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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일 (양장)
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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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왜 자기한테 일어난 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까. 제 마음의 일을 어째서 자신이 모를까. 그건 제 안에만 담긴 거라서 남들은 절대로 알 수 없는 것들인데.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하면 끝내 아무도 모를 일인데."(가제본,146)
"사람은 어째서 자신의 마음을 모를까. 그 무엇보다 온전한 제 것인데."(가제본,287)
140여 쪽을 달려 작가는 호정이를 통해 제 마음의 사정을 제가 알아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140여 쪽을 달려 자신의 마음을 알라고 한다. 온전한 자신의 것이므로.
처음의 이 말은 호정의 냉소 가득한 마음을 대상으로 한다. 그리고 다음의 이 말은 얼어붙은 호수가 계절을 만나 무섭게 녹아내리 것과 같은 마음을 대상으로 한다. 소녀의 마음은 오랫동안 결빙되어 있었고, 봄기운 같은 첫사랑으로 해빙되었다. 그러나 아빠의 말처럼 "무섭게" 녹아내려야 했다.
어린 시절 가족에게서 얻은 극복하기 힘든 상처, 사랑하면서도 질투하게 되는 한참 어린 동생, 서로 조심하게 된 부모, 사랑하지만 부담스러운 할머니, 가깝지만 온전히 마음을 내어줄 수 없는 친구, 우연히 스며든 낯설고 따스한 첫사랑, 그리고 어설픈 이간질로 처참하게 대상을 깨트리는 또다른 첫사랑…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세상이 이해의 아량을 넘어선 비이성적이고 이상한 존재들의 격투장이라고 소녀는, 생각하는 것 같다. 나의 청소년기도 그러했던가. 감당 못할 일을 경험했다면 그걸 해결하기 위해 부족한 경험을 토대로 결정했을 것이다. 관계의 어떤 어려움 앞에서는 부정적인 경험들이 힘을 발휘하여 잃어버린 관계들도 있었던 것 같다.
호정이가 경험하는 스스로 알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은, 어떤 순간들이 와야만 이해 가능한 것들이었다. 어른의 눈으로 보면 선명한 것들도 좀 더 어린 세계에서는 지대하게 큰일이 되고 만다. 더욱이 겨우 마음을 붙이 첫사랑의 정체가 살인자라면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왜 제목이 <호수의 일>일까?하고 생각했는데, 다양한 은유적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얼어붙은 호수는 트라우마이기도 하고, 오해이기도 하고, 아픔이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녹아내린 호수는 호수 본연의 넓음과 깊음을 갖기 마련이다. 흔들리고, 대류하고, 맑아지고 아름다워진다.
감당하기 힘든 감정의 격동 혹은 결빙 속에서 소녀는 중증 우울을 경험하지만 서서히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 봄의 기척이 깊은 상흔을 남길지라도 소녀를 자라게 할 것이다. 출렁이며 고고하게 윤슬을 빛낼 호수가 되게 할 것이다.
이해 받지 못하는 마음을 소년과 소녀 시절에 가졌으면서 그런 소년과 소녀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흔들린다. 호수가 얼고 녹기를 반복하듯이 어른이 되었어도 계절의 혹한과 무서운 풀림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호수 주변의 나무와 갈대가 자라듯, 뭔가가 자라고 있다면 그나마 위안이 되겠다.
소년과 소녀가, 그리고 아직 마음 속에 소년과 소녀를 가진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다. 또, 소년과 소녀의 부모들이 함께 읽으면 좋겠다. 호수의 일을ㅡ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