하고 느껴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기록하고 정리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너무 많은 세월을 그냥 그렇게 흘려보냈습니다. 그 순간들이 특별할 것은 없었을지라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유일한 순간들이었는데, 그때는 소중함을 몰랐습니다.

 

졸업식, 생일, 여행지가 아닌 여러분의 평범한 일상은 어디에 있나요? 기억 저편 어딘가에 꽁꽁 숨겨져 있진 않나요? 순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입니다. 이 책 가끔은, 느린 걸음을 읽으며 일상의 소중함을 가슴 깊이 경험해보세요. 높은 곳만 바라보고 특별한 것만을 쫓던 내 기준이 무너져 내리고 지극히 작은 것에서 내 감성을 흔들어 깨우는 위로의 감성을 경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저 계속해서 보고 있게 만드는 평범하면서 특별한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가끔은, 느린 걸음을 통해 일상의 시를 호흡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본 리뷰는 리뷰어스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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