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dnight
만일 내게 잠에 들 수 있는 축복이 주어져 꿈을 꿀 수 있게 된다면 나는 그녀에 대한 걱정으로 뒤척이다 잠에 드는 밤이면 이런 날의 꿈을 꾸었을 것이다. 인간이 안식을 찾는 무의식의 세계는 달콤한 한숨을 불어넣어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잔인하기도 하니. 이것은 그녀를 만나는 순간부터 늘 그녀에게 선택권을 주기 위해 준비해왔다고 생각한 나의 준비된 갈림길 중의 한 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 이 순간, 그녀를 위해 늘 준비해 오면서도 원하지 않았던 이중적인 마음에도 끝이 찾아왔다. 나는 묵묵히 앞서 걸으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내 손에는 여전히 그녀의 손이 쥐어져 있었다. 걷고 있는 나는 마지막일 그 부드럽고 따듯한 감촉을 마지막으로, 그리고 영원히 기억해두기 위해 신경이 모두 손에 가 몰려있었다. 그녀는 내 곁에서 혼란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내가 말을 꺼내기만 기다리며 나를 따라 걷고 있었다. 벨라의 손을 부드럽게 다시 잡은 순간 나는 숲으로 들어온 우리가 그녀의 집에서 꽤 되는 거리에 도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와 마지막으로 대화하기 위해서 조용한 숲을 택했지만 너무 멀리 가는 것은 그녀에게 좋지 않았다. 숲에는 맑은 공기 외에 모든 생명체가 그녀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심지어 길에 놓여있을 하찮은 돌부리마저도 그녀에겐 위험했다. 나는 한숨을 쉬며 그녀의 손을 놓았다. 벨라의 손이 내 손아귀에서 빠져 나가는 그 찰나의 순간에도 나는 미칠 듯이 아쉬움을 느껴야만 했다. 이런 주제에 그녀를 떠나야한다 가족들에게 당당히 말한 멍청이. 머릿속에서 이기심으로 가득 찬 또 다른 내가 속삭였다. 나는 그녀의 손을 놓고 조용히 나무에 가서 기대어 섰다.
너는 후회할거다.
한 번 내린 결심임에도 머릿속에 존재하는 이기심은 조심스레 내 머릿속을 장악하려는 몸부림을 시작하며 강한 충동으로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충분히 고뇌했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안의 이기심이 나를 충동질하게 놓아두고 있었다. 어쩌면 흔들리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그녀에게 말 하지 마 얼간이! 나는 이기심의 충동질에 넘어가 그녀에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침묵을 견디지 못한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좋아, 우리 얘기 좀 해.”
그녀의 목소리에는 내가 무엇인지 알아챌 수 없는 단호함이 실려 있었다. 그녀가 속으로 무엇을 결정 내린 건지 의아해졌지만 지금 내게는 그보다 그녀에게 해야 할 말이 있었다. 나는 입을 열기 전 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 나서 바로 후회했다. 그녀의 달콤한 향기는 내가 냉철하게 말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들이 마신 숨을 한숨처럼 내쉬며 입을 열었다.
“벨라, 우린 떠날 거야.”
“왜 지금 떠나? 1년만 더 있으면........”
벨라는 의외로 담담한 모습을 보여 나를 놀라게 했다. 그녀의 모습을 보며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새로운 실망감이 치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내가 예상했던 반응들을 보이는 대신에 그저, 의아해보였다. 그리고 나는 곧이어 나를 실망하게 만든 그녀의 알 수 없는 담담함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안타까워졌다. 그녀는 오해하고 있었다. 내가 떠나는 계획에 그녀도 포함되어있는 것으로.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벨라가 확인하듯 물음을 던졌다. 안쓰러운 그녀에게 나는 그녀를 끌어안고 싶은 충동을 참는 대신 차가움을 가장한 채 응수했다. 그러다 내 결심을 크게 깨는 말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벨라는 나와 함께 가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서 아직도 맴도는 이기심이 승리했다는 듯이 웃어댔다. 나는 이기심을 밀쳐낼 수가 없었다. 내가 그녀의 말에 고통스러워하는 동시에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나도 확실히 느끼고 있었으니.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나를 따라오는 순간 그녀가 포기해야 하는 것들과 그녀가 얼마나 위험해질지에 대해서. 나는 담담한 표정을 유지한 채로 그녀에게 설명하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동시에 내 모습이 우스워지기 시작했다. 이기심이 그런 나를 비웃어댔다.
