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가올 미래를 결코 알 수 없기에,
현재의 고민과 체념에 매몰되려고만 할 때에도순간순간 찾아오는 작은 기쁨의 실마리에좀 더 마음을 열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연히 내 마음의 소리를 따라간 길에서.
상상해 본 적 없는
‘빅플레저‘를 만날지도 모르니까요. - P139

그래서 누군가가 저에게 30대가 된 후 달라진 것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그러려니‘를 잘하게 된 거라고 말할 거예요. 저는 어려서부터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있을 때도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편이었는데요. 그런 모습이멋있어 보였나 봅니다. 그러다 보니 서른이 넘어서는 좀더 수월하게 그러려니를 잘하는 것 같아요. 힘든 일이 생겨도 이 상황이 내 바닥까지 침범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고 할까요. - P161

삶에서 일어나는 우연이 계속되면 운명인가 싶죠. 그렇게 하나씩 쌓아올린 운명은, 때로 기적 같은 일을 만들어냅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우연이 아니었을지도요. 기적은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매일 조금씩 느리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적을 만들어 내는 마음을 기록한 최희서의 산문집 『기적일지도 몰라』는 ‘편견을 깼다‘라는 진부한 표현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 P17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린 시절부터 어디선가 읽었던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마음속에 새기고 있었는데요. 기쁨이든, 슬픔이든 결국 지나가 버린다는걸 일찍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 P27

 "너로 인한 그리움과 공허와 고통마저도 내 안으로 들어와 나의 가장 큰 기쁨이 된다"와 같은문장들은 읽는 이의 마음을 울렁이게 만드는 힘이 있는데요. 이런 청아한 문장들은 ‘시‘ 같기도 하고 ‘산문‘ 같기도합니다. - P29

보뱅이 사랑하던 여인 지슬렌은 보병에게 만약 자신이죽는다면 후에 무엇을 쓸지 물어보았다고 하죠. 그녀는보병에게 "문학을 하지 말고, 꼭 글을 써야 한다"라고 당부 합니다.  - P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딜리아니가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떠올린 피렌체 우피치미술관은 르네상스 시대 회화 컬렉션으로는 이탈리아를 넘어 세계에서 으뜸가는 미술관입니다. 한때 피렌체를 지배했던 메디치가 사람들이 15세기부터 200여 년간 수집한 작품을 모두 모은 곳이 바로 이곳이며, 나중에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 전역으로 확산한 르네상스 운동이 시작된 곳이피렌체이기 때문이죠. - P207

ㅇㄹ에ㄹㄱ 교육모딜리아니가 1910~1911년에 제작한 작품 <여인의 두상Tête deFemme>에서는 아프리카 미술과 브랑쿠시 작품 스타일을 자기의 것으로소화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쩐지 이 조각을 처음 보는데도 어딘가 낮이 익은 듯한 느낌이 든다고 생각하실 텐데요, 그 후로 모딜리아니의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얼굴 생김새와 흡사하죠.  - P223

인물을 그린 모딜리아니의 작품에는 또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모델의 신체 그 자체에만 집중한다는 점이에요. 특정 몸짓, 장식, 모델이있는 장소가 어디인지 등 그 밖에 그림을 설명하는 다른 요소는 아무것도 없죠. 모딜리아니에게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었으니까요. 그가 궁금해했던 것은 오직 인물, 그것도 인물의 내면이었습니다.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죠. "내가 추구하는 것은 현실도 아니고 그렇다고 비현실도 아니다. 나는 무의식, 즉 인간의 본능이라는 신비를 알고 싶다." 그래서 그런지 독특하게도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다른 화가들에 비해 풍경화에도 관심이 없는 편이었죠. 모딜리아니가 남긴 풍경화는 단 네 점이 전부입니다. - P2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인지 클림트의 풍경화에는 그 자리에 함께했던 이든 다른 그누구든 사람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아티 호수의 캄머성 Schloss Unterachamateme(1908-1909)이나 사과나무 Aprelbaum I(1912)>처럼 클림트가그런 모든 풍경화에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한층 더 고요하고 잠장하고 평온해 보이는 이유죠, 클림트는 아침 6시면 아터 호수와 근처숲속을 산책했습니다. 건강관리 목적에서였죠. 가까운 사람들이 운명을달리할 때마다 크게 방황했던 클림트는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나서 60세까지는 살고 싶다는 말을 버릇처럼 내뱉습니다. - P67

클림트는 말년에 꿈을 꾸는 듯한 몽환적인 표정의 여성들을 자주그립니다. 미처 완성되지 못한 채로 남은 그의 유작 <신부Die Braut(1918>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비슷하죠, 클림트 후기 그림들에서는 이처럼 황금빛은 사라지고 화려한 색채가 두드러지는데요. 1909년에 파리를 방문할당시에 접한 일본 우키요에에서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당시 일본에서 수입되던 공예품 등에 그려진 평면성을 강조한 목판화 우키요에의 화려하고도 이국적인 색채는 유럽의 화가들을 매료시켰습니다.  - P71

그럼에도 클림트라는 화가가 여전히 신비로운 이유는 자서전이나 그림 설명 등 클림트 스스로가화가로서 남긴 글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모두가 주변 사람들의 증언이나 에밀리 플뢰게와 주고받은 편지 등으로 파악한 것들입니다.  - P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돈을 벌어다 줄 그림을 그리겠다고 다짐했던 클림트는 팔 수 있는디자인을 가르치는 장식미술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했고, 졸업 후 프란츠마치 Franz Matsch라는 화가와 동생인 에른스트Ernst Klimt와 함께 아티스트컴퍼니를 만들었는데요. - P20

Romeo und Julia 부르크 극장의 천장화 <로미오와 줄리엣>이 작품은 클림트의 작업실에서 스케치가 발견되어 클림트의 작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등장인물의 생생한 표정이 사실적인 느낌을 더해주죠. - P23

비슷한 시기에 그린 <옛 부르크 극장의 관객석> 역시 그를 수많은 사람에게 알린 그림인데요. 링슈트라세로 이전하기 전, 미하엘 광장Michaelerpiatz에 있던 기존의 부르크 극장을 그린 그림이 옛 부르크 극장의 관객석》입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백 년이 넘도록 유럽의 일류 극장을 자처한 부르크 극장을 허물면서 이곳을 기록할 필요를 느꼈겠죠. 이미 사진 기술이 발명된 이후였지만 사진으로 남기는 건 품격이 없다고생각한 왕가에서는 그림으로 남기기로 하고 클림트에게 그 작업을 맡겼습니다.  - P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