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dnight

 

 만일 내게 잠에 들 수 있는 축복이 주어져 꿈을 꿀 수 있게 된다면 나는 그녀에 대한 걱정으로 뒤척이다 잠에 드는 밤이면 이런 날의 꿈을 꾸었을 것이다. 인간이 안식을 찾는 무의식의 세계는 달콤한 한숨을 불어넣어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잔인하기도 하니. 이것은 그녀를 만나는 순간부터 늘 그녀에게 선택권을 주기 위해 준비해왔다고 생각한 나의 준비된 갈림길 중의 한 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 이 순간, 그녀를 위해 늘 준비해 오면서도 원하지 않았던 이중적인 마음에도 끝이 찾아왔다. 나는 묵묵히 앞서 걸으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내 손에는 여전히 그녀의 손이 쥐어져 있었다. 걷고 있는 나는 마지막일 그 부드럽고 따듯한 감촉을 마지막으로, 그리고 영원히 기억해두기 위해 신경이 모두 손에 가 몰려있었다. 그녀는 내 곁에서 혼란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내가 말을 꺼내기만 기다리며 나를 따라 걷고 있었다. 벨라의 손을 부드럽게 다시 잡은 순간 나는 숲으로 들어온 우리가 그녀의 집에서 꽤 되는 거리에 도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와 마지막으로 대화하기 위해서 조용한 숲을 택했지만 너무 멀리 가는 것은 그녀에게 좋지 않았다. 숲에는 맑은 공기 외에 모든 생명체가 그녀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심지어 길에 놓여있을 하찮은 돌부리마저도 그녀에겐 위험했다. 나는 한숨을 쉬며 그녀의 손을 놓았다. 벨라의 손이 내 손아귀에서 빠져 나가는 그 찰나의 순간에도 나는 미칠 듯이 아쉬움을 느껴야만 했다. 이런 주제에 그녀를 떠나야한다 가족들에게 당당히 말한 멍청이. 머릿속에서 이기심으로 가득 찬 또 다른 내가 속삭였다. 나는 그녀의 손을 놓고 조용히 나무에 가서 기대어 섰다.  


 너는 후회할거다.
 

 한 번 내린 결심임에도 머릿속에 존재하는 이기심은 조심스레 내 머릿속을 장악하려는 몸부림을 시작하며 강한 충동으로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충분히 고뇌했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안의 이기심이 나를 충동질하게 놓아두고 있었다. 어쩌면 흔들리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그녀에게 말 하지 마 얼간이! 나는 이기심의 충동질에 넘어가 그녀에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침묵을 견디지 못한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좋아, 우리 얘기 좀 해.”
 

 그녀의 목소리에는 내가 무엇인지 알아챌 수 없는 단호함이 실려 있었다. 그녀가 속으로 무엇을 결정 내린 건지 의아해졌지만 지금 내게는 그보다 그녀에게 해야 할 말이 있었다. 나는 입을 열기 전 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 나서 바로 후회했다. 그녀의 달콤한 향기는 내가 냉철하게 말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들이 마신 숨을 한숨처럼 내쉬며 입을 열었다. 


“벨라, 우린 떠날 거야.”
“왜 지금 떠나? 1년만 더 있으면........” 


 벨라는 의외로 담담한 모습을 보여 나를 놀라게 했다. 그녀의 모습을 보며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새로운 실망감이 치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내가 예상했던 반응들을 보이는 대신에 그저, 의아해보였다. 그리고 나는 곧이어 나를 실망하게 만든 그녀의 알 수 없는 담담함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안타까워졌다. 그녀는 오해하고 있었다. 내가 떠나는 계획에 그녀도 포함되어있는 것으로.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벨라가 확인하듯 물음을 던졌다. 안쓰러운 그녀에게 나는 그녀를 끌어안고 싶은 충동을 참는 대신 차가움을 가장한 채 응수했다. 그러다 내 결심을 크게 깨는 말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벨라는 나와 함께 가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서 아직도 맴도는 이기심이 승리했다는 듯이 웃어댔다. 나는 이기심을 밀쳐낼 수가 없었다. 내가 그녀의 말에 고통스러워하는 동시에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나도 확실히 느끼고 있었으니.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나를 따라오는 순간 그녀가 포기해야 하는 것들과 그녀가 얼마나 위험해질지에 대해서. 나는 담담한 표정을 유지한 채로 그녀에게 설명하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동시에 내 모습이 우스워지기 시작했다. 이기심이 그런 나를 비웃어댔다. 


 담담하게 이별을 고하는 연인이라니, 지금 네가 얼마나 우스운 짓을 하고 있는 줄 알기나 해?
 네가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천만에, 에드워드 컬렌! 그녀는 널 원해. 그녀의 표정을 봐. 네가 상처 입히고 있잖아.
 이런 식의 넌 네가 그녀를 가지고 놀았다고 하는 것 밖에 되지 않아. 


 그녀는 이제 자신이 모두 내 것이라고 애절하게 소리치고 있었다. 그녀의 진심이 담긴 외침에 답해 줄 수 없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동시에 느껴지는 것은 그녀의 고백을 더 듣고 싶어 하는 이기적인 자신.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최대한 잔인한 울림을 이끌어냈다. 


“벨라, 나는 너랑 같이 가기 싫다.” 


 그녀는 나에게 한 대 세차게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내게 계속 항변하려는 듯이 벌어져있던 그녀의 입술이 천천히 맞물렸다. 안타깝게 수그러드는, 그마저도 사랑스러운 입술. 나는 담담함을 가장한 고통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중적인 나 자신은 말하면서도 혹시나 그녀가 내 눈빛에서 진심을 읽어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널 사랑해. 내 속에서 그녀를 뜨겁게 원하는 내 진심이 절규했다. 그 무엇과 바꿀 수도 없을 만큼 너는 내게 소중한 존재야. 벨라, 내 생명. 제발, 아무것도 믿지 마. 넌 내 진심을 알고 있잖아. 지금 이 순간 가장 원하는 건 널 내 품에 끌어안아 네 안타깝게 떨리는 입술을 덮고 달콤한 숨결을 들이 마시는 거라는 걸 모르겠어. 절망적이게도 그녀는 내 거짓말에 완벽하게 속아주고 있었다. 그녀에게 내 가증스러운 입술이 속삭이는 거짓말에 대한 의심의 여지는 없어보였다. 그녀는 완벽하게 믿고, 철저히 절망하고 있었다. 다른 여지는 생각해 보지도 않은 채. 


“내가....... 싫다고?”
“그래.” 


 절망스러워진 나는 그녀의 말을 인정함으로써 나의 가장 신성한 부분을 모독했다. 그녀는 충격을 받은 듯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갈피를 잃은 듯 보였다. 그리고 이내 내게 매달리듯 속삭였다. 그녀가 충격과 절망에 사로잡혀 자신만의 추측을 더해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나는 그녀가 이렇게 안타까운 표정을 짓게 만드는, 그녀의 머릿속에 있을 절망적인 추측 중에 내 진심과 맞을 사실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맹세 할 수도 있었다. 나는 마지막이라고 나를 달래며 입을 떼었다.  


“너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벨라.”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그녀의 입술의 떨림이 멈추었다. 제발 믿지 마 벨라. 내 속에서는 간절하게 그녀에게 외치고 있었다. 그녀가 내 말을 믿고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그게........ 진정으로 네가 원하는 거라면.”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 낼 것 같은 그녀의 얼굴은 길을 잃은 어린아이 같았다. 그 긍정을 시작으로 그녀가 내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녀와 나의 사이 거리는 팔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지만 다가갈 수는 없었다. 나는 그녀가 내 손에서 벗어난 느낌이 들자 다시 불안감이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기심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느낀 듯 미친 듯이 나를 충동질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너무 연약해! 지난날 내가 그녀에게 닥쳐올까 걱정했던 위험의 경우들이 한 번에 나를 덮쳐오는 것 같았다. 그대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갈 곳을 잃은 아이처럼 나를 흐려진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었다. 벨라가 내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서는 안됐지만 나는 이미 입을 열어버렸다. 


“그래도 된다면 말인데, 한 가지 약속해줬으면 하는 게 있어.” 


 내 말을 들은 그녀의 얼굴에 미약한 기대감이 어리는 것을 보고 있는 나는 정말 나쁜 놈이었다. 내 입에서 흘러나올 말을 기다리며 서있는 여린 그녀를 보는 순간 절제라는 이름의 가면이 날아 가버리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어리석은 짓, 무모한 짓은 절대로 하지 마. 내말 알아듣겠어?” 


 나는 내 속에서 나를 태울 듯이 끓어오르는 감정이 내 얼굴에 들어났으리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떠나겠다는 말을 해놓고 이런 걱정을 들어내는 것조차 명백한 실수였지만 나는 나 때문에 무모해지지 않겠다는 그녀의 다짐이 없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녀를 떠나겠다고 해놓고 걱정 어린 감정을 이기지 못해 그녀 곁을 맴도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나는 진심을 들어 낸 내 실수를 합리화시켰다. 그녀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일시적 안도감이 살아나면서 나는 다시 가면을 뒤집어썼다. 그 덕에 초연한 척 찰리 때문이라고 둘러댈 수 있었다. 그녀가 없더라도 딴 데 정신을 팔기 쉬울 거라는, 나 스스로를 모욕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짓들을 모두 뱉어내고 나자 그녀를 사랑한다고 외쳐대는 진심만이 더욱 견고히 자리 잡았다. 내가 만들어낸 거짓들은 그녀를 상처 입힐 것이다. 더 머무를 수가 없었다. 내가 그녀를 끌어안고 모두 거짓이었다고 외치기 전에 떠나야만 했다. 나는 나직이 속삭였다. 


“잘 있어, 벨라.”
“기다려!” 


 나는 나를 잡으려는 듯 손을 뻗는 그녀의 양 손을 붙잡아 내렸다. 그녀가 나를 잡는 순간 나는 연기를 계속 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괴롭게도.  


 어쩌면 내 인내심의 바닥에도 이 정도는 허용될지도 모르지. 


 망설이던 나는 그녀의 이마에 짧게 입 맞추었다. 그 잠시일 뿐인 순간마저도 풍겨오는 달콤한 향기.  


“조심해. 너 자신을 지켜야 해.” 


 나는 몸을 돌려 온전히 그녀에게서 멀어 섰다. 그녀가 감은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아 그 시선이 나를 붙잡기 전에 나는 그녀의 앞에서 도망쳤다. 나는 내 이기심과 싸워서 이겨내 그녀를 떠났지만 결국 패배자였다. 그리고 난 앞으로도 절대 승자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가 없는 한. 한 번에 모든 것이 끝났다. 내 거짓말은 훌륭했다. 아무리 까다로운 평론가라도 결코 나의 거짓말에 형편없는 점수를 주진 못할 것이다. 오늘을 위해 만들어진 가면은 그녀를 완벽하게 상처 입혔으니. 차 앞에 도착해 문을 열던 나는 문득 멈춰 섰다. 나는 그녀에게서 내 흔적들을 지워야했다. 정말 유치한 짓이었지만 나는 창문을 통해 그녀의 방에 들어서서 맨 먼저 CD플레이어로 걸어가 CD를 꺼냈다. 그리고 내가 그녀에게 주었던 나의 모든 흔적들을 모두 집어 들었다. 나는 고통스러운 심정으로 그것들을 바라보며 망설였다. 모두 가져갈 생각으로 들어왔지만 그것들을 들고 있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레 바닥을 뜯어냈다. 그리고 그 안에 모두 밀어 넣으며 내 행동을 합리화시키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상처를 추스를 시간 동안 내 흔적에 괴로워하지 않도록 시간을 두는 것이다. 버려져도 그녀의 손이어야만 했다. 그녀에게 새 연인이 생긴다면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내 흔적들을 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내게 상상만 해도 고통스러웠지만. 내 머릿속 다른 한 부분이 그런 나를 비웃었다. 