담담하게 이별을 고하는 연인이라니, 지금 네가 얼마나 우스운 짓을 하고 있는 줄 알기나 해?
네가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천만에, 에드워드 컬렌! 그녀는 널 원해. 그녀의 표정을 봐. 네가 상처 입히고 있잖아.
이런 식의 넌 네가 그녀를 가지고 놀았다고 하는 것 밖에 되지 않아.
그녀는 이제 자신이 모두 내 것이라고 애절하게 소리치고 있었다. 그녀의 진심이 담긴 외침에 답해 줄 수 없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동시에 느껴지는 것은 그녀의 고백을 더 듣고 싶어 하는 이기적인 자신.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최대한 잔인한 울림을 이끌어냈다.
“벨라, 나는 너랑 같이 가기 싫다.”
그녀는 나에게 한 대 세차게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내게 계속 항변하려는 듯이 벌어져있던 그녀의 입술이 천천히 맞물렸다. 안타깝게 수그러드는, 그마저도 사랑스러운 입술. 나는 담담함을 가장한 고통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중적인 나 자신은 말하면서도 혹시나 그녀가 내 눈빛에서 진심을 읽어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널 사랑해. 내 속에서 그녀를 뜨겁게 원하는 내 진심이 절규했다. 그 무엇과 바꿀 수도 없을 만큼 너는 내게 소중한 존재야. 벨라, 내 생명. 제발, 아무것도 믿지 마. 넌 내 진심을 알고 있잖아. 지금 이 순간 가장 원하는 건 널 내 품에 끌어안아 네 안타깝게 떨리는 입술을 덮고 달콤한 숨결을 들이 마시는 거라는 걸 모르겠어. 절망적이게도 그녀는 내 거짓말에 완벽하게 속아주고 있었다. 그녀에게 내 가증스러운 입술이 속삭이는 거짓말에 대한 의심의 여지는 없어보였다. 그녀는 완벽하게 믿고, 철저히 절망하고 있었다. 다른 여지는 생각해 보지도 않은 채.
“내가....... 싫다고?”
“그래.”
절망스러워진 나는 그녀의 말을 인정함으로써 나의 가장 신성한 부분을 모독했다. 그녀는 충격을 받은 듯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갈피를 잃은 듯 보였다. 그리고 이내 내게 매달리듯 속삭였다. 그녀가 충격과 절망에 사로잡혀 자신만의 추측을 더해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나는 그녀가 이렇게 안타까운 표정을 짓게 만드는, 그녀의 머릿속에 있을 절망적인 추측 중에 내 진심과 맞을 사실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맹세 할 수도 있었다. 나는 마지막이라고 나를 달래며 입을 떼었다.
“너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벨라.”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그녀의 입술의 떨림이 멈추었다. 제발 믿지 마 벨라. 내 속에서는 간절하게 그녀에게 외치고 있었다. 그녀가 내 말을 믿고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그게........ 진정으로 네가 원하는 거라면.”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 낼 것 같은 그녀의 얼굴은 길을 잃은 어린아이 같았다. 그 긍정을 시작으로 그녀가 내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녀와 나의 사이 거리는 팔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지만 다가갈 수는 없었다. 나는 그녀가 내 손에서 벗어난 느낌이 들자 다시 불안감이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기심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느낀 듯 미친 듯이 나를 충동질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너무 연약해! 지난날 내가 그녀에게 닥쳐올까 걱정했던 위험의 경우들이 한 번에 나를 덮쳐오는 것 같았다. 그대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갈 곳을 잃은 아이처럼 나를 흐려진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었다. 벨라가 내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서는 안됐지만 나는 이미 입을 열어버렸다.
“그래도 된다면 말인데, 한 가지 약속해줬으면 하는 게 있어.”
내 말을 들은 그녀의 얼굴에 미약한 기대감이 어리는 것을 보고 있는 나는 정말 나쁜 놈이었다. 내 입에서 흘러나올 말을 기다리며 서있는 여린 그녀를 보는 순간 절제라는 이름의 가면이 날아 가버리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어리석은 짓, 무모한 짓은 절대로 하지 마. 내말 알아듣겠어?”
