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Last 이제야 흉터가 말했다
리퍼 지음, 가시눈 그림 / 투영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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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한차례 미투 열풍이 휩쓸고 지나간 후 우리에겐 무엇이 남았을까요? 인터넷 상의 공격적인 마녀사냥과 미투라는 단어만 언급돼도 격렬하게 거부감을 드러내는 부류 등 본질에서 벗어나 보이는 것들만 계속해서 회자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피해자의 목소리는 어디에서 들을 수 있는 건가요?

 

한국만화영상진흥원 2018년 다양성만화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제작된 At Last 이제야 흉터가 말했다는 기록기와 치유기 두 권의 책을 통해 우리가 귀담아 듣지 않고 외면해 온 피해자의 목소리를 깊이있게 담아낸 만화 에세이입니다.

 

살면서 성폭행과 성추행을 경험해보지 못한 분들은 그런 일이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라는 감각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끔 뉴스에 나오는 사건들을 볼 때만 어딘가에서 그런 일이 있구나 하는 정도이지, 지금 이순간 서울 어딘가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라는 생각은 잘 하지 못합니다.

 

At Last 이제야 흉터가 말했다에서 보여지는 사건들은 TV 뉴스 속에만 있던 사실들을 우리의 현실로 끌어들여옵니다. 학창시절 악의 없이 진행한 아이스께끼 놀이와 보조개 놀이가 어떤 여자아이에겐 어린 시절의 웃어넘길 추억일 수 있지만 어떤 여자아이에겐 평생을 안고 가야할 상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옆집 대학생 오빠, 사촌 오빠 등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 아이에게 저지른 나쁜 행동들로 인해 그 아이는 수십년의 세월을 어두움과 싸워야만 합니다. 당사자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도요.

 

이 책에선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할거리를 던져줍니다. 저자의 부모는 특별히 나쁜 부모가 아니었습니다. 아이를 방임하고 학대하는 악인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우리 곁에 흔히 있는 평범한 부모였습니다. 다만 성폭행과 아동 인권, 대화와 위로의 방법에 대해 모르는 옛사람이었을 뿐입니다.

 

우리가 특별히 악의를 가지고 행동하지 않아도, 모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안 좋은 결과들이 있음을 느낍니다. 이 책에는 분명한 악인들도 등장하지만, 그저 옛시대를 예전 마인드로 살아간 사람들도 등장합니다. 책을 읽어가며 제가 별생각없이 뱉은 말과 행동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었을까를 생각하니 아찔해졌습니다.

 

이미 깊은 상처가 있는 사람에겐 주변의 평범한 말들이 더 큰 상처를 만들기도 합니다. 상담사의 의례적인 말과 평범한 이성의 접근 등에도 갑자기 두려움과 분노에 휩싸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사람들에겐 내가 생각하지 못한 수많은 과거가 있으며, 상대의 예민함을 탓하기 전에 그 안에 쌓인 상처들을 이해하려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행이도 저자는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해갑니다. 상담도 받고, 공개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도 꺼내고, 이성과의 만남도 준비해갑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용기를 가지고 한걸음씩 내딛어 가고 있습니다.

 

성폭행 피해자의 마음에 대해 이렇게 깊은 이야기를 들어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세상엔 셀 수 없이 많은 여성들이 이런 상처를 안고 있을텐데, 내 관점에서만 세상을 바라봤던 지난날에 부끄러움과 후회를 느낍니다.

 

세상 모든 남성들과 세상 모든 어머니들이 이 책을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은 누군가를 적으로 만드는 책이 아닙니다. 피해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의 무관심함에 경종을 울리는 울부짖음과 같은 책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순간에도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두움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At Last 이제야 흉터가 말했다를 통해 내가 보지 못했던 한뼘 밖의 세상을 보는 눈을 갖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모르는 사람은 공범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고, 어린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피해자에 대한 완전한 이해의 눈을 갖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책을 꼭 읽어보세요. 적극 추천드립니다.






본 리뷰는 리뷰어스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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