 한심하긴. 


 나는 창문을 통해 그녀와 함께 걸어 들어갔던 숲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적어도 내가 있는 동안은 돌아오지 않는 것이 나았지만 그녀가 내가 떠났음에도 그 숲에 남아있을 이유는 없었다. 나는 충격을 받은 그녀가 숲을 헤매고 다니는 영상이 머릿속에 스쳐갔다. 나는 잠시 동안 그녀에게 다시 돌아가 그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떠나는 것을 생각해보았지만 그것은 그녀를 다시 보고 싶은 내 열망에서 나온 터무니없는 억지에 불과했다. 다시 그녀를 볼 수는 없어. 나는 그녀를 데리러 숲으로 돌아가는 생각을 버리는 대신에 종이를 집어 들었다. 그녀의 가늘고 섬세한 필체는 머릿속에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집을 벗어나 열려있는 차문으로 뛰어들었다. 그녀를 벗어나 계속해서 달리던 나는 문득 차를 세웠다. 나는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언제나의 걸음처럼. 자조적인 웃음이 새어나왔다. 시동을 걸고 방향을 돌렸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으로 돌아갈 이유는 없었다. 그곳은 이제 보금자리가 아니었다. 내가 그녀의 곁이 아닌, 다른 갈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무작정 떠돌 것이다. 방금 산산 조각이 나 사방으로 흩뿌려진 내 마음의 조각을 추스르기 위해서. 혼란스러워 하던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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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라일은 나 때문에 일찍 돌아와 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는 아침에 나갈 때 입었던 외출복을 그대로 입고 있는 채였다. 가족들은 모두 나를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에밋을 뒤에 세워둔 로잘리만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굳이 모두를 앉혀놓을 필요는 없었다. 앉아서 긴 시간을 이야기 할 만큼 오래 서있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은 토론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말하기 위한 자리였다.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벨라의 생일 이후 이번이 두 번째였다. 가족들은 그들 내면의 억누르던 욕망이 잠시나마 그녀의 피를 원했던 것 때문에 자괴감에 휩싸여 전면적인 반대를 하진 못했다. 그들도 자신들이 그녀에게 생명에 위협을 주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러나 그들은 그녀를 떠나려고 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완전히 결심을 내리는 동안 로잘리는 내가 발작증 환자처럼 군다며 못 마땅해했고 특히 에스미는 나를 설득하려했다.  


“아직도 결심이 달라지지 않았니?” 


 앨리스가 위층에서 내려오길 기다리고 있는 동안 묵묵히 서있는 나에게 에스미가 속삭이듯 말을 걸었다. 그녀의 생각이 속삭이는 것을 들었다.  


 ‘에드워드는 너무 오랫동안 외로웠어. 에드워드가 이런 식으로 그 애를 떠나선 안 돼. 서로를 원하고 있는데 고통스럽게 떠나게 만들 순 없지’  


 그녀는 진심으로 내가 행복하길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벨라를 떠나는 결정이 내게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를 설득하려는 의지가 담긴 그녀의 생각을 읽으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로부터 시선을 돌린 순간 어느새 에스미의 곁에 와있는 앨리스가 보였다. 방금 내 미래를 본 듯 그녀는 강하게 머리를 저어보이며 나를 나무라는 듯 한 표정을 지었다. 앨리스는 내가 벨라를 떠나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후에 찾아올 내 고통도. 재스퍼는 그녀를 따라 내려왔지만 좀 더 거리를 두고 서있었다. 그는 자괴감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고 있었다. 비록 그 감정의 대부분이 벨라를 해칠 뻔한 것에 대한 죄책감 보다는 자신 속의 본성을 감추지 못하는 수치감과 가족 전체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오는 것이지만 이제는 상관이 없었다. 나는 내 가족을 한 명 한 명 차분히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내 판단이 냉정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그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서였다. 비록 나 자신은 확신할 수 없었지만. 되도록 짧게 이야기 하고 싶었다. 


“다들 내가 벨라에게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떠나는 편이 낫겠죠.” 


 내가 입을 떼자마자 앨리스의 반발이 날아왔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끼어든 목소리가 있었다. 


“가족이 다 떠날 이유는 없어.” 


 그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재스퍼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그는 목소리에 높낮이가 없었다. 


“떠나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가족 모두가 아니라 내가 될 거다. 앨리스와 함께 데날리로 가겠어.” 


 이미 모든 것을 결심한 이상 그의 의견을 수용할 생각은 없었다. 재스퍼가 잠시-어쩌면 긴 시간일지도 모르지만- 데날리로 떠나있겠다 해서 해결 될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재스퍼가 아니다. 그녀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것은 나였다. 내가 틀렸다. 벨라는 문제를 끌어당기는 자석이 아니었다. 자석은 나였으니. 이미 커다란 위험이 득실거리는 블랙홀인 내가 그녀를 끌어당긴 거였다. 그러니 더 이상 시간을 끌어 그녀가 내게서 벗어나지 못해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에 모든 것을 끝내야했다. 벨라의 생일에 벌어진 일은 내게 그것을 더 확고하게 일깨웠다.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재스퍼는 아무런 의미 없을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아무런 걱정도 사고 싶지 않으니 오래 있지는 않을 거야. 곧 돌아올 수 있을 거다. 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진 않겠어.” 


 그의 말에서 에스미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게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건 아니야.” 


 내가 조용히 속삭였다. 에스미가 입을 상처를 생각하자 고통스러웠다. 이제까지 가만히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참고 있던 로잘리가 인내심이 바닥이 났는지 꽉 물린 잇 새로 새어나오는 듯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넌, 지금 그 애의 안전을 위해서 가족을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 셈이야?” 


 에스미가 분노를 터트리려고 하는 로잘리의 악의에 찬 말이 이어지려 하자 재빨리 끼어들었다. 그녀의 태도는 몹시 조심스러웠다. 


“네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게 너를 위해서라면 우린 상관없단다. 그렇지만 우린 널 염려하고 있어.”
“그녀를 위해서예요.” 


 내가 정정하자 에스미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게 정말로 너와 그 애를 위하는 일이 된다면 말이야. 적어도 그 애는 네가 떠나는 것을 바라진 않을 테니 말이다.” 


 에스미가 안타까운 시선으로 나를 잠시 응시하는 사이 로잘리가 다시 나섰다. 에스미 덕에 그녀의 태도는 십분의 일 정도 누그러졌으나 여전히 눈만은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녀가 비아냥댔다. 


“넌 에스미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있어. 그 애를 걱정하는 만큼의 조금이라도 떼어내서 가족이 흩어지면 에스미가 받을 상처를 생각해보는 게 어때?” 


 로잘리의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은 에스미는 내 눈을 바로 보며 진지하고도 간절하게 입을 열었다. 나는 전적으로 내가 행복해지기만을 바라고 있는 그녀의 말을 가로 막을 수 없었다.  

 
“우리는 이제까지 그래도 잘 해왔잖니? 에드워드. 애초에 넌 이런 혼란이 없지 않을 것을 각오하고 있었어. 지금 네가 이렇게 그 애를 떠나는 것을 난 원하지 않는단다. 난 너를 알고 있다. 넌 늘 나에게 착한 아들이었어. 넌 그 애를 걱정하는 마음과 함께 가족도 생각하느라 혼란스럽겠지. 나는 네가 더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 그래서 더더욱 네게 상처가 될 일은 만들어주고 싶지 않구나. 난 네가 그렇게 무엇을 간절히 원하는 것을 본 일이 없어. 그 애와 함께하기 시작한 뒤의 너를 지켜보면서 나는 그 애를 사랑하고 그러니 함께 있으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다른 여지를 생각해보지 않으려는 네 의견에 흔쾌 하게 동의해줄 수가 없구나.” 


 그녀의 생각을 읽을 필요도 없이 안타까워하고 있는 그녀의 말은 진심이었다. 나에 대한 걱정과 애정이 절절히 들어나는 그녀의 앞에서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늘 나를 안타깝게 여기던 그녀는 내 행복을 너무나도 원하고 있었다. 내가 벨라를 원하게 된 것을 가장 기뻐했던 것도 그녀였다. 그녀가 인간이라는 사실은 그녀에게 그리 큰 장애가 아니었다. 에스미에게 중요한 것은 그녀의 안쓰러운 아들인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었다. 칼라일이 다가와 에스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줄곧 나서지 않고 나를 바라보고 있던 칼라일이 입을 열었다. 


“너에게 아무것도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그는 늘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려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번일 만큼은 에스미의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이렇게 벨라의 삶에서 도망치듯 떠나가는 것은 너에게도 그 애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야. 너에게 좀 더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다른 가족의 생각을 다 들어보라고는 말해주고 싶구나.” 


 나는 한 숨을 쉬었다. 


“좋아요.” 


 그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다고 여기고 있는 나를 흔들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흔들림이 내 생각을 바꿀 수는 없었다. 앨리스가 예견했던 벨라의 미래 중 그녀를 나와 같은 존재로 만드는 것은 내가 원해선 안 돼는 것이었고.... 생각조차 하기 두려운 또 다른 미래에 핏기 없이 쓰러진 그녀의 앞에 내가 붉은 눈을 한 채 서있게 될 수도 또 그 자리에 서있는 것이 내 형제가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만들 순 없었다. 그들의 말을 들으며 내 결심은 좀 더 필연적인 것으로 여겨졌고 또 확고해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칼라일과 에스미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어진 내가 천천히 에밋에게 시선을 돌렸다. 적어도 그가 내게 도움이 안 될 말을 하진 않을 터였다. 그가 난처한 듯 머리를 쓰다듬으며 가족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는 내 기대를 무너뜨렸다. 


“음, 적어도 고등학교를 다시 다니고 싶진 않은데.” 


 그리고 그는 잠시 로잘리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 에스미를 바라보았다. 에밋이 다시 스쳐 지나가듯 말했다. 


“그리고 말이야. 어머니 말을 듣는 건 어때? 난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가 지킬 수 있다 자신하는 것이 벨라를 의미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아챈 로잘리가 에밋을 죽일 듯이 쏘아보았다. 로잘리는 포크스를 떠나는 것에 찬성을 하는 여부를 떠나서 적어도 가족들의 의견이 벨라에게 호의적으로 돌아가게 하고 싶지는 않아했다. 그녀는 있는 대로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에밋의 말은 내게 의외였다. 로잘리와 함께 하는 그가 이런 말을 꺼낸다는 것은. 최대한 화를 끌어 모으려고 자신의 속을 긁어대고 있는 로잘리의 생각을 읽고 싶지 않아진 나는 고개만 그녀 쪽으로 향한 채 건성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굳이 생각을 말해 달라 하지 않아도 곧 외칠 것이다. 


“그 애가 무엇 이길래? 왜 그 애 때문에 우리가 이곳을 억지로 떠나 새 삶을 시작해야 하죠?”
“로즈.” 


 에스미가 그녀를 조용히 나무라듯 말렸다. 로잘리는 다시 이를 악물었다. 나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으니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앨리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앨리스.”
“에드워드.” 


 그녀의 의지는 확고해보였다. 앨리스는 자신이 고집하는 것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나는 많은 것을 쏟아낼 준비를 하고 있는 그녀의 마음을 읽었다. 그녀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넌 벨라를 위한 선택이라고 할 지도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 네가 떠나고 나면 그녀가 어떻게 될지 생각 해봤어? 제정신이야 넌? 넌 전혀 이성적이지 않아. 그저 벨라가 다치는 것 만에 겁을 내느라 다른 것은 생각도 못하고 있잖아!” 


 나는 스스로는 충분히 이성적이라고 생각되는 태도로 조용히 대답했다.  


