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추태후
신용우 지음 / 산수야 / 200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시 우리나라 사극은 짱이야. 1회의 천추태후 드라마를 보고 생각한 것이다. 스케일하며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 하며 우리에게 길고 긴 5000년의 역사가 없었다면 아슬아슬 했고 힘있게 뻗어 나가기 위해 때론 주변국들의 압박에 살아남기 위해 몸무림 쳤던 역사의 굴곡이 없었다면 지금 TV 제작국들은 무엇을 주제로 드라마를 만들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여인들의 궁중 암투에서 시작된 사극의 열기가 의술의 허준과 대장금으로 이어지더니 태왕사신기와 주몽을 통해서 단군과 고구려로 2008년도에는 조선의 임금들이 인기를 끌더니 이제는 고려다. 

 

천추태후는 드라마로 만들기 전부터 요란했다. 채시라와 이덕화 최재성 김석훈 등 그 캐스팅부터 화려했고 예고편 한번 뻑쩍지근하게 했으니 관심을 안가질래야 안가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정작 천추태후가 누구냐 하고 물어 보면 모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조선시대만 해도 500년 역사라 하지만 현재와 가까워서였을까 기억하고 있는 사실이나 인물들이 많은 편이라 생각했는데 고려라 하니 왕건이외에는 생각나는 인물이 없다. 이런 씁쓸한 일이 있나.

 

천추태후  헌애왕후 [獻哀王后, 964~1029]



고려 경종의 비. 태조의 아들 대종(戴宗:추존왕)의 딸. 목종의 어머니. 헌정왕후와 친자매로 함께 경종을 받들었다. 외척인 김치양과 음탕한 생활을 공공연히 하며, 그 사이의 아들을 목종의 후계자로 삼기 위해 왕실의 유일한 후계자 대량원군 순(詢:헌정왕후의 소생으로 뒤에 현종)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실패, 유배되었다. <네이버 백과 사전 중에서 퍼옴>

 

예나 지금이나 여인으로서 천하를 호령하는 일은 쉽지 않다. 게다 남녀차별이 유별스럽게 심했던 과거로 거슬러 오르자면 천추태후라 불리는 이 여인이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몸 뿐만 아니라 천하를 호령하려 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했던가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지고? 여자들을 비하하는 옛말에 비추어 보면 어쩌면 야심이 많았던 정치가로서의 천추태후를 역사는 권력을 등에 업고 정인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난 아이를 왕위에 오르게 하기 위해 대의를 그르친 요부로 표현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뼈속까지 유교적 학문에 젖어 있던 조선 사대부들에 의해 쓰여진 고려사에 단 몇줄로 표현되어 있기에 그 진위를 알 수는 없으나 다만 고구려의 땅을 회복하기 위한 열정에 넘치던 그녀를 재 조명하기 위해 등장한 소설과 드라마로 재미만이 아닌 역사 바로 알기가 되었음 할 뿐이다.

 

넘치는 패기와 현명한 판단으로 인한 처신 그리고 남자를 능가했던 무예가 그녀를 대표하는 단어다. 그녀의 미모가 얼마나 출중했는가 하는 것은 알 수 없지만 용기있고 비범했음은 분명하지 않은가 싶다. 아직은 호족들의 눈치를 봐야 하고 왕권강화를 위해 근친혼을 마다하지 않았던 고려의 내부적 상황이나 남북으로 거세게 영토확장을 시도하고 고려를 압박하고 있던 오랑캐들의 세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단신으로 요나라에 입국 거란의 성종을 만나 오누이 관계를 맺을 정도의 외교적 친화력과 대범함을 가지고 있고 서희나 김치양을 쥐락펴락함으로써 외교와 정권의 중심에 서 있었다는 것을 소설은 보여준다.

 

고구려 고려로 이어지던 북벌의 야심은 조선 효종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천추의 한을 풉시다. 고려의 헌애왕태후였던 천추태후가 천년을 두고서라도 풀어야 한다고 했던 북벌의 꿈을 이루자는 것이요. 선대왕 전하의 삼전도 굴욕을 풀고, 형님이신 소현세자의 꿈이었던 북벌을 이루지 못하면 내가 천추의 한을 품고 저승으로 갈 거 같소"
효종의 함분축원 [含憤蓄怨]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역사소설을 소설로 볼 것이야 아니면 역사로 볼 것이냐를 생각하니 천추태후를 읽으며 그녀가 바라보는 작금의 모습을 어떤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녀가  천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불륜으로 인해 타어난 아들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절취부심했던 모습에 관심을 두기 보다는 그녀의 꿈 고려의 꿈 바로 태조 왕건이 말을 달렸음직한 저 큰 대륙을 호령하던 기상을 상기시켜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유일하게 태후의 칭호가 허락된 왕후 『천추태후』를 만나 보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