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의 사나이
김성종 지음 / 뿔(웅진)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여명의 눈동자.. 지금도 기억이 나는 드라마이다. 어린시절 최대치역의 최재성과 여옥역의 채시라의 연기속에 나는 웃고 울었다. 마음이 아팠고 기구한 운명과 역사의 진흙탕속에서 희생양이 되어야 했던 그들이 안타까웠다. 그렇듯 내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는 드라마이다. 그 여명의 드라마의 작가인 김성종의 추리소설이다.

 

범인은 이미 설정되어 있다. 왠만한 추리소설 속에 나오는 추리는 이 소설속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긴박감도 없고 머리를 짜 내야 하는 범인 추적하기도 없다. 그런데도 책을 잡는 순간부터 놓은 순간까지 안개의 사나이와 함께 하고 있다. 안개의 사나이 왠지 베일에 가려있을 듯한 제목인데 모든 것을 이미 다 알고 있는 나는 범인과 동거동락을 하며  수사진의 포위망을 빠져 나가지 못함에도 여유를 부리고 있다.  유명정치인을  안개속에서 살인하고, 자신의 존재가 너무 쉽게 드러나는 줄도 모르는 살인청부업자인 나의 고백으로 이루어지는 사건의 전개와 그 이후의 행적들은 수사노트 1,2..라는 형식을 띤 형사들의 추적과정이 함께 교차된 나열로 독특함을 보여준다. 쫓기는 자나 쫓는 자나 너무나 담담하고 건조하다. 전문적 교육을 받은 청부업자라고 하기에는 뭔가 어색하다. 곳곳에 많은 허점이 보인다. 휴대전화에 대한 살인자의 엉성한 처리나 피가 묻은 점퍼를 트렁크 속에 넣어 국내와 국외를 움직이던 것까지 독자가 발견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의도가 숨어있는 것일까? 살인용의자의 흔적을 따라 좁혀져 가는 수사망이 조금은 싱겁다.  살인이라는 끔직함을 쉽게 행하는 범인에게서 사람의 냄새를 풍기게 하고 싶었던 걸까? 한 여자를 걱정하고 좋아하며 길거리의 유기견에게 관심을 보이는 등 냉철한 모습의 살인자에게서 피 냄새 이외의 것을 느끼게 된다.

 

살인자와 수사관의 관점이 서로 오버랩되며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연상시킨다. 스스로의 감정마저도 짙은 안개속에 싸여 있는 범인의 독백은 1인칭시점으로서의 역활을 톡톡히 하며 킬러로서의 외로움과 세상에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내 뱉고 싶은 응어리를 보여준다. 아가사크리스티의 숨죽인 추리나 홈즈의 따뜻한 마음에 날카로운 눈매를 예상하지 마라.  하지만 한장한장 넘겨지는 책장속에 살인자의 고독함이 숨어 있고 형사들의 발빠른 수사전개가 담겨있다.  안개때문에 완전범죄를 하지 못하고 안개때문에 목숨을 건졌으며 안개 때문에 살이범으로 잡히게 되는 연결 고리들이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맛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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