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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붓다
한승원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0년 10월
평점 :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을 두개의 축으로 소개한다. 하나는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한국청년과 베트남 여자사이에서 낳은 아이가 성장, 다시 한국남자와 혼인을 해서 태어난 아들 상호의 이야기와 존경받던 직교장이었지만 퇴임 후 독거노인들의 벗이 되어주고 남들이 다 꺼리는 염꾼 노릇을 하며 사는 할아버지의 이야기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참으로 안 어울릴듯 하면서도 묘하게 이어지는 힘을 가지고 있다. '고향에 빚을 갚는 심사로 이 소설을 썼다는 노년의 작가는 이 작품을 위해 직접 삼각함수를 이용 바위의 높이를 실측하기도 하고 광주지방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쓰는 은어를 수집하기도 하였다니 참으로 많은 것을 조사하고 준비한 듯 싶다.
늘 놀림을 받는 혼혈아이지만 담순이(여자담임선생님)이 sky반에 넣어 명문대에 입학시키고자 할 정도의 월등한 성적을 내는 상호다. 하지만 상호는 기본 어른들의 가치관에 대항하며 수능시험보기를 거부한다. 이때 큰 힘이 되어 주시는 분이 바로 할아버지다. 교육자이었기에 더욱 고지식하고 완고하며 정해진 길 이외에는 모를 것 같을 분인데 늘상 상호에게는 큰 버팀목이고 응원군이다. 할아버지는 상호에게 억불산에 있는 억불바위처럼 아무말도 없지만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듬직하고 믿음직스럽게 존재하기에 학교라는 조그만 사회에서도 무시받고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헤쳐나가고 이겨나갈 것 같은 용기와 희망의 끈이 되어주신다. 소설 속의 억불바위는 상호에게 할아버지인 듯 세상에 큰 바위얼굴로 묘사된다.
시골길이 보이고 너른 들판도 보이고 뒤로 산도 보인다. 토속적 냄새가 듬뿍 담겨 있는 문체와 저절로 그려지는 풍광은 오랜만에 가슴속에 따스함을 선사한다. 어쩌면 열기가득한 아스팔트 도로들과 벽돌과 시멘트로 지어져 어느곳에서도 사람냄새를 찾아볼 길 없는 빌딩들과 아파트의 숲 속에서 바쁘게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요란스럽지 않고 조용하며 여유만이 그득한 할아버지와 상호의 일상은 색다름인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서서히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가운데에서도 다른 이들을 먼저 보살피고 분명 돈이 되는 일이 아닐진데 땀을 뻘뻘 흘리며 염을 하는 할아버지의 일상속에서도, 주변사람들과의 대화속에서도 오랜시간 몸에 배어버린 삶의 철학을 느낄수 있고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옳곧은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이 찡하게 다가온다.
"하늘의 별은 그냥 별이 아니고, 내 눈빛이 별빛을 만드네. 우리들이 살아가는 것은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세상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으로 창조해 가는 것이야..
세상의 모든 것들을 감싸안으려 했던 할아버지와는 다르게 몸안에 무언가 솟구쳐 오르는 것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젊은 혈기 상호는 억불산에 있는 억불바위에 오르고자 한다. 언젠가 부터 억불바위는 그를 향해 잘 될거야 라고 말하며 희망을 주고 그런 억불을 탐색하기 위해 몸을 만들기 위한 역기를 들고 운동을 하고 등산장비를 구비한다. 친구들이 수능을 보는 날 안교장의 든든한 믿음을 뒤로 한채 드디어 상호는 억불산에 오른다. 물론 다른 사람의 도움이 좀 있기는 했지만 줄자와 각도기를 이용해 길이를 재고 삼각함수를 이용해 높이를 잰다. 1미터 30센티의 오차가 나기는 했지만.... 그 때 상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물론 저자도 언급을 했지만 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던 미국 소설사 나다니엘 호손의 <큰 바위얼굴>을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억불은 "피플 붓다"이고 인민을 구제하는 부처라는 말... 우리의 토속신앙속에 있는 따스함과 인자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소설이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