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보는 인류의 흑역사 - 세상에서 가장 불가사의하고 매혹적인 폐허 40
트래비스 엘버러 지음, 성소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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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장소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지식과 교훈을 전달하는 데 탁월한 저자 트래비스 엘버러의 <지도로 보는 인류의 흑역사>는 첫 문장부터 강렬했다.

"잊는다는 것은 기억하는 힘을 잃는다는 뜻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 이 책은 끝난다는 것과 버려진 것에 대한 차이부터 설명해준다. 끝난다는 것은 죽는 것, 마무리되어 더는 돌아오지 않는 것이며, 반면 버려진 것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쉽게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이 책은 버림받고, 소외되고, 사람이 살지 않고, 사람이 살 수 없는 장소들의 지명 사전이다. 이 속에 우리가 잊어버리고 내버려둔 장소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으며, 그 중에는 진가를 인정받아 복원된 곳도 있고, 완전히 황폐해진 곳도 있다.

잊혀서 완전히 사라진 대상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지만, 방치는 희망을 모두 포기해야 할 근거가 아니라 그 반대이다. 버려진 장소는 다가올 세상을, 잔해에서 구할 가치가 있는 것들을 더 오래 더 열심히 생각해보라고 격려하는 것이 저자의 바램이다.

생소한 장소들이 많았음에도, 사진과 함께 그 의미를 여행하기 좋았던 책 :)

📖 콜만스코프는 공식적으로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다이아몬드 광산 구역인 스페르그비트에 남아 있지만, 해마다 3만 5000명쯤 되는 관광객이 버스를 타고 찾아온다. 콜만스코프는 나미비아 풍경에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처럼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더해준다. 그 무엇도 이 느낌을 앗아가지 못할 것이다.

📖 오래전에 황금기를 떠나보내고 문을 닫은 카멜롯 테마파크와 판지로 만든 성, 판자로 구멍을 막아놓은 키오스크도 더 나은 어제라는 비슷한 꿈을 보여준다. 갑옷을 입은 기사로 붐비고 가족들이 행복하게 솜사탕을 먹던 순진무구했던 시절은 끝나버린 지 오래다. 멀린이 요술 지팡이를 흔들더라도 그 시절은 되살아나지 못할 것이다.

📖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지금, 죽어가는 세인트피터스 건물은 계속해서 전 세계의 순례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대체로 가톨릭을 믿지 않는 이 모험가들은 표면이 거칠거칠한 콘크리트로 만든 종교 교육의 옛 성채에서 영광과 장엄함을 느낀다. 아마 로버트 더 브루스도 팔레스타인 땅에서 이런 영굉을 찾고 싶어 했을 것이다.
(서평단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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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밝은 검정으로 - 타투로 새긴 삶의 빛과 그림자
류한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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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밝은 검정으로>는 저자가 지난 1년 반 동안 인터뷰이 10명의 타투와 몸을 찍은 결과물이다. 타투와 몸은 둘 다 이미지고, 바라봄의 결실인 동시에 바라봄을 불러일으키며, 하나씩 볼 수도 있지만 여러 개를 연결 지어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빛이 없다면 아무것도 찍을 수 없는 카메라에 비친 타투는 강렬한 빛으로 생긴 실루엣이라고 저자는 표현한다. 빛은 그들의 삶이고, 그림자는 그들이 짊어진 삶의 하중이었다면, 타투는 그들이 경험한 억압을 들려주었으며, 그 이야기는 상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예전보다 타투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 되었지만, 아직도 따가운 시선을 완전히 벗어나진 못한다. 그러한 인식에 대해 무엇보다 이 책에서 타투와 몸, 상처와 삶이 만났다는 말이 많은 것을 대변해준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바램처럼, 타투와 타투 사이의, 사진과 사진 사이의 보이지 않는 선으로써 독자들에게 가닿길 나또한 바래본다.

📖 지금은 타투를 새기고 싶은 마음이 없지만, 타투는 인간이 하지 않을 법한 행위여서 여전히 흥미롭다.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타투는 모든 생산적인 활동 바깥에서 이뤄진다. 몸에 좋지도 않고 아프기만 한데 아픔을 견디면서 타투를 받는 게 귀엽고 매력적이다. 지배적인 흐름을 역행하는 느낌이랄까.

📖 죽음은 몸을 떠난다는 의미인데, 요즘에는 내가 몸을 떠날 수 없음을 자주 느낀다. 내 몸은 나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니 몸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으면 마음이 안 좋아질 수밖에 없다. 몸이 무엇을 원하는지 귀를 기을이려고 애쓴다. 무당으로서, 작가로서 내 몸의 느낌을 예민하게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 타투가 생긴 후 타인이 내 몸을 바라보며 타투를 콕콕 짚는 경험을 하다 보니 몸과 좀 친해진 것 같다. 맨몸일 때도 옷을 한 겹 입은 느낌이 든다. 나는 내 몸을 이겨낼 수단이 늘 필요했는데, 타투가 무척 좋은 영향을 줬다.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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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 워크 - 비윤리적이고 불결한 노동은 누구에게 어떻게 전가되는가
이얼 프레스 지음, 오윤성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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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는 "문제의 핵심은 어떤 일이 행해지고, 그 일을 누가 하며, 그 밖의 우리 모두는 어떤 방법으로 그들에게 그 일을 위임하는가다. 우리는 스스로 전혀 하고 싶지 않거나 심지어는 아예 모르는 척하고 싶은 일을 그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위임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저자 이얼 프레스는 그가 제기했던 질문들을 떠올리며, 오늘날 미국에서는 어떤 종류의 더티 워크들이 수행되고 있는지, 그중에서 사회가 무의식적으로 위임한 일은 얼마나 되는지, 얼마나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타인에게 터티 워크를 시키고 그에 대해 모르는 척하는지 등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필수노동 가운데, 도덕적으로 문제 있다고 여겨져 더욱 은밀한 곳으로 숨어든 노동을 저자는 '더티 워크'라고 부른다. 이는 보이지 않는 계약의 산물이며, 더티 워크로 인햐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더티 워크에 대해 깊이 알 필요가 없도록 보장한다.

