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팅 클럽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2
강영숙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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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리라! 글을 쓰리라! 죽어도 쓰리라.(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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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속 등장인물들은 거의 모두 글을 쓴다. 계동의 글쓰기 교실에서부터, 해컨색의 라이팅 클럽까지. 그리고 그 너머의 자기만의 공간에서도 글을 쓴다.
어떤 인물은 몸을 가누기 어려워지고, 정신을 붙잡기 힘들어졌어도 글을 썼다. 아니 그렇기에 더더욱 글을 썼다. 언제나 “뭔가를 쓸 때가 쓰지 않을 때보다 나았(p.306)”으니까.
 
/세상에, 이런 쓰레기들도 있다니! 세상에. 이런 쓰레기들을 보았나!(p.200)
 
글을 쓸 때, 아니 뭐든 쓸 때 저런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혹시 나만 그런가!)
하지만 쓰레기면 어떤가. 내가 무언가 쓰고자 했을 때 가장 도움이 됐던 건, 아마 이경미 작가님의 <잘돼가무엇이든>이라는 책에 나온 ‘쓰레기를 쓰겠어!’라고 결심하라는 문장이었다.
그전에는 정말너무좋고감탄이나오는멋지고기가막히는 걸 써야지! 하다가 시작부터 막히기 일쑤였는데, ‘쓰레기를 써야지!’하고 다짐하니 어렵지 않게 시작이 됐다.
시작하지 않는 것보다 결과물이 쓰레기인게 백번 천번 더 좋다.
 
왜냐고? “한 번 써 봐. 인생이 얼마나 깊어지는데.”(p.255)
 
/도대체 쓰는 게 뭔데! 나는 미친 것 같았다.(p.261)
 
‘생각’만으로는 글이 되지 않고, “경험만으로는 글을 쓸 수 없다는 것(p.34).” 아무리 좋은 생각과 경험이 내 안에 있어도 결국 연필이나 펜의 사각거리는 소리나 타닥타닥 자판을 치는 소리가 들려야 비로소 글이 되는 것이 아닐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글을 썼던 사람, 쓰고 있는 사람, 쓸 사람으로 나뉜다면 우리에겐 모두 ‘글쓰기 교실’이나 ‘라이팅 클럽’이 필요하다. 형태와 인원은 상관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나 혼자만의 라이팅 클럽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고, 나의 경우에는 함께 글을 쓰는 ‘글쓰기 모임’이 없었다면 글을 쓸 수 없었거나 아마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유독 쓰면서 힘을 내는 이들”이 만드는 공동체는 강하다. 한 번도 쓰지 못한 사람들을 쓰게할 정도로. 바로 ‘글쓰기를 사랑하는 계동 여성들의 모임’처럼. 그리고 나처럼.
 
/여러분들이 주의하셔야 할 점은 반드시 자기 얘기를 써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p.144)
 /글 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줄 모를 거야. 작가들이 진실한 문장 하나를 가지려고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는지 나중에 알게 될 거야.(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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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유니버스 직업 소개소 - ‘드래곤 퀘스트’ 용사부터 ‘파이널 판타지’ 성기사까지 판타지 유니버스 시리즈
환상직업안내소 지음, 전홍식 옮김 / 요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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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_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판타지를 좋아해왔다. 어렸을 때는 현실과는 다른 상상 속의 세계에 다녀올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고, 크면서는 반대로 현실과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한 세계에 현실이 담겨있고 묻어있는, 현실이 생각나는 판타지가 좋아졌다.


용이 등장하고, 마법을 쓰고, 중세 시대를 보여주고, 미래를 보여주고, 초인적인 힘이 있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가능한 곳이 판타지다. 판타지에는 상상력의 제한이 없다. 그런 판타지 세상에서도 현실이 보이는 건 아마 그 세계를 구축한 것이 결국 사람이기 때문인 것 같다. 굉장히 편견이 없어보이는 판타지 세계에도, 그 세계를 설정한 사람이 살던 시대의, 그 사람이 갖고 있는 편견과 고정관념이 보인다.
예를 들면 왕의 자격 요건은 왕가의 핏줄인 남성이어야하고, 공주는 미모를 가꿔야한다는 것들?
 
2_

이 책을 읽기 전에 그냥 직업들을 나열한 글이겠구나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판타지 세계에 현실을 한 움큼 집어 넣어 단순히 그 직업을 소개하는 글이 아니라, 그곳에 이러한 직업들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느끼게 해주는 글이었다.
 
