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 - 언어치료사가 쓴 말하기와 마음 쌓기의 기록
김지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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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은 언어를 바탕으로 소통한다. 이 소통은 단순히 의사를 주고받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소통을 통해 관계를 확장하고 함께 성장한다. 언어생활에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와 마주한다. 관계의 확장과 성장의 과정 속에 거대한 장애물을 마주하는 것이다. 언어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은 "자꾸만 아이가 말을 있는지, 하는지, 일부러 그러는지 아니면 정말 장애가 있는 건지 불안해하며 시험"하는 어른들을 마주하고 결국엔 "대인 상황 자체를 회피"하기에 이르게 된다(pp128-129). "여기서 끝이 아니다. (…) 회피하고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급기야 폭력을 행사하던 아이들은 그 모든 것이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났을 때, 그리고 그 대가로 더 큰 폭력과 거절을 만났을 때 무기력에 빠진다." (pp84-85)

 

#2.

<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를 쓴 김지호 언어치료사는 이러한 어려움에 맞닥뜨린 아이들의 성장을 함께하는 존재다. 그가 설명하는 언어치료는 단순히 가나다 같은 한글과 말하는 법을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파악"(p229)하는 의사결정의 필요성을 일깨워주는 것과 "대면이 늘 곤혹스러운 상황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걸 알려주"(p129)는 것은 물론, "전혀 다른 물리적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p64)는 위로를 전하기도 한다. 언어를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의 성장을 함께 하는 동반자인 셈이다. 언어치료 과정에서 성장하는 것은 아이만이 아니다. 아이의 보호자와 언어치료사도 함께 성장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언어치료가 항상 성공하는 것만은 아니다. 김지호 치료사는 자신이 치료했던 세이라는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남들보다 느린 언어발달로 인해 조급해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주에서 존재보다 중요한 '사건'이래. 우리가 만났던 , 우리가 만나서 함께했던 같은 말이야."(p122) 설령 언어치료가 당초 달성하고자 했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아이가 유창하고 완벽한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더라도, 그 사건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언어치료는 충분히 가치 있는 '사건'이 아닐까.

 

#3.

복지정책의 일부로 시행되고 있는 언어치료 서비스의 최전선에 있는 만큼, 김지호 치료사의 글은 장애와 복지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한계점을 자연스레 담고 있다. 특히 여타의 국내 복지 정책처럼 '차등화'에 기반하고 있는 장애 복지 정책의 특성상, "소득을 따져야 하고 등급을 따져야 한다". 이를 위해 당사자들은 자신의 빈곤과 어려움을 어떻게든 입증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된다. 하지만 더 비참한 것은 "소득에 따른 차등 지원 금액 차이가 겨우 매달 2~8만원"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그 돈을 절약하기 위해 신청자들은 분주하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각종 증명서를 떼어 관공서에 제출해야 하고, 담당 공무원은 누가 어느 등급에 해당하는지를 계산하기 위해 해야 할 다른 일을 미룬다."(p174) 이러한 정책적 한계들 속에서 장애인의 보호자는 남들의 경멸 어린 시선을 감수하면서도 권익의 증진을 외치는 운동가이자 투사로 변해간다. 관공서에 항의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어느 보호자의 모습을 바라보는 작가의 안타까운 마음이 독자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코로나-19 인해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되면서, 입을 보지 못한 언어를 배워야 하다 보니 아이들의 평균적 언어 발달 속도가 늦어졌다는 뉴스를 적이 있다. 이제 이것이 비단 소수의 장애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로 직면하게 것이다. 누군가의 문제, 나와는 관련없는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하며 깊이 파고들어야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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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된 리뷰입니다.

집은 반듯한 명사로 채워졌으며 놀이터에는 땀내 나는 동사가 가득하고 공원에는 바스락거리는 형용사가 숨어 지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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