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책
클라이브 바커 지음, 정탄 옮김 / 끌림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개인적으로는 공포영화를 즐겨 보지 않는다. 피가 난무하고 공포스럽고 괴기스럽기만 한 영화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오싹거림을 뒤로 하고 속을 메스껍게 할 정도의 역겨움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기에 유명했던 영화들 몇 편을 제외하고는 기억속에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반면에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긴 하지만 공포나 스릴러 소설은 즐겨 읽는 편이다. 상상으로만 이어지는 장면들은 영상과 효과음을 통해 머리속을 어지럽히던 공포에서 벗어나 나름 적당히 수위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2008, The Midnight Meat Train) 이란 영화를 통해 먼저 알게 된  피의 책클라이브 바커가 지은 9편의 단편이 모여있는 공포물이다. 예고편을 보면서 여름이고 공포물이 대세를 이룰 때고  그저 그런 영화가 또 하나 나왔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흥미를 끌 요소가 보이기도 했지만  "한밤중의 열차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살인 뭐 이 정도면 대충 줄거리가 나오는 군"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영화보다는 그 강도가 덜하리란 생각으로 집어 든 책이 한밤 중 다시 한번 창문잠김을 확인하고 불을 키고 눈을 동그랗게 뜨게 만들도록 나를 조정할 줄은 몰랐다. 책을 읽다 상상속의 역겨움이 책을 덮기를 수차례 그러면서도 다시 책을 들어 눈동자를 굴리는 일을 반복하게 만드는 마력이 피의 책 안에 있었다. 90%의 공포가 10%의 반전으로 마치 톰 크루즈 주연의 <<우주전쟁>>의 마지막 피날레를 보며 허탈하고 씁쓸해 하던 그 기분을 들게 한다. 영화가 보고싶어지는 이유는 피 튀김을 강조한 잔혹함 보다는 반전처리를 어떻게 했을까 하는 궁금함이었다.  

 

좀비나 살인마 등을 말하기에는 상상력 한번 기발하다. 신체를 절단하거나 가득히 느껴지는 피의 냄새,냉혹함과 잔인함으로 이어지는 살육, 관음증적 성향까지  너무나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표현하는 당연한 공포의 정석이다. 하지만  클라이브 바커의 소설은 무언가 좀 다르다. 피그 블로드 블루스 를 읽다보면 메슥거리는 속을 다스리기가 힘들다. 돼지가 인육을 먹는다.   사람들의 피와 살로 만들어진 거인 이야기인 언덕에 두도시 또한 믹과 저드의 철저히 다른 선택에 갈라지는 두 사람의 미래가 오싹해 진다. 현란한 수식어로 묘사가 되지 않았음에도 할 수 있는 현장에 대한 상상은 공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기묘한 짜릿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나처럼 비위가 약한 사람은 그 소름끼침에 딴 생각을 잠시 해야만 한다. 이 세상이 무섭고  더럽게 느껴져 아름답고 신성한 인간의 몸과 마음이 통채로 유린당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영국 판타지 문학상>, <세계 판타지 문학상> 수상자이며 <캔디맨>의 영화감독자라는 것을 보니 이 작가 참 유명하다. 잔혹한 이야기를 충격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힘이 탁월하다. 공포영화나 소설을 좋아하는가. 그럼 새로운 시각을 피의 책 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영화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에서 느꼈던 치밀한 공포가 9편의 단편 전체에 흐르고 있다고 한다면 구미가 당길 것이다. 이 여름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밤 한번 그 공포를 확인해 보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