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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필요한 시간 - 다시 시작하려는 이에게, 끝내 내 편이 되어주는 이야기들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한겨레출판 / 2023년 1월
평점 :
#1.
마르크스는 말했다. "지금까지 철학자는 세계를 이리저리 해석해왔을 뿐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p90) 정여울 작가는 이러한 주장을 문학으로 확장한다. 우리는 문학을 통해 일상 속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내 안과 밖의 문제를 발견하고, "날카롭게 둘로 나누어진 세계 사이에서 매개자가 되"어간다(p8). 나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인물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삶의 의지를 얻고, 때로는 치유를 받으며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한다.
"햇살이나 공기처럼 저절로 흡수할 수 있는 세상의 아름다움"과 달리 문학은 "햇살이나 공기처럼 저절로 흡수할 수 있는 세상의 아름다움"이다(p91). 이러한 적극성이 가미된 아름다움의 향유를 통해, 우리는 문학에서 이전과는 다른 삶의 자세를 찾는다. 문학이 삶의 결과를 바꿀 수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결과를 향해 나아가는 마음가짐을 바꿔내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2.
문학은 미래의 위험, 그리고 슬픔을 준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견딜 수 있는 위험'과 '견딜 수 없는 위험'의 경계"를 일깨워주고, "위험이 닥쳐왔을 때, 도저히 공포와 불안을 피해 갈 방법이 없을 때 문학과 함께했던 모든 순간"으로부터 우리는 용기를 얻는다. (pp197-198)
누군가의 슬픔을 이야기하는 작품을 통해 "타인의 슬픔 속으로 한참 여행하고 다시 내 슬픔으로 돌아올 때, 우리는 바로 그 순간 성숙한다. 타인의 고통 속에 푹 빠졌다가 나만이 돌볼 수 있는 내 고통으로 돌아올 때 문득 깨닫는다. 내 아픔은 나만의 것이 아님을. (...) 우리는 각자 다른 곳에서 아주 비슷한 슬픔을 앓고 있다는 사실, 우리는 만나지 못해도 서로 너무 닮은 슬픔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분명 우울을 치유하는 힘이 된다."(p222)
그렇게 우리는 문학을 통해 "애도는 단지 수동적인 슬픔의 표현이 아니라 떠나간 자들이 미처 만들지 못한 세상을 남아 있는 사람들이 마저 완성해 내는 끝없는 혁명의 몸짓"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p26)
#3.
작가는 말한다. 우리는 모두 바이링궐(bilingual, 이중언어구사자)이라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사연을 가진 사람들", 특히나 "지배자의 언어와 피지배자의 언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소수자"의 경우엔 특히나. "온갖 저항의 언어를 마음속에 잔뜩 쌓아놓고도 차마 우리를 괴롭히는 그들 앞에서는 아무 일 없는 듯 '정상적인 언어'를 구사"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사회생활'이기에.
하지만 "문학은 이렇게 마음속에 저항의 언어를 쌓아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이중 언어로 자신을 은폐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제 침묵을 끝장내자고 속삭이는, 내성적인 사람들의 가장 매혹적인 친구다." (pp248-250)
문학은 우리 내면의 언어를 발견하게 한다. "문학을 사랑하는 일은 이 '자기 안의 외계어'를 끝내 지키는 일"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문학을 통해 우리는 사회생활이라는 이유로 내면에 꼭꼭 숨겨왔던 자신의 언어와 마주한다. "이 세상의 언어로는 번역되지 않는, 울퉁불퉁하고 도저히 통제가 안 되는 나만의 외계어"와 말이다. (pp191-192)
이렇듯 문학은 우리가 자신의 언어를 잃지 않도록 끝내 우리의 편이 되어준다. 세상의 갈등 속에서, 나와 세상 사이의 갈등에서, 그리고 내 안의 갈등에서 "모두가 양극단으로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세상에서 매개자가 되고 균형추가 되어주는 존재"(p8), 그것이 바로 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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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된 리뷰입니다.
신화를 살아낸다는 것, 그것은 신화 속 올림포스 신들처럼 멋지고 영웅적으로 살아내는 것만은 아니다. 신화를 살아낸다는 것, 그것은 신화 속 인물들이 받았던 고통의 의미를 되새기며, 나에게 그런 고통이 다가왔을 때 그 고통을 이겨낼 힘을 기르는 일이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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