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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지 : 파이널 에디션 - 복잡한 세상에서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
리처드 H. 탈러.카스 R. 선스타인 지음, 이경식 옮김, 최정규 감수 / 리더스북 / 202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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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배송받고는 그 두께에 놀라서, 바로 정독할 엄두는 나지 않고 일단 가볍게 휘릭휘릭 전체 내용을 훑어보았다. 넛지가 적용된 사례들이 많이 담겨있어서 (일단은) 그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다만 넛지를 활용해서 내 삶을 어떻게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두 명의 저자들은 정부나 기업 차원에서의 고민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적은 것 같지만, 난 일단 내 삶에 적용하는 방법부터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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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지를 설명하기 위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면 역시, 남자 화장실의 소변기 중앙에 파리 그림을 그려놓은 것을 들 수 있다. 정말 사소한 것인데, 이로 인해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화장실의 청결도가 높아졌다는 이야기. 여기저기서 많이 접해보지 않았을까.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여러 매장들이 계산대 앞에 일정 간격으로 스티커를 붙여둠으로써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도한 것도 역시 넛지를 활용한 사례이다. 넛지를 활용함으로써 보다 나은 선택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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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넛지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 같다. 책에서 제시된 사례인, 택시 기사가 신용카드로 계산하는 승객에게 팁 제공 선택지로 (1) 15퍼센트, (2) 20퍼센트, (3) 25퍼센트, (4) 직접 결정의 4가지를 제시하는 경우를 들어보자. 사람들은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애매할 때 보통 중간에 있는 선택지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고, 이 사례에서는 20퍼센트를 주로 선택한다. 그리고 이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을 때 선택했던 15퍼센트보다 많은 금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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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보면 넛지를 활용해 선택지를 제시함으로써 택시 기사에게 보다 이익이 되는 선택을 유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는 기준점을 높임으로써 보다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질 것이다. 실제로 팁 제공 선택지로 (1) 20퍼센트, (2) 25퍼센트, (3) 30퍼센트를 제시한 택시 회사의 기사들이 더 많은 팁을 받았다고 한다. 문제는, 이 회사의 택시를 탄 승객 중에서 팁을 주지 않겠다고 한 사람의 비율이 높았다는 것이다. 공격적인 기준점 설정이 승객들에게 불쾌감을 유발한 것이다. (음음, 책에서 제시된 사례를 읽으며 내가 느낀점을 적은 것이라 이 부분은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살짝 결이 다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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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차원에서 살펴보자면,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간식거리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우는 것도 넛지를 활용한 사례가 되지 않을까. 다이어트를 위해서는 과자를 먹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눈에 띄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이를 자제력만으로 누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자제력을 발휘해 10번 먹을 것을 1번만 먹을 수는 있겠지만 그만큼 의지력을 써버렸으니 지치게 마련이다. 이 경우에는 과자를 아예 치워버림으로써 그 선택지 자체를 없애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된다. ㅇㅅㅇ.
(p.91)
자제력과 관련된 문제는 개인이 2개의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발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2개의 자아는 원시안적인 '계획하는 자아(planner)'와 근시안적인 '행동하는 자아(doer)'다. '계획하는 자아'는 숙고 시스템이나 사람들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미스터 스팍을 대변하고, '행동하는 자아'는 자동 시스템 혹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도사린 호머 심슨에게 강한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계획하는 자아'는 장기적인 차원의 복지 수준을 높이려고 노력하지만, 이 목적을 이루려면 흥분에 동반되는 유혹에 노출된 '행동하는 자아'의 감정과 장난스러움, 강한 충동을 이겨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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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형성된 일련의 분위기가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도 넛지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다. 이런 사회적 넛지의 힘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들은 적지 않다. 책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자기 또래 아이들이 임신한 모습을 본 10대 소녀가 임신하게 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높고, 직원이 고용주를 상대로 소송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본 직원이 그 고용주를 상대로 소송할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높다는 등의 연구결과가 있다. 이는 본인의 주변 환경을 바꾼다는 선택을 하는 것이, 본인 자신을 바꾸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가 거주지를 정할 때 학군을 선택하는 것도 그 때문이지 않을까.
(p.107)
2020년 봄과 여름 동안 우리 저자들이 각각 거주하는 지역(노던 캘리포니아와 보스턴)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해 사람들이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했다. 그러나 미국의 다른 지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는 저명한 정치 지도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사회적 영향이 마스크 착용을 촉진하기도 했고 저지하기도 했던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 꼭 기억해야 할 사항이 존재한다. 사람들에게 (지속 가능성이라는 영역에서) '새로운 규범이 형성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 충족적 예언이 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역사의 잘못된 편에 서길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 사람들이 어떤 일을 점점 더 많이 한다는 걸 알면 어렵거나 도저히 이룰 수 없는 듯 보이는 것도 얼마든지 이룰 수 있다고,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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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봐야지 생각만 하던 책을 한차례 읽고 나니 미션을 하나 완료한 느낌이다. 아직 정독하지는 못했지만서도. 이런 주제의 책을 읽으면 내가 하는 생각과 행동이 당연한 것이 아니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제로도 그렇고 말이다. 그래서 본인을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나의 행동을 프로그램 짜듯이 하나하나 손볼 수는 없겠지만, 내가 그냥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하는 것들이 당연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염두에 두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