“벨라가 위험에 빠지는 문제의 중심에는 늘 내가있어. 그러니 그녀를 위한다면 곁을 떠나는 게 맞아.”
“이건 벨라에게는 전혀 공평한 게 아니야!” 


 앨리스가 소리쳤다. 그녀의 머릿속은 정말로 혼란스러웠고 이 상황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앨리스는 자신이 재스퍼를 데날리로 데려가려고 하면서까지 원한 것은 이것이 아니었다고 내게 강력히 항의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어울리는 상대는 내가 아니야. 정확히는 뱀파이어가 아니라, 인간이지.”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넌 감정에 휩쓸려서 네 자신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야.” 


 앨리스가 나를 노려보며 조용히 덧붙였다. 


“벨라는 충분히 너에게 어울리는 존재가 될 수 있어.” 


 이제는 나 역시 앨리스를 노려보았다. 나에게 화가 난 그녀는 머릿속으로 또렷하게 ‘그 비전’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거야말로 일어날 수 있는 경우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방향이었다. 그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내가 이를 악물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불가능해. 내가 인간이 되지 않는 한.”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너는 알고 있잖아.” 


 나는 대꾸하지 않은 채 고개를 저었다. 앨리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뒤로 한 걸음 물러난 채 가족들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들에게 벨라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니라는 것은 기쁘기도 했다. 그들은 조금씩 벨라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제 의미가 없었다. 그녀를 떠날 결심을 한 마당에 이런 것을 깨닫게 되는 아이러니에 나는 속으로 씁쓸히 웃었다. 나는 깊은 고뇌를 하는 동안 기억해낸, 저 밑바닥에 깔려 있다가 수면위로 떠올라 나를 더 괴롭게, 그리고 그녀를 떠나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만들었던 기억의 조각 하나를 끄집어냈다. 


“어렸을 때의 기억을 모두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떠오른 것이 있어요.” 


 말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지만 나는 그들에게 내 내면적인 고뇌 하나를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늘 제대로 언급한 적이 없었던 ‘인간’이었을 때의 일을 이야기하자 칼라일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파악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최대한 내가 행복해 질수 있는 방향으로 이 상황의 해결책을 찾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아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고뇌하는 그의 생각이 벨라와 함께 할 수 있는 방향을 고려하는 것이라는 걸 읽은 나는 허공을 바라본 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인간이었을 때의 이야기를 꺼내자 누구보다 눈빛이 안타깝게 흐려진 에스미를 쳐다볼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를 떠날 결심을 흐리게 할 그 누구의 생각도 읽고 싶지 않았다. 


“흐릿한 기억 속에서 어린 나는 아버지-인간이었을 때의-와 사냥을 나갔어요. 그날은 햇빛이 유난히도 밝았죠. 그가 내게 소리치던 것도 기억이 나요. 그는 내게 웃으며 날이 좋으니 운이 좋으면 굴에서 막 나온 토끼를 잡아주겠다고 했죠. 그와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숲 속으로 들어갔고 나는 잔뜩 신이 난 채로 숲 속을 달리고 또 달렸어요. 그러다 숲 속 한 가운데서 나는 무언가를 발견했어요. 그건 울창한 나무 잎사귀 틈새로 내려온 빛을 받아 환한 숲속의 공터에 있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사슴이었어요. 그 사슴은 공터에서 도망가지 않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죠. 나는 숨이 막혀 와서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난 그 사슴이 너무 가지고 싶었죠. 그리고 한 발자국 다가간 순간 사슴이 놀라는 모습을 보고 무언가를 깨달았어요. 왜 도망가지 않는지. 사슴은 아버지가 다른 사냥꾼들과 함께 놓아 둔 덫에 걸려있었어요. 그 덫이 사슴의 자유를 속박하고 있었죠.”  


 가족들은 아직 내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 듯 했다. 그건 당연했다. 이제부터 시작이었으니. 나는 한숨을 내쉰 뒤 말을 이었다. 


“나는 그 사슴에게 다가갔어요. 도망 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건지, 아니면 어린 내가 무섭지 않았던 건지 사슴은 몸부림치지 않았죠. 그저 덫에 걸린 채 내가 다가서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었어요. 나는 용기를 내 사슴의 털을 쓰다듬었죠. 아직도 그 감촉이 기억나는 것 같아요. 그 느낌은 한 번에 나를 사로잡았죠. 그 사슴을 소유하고 싶다는 마음은 더 커져갔어요. 무언가를 본 사슴이 갑자기 놀라서 몸부림을 쳤어요.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아버지가 내 뒤로 다가와 있었어요. 그는 사슴과 함께 있는 나를 내려다보더니 속삭였어요.  

 ‘아직 너무 어린 녀석이구나.’  

 그는 그 어린 사슴을 놔주려고 하는 것 같았어요. 아버지의 생각을 알아차린 나는 어린 아이의 소유욕으로 안달이 난 상태였죠. 나는 그에게 사슴을 집으로 데려가자고 졸랐어요. 그 사슴을 가지게 해달라고. 아버지는 이 사슴은 숲에서 자랐기 때문에 우리가 기를 수 없다고 했고 나는 포기하지 않았죠. 난 내가 그 사슴을 기를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걸 알지 못했어요. 아니 알았는데도 가지고 싶은 마음에 계속 떼를 썼죠. 아버지는 무언가가 갖고 싶어도 그렇게 떼쓰는 법이 없었던 아들인 내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어요. 대신에 그는 말했죠.  
 ‘네가 책임을 질 수 있는지 보자꾸나.’
 나는 기쁨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어요. 사람들이 와서 사슴을 집으로 데려가는 것을 도와주었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나는 그 사슴 옆에 있었어요. 집에 데려가기 위해 사슴은 묶여있었지만 나는 행복했어요. 집에 가면 사슴을 묶은 줄 따위는 풀어버릴 작정이었으니까요.” 


 한 번 떠오른 어린 날의 기억은 너무나도 생생했다. 그리고 그 결과까지도 내 뇌리에 다시 또렷이 자리 잡았다. 나는 가족들이 내가 왜 이이야기를 꺼냈는지 아직도 의아해 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앨리스만이 내가 말하려 하는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이 표정이 굳어져있었다. 


“집으로 가자 우리를 기다리던 어머니는 사슴을 데려온 나를 보고 반대했어요. 그녀는 내 열망하는 태도를 보고 사슴을 원하는 것을 이해했지만 집에서 기르면 사슴이 살 수 없을 거라고 했죠. 그녀가 말했어요.  

‘네가 집에 사슴을 두려고 하면 네가 원하는 사슴은 자유를 잃게 될 거야, 그래도 좋으니? 게다가 집에는 사냥개가 있잖니.’  

 나는 그녀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린 나는 원하는 것이 생기자 주체 할 수가 없었고 사슴이 위험 할 지도 모른 다는 걸 알면서도 내가 지킬 수 있다고 고집을 부렸어요. 결국 부모님은 사슴을 집에 놓아두게 했죠. 정원에는 그 사슴을 위한 우리가 생겼어요. 나는 그날 내내 사슴의 우리 옆에서 사슴과 함께했어요. 난 그 사슴을 길들이길 원했죠. 그리고 저녁이 되어 나는 나를 집안으로 들어갔어요. 다음날 아침엔 일찍 일어나 사슴을 볼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 그날 밤 개 짖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어요. 사냥을 다녀와 피곤했던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냥 잠들어버렸죠. 어려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으니까요. 그 다음날 나는 늦게 눈을 떴죠.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어머니가 날 깨우러 오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며 아래층으로 내려갔어요. 부모님에게 아침 인사를 한 뒤 바로 사슴을 보러갈 생각이었죠. 그러다 나는 부모님이 대화하는 것을 듣게 됐어요. ‘에드워드에게 말하지 말아요. 사슴은 숲속에 묻어 두라고 존에게 이야기 했으니.’ 그 말을 듣고 나는 얼어붙었어요. 그리고 사슴이......” 


 이제야 그들은 이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이 기억을 이야기한 이유와 이 기억 속 사슴을 내가 누구와 동일시하고 있는지. 


“개에게 물려 죽었다는 것을 깨달았죠.” 


 목이 메었다. 


“단순히....... 내가 가지고 싶어 했기 때문에.” 


 말을 마친 내가 입을 다물자 형용할 수 없이 안타까워하고 있던 에스미가 열렬히 고개를 저으며 외쳤다. 


“에드워드,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칼라일의 평생, 아니 영원한 반려일 그녀는 동정심이 너무나 많았다. 그녀의 주체할 수 없는, 나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는 동정심에 의한 판단은 나에게 위안이 될지 몰라도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그녀를 사랑했다. 가족들은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칼라일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쩌다가 네가 이런 표정을 짓게 되었을까.” 


 그 저녁 칼라일은 병원으로 돌아가 병원을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앨리스는 제스퍼와 함께 데날리로 떠났고 나는 에스미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가족들을 뒤로한 채 내 방에 남았다. 그리고 조용히 벨라에게 건넬 가증스러운 거짓말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네가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진심을 모욕하는 가장 어리석은 거짓말을.
 


.
.
.


 시계 소리가 울려왔다. 나는 열기로 달아오른 광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나는 곧 벨라와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나를 위한 다른 세계는 아무것도 존재 하지 않을지도 몰랐지만. 나는 점점 평온해졌다. 만일 칼라일이 옳았다고 말 할 수 있게 된다면 찾아올 죽음은 내게 영원한 안식이자 축복이 될 것이다. 내게 그런 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면 그녀와 마주 할 수 있겠지. 어쩌면 나는 지옥으로 떨어질지도 몰랐지만. 나는 광장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사람들이 내게 눈을 돌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 목을 감아오는 누군가의 감촉도. 지나치게 평온하게 느끼던 탓이었을까. 고통은 없었다. 흐려지는 광장 앞에서 벨라가 보였다.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눈앞에 보이는 그녀의 환영에 나는 미소 지었다. 


 찾아온 어두운 안식도
 너와 함께라면 나쁘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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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lica watches 2010-03-22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Say you love me every waking moment,
당신이 깨어있는 모든 순간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해주세요.
Say you need me with you now and always
내가 당신과 항상 함께 있기를 원한다고 말해주기를
Say you love me.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너 없인 나도 살지 않을 생각이야」


4. 마지막 계절(떠나간 자에게는 아무것도 전해지지 않는다)  

 


 환상이 깨지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바닥을 내려다보자 머리가 왜 이렇게 아팠는지 깨달았다. 바닥에는 여기저기 핏자국이 묻어있었다. 방안이 피 냄새로 진동했기 때문에 속이 메스꺼웠고 머리가 아팠던 거였다. 시선을 천천히 돌려 내 손목을 바라보았다. 절망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칼을 집어 드는 내 모습이 스치고 지나갔다. 괴로워하던 찰리도. 나는 물끄러미 그것을 응시했다. 그건, 지금의 나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헤질 대로 해져서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피가 배어나올 것 같은 상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칼라일의 서늘한 손이 내 손목의 상처를 덮었다. 나는 차마 그의 얼굴을 올려다 볼 자신이 없어서 눈을 감아버렸다. 이제껏 현실을 외면해 왔듯이. ‘그날’로부터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에드워드가 없이 버틸 수 없었던 나는 그날의 기억을 지워버리고 에드워드의 환상에 미친 삶을 살았다. 그가 죽었다는 현실과, 그 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 모두의 곁에서 멀어지며 환상에 매달려온 비참한 시간. 그러나 내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시간을 보상해줄 유일한 ‘그’는 이제 내 곁에 없었다. 내가 그에 곁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나를 떠난 에드워드와 내가 죽었다는 말에 세상을 포기해버린 에드워드. 어느 쪽이 그의 진심이었는지 알 수 없는 채 보내는 나날은 차라리 살아있는 것이 지옥이었다. 


