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고래
김형경 지음 / 창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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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이란 작가를 만나게 된 것은 천 개의 공감 통해서였다. 방황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여행을 떠나던 내게 친구가 슬며시 배낭 안으로 넣어준 그녀의 심리 치유 에세이는 짧은 여행기간 동안 내 마음을 다스리는 데 참 많은 도움을 주었다. 고집스럽고 스스로를 잘 다스리지 못해 사람들 사이에서 어울리는 법에 익숙치 못하던 나 자신을 인정하기와 사회와 악수하기를 권해주어 편안한 마음으로 일상으로의 복귀가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던거 같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 석자 김형경이란 작가는 그렇게 다가왔었다.

 

아이들은 그냥 자라는 줄 알았다. 너무나 쉽게 잊어버린 사춘기의 방황과 고민은 어른이 되어 이젠 이해할 수 없는 청춘들의 치기와 반항으로 다가왔었다. 성장소설을 즐겨읽게 된 것은 기억 어딘가에 묻혀져 있던 그 시절에 대한 아련한 향수가 기지개를 피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돌아갈 수 없는 그리움도 담겨 있었고 나 자랄 때와 너무나도 다른 당당한 그네들이 부러워 질투가 나기도 했었다. 세상에 항거하는 패기가 가득찬 가슴 설레는 흥분된 만남이 성장 소설속에는 있었다. 그런데 꽃피는 고래는 다르다. 시작부터 머리속을 복잡하게 만들더니 자꾸만 가슴을 아리게 한다.

 

"고래가 작살을 맞으면 쉽게 죽지 않고 도망치면서 물속에 숨었다 숨쉬러 나왔다 하거든 . 그러면서 두 시간, 세 시간씩 고래배를 끌고 다니다. 그러다가 고래가 지치면 배를 고래 가까이 붙이고 정확하게 급소에 작살을 쫒는다. 급소를 맞은 고래는 죽기 전에 마지막 숨을 내뿜는데, 그 숨에는 피가 뿜어져 나온다. 핏빛 물뿜기가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온 바다 가득 퍼진다. 그걸  꽃핀다 한다." p103

 

니은이는 교통사고로 한순간에 부모님을 잃게 된다. 모든 것이 순간 변해 버린다. 견딜 수 없던 니은이는 아빠와 할아버지의 고향인 처용포 마을로 가지만 모든 것이 무기력하게 느껴질 뿐이다.

처용포란 공간이, 고래잡이 이야기가 내게는 낯설기만 했다. 열 일곱 살의 니은이가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있는 모습이 또한 그렇다. 세상을 향한 방향키를 잃어버리고 헤메이는 모습이 안쓰럽기는 하지만 제 나이보다 성숙한 듯한  말투와 생각이 그리고 세상에 무관심한 듯한  태도가 익숙하지가 않았다. 울어야 한다. 방황해야 한다. 터져나가는 억울함에 소리질러야 한다. 그게 열 일곱살 아이의 모습인거다. 하지만 니은이는 평범한 삶에 찾아온 치명적인 상처로 인해 조용히 그러나 빨리 어른이 되려고 한다. 

니은이는 엄마 아빠가 없는 세상에서 혼자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담배를 피고 술을 먹는 친구들과 어울려 본 것도 그런 이유에서 였다.

 

평생 고래잡이로 살았고 그 삶을 그 시간을 그리워하며 고래배를 손질하고 배를 띄울 날을 기다린 장포수 할아버지와 열 다섯에 시집와 일찍 어른이 되어 버린 왕고래집 할머니가 상실감에 젖어 있는 니은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지도 애써 보여주려 하지도 않는다. 담담한 듯 일상을 함께 하지만  따뜻하고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이 알 수 있다. 할아버지의 고래배의 물품을 정리하면서 할머니의 한글 공부를 도와드리며 아빠 엄마를 떠나보내며 뻥 뚫렸던 가슴 한 구석이 메워지는 것을 느낀다. 그분들이 살아오신 굴곡많은 삶을 통해 인생을 배워가는 것이다. 사촌언니의 전시회를 들리면서 사게된 경매품인 한달간의 받게 된 매일 한 통의 문자를 통해 슬픔을 위로받고 홀로 남겨졌다는 외로움을 조금씩 퇴색되어 감을 느끼고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행복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고래축제 전날 장포수 할아버지가 고래배와 함께 사라진다. 니은이는 섭섭했던 마음을 접고 할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처용포에서의 생활은 니은이를 성숙하게 만들었다. 슬픔과 외로움을 이기고 원망을 버리며 어른이 되어가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왠지 고래가 있는 바다로 여행을 떠나고 픈 마음을 들게 한 독특한 소설이었다. 수채화마냥 잔잔한 내용에 가슴에 따뜻함이 퍼져간다.

멀리 바다를 보고 있을 니은이가 멋있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상상을 하며 흐믓한 미소를 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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