연봉이나 자격 요건 뿐 아니라 경력 설계, 마법을 배우려면 스승이나 교육기관에 가야하고, 다른 여러 직업으로 파생될 수 있다는 것까지 알려준다.
읽으면 읽을수록 ‘판타지 세계 청년들 취업난 심각해’, ‘ㅇㅇ마법 아카데미 경쟁률 예년보다 치열해져’, ‘자칭 현자라고 주장하는 가짜 현자 주의’, ‘ㅁㅁ마을 ㅍㅍ집에서 용사 탄생’ 같은 기사들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책에서는 사회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유명하고, 특별한 능력이 있는 직업들뿐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숙박업주나, 행상인, 상인들도 따로 챕터를 두어 설명하고 있는데 그 덕분에 현실적인 느낌이 더욱 더 가미되었다.
 
/판타지 세계에서 직업이란 무엇일까요? 멱고 살기 위한 수단? 자아실현의 기회? 여러 가능성이 있겠지만 저는 판타지 세계의 삶 그 자체라고 말하갰습니다.(p.322)
 
3_

판타지 세계와 현실 세계에 반쯤 발을 걸치고 위트있게 소개해주는 판타지 유니버스 직업의 세계! 책을 읽다보면 결국 한 가지 질문으로 수렴될 수 밖에 없다.
 
“만약 여러분이 판타지 세계의 직업을 얻고자 한다면?(p.322)”
 
나라면 역시 모 아니면 도인 직업이거나(용사 같은), 어느 정도의 수익이 보장되는 전문직(마법사, 정령사, 소환사, 연금술사 같은)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 않을까! 그러다 안되겠다 싶으면 음유시인으로 살고!
 
/판타지 세계에서 굳이 여관 주인이 될 필요가 있어? 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겠죠. 하지만 판타지 세계의 삶은 모험가나 용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배경에는 그들의 먹거리와 수면을 책임지는 다양한 직업이 존재합니다.(•••)그들에게도 나름의 어려움과 보람이 있겠지요. 그렇다면 거기에는 용사나 마법사와는 다른 재미와 드라마가 있지 않을까요? -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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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거짓말 요다 픽션 Yoda Fiction 2
정해연 지음 / 요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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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_

시람들은 때로 ‘거짓’을 ‘진실’이라 믿고 싶어한다. 그게 꼭 나쁜 것이라고 할 수 없고 필요할 때도 있겠지만, 어떤 진실은 거짓 안에 감춰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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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서는 안 되는 일이 세상에는 분명히 존재했다. 진실을 피해 눈을 돌리면 기다리는 것은 불행뿐이다.(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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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_

책을 읽는 내내 최근 시작한 드라마 포스터에 걸려있던 문장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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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원하는 자, 모두가 공범이다." /비밀의 숲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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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침묵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우리 사회가 떠올랐다.
왜 다른 범죄보다 유독 성범죄에서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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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에게는
나이가 어리다고, 초범이라고, 반성하고 있다고, 심신미약이라고, 술을 먹었다고, 사회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부양할 가족이 있다고, 등등등 갖가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주면서
왜 피해자에게는 감옥 보다 더한 감옥을 겹겹이 둘러 옥죌까.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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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새끼가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세상에 다 밝혔어야 해? 그래도 그 새끼는 벌을 안 받잖아. 내 새끼만, 내 새끼만 사람들 머릿속에서 벗겨지고, 까발려지고, 불쌍한 애 되는 거잖아. 아니, 불쌍한 애가 되는 거면 차라리 낫지. 다들 그럴 거야. 그러게 왜 남자애가 그런 곳으로 부르는데 나가? 그러게 왜 그렇게 입고 다녀? 그러게 왜 그런 애랑 어울려?(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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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_

