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노래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1
이승우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_

반복되는 단어들, 중첩되는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사유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된다. 되돌아가 생각하고, 멈춰서서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만드는 문장들. 밑줄 긋기를 포기하고 대신 홑낫표를 썼다. 선으로 된 단 하나의 문장이 빛나는 것이 아니라, 두 손 가득 퍼 담아두고 싶은 문장들이 면으로써 책 속의 공간을 차지했다.

⠀⠀⠀⠀

2_

후, 한정효, 그리고 차동연. 세 인물은 각기 다른 시간대에서 시작해 각자의 삶을 살기도 하고, 서로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겹쳐지기도 한다. 잠시 멈춰 사유하도록 올가미를 치는 문장처럼, 세 인물의 이야기도 직조 되어있었다. 그렇게 잘 짜여진 이야기지만 저자는 그 모습을 한 번에 보여주진 않는다. 한 번에 볼 수 없도록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은 단편의 조각, 조각들이 사실은 씨실과 날실을 이루고 서로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는 걸 아주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계속 책을 읽을 수 밖에 없도록 차근 차근 풀어낸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 촘촘함에 감탄하게 됐고, 마지막 실마리를 쫓아가 보게 된 큰 그림은 어느 하나 날아가는 것 없이 꽉 붙잡은 입체적인 서사였다.

⠀⠀⠀⠀

죽음과 삶. 죽은 이에게서 산 자로, 죽은 이에게서 산 자로, 산 자로, 산 자로 ••• 이어지는 과업은 몇 십년이 지나도 이어졌고, 기억하고 기록하고 찾아내고 발견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쩌면 몇 백년, 몇 천년이 지나고도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죽은 이에게서 산 자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계속해서 지상으로 꺼내어지고 또 꺼내어지고 끄집어내져서 ‘지상의 노래’가 된다.

⠀⠀⠀

3_

’선글라스’와 ‘가면’으로 자신을 가리고, ‘성경’을 거울 삼아 자기 내면을 비췄다. 가면은 결국 나의 얼굴이었고, 그것은 나의 경멸이었고, 미처 갈무리하지 못한 나의 모습은 한 곳으로 모여 눈빛에 맺혔고, 그 빛은 결국 선글라스에 가로막혀 한 점의 마음도 내보내지 못했다.

⠀⠀⠀⠀

선글라스를 낀 나는 나 자신조차 알아보지 못한다. 늘 눈 앞이 같은 색으로 물들어 있으니 거울을 볼 필요도 없다.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가려면 눈 앞을 가리고 있는 선글라스를 벗어야한다. ‘선글라스를 쓰고 해 온 일들을 그만두겠다(p.196)’는 마음과 함께.

선글라스를 벗은 뒤 나와 세상을 ‘조금 떨어져 바라보’면 눈 앞에 ‘꽉 막힌 체제가 만들어 낸 인위적인 심각함의 희극성’(p.206)이 보일 것이다.

⠀⠀⠀⠀

선글라스를 벗고 마주 한 자신, 그리고 자기 내면과 마주하기 위해 책 속 인물들은 ‘성경’을 매개로 썼다. 나에겐 그것이 책이었다. 이 책을 보며 난 인물들의 내면 속으로 들어갔고, 그것은 곳 나의 내면을 비춰보는 것과 다름 없었다.

⠀⠀⠀⠀

책을 읽으며 나는 누구(who)든지 될 수 있었고, 그것은 내가 누구(who)인지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