나는 내 속에서 나를 태울 듯이 끓어오르는 감정이 내 얼굴에 들어났으리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떠나겠다는 말을 해놓고 이런 걱정을 들어내는 것조차 명백한 실수였지만 나는 나 때문에 무모해지지 않겠다는 그녀의 다짐이 없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녀를 떠나겠다고 해놓고 걱정 어린 감정을 이기지 못해 그녀 곁을 맴도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나는 진심을 들어 낸 내 실수를 합리화시켰다. 그녀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일시적 안도감이 살아나면서 나는 다시 가면을 뒤집어썼다. 그 덕에 초연한 척 찰리 때문이라고 둘러댈 수 있었다. 그녀가 없더라도 딴 데 정신을 팔기 쉬울 거라는, 나 스스로를 모욕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짓들을 모두 뱉어내고 나자 그녀를 사랑한다고 외쳐대는 진심만이 더욱 견고히 자리 잡았다. 내가 만들어낸 거짓들은 그녀를 상처 입힐 것이다. 더 머무를 수가 없었다. 내가 그녀를 끌어안고 모두 거짓이었다고 외치기 전에 떠나야만 했다. 나는 나직이 속삭였다.
“잘 있어, 벨라.”
“기다려!”
나는 나를 잡으려는 듯 손을 뻗는 그녀의 양 손을 붙잡아 내렸다. 그녀가 나를 잡는 순간 나는 연기를 계속 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괴롭게도.
어쩌면 내 인내심의 바닥에도 이 정도는 허용될지도 모르지.
망설이던 나는 그녀의 이마에 짧게 입 맞추었다. 그 잠시일 뿐인 순간마저도 풍겨오는 달콤한 향기.
“조심해. 너 자신을 지켜야 해.”
나는 몸을 돌려 온전히 그녀에게서 멀어 섰다. 그녀가 감은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아 그 시선이 나를 붙잡기 전에 나는 그녀의 앞에서 도망쳤다. 나는 내 이기심과 싸워서 이겨내 그녀를 떠났지만 결국 패배자였다. 그리고 난 앞으로도 절대 승자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가 없는 한. 한 번에 모든 것이 끝났다. 내 거짓말은 훌륭했다. 아무리 까다로운 평론가라도 결코 나의 거짓말에 형편없는 점수를 주진 못할 것이다. 오늘을 위해 만들어진 가면은 그녀를 완벽하게 상처 입혔으니. 차 앞에 도착해 문을 열던 나는 문득 멈춰 섰다. 나는 그녀에게서 내 흔적들을 지워야했다. 정말 유치한 짓이었지만 나는 창문을 통해 그녀의 방에 들어서서 맨 먼저 CD플레이어로 걸어가 CD를 꺼냈다. 그리고 내가 그녀에게 주었던 나의 모든 흔적들을 모두 집어 들었다. 나는 고통스러운 심정으로 그것들을 바라보며 망설였다. 모두 가져갈 생각으로 들어왔지만 그것들을 들고 있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레 바닥을 뜯어냈다. 그리고 그 안에 모두 밀어 넣으며 내 행동을 합리화시키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상처를 추스를 시간 동안 내 흔적에 괴로워하지 않도록 시간을 두는 것이다. 버려져도 그녀의 손이어야만 했다. 그녀에게 새 연인이 생긴다면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내 흔적들을 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내게 상상만 해도 고통스러웠지만. 내 머릿속 다른 한 부분이 그런 나를 비웃었다.
한심하긴.