 너는, 죄책감이었을까. 


 누군가 내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나는 풍겨오는 향기에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앨리스.” 


 내가 고통스럽게 그녀의 이름을 입 밖에 냈다. 볼테라에서 이후 처음으로 불러보는 그녀의 이름. 그녀의 천사 같은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져 있던 그때 표정이 떠올라 나는 고개를 숙였다. 나는 속에서 뭔가 치밀어 올라오는 것을 꾹꾹 눌렀다. 


“벨라.”  


 그녀의 목소리에 조용한 슬픔이 담겨있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로 입술을 깨물었다. 


“나를 봐 벨라.” 


 고집을 부리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앨리스는 부드럽게 내 턱을 잡아 얼굴을 들어올렸다. 나는 그제야 그녀를 응시했다. 앨리스의 눈이 깊은 호소력을 담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벨라, 넌 우리에게 죄의식을 가질 이유가 없어. 이렇게 되어버린 건.......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네가 이러면 난 내 자신을 자책 할 수밖에 없어. 내가 그러길 원해?” 


 내가 그녀를 더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다시 떨어트리며 아니라는 뜻으로 머리를 휘젓자 칼라일과 앨리스 뒤에 서있던 제이콥이 불만스러운 신음을 터트렸다. 내가 앨리스에게 떳떳하지 못하는 것을 불만스러워 하는 듯 했다. 앨리스는 말을 잇기 전에 잠시 고통스러워했다.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서투른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겠지.”
“제발 그러지마.”
“에스미가 널 보고 싶어 해.” 


 앨리스가 내 팔을 부드럽게 잡아끌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돌리다가 칼라일과 눈이 마주쳤다. 칼라일이 섬세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 꼬리가 다정하게 휘었다. 그리고 다물고 있던 입술 가득 미소를 지어주었다. 


“에스미를 보러 가주겠니.” 


 그가 속삭였다. 


“나는, 에스미를 볼 면목이 없어요.” 


 내 말을 들은 앨리스가 나를 나무라듯 말했다. 


“에스미는 너를 탓하기 위해서 부르는 게 아니야 벨라. 그녀는 네가 행복해지길 바라고 있어. 너를 보지 못하면 에스미는 더 괴로워하겠지. 그녀는 네가 널 떠난 우리 가족을 용서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거야.” 


 칼라일이 손을 내밀었다. 내가 주저하듯 그 손을 마주 잡자 그가 나를 안아 올렸다. 


“그녀가 기뻐할 거다.” 


 나는 기운 없는 눈을 감았다. 제이콥이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내 손목의 상처를 보았을 것이다. 제이콥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생각에 또 다시 새로운 죄책감이 밀려왔다. 나를 안고 걷던 칼라일이 멈춰 섰다. 


“잠시 벨라를 데리고 다녀와도 괜찮겠습니까?”
“좋소.” 


 찰리가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너무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하고 있었다. 이제는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건지 생각하기도 싫어지기 시작했다. 잘못된 건 절벽에서 뛰어내려 원인을 만든 나 하나이니 나 혼자 죄책감에 시달리고 괴로워하면 되는 것을 내 곁에 있는 사람들도 나와 함께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오로지 나 때문에. 나는 다시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를 누르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나는 이제 차에 태워지고 있었다. 나를 뒷좌석에 태운 칼라일은 조용히 운전석으로 갔고 앨리스는 내 옆에 앉아있었다. 그녀는 나를 끌어안으려 했지만 나는 조용히 그녀를 밀어냈다. 앨리스가 상처 받는 표정을 짓는 것이 보였지만 나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들이 나를 감싸려고 할 때마다 나는 죄책감이 늘어갔기 때문에. 나는 바라볼 곳이 없어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달리는 차 밖으로 스쳐가는 먼 곳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흐린 회색빛이었다.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밖의 풍경은 계속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고 이제는 나무가 울창한, 눈에 익은 숲이 들어왔다. 저택은 여전히 그 속에 있었다. 전혀 달라진 것 없는 모습으로. 저택을 감싸던 음산한 넝쿨도 사라지고 저택에서는 환한 불빛만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조용히 차문을 열고 내렸다. 앨리스가 조심스럽게 내 어깨를 감싸 안고 현관문 앞으로 걸어갔다. 어느새 우리 앞에 서있는 칼라일이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마주하기 위해 꽉 다물고 있던 입을 떼었다. 집안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이 그들이 떠나기 전과 똑같았다.  


 그가 없다는 것을 제외하면. 


 거실에 있는 것은 에스미 혼자였다. 완전히 집 안으로 들어서자 그녀가 내게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자 다시 속에서 무언가 치밀고 올라왔다. 코가 시큰해지는 느낌에 나는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진실한 눈빛이 나를 응시했다. 그녀가 속삭였다. 


“벨라.” 


 그녀의 눈빛과 목소리에서 따스한 애정이 느껴졌다. 마치 내가 에드워드와 처음 이 집을 방문 했을 때처럼.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능력을 지닌 그녀는,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녀가 조심스레 내 손을 잡았다. 한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말을 할 수 없었을지도 몰랐다. 우리는, 서로에게 아픈 기억-그의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였으니까. 에스미는 조용히 속삭였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면 좋겠구나.” 


 그 말에서도 연상되는 얼굴에 심장이 욱신거렸다. 나는 눈을 돌려 그녀의 결 좋은 섬세한 갈색 머리칼을 바라보았다. 에스미가 다시 조심스럽게 잡았던 내 손을 놓았다. 손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고리의 느낌에 나는 손을 들어 올렸다. 


“아.” 


 내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링 위의 다이아몬드들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다이아들이 박힌 섬세하고 가는 금반지가 내 손에서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멍하게 반지를 내려다보던 내가 에스미를 쳐다보았다. 에스미는 잠시 조용한 눈길로 내 손에 있는 반지를 응시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언젠가 네 것이 되었을 물건이란다.”
“에스미, 전 이런 걸 받을 수 없어요.” 


 내 거절에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눈빛은 확신에 차 있었다. 에스미의 뒤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로잘리와 에밋이 우리 앞에 서있었다. 그 뒤로 제스퍼가 보였다. 그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소의 놀라움이 담긴 내 시선이 로잘리를 향했다. 그녀는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아니, 그건 네 거야. 에드워드가 너에게 주고 싶어 했던 거였어.”
“오래전부터.” 


 말을 마친 그녀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입술을 깨물며 시선을 돌렸다. 예전처럼 적대적인 태도가 아니었다. 나는 그녀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그가 나에게 주려고 했던 반지. 숨이 막혀왔다. 에드워드가 나에게 그 반지를 건네주는 영상이 머리에 스쳤다. 반짝이는 금색의 링이 그의 길고 단단한 손에서 넘어와 내 손에 자리 잡는 모습이. 눈앞이 흐려지고 코끝이 찡해졌다. 반지를 바라보며 말없이 밀려오는 고통을 참는 나를 에스미가 부드럽게 안았다. 나는 이들에게 사죄해야 했다. 내 경솔했던 지난날의 행동과 볼테라에서 그를 막지 못한 나. 그로 인한 에드워드의 죽음까지. 어렵게 뗀 입술이 떨렸다. 가까스로 할 말을 찾은 나는 속삭이듯 말했다.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그가 죽은 건 모두....... 난 이 반지를 받을 자격이 없어요. 나는 여러분의.......” 


 가족을 죽였다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에드워드의 죽음 이야기가 나오자 앨리스가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 것이 보였다. 로잘리의 절망적인 얼굴도. 에밋은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뒤에 서있는 재스퍼에게는 표정이 없었다. 천천히 시선을 돌려 다시 칼라일을 바라보았다. 그는 한없이 이해심 깊고 다정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그가 가장 아꼈던 아들을 죽였는데도.  


 그들은, 가족을 잃었다. 


 그 순간 마치 내 에스미가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말했다. 


“너 역시 우리 가족이야 벨라.” 


 에스미가 자격 없는 나에게 다정하게 속삭였다. 참을 수 없는 무엇이 계속해서 나를 쿡쿡 찔러댔다. 


“너 역시 고통스럽다는 걸 안단다. 어쩌면 가장 아픈 사람이 너 일거야.”
“에드워드. 이런 결과에 이르렀지만 그 아이는 자신의 방식대로 너를 사랑했어. 널 떠나갔던 건 모두 너를 행복하게 살게 하고 싶었던 에드워드의 선택이었단다. 우리의 마음도 모두 같아. 그 애가 선택한 너를 우리도 사랑한다.” 


 칼라일의 다정한 목소리에 그동안 얼어붙어 있던 눈이 풀린 듯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가 나를 사랑했다. 칼라일이 몸을 떨고 있는 나를 부드럽게 당겨 품에 안았다. 


“칼라일.. 나, 나는......”
“그 수많은 밤들을 나는....... 후회했어요. 그 절벽에서 발을 떼던 순간을 후회하고, 포크스로 오던 날을 후회하고 그리고 그 순간 그에게 달려가고 있던 순간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어요. 애초에 에드워드를 원했던 내가 잘못이었다고!” 


 나는 길 잃은 어린아이가 엄마 품을 찾듯이 칼라일을 끌어안았다. 눈앞의 초점이 흐려졌다. 나는 내 볼을 적시는 낯선 액체의 감촉을 느꼈다. 눈앞에 물이 차올라 흐려지는 것을 알고 나서야 나는 그게 눈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야 나는 내가 지금까지 참아왔던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의 정체를 알았다. 그것은 눈물이었다. 그를 죽음으로 몰았으니 눈물을 흘릴 자격조차 없다고 판단한 나 자신이 이제까지 억지로 억눌러왔던 눈물. 나는 그대로 어린아이처럼 칼라일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트렸다. 칼라일의 손이 조심스럽게 내 등을 쓸었다. 한 번 터진 울음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치 그동안 참아 왔던 것을 한 번에 터트리듯.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흐느낌과도 같은 속삭임이 새어나왔다. 


“내가 죽인 거예요. 그를....... 에드워드를........”
“넌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 네가 이러는 건 그 애가 원하는 게 아니란다.” 


 그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기억 속에서 억누르려고 하던 거짓된 내가 산산조각이 나서 참아왔던 진심이 눈물과 함께 흘러나왔다. 


“무엇이 그의 진심이었든. 나 에드워드를 원해요.......지금 그가 내 옆에 있기를 너무나도 원해요.”
“너는 그 아이가 백년을 살면서도 얻지 못했던 것을 주었어. 네가 없던 그 아이의 그 긴 시간이란 무의미했지. 빛이 존재하지 않고, 그 무엇도 없는 공허한 회색 같았던 그 애의 삶에 네가 나타났어. 에드워드는 너를 만나기 이전에도 긴 시간을 살았지만 그 시간들은 벨라, 너와 함께 했던 짧은 시간보다 무의미했단다.” 


 칼라일의 잔잔한 목소리에는 그 무엇에 비할 수 없는 강한 진심이 담겨 있었다. 이제는 정말 그를 놓아주어야했다. 내가 볼테라로 달려갔던 그날부터 절대 놓아 보내지 않았던 에드워드를. 나는 조용히 칼라일의 품에서 벗어났다. 나는 그들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에드워드의 방에, 가 봐도 될까요?” 


 에스미가 말 대신에 부드럽게 내 어깨를 감싸고 이끌었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그녀의 뒤에 서있던 로잘리의 앞을 지나 계단으로 향했다. 로잘리는 끝끝내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번뇌하는 그녀의 눈빛. 그러나 그녀를 괴롭혀가며 그녀의 심경을 들을 이유는 없었고 그녀에게 나는 그럴 자격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무의미해 질 것이다. 


 이제 곧 그들은 또다시 떠날 테니까. 