거짓 속에 진실을 감추는 건, 결국 시간 문제라고 생각한다.
진실을 마주할 시간을 유예해주는 도구로써의 거짓.
진실을 가장한 거짓을 앞세워 잠시간은 행복할지 모른다. 사실 거짓은 없었다고, “아무 일도 없었던 거라고(p.207)”, 이게 진실이라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되는 거라고(p.207).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며, 그로 인해 누군가는 날카로운 거짓으로 둘러싸인 진실 속에서 찔리고 또 찔려 상처 받고 있는 줄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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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_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영원히 거짓 속에서 살 수 만은 없다고.
이미 한 번의 거짓말로 진실을 감춘 당신에게 진실을 밝힐 기회가 왔다면,
당신은 진실을 말할 것인가? 아니면 “또 한 번의 거짓말을 바라(p.253)”며 ‘두번째거짓말’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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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리는 죽어서는 안 되었다. 죽음으로 정리되는 사건의 해결은 모든 사람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만 남길 뿐이었다.(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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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지나가다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3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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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_그냥 여름이 아니라 딱 요즘 같은 여름을 지나가는 소설이었다. 물속에 푹 잠겨 책을 읽는 듯한 착각이 들 만큼 마음이 먹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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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_”누수의 흔적(p.135)”이 남은 삶. 책 속 인물들은 “좀처럼 복원되지 않는” 흔적을 머금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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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없이 태어나 아픔 없이 죽을 수 있는 공간(p.46)”에서 “30분 짜리 생을 수집”하는 민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가구점의 거울을 본다. 흐릿한 거울에 비춰지는 상(像)이 거울 밖의 흐릿한 생보다 더 명료할까, 더 흐릿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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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함을 느끼게 할 만큼은 충분히 강렬하게 일상과 일상의 틈새로 날카롭게 스며드는(p.39)” 가난을 온몸으로 받으며 수호는 타인의 이름, 피에로 분장이라는 가면 아래 자신을 가렸다. 깨진 유리병 밖으로 쏟아져내리는 시간을 아쉬워하지 않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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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_”거기도 여름이 끝나가요?(p.195)”
누군가에게 여름은 끝없이 이어지는 계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여름도 흘러가고, 지나가고, 마침내 끝이 난다.
누군가에게는 “오직 나만의 거주지(p.208)”였을, 다른 누군가에게는 “유일한 여행지(p.195)였을 여름을 나의 여름과 기대어 함께 바라봤다. 나의 여름에도 그들의 여름과 “균일한 분량의 애도(p.208)”를 표하며.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된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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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노래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1
이승우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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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_

반복되는 단어들, 중첩되는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사유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된다. 되돌아가 생각하고, 멈춰서서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만드는 문장들. 밑줄 긋기를 포기하고 대신 홑낫표를 썼다. 선으로 된 단 하나의 문장이 빛나는 것이 아니라, 두 손 가득 퍼 담아두고 싶은 문장들이 면으로써 책 속의 공간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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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_

후, 한정효, 그리고 차동연. 세 인물은 각기 다른 시간대에서 시작해 각자의 삶을 살기도 하고, 서로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겹쳐지기도 한다. 잠시 멈춰 사유하도록 올가미를 치는 문장처럼, 세 인물의 이야기도 직조 되어있었다. 그렇게 잘 짜여진 이야기지만 저자는 그 모습을 한 번에 보여주진 않는다. 한 번에 볼 수 없도록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은 단편의 조각, 조각들이 사실은 씨실과 날실을 이루고 서로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는 걸 아주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계속 책을 읽을 수 밖에 없도록 차근 차근 풀어낸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 촘촘함에 감탄하게 됐고, 마지막 실마리를 쫓아가 보게 된 큰 그림은 어느 하나 날아가는 것 없이 꽉 붙잡은 입체적인 서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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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삶. 죽은 이에게서 산 자로, 죽은 이에게서 산 자로, 산 자로, 산 자로 ••• 이어지는 과업은 몇 십년이 지나도 이어졌고, 기억하고 기록하고 찾아내고 발견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쩌면 몇 백년, 몇 천년이 지나고도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죽은 이에게서 산 자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계속해서 지상으로 꺼내어지고 또 꺼내어지고 끄집어내져서 ‘지상의 노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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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_

’선글라스’와 ‘가면’으로 자신을 가리고, ‘성경’을 거울 삼아 자기 내면을 비췄다. 가면은 결국 나의 얼굴이었고, 그것은 나의 경멸이었고, 미처 갈무리하지 못한 나의 모습은 한 곳으로 모여 눈빛에 맺혔고, 그 빛은 결국 선글라스에 가로막혀 한 점의 마음도 내보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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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글라스를 낀 나는 나 자신조차 알아보지 못한다. 늘 눈 앞이 같은 색으로 물들어 있으니 거울을 볼 필요도 없다.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가려면 눈 앞을 가리고 있는 선글라스를 벗어야한다. ‘선글라스를 쓰고 해 온 일들을 그만두겠다(p.196)’는 마음과 함께.

선글라스를 벗은 뒤 나와 세상을 ‘조금 떨어져 바라보’면 눈 앞에 ‘꽉 막힌 체제가 만들어 낸 인위적인 심각함의 희극성’(p.206)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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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글라스를 벗고 마주 한 자신, 그리고 자기 내면과 마주하기 위해 책 속 인물들은 ‘성경’을 매개로 썼다. 나에겐 그것이 책이었다. 이 책을 보며 난 인물들의 내면 속으로 들어갔고, 그것은 곳 나의 내면을 비춰보는 것과 다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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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나는 누구(who)든지 될 수 있었고, 그것은 내가 누구(who)인지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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