나는 창문을 통해 그녀와 함께 걸어 들어갔던 숲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적어도 내가 있는 동안은 돌아오지 않는 것이 나았지만 그녀가 내가 떠났음에도 그 숲에 남아있을 이유는 없었다. 나는 충격을 받은 그녀가 숲을 헤매고 다니는 영상이 머릿속에 스쳐갔다. 나는 잠시 동안 그녀에게 다시 돌아가 그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떠나는 것을 생각해보았지만 그것은 그녀를 다시 보고 싶은 내 열망에서 나온 터무니없는 억지에 불과했다. 다시 그녀를 볼 수는 없어. 나는 그녀를 데리러 숲으로 돌아가는 생각을 버리는 대신에 종이를 집어 들었다. 그녀의 가늘고 섬세한 필체는 머릿속에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집을 벗어나 열려있는 차문으로 뛰어들었다. 그녀를 벗어나 계속해서 달리던 나는 문득 차를 세웠다. 나는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언제나의 걸음처럼. 자조적인 웃음이 새어나왔다. 시동을 걸고 방향을 돌렸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으로 돌아갈 이유는 없었다. 그곳은 이제 보금자리가 아니었다. 내가 그녀의 곁이 아닌, 다른 갈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무작정 떠돌 것이다. 방금 산산 조각이 나 사방으로 흩뿌려진 내 마음의 조각을 추스르기 위해서. 혼란스러워 하던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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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일은 나 때문에 일찍 돌아와 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는 아침에 나갈 때 입었던 외출복을 그대로 입고 있는 채였다. 가족들은 모두 나를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에밋을 뒤에 세워둔 로잘리만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굳이 모두를 앉혀놓을 필요는 없었다. 앉아서 긴 시간을 이야기 할 만큼 오래 서있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은 토론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말하기 위한 자리였다.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벨라의 생일 이후 이번이 두 번째였다. 가족들은 그들 내면의 억누르던 욕망이 잠시나마 그녀의 피를 원했던 것 때문에 자괴감에 휩싸여 전면적인 반대를 하진 못했다. 그들도 자신들이 그녀에게 생명에 위협을 주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러나 그들은 그녀를 떠나려고 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완전히 결심을 내리는 동안 로잘리는 내가 발작증 환자처럼 군다며 못 마땅해했고 특히 에스미는 나를 설득하려했다.
“아직도 결심이 달라지지 않았니?”
앨리스가 위층에서 내려오길 기다리고 있는 동안 묵묵히 서있는 나에게 에스미가 속삭이듯 말을 걸었다. 그녀의 생각이 속삭이는 것을 들었다.
‘에드워드는 너무 오랫동안 외로웠어. 에드워드가 이런 식으로 그 애를 떠나선 안 돼. 서로를 원하고 있는데 고통스럽게 떠나게 만들 순 없지’
그녀는 진심으로 내가 행복하길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벨라를 떠나는 결정이 내게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를 설득하려는 의지가 담긴 그녀의 생각을 읽으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로부터 시선을 돌린 순간 어느새 에스미의 곁에 와있는 앨리스가 보였다. 방금 내 미래를 본 듯 그녀는 강하게 머리를 저어보이며 나를 나무라는 듯 한 표정을 지었다. 앨리스는 내가 벨라를 떠나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후에 찾아올 내 고통도. 재스퍼는 그녀를 따라 내려왔지만 좀 더 거리를 두고 서있었다. 그는 자괴감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고 있었다. 비록 그 감정의 대부분이 벨라를 해칠 뻔한 것에 대한 죄책감 보다는 자신 속의 본성을 감추지 못하는 수치감과 가족 전체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오는 것이지만 이제는 상관이 없었다. 나는 내 가족을 한 명 한 명 차분히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내 판단이 냉정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그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서였다. 비록 나 자신은 확신할 수 없었지만. 되도록 짧게 이야기 하고 싶었다.
“다들 내가 벨라에게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떠나는 편이 낫겠죠.”
내가 입을 떼자마자 앨리스의 반발이 날아왔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끼어든 목소리가 있었다.
“가족이 다 떠날 이유는 없어.”
그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재스퍼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그는 목소리에 높낮이가 없었다.
“떠나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가족 모두가 아니라 내가 될 거다. 앨리스와 함께 데날리로 가겠어.”
이미 모든 것을 결심한 이상 그의 의견을 수용할 생각은 없었다. 재스퍼가 잠시-어쩌면 긴 시간일지도 모르지만- 데날리로 떠나있겠다 해서 해결 될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재스퍼가 아니다. 그녀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것은 나였다. 내가 틀렸다. 벨라는 문제를 끌어당기는 자석이 아니었다. 자석은 나였으니. 이미 커다란 위험이 득실거리는 블랙홀인 내가 그녀를 끌어당긴 거였다. 그러니 더 이상 시간을 끌어 그녀가 내게서 벗어나지 못해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에 모든 것을 끝내야했다. 벨라의 생일에 벌어진 일은 내게 그것을 더 확고하게 일깨웠다.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재스퍼는 아무런 의미 없을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아무런 걱정도 사고 싶지 않으니 오래 있지는 않을 거야. 곧 돌아올 수 있을 거다. 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진 않겠어.”