 내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오던 에스미는 어느 순간 내가 혼자 에드워드의 방 앞에 서도록 놓아두고 사라졌다. 에드워드의 방. 나는 호흡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 안에 에드워드가 있을 리가 없는데도. 나는 마치 그의 눈빛을 올려다보기 직전처럼 심장이 뛰었다.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당겼다. 방문은 스스럼없이 나를 맞아주듯 부드럽게 열렸다. 방안은 그대로였다. 에드워드가 나에게 처음 보여주었던 그날처럼. 나는 조심스럽게 방안으로 들어섰다. 방 한 가운데에 와서 서자 희미하게 그의 체취가 느껴졌다. 이제 얼마 있지 않아 이 희미한 향기조차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 향기의 근원은 이미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렸으니. 주인 없는 방에는 먼지가 쌓여갈 것이고 밖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유리벽은 흐려져 아무것도 투명함을 잃을 것이다. 다리가 힘없이 풀렸다. 에드워드의 방 한 가운데 주저앉자 눈에 눈물이 고여 왔다. 


 너 없인 나도 살지 않을 생각이야. 


 나를 떠났던 그는 말했다. 내가 자신 삶의 유일한 선택권인 것처럼. 그리고 잔인한 속삼임과 함께 나를 떠나가 버렸던 그는 정말로 내가 그의 삶에 유일한 선택권이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에드워드가 옆에 있다면 그의 얼굴을 단단히 붙잡고 똑똑히 외쳐주고 싶었다. 나도 그래. 나도 너를 잃고는 살아갈 수 없어. 그가 없이 홀로 살아 있는 나에게는 시간이 흐를수록 내 진심만 퇴화될 뿐이었다. 


 나는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너 없이.  


 에드워드가 나를 떠났던 동안에 수없이 찾아왔던 잔인한 악몽의 밤마다, 비명을 지르며 깨어날 때마다 끝없이 머릿속에 맴돌았던 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너는 나와 어울리지 않아. 


 어느 것이 그의 진심이었을까. 이제 내 기억 속에 파고들어 잔인한 울림으로 남아버린 에드워드의 말은 여전히 나를 괴롭게 했다. 내 머릿속에서 엇갈려 울리며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그의 두 목소리가 나를 미치게 했다. 눈 가득 차올랐던 눈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 손에 끼워진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 이제는 그가 나를 사랑했다는 그 어떤 증명보다도 그의 나에 대한 진심보다도 내게 지금 절실한 것은 에드워드였다. 그가 나를 떠났던 것은 중요치 않았다. 그의 입술이 움직이는 모습과 그 목소리. 그것을 너무나도 바란 내 마음이 만들어낸 그의 환영에 미친 시간을 보낼 만큼. 나를 미치게 했던 매력적인 입술이 지금 내 앞에서 나를 부르길 나는 너무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그에게서 나올 말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든 또다시 내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든. 이젠 내게 무의미해진 세계를 투영시키는 유리 창 밖에선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떨리는 입술의 틈새로 속삭임이 새어나왔다. 


“........돌아와.” 


 이제는 주체할 수 없어진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애써 눈물을 멈추려 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니 처음부터 눈물을 참을 이유 따위는 없었는지도 모른다.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눈이 흩날리는 밖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흐르고 흘러 홀로 남은 나를 퇴화시키고 갈 곳을 잃은 마음은 나를 서서히 미쳐가게 할 것이다. 


“에드워드.” 


 그렇게 그와 함께 했던 마지막 계절은 내리는 하얀 눈을 이별의 징표로 삼은 듯이 내게 끝을 고하고 떠나가 


.........다시는 내 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
.

사랑에 미쳐버린 마음의 끝자락을 잡고 나는 그대를 기다립니다.
그러니, 나의 사랑하는 그대여.
당신의 사랑을 바라다 미쳐버린 나에게
나의 다정한 연인 그대여.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다시 한 번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당신의 사랑을 원하고, 또 원해요.
처절하도록 아름다웠던 나의 연인.
Please tell me your true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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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 you love me every waking moment,
당신이 깨어있는 모든 순간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해주세요.
Say you need me with you now and always
내가 당신과 항상 함께 있기를 원한다고 말해주기를
Say you love me.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너 없인 나도 살지 않을 생각이야」

3. 연인의 시체 



 나는 그가 어디있는지도 모른 채 달리고 있었다. 어쩌면 나의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볼테라의 광장에서. 턱 끝까지 숨이 차올랐다. 내 입은 계속해서 에드워드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지만 숨이 차서 그 외침은 소리가 되어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비행기를 타고 앨리스와 함께 볼테라까지 오면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애써 꾹꾹 눌러두었던 절망이 스멀스멀 피어올라 나를 잠식해가기 시작했다. 사람을 밀치고 나가는 내 팔에 점점 힘이 떨어졌다. 나는 이를 악물고 힘이 빠져나가는 팔을 억지로 움직여 사람들을 헤치고 달렸다. 다리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기뻐하며 서로 떠들어 대고 있는 인파를 밀쳐내는 것은 어려웠다. 여기저기서 짜증이 섞인 불평이 튀어나왔지만 나는 물론 알아듣지 못했다. 아무도 쉽게 길을 터주지 않았다. 광장에 모인 수많은 인파 중에 내 다급한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으니. 지금 이 순간에도 에드워드는 햇빛을 향해 다가가고 있을지 몰랐다.  


 시계가 광장에 큰소리로 첫 비명을 질렀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큰소리로 울음을 터트리고 싶어졌다. 시계 종소리는 내게 닥칠 비극을 예고하듯이 처절하게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시계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기쁨의 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가 어디에서 빛으로 걸어 나올지 알 수 없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그를 발견하고 놀라서 지를 비명이 들려오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날 테니까. 미친 듯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달리던 나는 무언가에 걸려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넘어진 통증보다도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바닥을 짚은 순간 시계가 두 번째 종을 쳤다. 모든 것이 끝난 느낌이 들었다. 이제 어디서 비명이 들려올지 몰랐다. 그와 나의 끝이 시작됨을 고해줄 비명. 나는 다시 이를 악물었다. 바닥을 짚고 일어서는 손에서 무언가 찢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약한 손 근육이 찢어진 듯 했다. 순간 그 시끄러운 종소리 속에서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Signorina. Vuoi una mano?(도움이 필요한가, 아가씨?)” 


 이상하게도 낯설게 느껴지는 중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 이탈리아 말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기에 나는 그저 손을 휘 저으며 그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지나쳤다. 몸을 세우고 움직이자 다시 추락하기 직전의 불안감이 시작되었다. 아직도 종소리는 울려 퍼지고 있었고 곧 세 번째 종이 칠 순간이었다. 이상하게 주위가 정지되어 보였다. 순간 미친 듯이 뛰던 심장이 멈추었다. 사람들이 움직이는 저 너머의 무언가가 희미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내 목에서 비명이 새어나가고, 내 다리가 그리로 움직이기 전에. 


 먼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는 눈을 감은 채 햇빛 아래에 서있었다. 나는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며 그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내 비명과 그의 이름을 부르는 외침은 사람들의 환호성 속에 묻혔다. 축제의 열기 속에 아무것도 모르는 군중은 그의 피부가 반짝거리는 것이 그저 축제의 볼거리, 이벤트중 하나인 것처럼 생각하는 듯 했다. 그와의 거리는 너무나도 멀었다. 반짝임은 아주 잠시였다. 조금만 더 달리면 그에게 손을 뻗을 수 있을 만큼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에드워드의 등 뒤 그늘 속에서 손이 뻗어 나와 그를 끌어 당겼다. 


“안 돼... 안 돼! 안.....” 


 내가 에드워드에게 뛰어들려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붙잡았다. 거역 할 수 없는 강한 힘. 내 팔이 뒤로 꺾이고 내 목에서는 억눌린 비명이 새어나왔다. 누군가 내 뒤에서 나를 잡고 있었다. 


“방해 하지마라.” 


 내 귀에 소름끼치는 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순간 경직되었다. 순간적인 예감이 찾아왔다. 볼투리가. 그들 중 하나일 것이다. 다음 순간 나는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내가 붙잡힌 사실 보다 내 눈에는 오로지 앞의 에드워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짙은 그늘 속에서 뻗어 나온 하얀 손은 에드워드의 목을 가볍게 감싸 쥐었다. 그리고 내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그 하얀 손이 가볍게 옆으로 꺾였다. 소름끼치도록 가벼운 움직임. 안 돼. 멈춰. 나도 모르게 숨이 크게 들이쉬어졌다. 에드워드가 눈을 떴다. 그의 고개가 옆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그의 머리가 옆으로 숙여지는 모습이 느리게 느껴졌다. 나는 내 뒤의 ‘그’에게 붙잡힌 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숙여지는 그의 얼굴이 군중을 향했다. 에드워드는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나에게서 내 것이라고는 생각 되지 않는 무시무시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다음 순간 에드워드와 내 눈이 마주쳤다.  


 나를 알아본 에드워드의 눈이 커졌다. 


 그 찰나의 순간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마치 영원히 마지막 작별을 하기 전 순간을 머릿속에서 잊지 않으려고 새기는 것처럼. 에드워드의 커진 눈은 누군가에게 붙들려있는 나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것도 잠시 에드워드는 내가 소리쳐 부르는 소리를 못 들은 건지 뒤에 누군가에게 의지한 채 축 늘어졌다. 에드워드를 뒤에서 끌어안은 남자가 그늘 속에 선 채 군중에게 무대 인사를 하듯 팔을 호를 그리며 휘 저어 인사를 하는 것이 보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즐거워하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의 죽음 앞에서 사람들의 무수한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지는 끔찍한 광경을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에드워드를 붙잡은 그가 에드워드를 끌고 그늘 속으로 사라졌다. 


 안 돼.
 에드워드. 


 박수를 치던 군중은 이내 시계 소리가 다시 한 번 울리자 그늘 속으로 사라진 그들에게 흥미를 잃고 흩어져 시계탑을 향했다. 순간 내 뒤에서 나를 잡고 있던 손이 나를 놓아주었다. 나는 에드워드의 마지막 모습에 두려움에 질려 아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늘 속으로 미친 듯이 달려갔다. 환한 빛 속에서 그늘로 뛰어든 나는 그 어두운 길속을 달렸다. 숨이 차올랐지만 멈출 수 없었다. 늦지 않길. 제발, 제발. 부탁이에요. 나는 속으로 누구에겐가 미친 듯이 빌기 시작했다. 어둠속에서 어슴푸레하게 누군가의 형체가 보였다. 나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둠 속에 서있던 낯선 그가 조용히 나를 향해 돌아섰다. 나는 시선을 천천히 아래로 떨어트렸다. 그리고 에드워드.  


 아니, 그 것도 거기 있었다.

 에드워드였던 조각들이.  


 모든 사고가 정지했다.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보고 싶지 않아. 어둠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꽤 아까운 녀석이었는데. 바보 같은 짓을 해버렸잖아. 저게 그 인간 여자야?”
“그런 것 같습니다.” 


 누가 이야기 하는 건지 파악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더 말을 했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싫어. 산소가 돌지 않아 눈앞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비명소리 조차 나오지 않았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절망이 나를 덮쳐왔다. 그를 살리기 위해서 포크스에서 볼테라까지 날아와 여기 서있는 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꿈이어야 할 것 같은 모든 것. 나는 더 이상 ‘그’를 바라보고 있을 자신이 없어졌다.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에드워드. 모든 것이 한순간에 끝나버렸다. 


“벨라!” 


 나는 돌아섰다. 초점 없는 눈으로 앨리스를 응시했다. 흐릿하게 그녀의 형체가 보였다. 내 입술이 속삭였다. 


“앨리스, 네가 틀렸어.”
“나는......... 에드워드를 구할 수 없었어.” 


