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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출퇴근 시간의 버스안은 참 한산하다. 아주 혼잡한 시간을 피해 출근하는 덕에 이 시간만큼은 느긋이 자리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온전한 나의 시간이다. 처음에는 흔들리는 버스속에서 어떻게 책을 읽지 하며 어지러워도 하고 속 메스꺼워 하기도 했는데 이것도 익숙해지니 행복한 시간으로 변해 버렸다. 집을 나오면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책을 집어 들어 가방에 넣었는데 자리를 잡고 꺼내니 바로 덕혜옹주다.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있는 듯 하지만 그래도 생소한 이 아리따워보이지만 슬픈 눈망울을 보이는 처자가 덕혜옹주구나 표지를 보며 순간 가슴이 짠해진다. 표지만으로도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책을 펼치지 않아도 이 책이 슬프다는 것을 알겠다.
"비참하게 버려진 조선 마지막 황녀의 비극적 삶을 기억하라!"
왜 이렇게 우리나라는 비운의 사람들이 많은 걸까. 나라를 잃었던 것도 서러운데 그 서러움이 사람에게까지 이어진다. 민초들의 고생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겠지만 황실도 예외는 아니었다. 명성황후가 시해를 당하고 국권을 되찾고자 노력했던 고종의 어이없는 양위 그리고 이어진 독살로 의심되는 죽음뿐만이 아니라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가 일본인과 결혼을 해야 했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그리고 고종이 그리 예뻐해서 궁안에 즉조당이란 유치원까지 만들며 곁에 두고자 했던 막내딸 비운의 덕혜옹주가 있다.
정치니 세계의 흐름이니 황족이니 따위와는 아무 상관도 없이 그저 딸로서 아버지인 고종을 좋아하고 재롱을 떨던 덕혜옹주가 어린나이에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고 받은 충격은 어떤 것이었을까. 커피를 즐겨하던 고종이 독살되었으리란 생각에 마실 물을 물병 가득이 들고 다녔다는 대목에서 가슴이 아파온다. 자신의 죄라면 대한민국의 마지막 황녀로 태어났던 것이라 말했던 그녀가 볼모로 일본으로 가 생활해야 했던 37년 간의 세월은 온통 망국의 한이었을 것이고 일본의 지독한 감시에 두려움과 처참함의 계속이었을 것이다. 계획된 치욕스러웠던 일본남자와의 강제결혼 그리고 그녀와 똑같은 어린시절을 보내면서 정혜와 마사에라는 괴리감 사이에서 힘겨워 하던 하나뿐인 딸아이의 엄마에 대한 불만과 외면은 큰 상처로 다가왔을 것이고 정신병동에서의 비참했던 삶속 살았을 그녀를 조국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었다는 것에 얼굴이 화끈거려온다.
열세살 지금이라면 아빠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사랑을 듬뿍 받아야 할 나이, 그녀는 너무 어린 나이에 세상의 풍파를 맞았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을 지켜낼수가 없었다. 덕혜의 삶은 철저히 파괴되었으며 스스로 자신을 안으로 가두어 그 총기있던 아이가 그 따스함을 가지고 있었던 아이가 그 사랑스럽던 아이가 점점 메말라갔고 어두워져 갔으며 모든 것을 포기하며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그녀는 미치고 싶었는지도 아니 미칠 수 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에 눈물이 난다. 버스 차창을 바라보지만 그래도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다. 그 무엇도 할 수도 해볼 수도 없이 무력하게 타인에 의해서 망가져 가는 삶을 지니고 있었던 이 여인에게 도대체 누가 보상을 하고 누가 사죄를 할 것이란 말인가.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덕혜옹주가 저 세상을 가서나마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것에 대해 너무나도 소홀하고 안일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 본다. 역사가 부끄럽건 자랑스럽건 우리의 조상이며 과거이고 그 토대위에서 대한민국은 일어섰으며 현재가 존재한다. 미래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뿌듯함을 배가 시킬 수 있는 대단한 조상들의 업적을 기리고 같은 실수와 치욕스러운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삼도있게 과거를 연구해 봐야 하지 않을까. 정치적 희생양이 되었던 우리의 황실에 대해서도 좀더 철저한 고증과 역사적 관심이 필요랗 듯하다. 에고 너무 울어서 눈이 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