그의 말에서 에스미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게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건 아니야.”
내가 조용히 속삭였다. 에스미가 입을 상처를 생각하자 고통스러웠다. 이제까지 가만히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참고 있던 로잘리가 인내심이 바닥이 났는지 꽉 물린 잇 새로 새어나오는 듯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넌, 지금 그 애의 안전을 위해서 가족을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 셈이야?”
에스미가 분노를 터트리려고 하는 로잘리의 악의에 찬 말이 이어지려 하자 재빨리 끼어들었다. 그녀의 태도는 몹시 조심스러웠다.
“네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게 너를 위해서라면 우린 상관없단다. 그렇지만 우린 널 염려하고 있어.”
“그녀를 위해서예요.”
내가 정정하자 에스미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게 정말로 너와 그 애를 위하는 일이 된다면 말이야. 적어도 그 애는 네가 떠나는 것을 바라진 않을 테니 말이다.”
에스미가 안타까운 시선으로 나를 잠시 응시하는 사이 로잘리가 다시 나섰다. 에스미 덕에 그녀의 태도는 십분의 일 정도 누그러졌으나 여전히 눈만은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녀가 비아냥댔다.
“넌 에스미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있어. 그 애를 걱정하는 만큼의 조금이라도 떼어내서 가족이 흩어지면 에스미가 받을 상처를 생각해보는 게 어때?”
로잘리의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은 에스미는 내 눈을 바로 보며 진지하고도 간절하게 입을 열었다. 나는 전적으로 내가 행복해지기만을 바라고 있는 그녀의 말을 가로 막을 수 없었다.
“우리는 이제까지 그래도 잘 해왔잖니? 에드워드. 애초에 넌 이런 혼란이 없지 않을 것을 각오하고 있었어. 지금 네가 이렇게 그 애를 떠나는 것을 난 원하지 않는단다. 난 너를 알고 있다. 넌 늘 나에게 착한 아들이었어. 넌 그 애를 걱정하는 마음과 함께 가족도 생각하느라 혼란스럽겠지. 나는 네가 더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 그래서 더더욱 네게 상처가 될 일은 만들어주고 싶지 않구나. 난 네가 그렇게 무엇을 간절히 원하는 것을 본 일이 없어. 그 애와 함께하기 시작한 뒤의 너를 지켜보면서 나는 그 애를 사랑하고 그러니 함께 있으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다른 여지를 생각해보지 않으려는 네 의견에 흔쾌 하게 동의해줄 수가 없구나.”
그녀의 생각을 읽을 필요도 없이 안타까워하고 있는 그녀의 말은 진심이었다. 나에 대한 걱정과 애정이 절절히 들어나는 그녀의 앞에서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늘 나를 안타깝게 여기던 그녀는 내 행복을 너무나도 원하고 있었다. 내가 벨라를 원하게 된 것을 가장 기뻐했던 것도 그녀였다. 그녀가 인간이라는 사실은 그녀에게 그리 큰 장애가 아니었다. 에스미에게 중요한 것은 그녀의 안쓰러운 아들인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었다. 칼라일이 다가와 에스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줄곧 나서지 않고 나를 바라보고 있던 칼라일이 입을 열었다.
“너에게 아무것도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그는 늘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려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번일 만큼은 에스미의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이렇게 벨라의 삶에서 도망치듯 떠나가는 것은 너에게도 그 애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야. 너에게 좀 더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다른 가족의 생각을 다 들어보라고는 말해주고 싶구나.”
나는 한 숨을 쉬었다.
“좋아요.”