 ‘그’를 발견한 앨리스가 소름이 끼치는 비명을 질렀다. 나는 마지막으로 눈이 감겨오는 것을 느꼈다. 죽어버려, 이사벨라 스완. 내 머릿속의 무엇이 나에게 그렇게 외쳤다. 그것은 끊임없이 네가 에드워드를 죽였다고 외쳐댔다. 


 살인자. 


 네가 죽인거야. 모두 네 탓이야. 나는 그대로 영원히 어둠 속으로 추락했다. 할 수만 있다면 제발 이대로 영원히 눈을 뜨지 말아버려라. 눈이 완전히 감기는 그 순간 까지 나는 그대로 내 숨이 끊어지기를 간절히 바랬다. 


네가 없인 나도 살지 않을 생각이야.
너와 나는 어울리지 않아. 


 이제 영영 알 수 없는 그의 진심이 나를 아프게 했다. 에드워드는 그렇게 쉽게 목숨을 버려서는 안됐다. 날 떠난 그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을 나 때문에. 누가 갑자기 나를 잡아당긴 것처럼 몸이 확 끌려갔다. 앨리스가 아닌 누군가 나를 데려가려는 듯 했지만 그래도 나는 아무것도 상관이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에드워드의 목소리가 뒤엉켜 울리고 있었다. 


 벨라, 나는 너랑 가기 싫다.
 어리석은 짓, 무모한 짓은 절대로 하지 마.
 나 같은 존재들은 딴 데 정신을 팔기 쉽거든.
 너 자신을 지켜야해. 


 잘 있어 벨라. 


 에드워드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앨리스의 분노에 찬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에게 손대지마! 한껏 날카로운 목소리의 앨리스가 그렇게 외쳤다. 안 돼 앨리스. 도망쳐. 의지를 상실한 내 목소리는 내 머릿속에서만 맴돌았다. 나 같은 애 때문에 그녀까지 다쳐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녀를 막아야 했지만 난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머릿속에 뜨거운 열기가 맴돌았다. 내 머리 곳곳을 스치고 다니는 열기는 에드워드의 목소리를 들려주기도 했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들려주기도 했다. 제일 끔찍했던 순간은 앨리스의 흐느낌이 들려왔을 때였다. 나를 안고 있는 그녀는 숨죽여 절망을 토해내고 있었다. 팔이 계속해서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그녀는 계속해서 몸을 덜덜 떨며 흐느낌과도 같이 에드워드의 이름을 불렀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그녀가 맹렬하게 소리쳤다. 


‘그렇다면 그의 시체라도 데려갈 거예요!’
‘당신들 중 그 누구도 우릴 막을 수는 없을 겁니다.’  


 누군가와 격렬하게 말다툼을 하고 있는 칼라일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는 누군가를 거세게 비난하고 있었다. 그렇게 화를 내는 칼라일의 목소리는 처음 듣는 것 만 같았다. 그리고 이내 그것도 흐려지고 이제는 제이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지마. 나 너를 사랑해. 제이콥이 속삭였다. 곁에 있는 것처럼 선명하게 들리던 그의 목소리도 이내 사라지고 머릿속에 희미한 영상이 떠올랐다. 안개 너머 뭔가가 어렴풋이 보였고 나는 그것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댔다. 그리고 내가 넘어진 바람에 안개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을 막지 못했다. 비명소리가 울렸다.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나는 그 너머를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앨리스가 무언가를 끌어안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위로해야만 했다. 일어나기 위해 손을 짚었지만 누군가가 나를 누르며 붙잡고 있었다. 나를 붙잡은 누군가의 목소리가 나에게 속삭였다. 


‘방해하지 마라.’  


 나는 계속 몸부림을 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를 누르던 그는 어느새 족쇄로 변해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채우고 있었다. 내가 비명을 지르듯이 에드워드를 불렀다. 


‘에드워드!’ 


 무언가를 안고 있던 앨리스의 얼굴이 에스미로 바뀌었다. 그녀의 얼굴은 절망에 빠져 있었다. 나는 이제 그녀가 품에 안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였다. ‘그것’은 에드워드였다. 부서진 에드워드가 에스미의 품에 안겨있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눈을 뜨자 칼라일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조용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멍하게 그를 쳐다만 보았다. 어느 게 꿈이고 현실이었는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 여러 가지 영상들이 뒤엉켰다. 지금 내 앞에 칼라일이 서있는 것 또한 현실인지 알 수가 없었다. 모든 게 꿈인가? 좀 더 정신이 또렷해지자 우리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칼라일이 나를 안아들고 걷고 있었다. 칼라일이 나직하게 속삭였다. 


“모든 게 끝났다. 넌 이제 안전하단다.” 


 끝. 모든게. 완전히 정신이 들었다.  


 에드워드! 


“에드워드는요? 그건 에드워드가 아니었어요..... 칼라일 제발 그를 찾아줘요! 나 에드워드를 막아야 해요. 분명 어딘가에 그가......”
“벨라.” 


 침착한 앨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목소리는 무의식 속에서 들었던 떨리는 목소리와 다르게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 또 그래서 어색했다. 마치 속에서 몇 번이고 거르고 걸러내 아무런 감정이 없어지게 된 것처럼 차분한 목소리. 그녀가 속삭였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에드워드는 없어 벨라.” 
“그가, 없다고?” 

 심장이 내려앉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의식에 빠져 잊으려 하던 현실은 다시 차갑게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시 눈을 감고 싶어졌다. 내게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현실을 일깨워준 앨리스가 고개를 숙였다. 앨리스는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상처 입은 그녀의 표정에 나 또한 상처를 입는 게 싫은 것인지 아니면 나를 보기가 싫은 것인지 어느 쪽이든 앨리스는 자신의 얼굴을 보이기 싫은 듯 했다. 단순히 평소에 기운 없어 보이는 것 그 이상으로 그녀의 숙여진 머리는 나를 미치게 만들 만큼 애처로웠다. 그녀가 고통을 참는 듯 흐려진 발음으로 내게 말했다. 


“그래도 난 널 사랑할거야, 벨라.” 


 그걸로 내게 면죄부가 주어질 수는 없었다. 모든 상황이 명료하게 머릿속에 펼쳐졌다. 정신을 잃고 열에 들떠있는 상태에서 들었던 대화들이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갔다. 칼라일이 나를 구하기 위해 볼투리가를 만나러 온 것이다. 앨리스와 칼라일은 그들과 싸웠다. 에드워드 때문에, 그리고 또 그들로부터 나를 구하기 위해서. 아무런 자격도 없는 나를 위해 자신들이 위험에 빠지는 것을 무릅쓰고. 그리고.... 에드워드는 더 이상 없었다. 이것이 모든 상황의 결론이었다. 말없이 나를 안고 있는 칼라일을 쳐다본 나는 처음으로 칼라일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내가 올려다보는 것을 느끼자 표정을 감추려 애썼다. 나는 그것이 더 고통스러웠다. 나를 바닥에 내 던지고 욕을 해주면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살인자’라고. 내가 그를 죽였으니까. 


“에드워드는....... 이건 그 아이의 선택이었단다. 괴로워하지 마라.” 


 위로를 받을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나를 진정시키려는 칼라일의 한없이 깊은 눈동자에서 나는 절망을 읽었다. 한 마디 한 마디 꺼내는 그의 모습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워 보여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에드워드의 모습을 본 순간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진 마음을 추스를 수가 없었지만 더 따듯한 위로를 바란다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용서를 구하지도 못했다. 내 죄는 용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나를 위해서 고통을 숨기는 그들 앞에서 울 수도 없었다. 정말로 모든 게 끝난 것이다. 칼라일은 나를 욕해주기에는 너무나도 동정심이 많았다. 칼라일이 나를 안고 걷는 거리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시리도록 차가운 그것은 에드워드의 흔적을 지워버리려는 듯이 수 없이 내려와 거리에 쌓이기 시작했다. 뱀파이어의 피부처럼 매끄럽게 반짝이고 하얀 차가운 눈. 지금 이 순간 거리를 덮어가는 하얀색마저도 그를 생각나게 해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잔인한 현실을 마주보게 하는 내 눈을 덮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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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 you love me every waking moment,
당신이 깨어있는 모든 순간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해주세요.
Say you need me with you now and always
내가 당신과 항상 함께 있기를 원한다고 말해주기를
Say you love me.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너 없인 나도 살지 않을 생각이야」

 

2. 피 묻은 기억


 침대 밑을 확인해 보았다. 책상 밑도 보았고 문 뒤도 살폈다. 어디에도 그가 없었다. 나를 미치게 할 듯이 몰려오는 절박한 불안감에 나는 이제 거의 어린애처럼 울먹거리고 있었다. 정말 에드워드가 내 옷장 속에 숨어 있을 것만 같았다. 밤에 그가 나를 찾아올 때 찰리가 나를 감시하러 올라올 때 늘 그랬듯이. 아니, 그래야만 했다. 제이콥과 대화를 나누고 난 뒤 나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내 방문을 잠가 놓은 채 에드워드를 찾았다. 어쩌면 에드워드는 잠시 집에 돌아간 걸지도 몰랐지만 마치 내가 벼랑 끝에 서있는 것처럼 맥박이 빠르게 뛰고 심장 박동이 높아졌다. 그 순간. 


“벨라.”
“에드워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나를 미칠 만큼 불안하게 만든, 사라졌던 에드워드가 다시 내 앞에 서있었다. 나는 큰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며 몸을 던지듯이 안겼다. 도대체 어디 갔었는지 왜 말도 없이 사라진 건지 머릿속을 맴도는 말들이 많았지만 그가 내 앞에 서있다는 그 존재 자체가 너무나도 소중해서, 매일 보는 그인데도 이상하게도 소중해서 에드워드를 힘주어 끌어안았다. 


“나의 벨라, 내 생명....... 뭘 두려워하고 있는 거야? 떨고 있잖아.” 


 에드워드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내가 떨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갑자기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에드워드를 찾았었다는 것 외에는. 나는 그저 에드워드를 안고 있다는 만족감에 미소 지었다. 


“모르겠어. 나도. 갑자기 너를 보니까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아. 그런데 나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 네가 필요해서 갈증이 나는 것처럼. 대체 어딜 갔던 거야? 내가 너에게 갈증을 느끼다니 참 웃기지?” 


 에드워드는 소리 없이 웃었다. 아래층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제이콥이 찰리와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오려는 제이콥을 찰리가 막고 있는 듯 했다. 그 다투는 소리에 의아해 하고 있는 찰나, 다음순간 찰리가 소리쳐 부른 이름에 나는 나도 모르게 경직되었다. 


“앨리스!” 


 순간 맥박이 빨라졌다. 만나면 안 돼. 내 머릿속의 일부분이 나에게 차갑게 경고하고 있었다. 나는 그 말을 따라야 할 것 같은 절실한 기분이 들었다. 에드워드가 옆에 있는데 그와 함께하고 있는 시간에 끼어드는 다른 무엇은 성가셨고, 또 불안했다. 나는 에드워드의 품을 더 파고들었다. 에드워드가 나를 어루만지는 서늘한 손길이 느껴졌다. 


