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늙는 기분
이소호 지음 / 웨일북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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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든다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세상 누구도 기쁘게 나이 드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연히 직설적인 제목의 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서른다섯, 늙는 기분. 음, 알지 알지. 그 찝찝하면서도 불쾌한 느낌. 제목만 봤을 땐 나이 듦에 대한 한탄과 자조적 태도가 뒤섞인 책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늙는 기분이란 그런 것이니까요.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난 후엔 제목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렇다고 늙는 기분이 좋아진 것은 절대 아니지만, 이거 썩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자의 시계는 남자보다 조금 더 빠르게 갑니다. 가임기의 리미트가 주는 압박 때문에 제때를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사회적 압박이 남자가 느끼는 것보다 조금 더 이르게 오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서른다섯의 압박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압박을 어떻게 풀었을까요? 저자는 나이 듦을 하나씩 체화하여 소화해냅니다. 새치는 더 이상 뽑아내지 않고 새치가 아닌 흰머리가 나는 나이가 됐음을 스스로 인정합니다. 무슨 차이냐 묻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지만, 새치란 뭔가 돌발적이고 비정상적인 느낌을 주지만, 흰머리는 그 자체로 내 것인 느낌입니다. 새치는 뽑아야 하지만, 흰머리는 받아들여야 하죠.

 

그렇게 저자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넓어진 모공, 잔주름을 받아들이고 유난이었던 취향들은 하나둘 버려갑니다.

 

그렇군요. 이 책은 나이 먹기를 거부하는 신여성의 진취적인 외침을 담아낸 책이군요. 아닙니다. 이 책은 그런 부류의 책들과는 또 결을 달리합니다. 이 책에는 나이 듦에 대한 서운함, 무력함의 감정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저자는 그런 감정을 숨기려 하지 않습니다. 정말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가 아닌 다른 멋진 존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감정과 상황을 하나씩 인정해가는 것이라는 걸 이 책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회의 압박에 굴해서 세상의 시선에 끌려다니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압박에 적극적으로 저항해 무조건 반대 방향으로 미친 척 뛰어가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저 나이 든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며, 나의 오늘과 내일, 내년과 내후년을 위로하고 응원해주는 내가 되는 것입니다.

 

나를 마주하는 것은 불편한 일입니다. 특히나 나이 먹고 약점을 드러내는 나를 바라보는 것은 더 괴로운 일이죠. 그런데 이 책은 저자의 구질구질한 감정이나 궁상맞은 상황들을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어쩌면 이런 모습이야말로 진짜 어른의 모습이고, 그나마 늙는 기분을 긍정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변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릴 땐 인정하지 못했던 것들을 인정하고, 젊을 땐 숨기기만 했던 것들을 드러냅니다. 때론 청승맞게, 때론 찌질하게, 때론 비참한 하루를 보내며 그 사실조차 나의 것으로 살아냅니다.

 

책 소개 글만 읽었을 땐 나이 듦을 거부하며 세상에 통렬하게 펀치를 날리는 원더우먼을 생각했지만, 오히려 책을 읽으며 진짜 늙는 기분이 무엇인지 우리가 이 자리에서 고작 1cm 방향을 트는 것만으로 어떻게 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늙어가고 있는 동지들에게 이 책, 서른다섯, 늙는 기분을 적극적으로 추천해 드립니다. 별거 아니지만 별거인 우리의 늙어가는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묘하게 삐뚤어진 우리의 생각도 조금은 교정됐으면 합니다.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면 그만이지요. 우리 앞에 주어진 조금 더 늙은 내일의 삶도 기꺼이 걸어가 봅시다. 마흔다섯, 늙는 기분은 지금보다 더 순조롭기를.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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