그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다고 여기고 있는 나를 흔들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흔들림이 내 생각을 바꿀 수는 없었다. 앨리스가 예견했던 벨라의 미래 중 그녀를 나와 같은 존재로 만드는 것은 내가 원해선 안 돼는 것이었고.... 생각조차 하기 두려운 또 다른 미래에 핏기 없이 쓰러진 그녀의 앞에 내가 붉은 눈을 한 채 서있게 될 수도 또 그 자리에 서있는 것이 내 형제가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만들 순 없었다. 그들의 말을 들으며 내 결심은 좀 더 필연적인 것으로 여겨졌고 또 확고해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칼라일과 에스미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어진 내가 천천히 에밋에게 시선을 돌렸다. 적어도 그가 내게 도움이 안 될 말을 하진 않을 터였다. 그가 난처한 듯 머리를 쓰다듬으며 가족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는 내 기대를 무너뜨렸다.
“음, 적어도 고등학교를 다시 다니고 싶진 않은데.”
그리고 그는 잠시 로잘리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 에스미를 바라보았다. 에밋이 다시 스쳐 지나가듯 말했다.
“그리고 말이야. 어머니 말을 듣는 건 어때? 난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가 지킬 수 있다 자신하는 것이 벨라를 의미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아챈 로잘리가 에밋을 죽일 듯이 쏘아보았다. 로잘리는 포크스를 떠나는 것에 찬성을 하는 여부를 떠나서 적어도 가족들의 의견이 벨라에게 호의적으로 돌아가게 하고 싶지는 않아했다. 그녀는 있는 대로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에밋의 말은 내게 의외였다. 로잘리와 함께 하는 그가 이런 말을 꺼낸다는 것은. 최대한 화를 끌어 모으려고 자신의 속을 긁어대고 있는 로잘리의 생각을 읽고 싶지 않아진 나는 고개만 그녀 쪽으로 향한 채 건성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굳이 생각을 말해 달라 하지 않아도 곧 외칠 것이다.
“그 애가 무엇 이길래? 왜 그 애 때문에 우리가 이곳을 억지로 떠나 새 삶을 시작해야 하죠?”
“로즈.”
에스미가 그녀를 조용히 나무라듯 말렸다. 로잘리는 다시 이를 악물었다. 나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으니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앨리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앨리스.”
“에드워드.”
그녀의 의지는 확고해보였다. 앨리스는 자신이 고집하는 것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나는 많은 것을 쏟아낼 준비를 하고 있는 그녀의 마음을 읽었다. 그녀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넌 벨라를 위한 선택이라고 할 지도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 네가 떠나고 나면 그녀가 어떻게 될지 생각 해봤어? 제정신이야 넌? 넌 전혀 이성적이지 않아. 그저 벨라가 다치는 것 만에 겁을 내느라 다른 것은 생각도 못하고 있잖아!”
나는 스스로는 충분히 이성적이라고 생각되는 태도로 조용히 대답했다.
“벨라가 위험에 빠지는 문제의 중심에는 늘 내가있어. 그러니 그녀를 위한다면 곁을 떠나는 게 맞아.”
“이건 벨라에게는 전혀 공평한 게 아니야!”
앨리스가 소리쳤다. 그녀의 머릿속은 정말로 혼란스러웠고 이 상황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앨리스는 자신이 재스퍼를 데날리로 데려가려고 하면서까지 원한 것은 이것이 아니었다고 내게 강력히 항의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어울리는 상대는 내가 아니야. 정확히는 뱀파이어가 아니라, 인간이지.”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넌 감정에 휩쓸려서 네 자신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야.”
앨리스가 나를 노려보며 조용히 덧붙였다.
“벨라는 충분히 너에게 어울리는 존재가 될 수 있어.”
이제는 나 역시 앨리스를 노려보았다. 나에게 화가 난 그녀는 머릿속으로 또렷하게 ‘그 비전’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거야말로 일어날 수 있는 경우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방향이었다. 그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내가 이를 악물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불가능해. 내가 인간이 되지 않는 한.”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너는 알고 있잖아.”
나는 대꾸하지 않은 채 고개를 저었다. 앨리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뒤로 한 걸음 물러난 채 가족들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들에게 벨라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니라는 것은 기쁘기도 했다. 그들은 조금씩 벨라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제 의미가 없었다. 그녀를 떠날 결심을 한 마당에 이런 것을 깨닫게 되는 아이러니에 나는 속으로 씁쓸히 웃었다. 나는 깊은 고뇌를 하는 동안 기억해낸, 저 밑바닥에 깔려 있다가 수면위로 떠올라 나를 더 괴롭게, 그리고 그녀를 떠나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만들었던 기억의 조각 하나를 끄집어냈다.