“아무것도 듣지 마. 벨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워드는 더욱 부드럽게 나를 감싸 안았다. 나는 그가 내 옆에 있는 데도 마치 세상이 무너지기 직전처럼 느껴지는 불안감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칼라일과 함께 왔어요. 벨라는 괜찮아요?”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지만 아무도 나를 배려해주고 싶은 사람은 없는 듯, 아래층에 있는 그들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매일 밤 비명을 지르면서 깨어나. 심각 하지 않을 때는 그저 울면서 몸부림치고 나도 죽여 달라고 소리 지르다 기절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이제는 그것도 아니야. 깨어나자마자 제정신이 아닌 눈으로 칼부터 찾는단 말이다. 사람 몸이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는 거야. 저렇게 하루건너 하루 손목을 긋다간 우리 애는 죽고말거야. 앨리스 제발 어떻게 좀 해 보거라. 부탁이다. 오늘 새벽만 해도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잠옷 바람으로 계단을 달려 내려가더니 내가 현관에서 붙잡자 에드워드를 만나러 가겠다고 했어. 참다못한 내가 그 애는 죽었다고 하자 손목의 상처를 물어뜯었어!”
“찰리, 제발 진정해요.”
“벨라를 자극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이제는 칼라일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끔찍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누가 죽었다고 하는 건지 머릿속이 굳은 것처럼 멍해졌다. 나는 에드워드를 더 세게 끌어안기 위해 팔을 뻗었지만 내 팔은 허공을 갈랐을 뿐이었다. 고개를 들자 나는 내 방 바닥에 홀로 남겨져 있었다. 에드워드가 또다시 사라졌다. 밀려오는 절망감에 나는 몸을 웅크렸다. 그는 다시 돌아올 거야. 나는 내 팔을 들어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마치 나 자신을 안아주려는 것처럼. 나 혼자 남겨져 비어있는 방안이 너무나 끔찍했다. 내 목에서 나도 모르게 비명이 새어나갔다. 


“아아아악!”
“젠장, 벨라!”     

  내 비명을 들은 제이콥이 욕설을 내뱉으며 계단을 뛰어 올라오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나는 점점 다가오는 그를 거부하듯이 비명을 질러댔다. 내 비명이 길게 이어지자 내 방문 앞에 선 제이콥이 미친 듯이 문손잡이를 돌리기 시작했다. 잠겨있는 손잡이가 나를 대신해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았다. 오지 마. 내가 중얼거렸다.  


“벨라 문 열어!” 


 제이콥이 고함을 질러댔다. 나는 내 몸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내 목에서는 나도 주체 할 수 없는 비명이 끊임없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제이콥이 누군가에게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그러자 계속해서 내 방 문을 두드리고 있는 제이콥에게 집어치우라고 소리치는 앨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목소리를 듣자 제이콥이 문을 두드릴 때 보다 더 크게 움찔했다. 이제는 내 방문을 부셔버릴 듯 한 기세의 제이콥을 저지하는 칼라일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제이콥 블랙!”
“나보고 어떻게 더 기다리라는 거야? 미쳐가는 그녀를 보고 더 참아내라고? 정말 미친 건 너희들이다! 대체 그녀를 붙잡고 뭘 하는 거야? 그녀석이 살아있으니 안심하라고 세뇌라도 시키고 있는 건가? 그러면 벨라가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난 더 이상 네 놈들의 더러운 자기만족에 맞춰줄 생각 따위 없어!” 


 속에서부터 나오는 뼈아픈 절망을 토해내듯 제이콥이 고통스럽게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가 그렇게 고통스러웠는데도 나는 그에 대한 걱정보다는 내 방문 밖에 있는 그들이 내게 전해줄 말이 너무나도 듣기가 싫었다. 마치 무서운 것이 들어있는 방문 앞에 서서 문을 열기 두려워하는 아이처럼. 깊은 바다 속으로 추락하기 직전의 불안한 느낌. 제발 누가 그의 입을 막아줘! 


“그 흡혈귀 자식이 죽어버린 지 벌써 한 달이 지났어!” 


 제이콥이 결국 입 밖으로 내버린 말. 심장이 내려앉고, 구역질이 났다. 혼수상태에 들어가기 직전처럼 머리가 빙빙 돌기 시작했다. 거짓말! 내 머릿속에선 맹렬하게 그의 말을 거부하고 있었다. 뱃속에 있는 모든 것을 게워낼 것만 같았다. 


“이사벨라 마리 스완!”

 그만해. 제발. 


 내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더 이상 내게 일깨워 주지 마. 아무 것도 듣고 싶지 않았지만 그 누구도 내 거부를 알아듣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내 심장을 조각조각 찢어내는 듯 한 잔인한 울림은 계속해서 들려왔다. 마치 내 심장이 조각나 사라지게 만들 것을 작정한 것처럼. 나는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귀를 틀어막았다. 그러나 계속해서 들려오는 제이콥의 목소리는 머릿속에 남아있는 에드워드의 잔상을 흐릿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그의 마지막 조각마저 부서지기 직전 내가 또다시 비명을 질렀다. 


“언제까지 흔적도 없이 죽어 없어진 존재를 붙잡고 늘어지려는 거야? 네가 그 자식을 위해 존재했어!”
“이렇게 구는 건 벨라에게 더 좋지 않아. 자네는 돌아가게.” 


 제이콥을 설득하는 칼라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이제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내 입에서는 사람의 것이 아닌 듯 한 소름 끼치는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심장에서부터 절망에 미어지다 못해 쥐어 짜낸 듯이 새어나오는 신음 같은 고통스러운 흐느낌.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널 기다려. 

 
 문 밖의 제이콥은 칼라일과 앨리스에게 저지당하면서도 또렷하게 ‘그’의 죽음을 소리쳤다. 알고 있어. 나도 알고 있어. 모든 것이 서서히 기억나기 시작했다. 나는 혼자였다. 그리고 혼자 남겨졌던 매 순간을 원망하고 또 저주했다. 제이콥이 분노를 이기지 못해 지르는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콰아앙 

 제이콥이 문을 걷어차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낡은 문의 잠금 쇠는 제이콥의 힘을 버텨낼 수 없었던 듯 했다. 그의 바로 뒤에는 칼라일과 앨리스가 서있었다. 그의 손에 들려진 검은 진료 가방이 보였다. 앨리스의 절망적인 눈과 마주친 순간, 나는 웃기 시작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명료해지고 머릿속에 새로운 깨달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지금까지 내가 애써 피하려고 했을 사실. 내게는 그 어느 독보다 치명적인 사실. 절망에 빠진 앨리스의 눈과 칼라일의 나를 바라보는 안타까움 그 이상을 담고 있는 시선. 그리고 제이콥의 분노. 모든 것이 내가 애써 망각하려 했던 것을 또렷하게 상기시키고 있었다. 

 나는 미쳐가고 있었다.그의 죽음 뒤에. 


 나는 더 이상 나에 대한 동정이 담긴 시선으로 쳐다보는 칼라일과 앨리스를 바라볼 수가 없어 고개를 떨어뜨렸다. 나는 그들의 동정을 받을 자격이 없었다. 또 이제 나는 그들의 가족도 아니었다. 한 때 나를 가족으로 따듯하게 맞아주었던 그들에게 나는 컬렌가의 소중한 일원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끔찍한 여자아이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왜 아직까지 컬렌 가족이 나를 버리지 않는지 이상했다. 내게는 더 이상 내가 특별할 그 어느 이유도 없는데. 에드워드가 없으니까. 내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컬렌 가족을 포함해서 제이콥, 찰리까지 모두 나를 떠나야 마땅했다. 나는 살인자나 다름없었으니까. 절벽에서 뛰어내린 그 시간에 대한 후회가 눈을 뜨고 있는 매 순간마다 찾아왔다.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그 어느 작가의 것보다 끔찍한 비극 속의 주인공이 되어 지독한 자기 연민과 끝없는 기다림 속에서 지쳐가며 결코 되돌아오지 않을 사랑에 미쳐가는 나뿐이었다. 머릿속에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더 이상 나를 주체 할 수 없게 된 나는 그동안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끔찍한 기억이 내 머릿속을 마음대로 헤집고 다니며 그때의 잔혹한 영상을 다시 펼치도록 놔두었다. 아직도 떠올리기만 하면 눈에 선한, 애써 거부하려고 했던 잔인한 그날의 피 묻은 기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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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ease tell me your true heart


Say you love me every waking moment,
당신이 깨어있는 모든 순간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해주세요.
Say you need me with you now and always
내가 당신과 항상 함께 있기를 원한다고 말해주기를
Say you love me.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너 없인 나도 살지 않을 생각이야」


1. 환영의 시간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나는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개를 들자 햇살에 눈부셨다. 온전히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자 나는 내 방 창가 앞에 멍하게 서있었다.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내가 뭘 하고 있었지? 


 갑자기 손이 무언가에 눌린 듯 아픈 것이 느껴졌다. 손을 들어보자 내 손에는 여행 가방과 여권이 꽉 쥐어져 있었다. 나는 내가 필요 이상으로 그것들을 꽉 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다소 놀라 손을 폈다. 한참을 그렇게 손에 꽉 쥐고 있었던 듯이 손에서 극심하게 눌린 통증이 느껴졌다. 내가 왜 이 아침에 여행가방과 여권을 쥐고 있었는지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잠깐. 뭔가 급한 일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머릿속이 빙빙 돌았다. 눈앞에 현기증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눈앞이 흐릿했다. 미칠 것만 같은 불안감이 내 머릿속을 휩쓸고 다녔다. 나는 금방이라도 어디로 떠나야 할 듯 한 느낌에 사로 잡혔다. 도대체 내가 할 급한 일이 뭐였지? 


“벨라.” 


 내 뒤에서 나지막하게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익숙한 목소리에 미소 지으며 뒤돌아 그의 이름을 불렀다. 


“에드워드!” 


 에드워드가 내가 사랑하는 삐딱한 미소를 지으며 팔을 벌렸다. 이상하게 장난기가 어려 있는 그의 모습에 달려가 안기려다 말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모습은 왠지 어딘가 어색했다. 내가 찬찬히 그를 뜯어보듯 쳐다보기만 하자 에드워드가 성큼 다가와 나를 끌어안았다. 그를 마주 안고 체취를 들이 마시려는 순간. 


“차가워!” 


 내가 급하게 떨어지며 꽥 소리를 지르자 에드워드가 나를 자기 품으로 다시 끌어당기며 장난스럽게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그의 완력에 끌려가지 않으려 최대한 발버둥을 쳤지만 어차피 힘의 차이만 처절하게 다시 재확인 할 뿐이었다. 윽. 나는 다시 다가오는 차가움에 눈을 꽉 감았다. 그가 입고 있던 재킷 안에는 차가운 눈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그는 나를 안고 자신의 짓궂은 장난이 성공한 것이 즐거운 듯 계속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이걸 하고 싶어서 나보고 안기라고 한 거야?” 


 투덜대듯 말했지만 에드워드의 품에서 그의 웃고 있는 얼굴을 올려다보는 순간 불평은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다정한 황금빛 눈동자가 웃음기를 가득 담은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이런 모습이 가장 좋았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것을 안고 있다는 표정. 에드워드가 이런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볼 때면 나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고 말았다. 이런 사실을 에드워드가 모르고 있다는 것은 내게 정말 다행이었다. 그는 아주 재미있다고 생각할 테니 말이다. 내가 그에겐 난처한 뭔가를 고집스럽게 원할 때마다 키스로 나를 아무 말도 못하게 만드는 것 외에, 더 이상 그에게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들 구실을 만들어 줄 수는 없었다.   


“이 눈은 어디서 난거야?” 


 에드워드는 생각만 해도 즐겁다는 듯이 소리 내어 웃으며 내 귓가에 노래하듯 속삭였다. 


“제이콥과 눈싸움을 했어. 그 녀석이 에밋과 내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제대로 나가 떨어졌지.”
“제이콥과 눈싸움을 했다고? 에드워드? 네가?”  


 내가 큰소리로 되묻자 에드워드는 장난기 다분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지나치게 기분이 좋아보였다. 놀란 내 눈이 크게 확대되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제이콥이, 아니 에드워드가, 아니 제이콥이 컬렌가와 눈싸움을 하다니! 그리고 제이콥과 뭔가를 하고 나서 에드워드가 이렇게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갑자기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둘이 말다툼 아닌 뭔가를 했다는 그게 눈 ‘싸움’이었다면. 내 머릿속에는 제이콥이 에밋의 단단한 팔에 맞아 눈밭에 나가떨어지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정확히 표현하면 그건 눈싸움이 아니라 ‘눈밭에서의 싸움’이 되겠지만.
  

