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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헛되지 않아요 - Suffering is Never for Nothing
엘리자베스 엘리엇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9년 11월
평점 :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다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삶의 이야기들이 모두 황금빛으로만 가득한 것은 아닐 겁니다. 때론 축복의 통로로 쓰임받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들을 차지하는 것은 고통과 절망의 시간들입니다.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고통이며, 때론 삶이라서 당연스레 오는 고통 외에도 더 큰 고통들이 닥쳐오기도 합니다. 참으로 어렵고 낙망되는 순간들입니다.
엘리자베스 엘리엇 선교사님은 선교지에서 남편을 잃고 본인도 건강 상의 어려움을 겪는 등 고통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믿음이 있는 우리에게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이 고통은 어떻게 해석해야 한단 말입니까? 믿어도 우리의 삶이 이렇다면 우리는 어디에 소망을 두어야 하지요?
엘리자베스 엘리엇 선교사님은 이번에 두란노를 통해 한국에 출간된 책, 고통은 헛되지 않아요를 통해 고통의 문제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이야기해나갑니다.
"하나님이 관심을 쏟고 계시는가? 그렇다면 왜 행동하시지 않는가?" (p.43)
이 질문이 이 책의 시작과 끝을 가장 잘 압축해 보여주고 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에 관심이 있으신 걸까요? 만약 그렇다면 왜 행동하시지 않는거죠?
단순히 고통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면 시중에도 이에관한 많은 책이 나와있습니다. 자기계발서적 류에도 많이 있고, 종교란에서 찾아보아도 굳이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에서도 고통에 대한 책들은 참 많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굳이 이 책을 찾아보아야 하는 이유는, 이 책이 고통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모순을 이야기한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크리스천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삶에 펼쳐지는 고통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괴로워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선 극심한 모순을 느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까? 크리스천이라면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 삶엔 고통이 있지요? 이것이 바로 크리스천들에게 적용되는 이른바 고통의 모순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확고한 중심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삶에 벌어지는 고통을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개념위에 녹여내야 하는 부담감을 가지게 됩니다. 이 압도적으로 모순되는 두 개념, 사랑과 고통, 이것을 어떻게 함께 이해할 수 있단 말입니까.
엘리자베스 엘리엇 선교사님은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십자가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는 그저 고문틀의 하나 정도로 보여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는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입체적인 것입니다. 십자가는 인류 역사상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찬란하게 빛났던 상징적인 사건이면서도 동시에 예수님에게 허락된 고통이 조금도 면제되지 않았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사랑과 고통은 얼핏 완전한 모순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고, 예수님의 삶을 응시하다보면 우리에겐 전혀 새로운 시각이 생깁니다. 바로 사랑과 고통이 한지점에서 하나의 목적을 향해 격렬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삶의 고통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둘 중 어느 하나를 택하면 다른 한쪽이 면제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두가지가 십자가로 해석되어질 때 예수님을 통한, 그리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실행되고 완성되어집니다.
엘리자베스 엘리엇 선교사님이 이 책에서 밝히신 고난을 다루는 방법은 이러했습니다. 인지하고, 받아들이고, 그것을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고, 그 제사와 함께 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길의 끝에서 마침내 선교사님은 자신이 선교지에서 과부가 된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었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고난은 우리를 이 지점까지 끌고 가는 데, 그 지점은 바로 나 자신을 제물로 내어드리는 지점입니다. 무언가 오버랩되지 않으십니까? 맞습니다. 바로 십자가입니다. 결국 십자가에서 우리의 고통과 하나님의 사랑이 다시 해석되어집니다. 이것이 고통의 시간을 보내며 선교사님이 깨달으신 고난의 신비입니다.
책의 후반부에 놀라운 고백이 나옵니다.
"그 기쁨이 어디서 왔을까? 삶의 모든 면이 평안해서였을까? 세상의 기준에서 행복한 삶을 살았기 때문일까? 전혀 아니다. 그녀의 시각이 변형되었기 때문이다." (p.170)
지금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 기나긴 고난의 시간들이 그날이 오면 새롭게 해석되어질 것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십자가를 본다면 그저 고통 뿐이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십자가를 본다면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우리의 시각을 교정하시고, 우리의 사랑을 받아내고야 마시는 하나님의 경륜이 보이실 겁니다.
어쩌면 고통에서 건짐 받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고통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우리의 시각이 교정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우리의 고통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될까요? 어제와 같은 마음일까요? 아니면 전혀 새로운 다른 존재의 마음을 가지게 되어있을까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들, 이미 모든 것이 망가졌다고 더는 희망이 없다고 괴로워하고 계신 모든 분들께 이 책, 고통은 헛되지 않아요를 추천드립니다. 이 책의 결론대로 가장 순수한 금은 가장 뜨거운 불에서 나오고, 생명은 죽음에서 나옵니다. 엘리자베스 엘리엇 선교사님의 고백처럼 우리의 고통이 헛되지 않음을 깨달으시길 기도하고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