“어렸을 때의 기억을 모두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떠오른 것이 있어요.”
말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지만 나는 그들에게 내 내면적인 고뇌 하나를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늘 제대로 언급한 적이 없었던 ‘인간’이었을 때의 일을 이야기하자 칼라일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파악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최대한 내가 행복해 질수 있는 방향으로 이 상황의 해결책을 찾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아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고뇌하는 그의 생각이 벨라와 함께 할 수 있는 방향을 고려하는 것이라는 걸 읽은 나는 허공을 바라본 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인간이었을 때의 이야기를 꺼내자 누구보다 눈빛이 안타깝게 흐려진 에스미를 쳐다볼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를 떠날 결심을 흐리게 할 그 누구의 생각도 읽고 싶지 않았다.
“흐릿한 기억 속에서 어린 나는 아버지-인간이었을 때의-와 사냥을 나갔어요. 그날은 햇빛이 유난히도 밝았죠. 그가 내게 소리치던 것도 기억이 나요. 그는 내게 웃으며 날이 좋으니 운이 좋으면 굴에서 막 나온 토끼를 잡아주겠다고 했죠. 그와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숲 속으로 들어갔고 나는 잔뜩 신이 난 채로 숲 속을 달리고 또 달렸어요. 그러다 숲 속 한 가운데서 나는 무언가를 발견했어요. 그건 울창한 나무 잎사귀 틈새로 내려온 빛을 받아 환한 숲속의 공터에 있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사슴이었어요. 그 사슴은 공터에서 도망가지 않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죠. 나는 숨이 막혀 와서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난 그 사슴이 너무 가지고 싶었죠. 그리고 한 발자국 다가간 순간 사슴이 놀라는 모습을 보고 무언가를 깨달았어요. 왜 도망가지 않는지. 사슴은 아버지가 다른 사냥꾼들과 함께 놓아 둔 덫에 걸려있었어요. 그 덫이 사슴의 자유를 속박하고 있었죠.”
가족들은 아직 내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 듯 했다. 그건 당연했다. 이제부터 시작이었으니. 나는 한숨을 내쉰 뒤 말을 이었다.
“나는 그 사슴에게 다가갔어요. 도망 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건지, 아니면 어린 내가 무섭지 않았던 건지 사슴은 몸부림치지 않았죠. 그저 덫에 걸린 채 내가 다가서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었어요. 나는 용기를 내 사슴의 털을 쓰다듬었죠. 아직도 그 감촉이 기억나는 것 같아요. 그 느낌은 한 번에 나를 사로잡았죠. 그 사슴을 소유하고 싶다는 마음은 더 커져갔어요. 무언가를 본 사슴이 갑자기 놀라서 몸부림을 쳤어요.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아버지가 내 뒤로 다가와 있었어요. 그는 사슴과 함께 있는 나를 내려다보더니 속삭였어요.
‘아직 너무 어린 녀석이구나.’
그는 그 어린 사슴을 놔주려고 하는 것 같았어요. 아버지의 생각을 알아차린 나는 어린 아이의 소유욕으로 안달이 난 상태였죠. 나는 그에게 사슴을 집으로 데려가자고 졸랐어요. 그 사슴을 가지게 해달라고. 아버지는 이 사슴은 숲에서 자랐기 때문에 우리가 기를 수 없다고 했고 나는 포기하지 않았죠. 난 내가 그 사슴을 기를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걸 알지 못했어요. 아니 알았는데도 가지고 싶은 마음에 계속 떼를 썼죠. 아버지는 무언가가 갖고 싶어도 그렇게 떼쓰는 법이 없었던 아들인 내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어요. 대신에 그는 말했죠.
‘네가 책임을 질 수 있는지 보자꾸나.’
나는 기쁨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어요. 사람들이 와서 사슴을 집으로 데려가는 것을 도와주었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나는 그 사슴 옆에 있었어요. 집에 데려가기 위해 사슴은 묶여있었지만 나는 행복했어요. 집에 가면 사슴을 묶은 줄 따위는 풀어버릴 작정이었으니까요.”