 오, 하느님 맙소사. 그를 살려주세요! 


“벨라, 벨라. 너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내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는지 에드워드가 내 얼굴을 양손으로 꽉 잡고 웃음을 터트리며 물었다.
 

“내가 그 개를 눈 속에 영원히 파묻어 버리기라도 했을까봐 겁내는 거야?”
“그럼 그러니까 네 말은, 그게..... 아니란 말이야?”
“네 생각은 정말 못 말리겠어.” 


 에드워드가 너무 유쾌하게 웃고 있어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넌, 넌 어제만 해도 제이콥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아니, 어제였던가? 갑자기 머릿속이 멍해졌다. 분명 언제 제이콥이 에드워드와 사이가 안 좋았는데. 아니, 적어도 제이콥은 에드워드를 싫어했던 것 같았다. 제이콥이 에드워드를 비난하는 소리가 머릿속에 들려오는 듯 했다.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마치 기억의 한 부분이 날아간 것처럼 머릿속 일부분이 빈 듯 한, 머리에 열기가 돌고 있는 느낌이었다. 에드워드는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표정이면서도 짐짓 진지한 말투로 대답했다. 


“널 지치게 만들 수는 없잖아, 벨라.” 


 어찌 되었든 서로 좋아할 수 있을 리 없는 그들이 서로 더 이상 으르렁대지 않는 이 상황을 어른스럽다고 표현 하는 게 맞는다면, 그 둘은 ‘정말로’ 서로에게 어른스러워 지기로 한 것 같았다. 아무렴 어때. 지금 순간을 즐겨, 네가 원하던 거잖아. 상황을 단순하게 정리하고 싶어진 내 머릿속의 한 부분이 내게 외쳤다. 나는 갑자기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기 싫어졌다. 나는 거세게 밀려오는 행복감에 웃음을 터트리며 여전히 눈으로 축축해진 그의 가슴에 머리를 묻었다.  


“고양이와 개가 친해지다니!”
“사자와 개라고 해두자.”
“그래, 그래. 아무렴 어때.” 


 에드워드가 불만스럽게 중얼거렸지만 난 그저 그에게 안겨있는 순간이 행복했다. 에드워드만이 가진 채취를 들이마시고 나를 죄어오는 팔의 압박감에 행복해하는 이 순간이 너무나도 소중했다. 마치 사막에서 오랫동안 해매이던 사람이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달디 단 이 시간. 마음껏 행복감에 젖어있던  나에게 창문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당연 불청객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대답이 없자 그 목소리는 다시 한 번 들려왔다. 


“벨라!” 

 
 늘 듣던 목소리임에도 불구하고 낯설게 느껴지는 제이콥의 목소리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왜 내 시간을 방해하는 거야? 그는 내가 대답하기 싫어하는 것을 모르는 듯이 계속해서 나를 불러댔다. 나는 대답 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제이콥의 외침을 듣고 나서야 에드워드의 품에서 떨어졌다. 나를 보며 그저 다정스럽게 웃고 있는 에드워드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에게 조심스럽게 웃어 보인 나는 창문가로 다가갔다. 제이콥은 고개를 바닥에 떨어뜨린 채로 내 이름을 소리쳐 부르고 있었다.

“너 대체 뭐하는 거야?”
“너....”


 창문에서 고개를 내민 내가 그에게 소리치자 그가 나를 쳐다보았다. 온통 눈으로 뒤덮인 집 앞에서 허름한 옷차림에 맨발로 서있던 제이콥은 돌연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는 할 말을 잃어버린 듯이 나를 멍하게 쳐다보았다. 제이콥에게 화를 낼 이유가 없었지만 그 표정은 너무나 멍청해보여서 돌연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뭐하는 거냐고 했어.”
“미안해. 네 얼굴을 너무 오랜만에 봐서.” 


 제이콥이 기운 없이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는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 이상함이 느껴지는 제이콥의 태도에 나는 그에게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뒤돌아섰다.


“에드워드, 나 제이콥에게......” 


 어리둥절해진 나는 내 방안을 둘러보았다.  


그가 없었다. 


“에드워드?”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갑자기 밀려오는 절박함에 다시 한 번, 이제는 크게 소리쳤다.  


“에드워드!”
“벨라?” 

  

 아래층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는 찰리에게 간 듯 했다. 안도하는 마음에 나는 방문을 열고 아래층으로 달려 내려갔다. 낡은 계단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거실로 들어서자 찰리가 불안하게 거실 바닥에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찰리는 나를 보자 다소 불편하고, 또 불안해 보였다. 


“에드워드 못 보셨어요? 방금 계단으로 내려왔을 텐데.” 


 찰리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한 느낌에 한참 그를 쳐다보던 내가 입을 열었다. 찰리는 에드워드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으니. 혹시 둘이 말다툼이라도 했을지도 몰랐다. 


“설마 내쫓으신 거예요?” 


 계속 불편한 듯 슬슬 내 눈치를 보는 찰리는 이제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하군. 어쩌면 에드워드는 차 안에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 제이콥을 보러 갔을지도 모르지. 나는 창 밖에 세워져 있을 에드워드의 차를 확인하기 위해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에드워드의 차는 없었다. 창문 밖에는 여전히 내 방 창문을 올려다보고 있는 제이콥이 서있었다. 나는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방금 전까지 내린 눈으로 인해서 온통 하얀색이던 창문 밖은...... 갈색이었다. 


“세상에, 눈이 다 어디 간 거죠?”
“뭐라구?” 


 그가 의심하듯 물었다. 


“눈이 왔잖아요. 못 보셨어요?”
“방금. 비가 내렸단다.” 


 크게 한숨을 내쉰 찰리가 애써 끌어 낸 듯이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찰리의 태도는 너무나 어색하고 이상했다. 


“제이콥은 도대체 왜 들어오지 못하게 하신 거예요?”
“컬렌박사는.. 제이콥이 네게 가까이 있는 것이 더 나쁠 거라고 했다.” 


 찰리의 목소리는 이제 너무 갈라져서 알아듣기 힘들 정도였다. 칼라일이 제이콥이 내게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라고 했다고? 칼라일은 그럴 이유가 없었다. 어떤 이유에서도 칼라일은 한 번도 제이콥과 나의 사이에 대해 참견을 했던 적이 없었다. 그는 에드워드를 생각해서라고 해도, 제이콥이 늑대인간이긴 해도 나에게 이런 제제를 가할 사람이 아니었다. 


“무슨 말을 하시는 거예요? 칼라일이......”
“이런 빌어먹을, 벨라! 날 영원히 보지 않을 셈이야?” 


 나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화난 제이콥의 목소리가 밖에서부터 집안에 울렸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뭐라고 하려는 찰리를 뒤로하고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제이콥이 왜 저렇게 급하게 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문 밖으로 나서자 제이콥이 씩씩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문 밖으로 나와 갑자기 눈이 녹아 적응이 안 되는 땅을 밟으며 제이콥에게 다가갔다. 이런 갑작스러운 기상 변화는 포크스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땅이 질척거리지 않는 다는 점이 이상한 것을 제외하고는. 내가 그의 앞에 다가 서자 나를 불러놓은 그는 뭔가 정말 해야 할 말이 있는데 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힘들어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표정이 무척 애매했다. 마치 찰리처럼. 이유 없이 치밀어 오르는 짜증 속에서도 제이콥의 힘들어 보이는 표정에는 안쓰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이콥이 왜 이렇게 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눈싸움을 했다는 에드워드의 말은 거짓이었나? 제이콥이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내 얼굴에 가져다 댔다. 여전히 비현실적으로 따듯한 제이콥의 온기가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정말 오랜 만에 닿는 것처럼. 


“그 자식 없이 네가 힘들다는 거 알아.” 

 
 제이콥이 힘겨운 듯 말을 꺼냈다. 나는 그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아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제이콥이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날 믿어줘. 넌 다시 웃을 수 있어. 난 널 다시 웃게 만들 수 있다고. 널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있다고. 그 자식이 널..... 사랑했다는 건 알아. 그리고 너 역시도. 하지만 내가 널 더 사랑해. 니가 한동안 더 힘들어 해도 괜찮아. 내게 돌아오기만 한다면 난 널 다시 되돌릴 자신이 있어.” 


 에드워드의 말과 어긋난 제이콥의 태도에 이해가 가지 않는 내가 고개를 저었다. 


“제이콥, 에드워드는 네가.....” 


 내가 에드워드 이야기를 꺼내자 제이콥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가 화를 참는 듯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 얘긴 그만둬. 나 이젠 네 얼굴 보기도 정말 힘들어졌어.” 


 제이콥이 슬프게 중얼거렸다. 


“네가 어째서? 넌 언제든 날 볼 수 있어.”
“네가 그렇게 만들고 있잖아, 벨라.”
“나는 너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아! 너 혼자서 그렇게 만들고 느끼는 거라고 생각해보진 않는 거야?” 


 화가 난 내가 퉁명스럽게 소리쳤다. 


“제발, 벨라.”
“제이콥!”
“내게 돌아와.” 


 말이 통하지 않는 제이콥의 태도에 짜증이 치밀었다. 찰리나 제이콥이나 모두 내가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을 했다. 에드워드가 그를 참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제이콥은 또다시 멍청하게 굴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제이콥과 말다툼을 할 수는 없었다. 제이콥에게 아무런 상처도 주기 싫었으니. 나는 그저 나지막이 중얼거리듯 그에게 던지고 돌아섰다. 


“내가 에드워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잖아.”
분노에 찬 자신을 제어하기 위해 주먹을 꽉 쥐는 그를 뒤로하고 집 안으로 들어서는 나에게 제이콥이 다시 소리 질렀다. 


“언제까지 사라져버린 놈 따위에 억매여 살 거야! 내가 널 이대로 말라 죽게 놔둘 거 같아?” 


 내가 돌아섰다.  


“뭐?”  

 머릿속에서 뭔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넌 미쳐가고 있어 벨라! 집안에 틀어박혀서 뱀파이어의 보살핌이나 받으며 언제까지 사라진 놈의 자취만을 쫓으며 살아갈 거야?”
“입 다물어, 제이콥” 


 내 입에서 자동적으로 말이 튀어나갔다. 나는 돌아섰다. 심장 박동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마치 절대로 들어선 안 될 말을 들은 듯이 머릿속에서 제이콥의 말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가, 에드워드가 사라졌다는 말은 말도 안됐다. 그는 방금 전까지 나와 있었으니까. 아직도 그의 감촉이 손안에 생생한데 제이콥은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집안으로 뛰어들었다. 찰리가 내 이름을 소리쳐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미친 듯이 내 방 계단을 뛰어 오르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에드워드는 분명 내 방안에 있었다. 찰리와 함께 있지 않았으니 분명 그는 소리 없이 내 방에 돌아와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날 놀리기 위해서 내 방에 숨어있었을지도 몰랐다. 문을 열어젖혔다. 나는 이제 웃기 시작했다. 그는 날 속인 것에 만족하며 내게 웃어 보이겠지. 그럼 속아 넘어가 아래층까지 그를 찾으러 다녀온 나는 그의 키스를 거부하는 것으로 에드워드에게 보복을 하면 되는 거였다. 


“에드워드!”

 그가 없었다. 


 공허한 내 방안에는 내 날카로운 비명소리만이 울렸다.

 마치 그가 어디 벽장 속에 숨기라도 한 듯이. 아니, 그래야만 하듯이. 내가 낮게 속삭였다. 


“에드워드.”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숨을 들이쉬었다. 좋아. 그가 장난을 치고 있는 거라면 찾아내면 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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