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일광그룹은 업계 2위다. 똑같이 비자금을 조성했지만 혼자만이 실형을 받은 총수인 남회장은 라이벌 태봉그룹과 같은 힘을 가지기 위해 '문화개척센터'를 만든다. 회장직속의 그룹차원의 조직체계를 만들기 위해 강기준은 업계1위인 태봉그룹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던 박재우를 100억 보너스와 스톡옵션으로 스카웃을 지시받고 회장의 오른팔인 윤성훈과 함께 남회장의 충실한 심복이 되어 사회각계각층의 인사들을 포섭하기에 이른다. 수조원대의 비자금 조성과 막대한 자금을 통한 정계장악은 물론이고 광고를 빌미로 언론을 쥐락펴락하며 올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그 힘을 이용해 사회적 매장을 시켜버리는 정도는 일도 아니다.

 

<한강> 이후 10년을 품어온 경제 민주화의 청사진을 담아 선보였다는 조정래 작가가 신작장편인 <허수아비춤>이다. 67살의 나이 한국근현대사를 모두 보았을 저자의 품에서 탄생한 이 책은 노작가의 우리 사회를 보는 한숨과 걱정 그리고 날카로운 지적이 담겨 있다. 전후 60년  국민소득 2만불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우리나라지만 사회의 전반에 뿌리내리고 있는 불신과 비리 뇌물수수와 돈과 권력으로 이어지는 힘의 논리가 해결되지 않고서야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구나 거침없이 쏟아내는 우리사회의 현주소가 사실적으로 표현되고 설마설마 했던 기업의 부도덕적이고 비양심적인 행태가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드러나 이런 사회에 살고 있는 내 자신이 불안할 정도다.

 

책장을 덮는데 막 화가 난다. 난 이런 세상에 살고 있었구나 하는 마음에 목구멍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올 뻔 했다. 그렇지 않아도 일하는 것과 버는 것 즐겁고 행복한 것과 스트레스 가득한 일상의 괴리감에 지쳐가고 있던 중이라 더욱 치밀어 오르지 않았나 싶다. 읽는 내내 튀어나오던 억(億) 과 조(兆)라는 단어에 기가 죽기도 했지만 평생 어쩌면 들어보기도 힘든 그 금액들이 검은 돈이 되어 우리의 경제 정치 교육까지도 잠식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울화가 치밀지 않을 수 없다. 열심히 사는 것만으로는 역시 안되는 세상인가 싶어 순간 좌절모드에 빠지기도 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어느선에서 부터 이 부조리한 세상을 뜯어 고쳐나가야 하는 것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국민은 나라의 주인인가. 아니다. 노예다. 국가 권력의 노예고, 재벌들의 노예다. 당신들은 이중 노예다. 그런데 당신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것이 당신들의 비극이고, 절망이다. p322

 

대기업들이 국가경제에 일조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모든 일에서 그들이 면죄부를 받아서는 안된다. 모두가 못살던 시절 대한민국의 목표는 단 하나 국민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나라가 부강해지는 것이었다. 70년대부터 시작된 산업혁명은 재벌들의 주머니불리기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끼치는 막대한 경제적 혜택으로 비리와 정경유착등이 눈감아졌었다. 하지만 이제는 21세기 아닌가. 80년대 피를 통한 민주화의 혁명이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경제민주화도 이루어져야 할 때다. 기업은 투명한 운영을 하고 그 이익이 소비자와 사회에 돌아갈 수 있도록 운영되어져야 한다. 정치권에서도 봐주기식이 아니라 기업들의 적극적인 사회적,문화적 기부참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대기업총수가 청부폭력을 행사하고 비자금 조성에 해외로 빼돌리기도 하고 특사라는 명목하에 지은 죄를 탕감받고 황제생활에 복귀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아직 멀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답답하기도 하다.

 

이들을 저지할 수 있는 것은 시민연대다. 운동권출신으로 대기업 비리를 수사해야 한다는 말을 술자리에서 했다 한직으로 좌천 결국 검사직에서 물러나 경제민주화실천연대라는 시민단체에서 변호사로 일하게 되는 전인욱과 신문에 대기업의 비리를 비판하는 신문칼럼을 게재 일광그룹의 눈밖에 나 재임용에서 탈락하며 경제적 위기를 맞게 되는 허민교수가 그들이다. 불의가 점령한 세상이라지만 옳은 소리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단체가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아직까지 우리사회는 희망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소비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이제 우리는 '경제 민주화'를 이룩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그 경제민주화가 바로 모든 재벌들이 그 어떤 불법 행위도 저지르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취해 있었던 그 환상과 몽상과 망상에서 빨리 깨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강력한 무기를 뽑아 들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소비자로서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권한인 '불매' 다.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경제 범죄를 저지른 기업의 상품을 사지 않는 '불매운동'을 적극 벌이는 것이다. 그 막강한 소비자의 힘에 대항할 기업을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없다.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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