한 번 떠오른 어린 날의 기억은 너무나도 생생했다. 그리고 그 결과까지도 내 뇌리에 다시 또렷이 자리 잡았다. 나는 가족들이 내가 왜 이이야기를 꺼냈는지 아직도 의아해 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앨리스만이 내가 말하려 하는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이 표정이 굳어져있었다.
“집으로 가자 우리를 기다리던 어머니는 사슴을 데려온 나를 보고 반대했어요. 그녀는 내 열망하는 태도를 보고 사슴을 원하는 것을 이해했지만 집에서 기르면 사슴이 살 수 없을 거라고 했죠. 그녀가 말했어요.
‘네가 집에 사슴을 두려고 하면 네가 원하는 사슴은 자유를 잃게 될 거야, 그래도 좋으니? 게다가 집에는 사냥개가 있잖니.’
나는 그녀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린 나는 원하는 것이 생기자 주체 할 수가 없었고 사슴이 위험 할 지도 모른 다는 걸 알면서도 내가 지킬 수 있다고 고집을 부렸어요. 결국 부모님은 사슴을 집에 놓아두게 했죠. 정원에는 그 사슴을 위한 우리가 생겼어요. 나는 그날 내내 사슴의 우리 옆에서 사슴과 함께했어요. 난 그 사슴을 길들이길 원했죠. 그리고 저녁이 되어 나는 나를 집안으로 들어갔어요. 다음날 아침엔 일찍 일어나 사슴을 볼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 그날 밤 개 짖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어요. 사냥을 다녀와 피곤했던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냥 잠들어버렸죠. 어려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으니까요. 그 다음날 나는 늦게 눈을 떴죠.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어머니가 날 깨우러 오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며 아래층으로 내려갔어요. 부모님에게 아침 인사를 한 뒤 바로 사슴을 보러갈 생각이었죠. 그러다 나는 부모님이 대화하는 것을 듣게 됐어요. ‘에드워드에게 말하지 말아요. 사슴은 숲속에 묻어 두라고 존에게 이야기 했으니.’ 그 말을 듣고 나는 얼어붙었어요. 그리고 사슴이......”
이제야 그들은 이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이 기억을 이야기한 이유와 이 기억 속 사슴을 내가 누구와 동일시하고 있는지.
“개에게 물려 죽었다는 것을 깨달았죠.”
목이 메었다.
“단순히....... 내가 가지고 싶어 했기 때문에.”
말을 마친 내가 입을 다물자 형용할 수 없이 안타까워하고 있던 에스미가 열렬히 고개를 저으며 외쳤다.
“에드워드,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칼라일의 평생, 아니 영원한 반려일 그녀는 동정심이 너무나 많았다. 그녀의 주체할 수 없는, 나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는 동정심에 의한 판단은 나에게 위안이 될지 몰라도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그녀를 사랑했다. 가족들은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칼라일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쩌다가 네가 이런 표정을 짓게 되었을까.”
그 저녁 칼라일은 병원으로 돌아가 병원을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앨리스는 제스퍼와 함께 데날리로 떠났고 나는 에스미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가족들을 뒤로한 채 내 방에 남았다. 그리고 조용히 벨라에게 건넬 가증스러운 거짓말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네가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진심을 모욕하는 가장 어리석은 거짓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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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소리가 울려왔다. 나는 열기로 달아오른 광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나는 곧 벨라와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나를 위한 다른 세계는 아무것도 존재 하지 않을지도 몰랐지만. 나는 점점 평온해졌다. 만일 칼라일이 옳았다고 말 할 수 있게 된다면 찾아올 죽음은 내게 영원한 안식이자 축복이 될 것이다. 내게 그런 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면 그녀와 마주 할 수 있겠지. 어쩌면 나는 지옥으로 떨어질지도 몰랐지만. 나는 광장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사람들이 내게 눈을 돌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 목을 감아오는 누군가의 감촉도. 지나치게 평온하게 느끼던 탓이었을까. 고통은 없었다. 흐려지는 광장 앞에서 벨라가 보였다.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눈앞에 보이는 그녀의 환영에 나는 미소 지었다.
찾아온 어두운 안식도
너와 함께라면 나쁘지 않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