하지만 더티 워크는 정해진 숙명이 아니기에, 살아 있는 인간들이 내린 구체적인 결정이자 원칙적으로 우리가 도로 물릴 수 있는 결정의 산물이다. 또한 우리 정부가 채택한 정책과 우리 의회가 제정한 법률의 산물이다.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고 이를 덮치는 도덕적, 감정적 부상도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더티 워크에 대해 다들 아주 깊이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사회의 필수 노동인 더티 워크를 수행하는 그들의 내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이다.

사회질서에 대한 무의식과 우리의 가치관을 되새겨볼 수 있는 책 :)

📖 누군가는 이 시스템을 매일매일 굴리는 더티 워크를 해야 했다. 이따금 그 내부의 잔혹한 실태가 밖으로 새어나와 헤드라인을 장식할 때, 그래서 '선량한 사람들'이 환멸과 충격을 드러낼 때,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다.

📖 기초 훈련을 받으러 떠나기 전 헤더는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그리고 자신은 군인이 되어 나라를 위해 일하기로 했다고 알리면 그가 분명 자랑스러워하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딸의 결정을 듣고 부드럽게 경고할 뿐이었다. "군대의 임무는 전쟁을 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임을 잊지 마라."

📖 "우리가 당신을 위험한 곳으로 보냈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만행이 벌어질 수 있는 곳에 보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책임을 함께합니다. 당신이 본 모든 것에 대해, 당신이 한 모든 일에 대해, 당신이 하지 못한 모든 일에 대해 우리가 함께 책임집니다."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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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끝에 사람이
전혜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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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 운동, 제주 4•3, 노동권 투쟁 등을 SF, 고전 설화, 호러 미스터리, 복수 스릴러로 국가가 저지른 폭력에 대해 담고 있는 단편소설들의 모음이다.

역사는 늘 가장 좋지 못한 부분만 골라 되풀이 된다는 말에는 공감하는 바이지만, 저자와 마찬가지로 어느 단편에 대해 소개하기에 나 또한 조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우선 국가폭력 피해 당사자분들의 투쟁의 무게를 장르소설로써 세상에 펼쳐내기까지 저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추가로 저자의 필력에 감탄할 정도로 뛰어난 책이었다. 반면, 국가폭력 피해 요소가 다소 한쪽으로 치우친 성향이 보여서 마냥 읽기가 편하지만은 않았다.

좋지 못한 역사와 피해자들의 고통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곗바늘은,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을 우리 눈에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도구이기도 했다. 인간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처럼.

📖 삼준은 마치 이날까지 마음속에 품고 있던 비밀을 다 풀어놓고 빈껍데기가 된 것처럼 보였다. 이제는 아무도 믿지 않을 그 신의 비밀을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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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와 광기에 관한 사전 - 99가지 강박으로 보는 인간 내면의 풍경
케이트 서머스케일 지음, 김민수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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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두려움과 열망에 사로잡히며, 때론 그토록 두려워하고 열망하는 대상에 집착을 이 책에서 공포증과 광기로 정의한다.

평소 알고 있었던 혹은 몰랐던 여러 공포증과 광기 중에서도 일상에서 흔히들 사용하는 결정장애라는 광기는 특히 새롭게 다가왔다. 결정장애는 그리스어로 없다, 의지, 광기가 합쳐진 용어이자, 타성, 무기력 혹은 의지 마비가 특징이다.

1921년 피에르 자네는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에 대하여 마치 뭔가를 잃어버린 것만 같은 미완성의 감정이 그들을 거듭 만족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뜨린다고 설명했다.

그저 가볍게 인지하고 있었던 부분들에 대해 자의식에서 비롯되는 강박과 머리에 따오른 생각을 곱씹는 인간의 경향이 원인이라는 것과 선택을 내리지 못하는 것은 망설임을 갈망해서라기보다는 실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는 사실이 새로웠다.

그 외에도 휴대전화부재공포증, 피부뜯기강박증, 카약공포증 등 생소하면서도 넓은 범위의 공포증과 광기에 대해 알 수 있어서 흥미로운 도서였다.

📖 오늘날 우리는 위험을 감지하면 구체적이고 반사적인 행동 반응을 보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느끼는 불안감을 분석, 설명, 날조, 과장하기도 한다. 우리는 기억할 뿐만 아니라 공상도 하고, 인식할 뿐만 아니라 머리도 굴린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온갖 공포증에 시달리는 이유다.

📖 두려움을 드러내 보이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이 되었다. 다시 말해 두려워한다는 것은 논리적이고 양심적이며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이제는 강박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나와 다른 사람들을 위하는 길이 된 것이다.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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