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스를 손에 든 자 - 대학병원 외과의사가 전하는 수술실 안과 밖의 이야기
이수영 지음 / 푸른향기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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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궁금하진 않았지만 정작 이야기를 들려주면 그새 귀를 기울이며 들을 만한 흥미 정도는 있는, 나에게 의사들의 이야기란 그러했다.

아마 대부분 그렇겠지만 내게 의사의 이미지를 정의해준건 드라마의 영향이 크다. 보란듯이 수술을 성공시키는 FM이면서도 그 와중에 사랑이든, 의사로서의 목표든 다 이뤄내는. <슬기로운 의사생활>과 <낭만닥터 김사부>에 의해 생긴 이미지.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낭만 넘치는 그런 직업으로 인식했던 것 같다.

사실은 전혀 그럴 리가 없는데도.

미디어에서는 고작 하나의 시퀀스로 스쳐지나갈 뿐인 CPR을 두 시간 동안 하기도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환자의 죽음을 결코 막을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죽음을 직접 내뱉어야 할 때의 상실감이 얼마나 클지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환자의 감정에 과도한 이입은 금물이라고 하는데, 이제 와서 의사로 진로를 변경할 가능성은 없지만 어쩌면 훨씬 더 눈물이 많을지 모를 사람으로서 의사는 절대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의사라는 직업의 무게를 절실히 실감한다.

-

p. 40
이들이 그저 배우라면 얼마나 좋을까. 내 눈앞의 환자가 사실을 수술받고 합병증이 생겨 누워있는 환자 역할을 하는 배우라면.
(중략) 이 연극이 끝나고 나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서로 수고했다고 인사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지만 그들은 현실 그 자체고 나에게는 이들로부터 도망쳐 돌아갈 수 있는 또 다른 현실이 없다.


이들이 그저 배우라면 얼마나 좋을까. 내 눈앞의 환자가 사실을 수술받고 합병증이 생겨 누워있는 환자 역할을 하는 배우라면.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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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것은 다 너를 닮았다 - 개정판
김지영 지음 / 푸른향기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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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가 잠을 참 오래 잤구나.
꿈이었을까.


내 안의 감정 속 민낯을 드러내는 건 쉽지 않다. 더군다나 간결하고 명료하게 서술하는 일은 더더욱 그렇다. 오랜만에 그런 에세이를 읽었다. 빙빙 돌리는 말 없이, 마음을 내려놓고 조용히 읽을 수 있는 글이다.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나갈 첫 경험이 두달 남짓 남았다. 비행기표와 숙소를 예약해놓고도 약간의 두려움은 여전하다. 아무리 P라도 나는 덜컥 뉴욕행 비행기를 끊을만큼 대담하진 못할텐데, 행복이 너무나 절실할 순간에는 용기가 생기나보다. 책은 마치 첫 여행의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며 균형을 이룬다.

'고된 것을 감수하고, 힘든 것을 버텨낼 원천은 어디에 숨어있을까. 이 여행이 끝나면 과연 나는 일상에 무너지지 않을 힘을 갖게 될 수 있을까.'

여행이 '배움'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는 말에 동의한다. 모두의 목적은 다르니까. 책 속 말대로 쳇바퀴 같은 일상을 살다 '종종 말랑해지기 위해' 가는 게 바로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이 아닐까 생각한다.

공항에 갈 날이 기다려진다. 비행기 창문 너머로 보일 세상은 어떨지, 상상과는 많이 다를지도. 나는 과연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 상상해본다.


고된 것을 감수하고, 힘든 것을 버텨낼 원천은 어디에 숨어있을까. 이 여행이 끝나면 과연 나는 일상에 무너지지 않을 힘을 갖게 될 수 있을까.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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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내향인이지만 잘살고 있습니다
전두표 지음 / 푸른향기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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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에서부터 웃음이 났다. '내향인은 배터리를 충전해야 합니다', '수줍은 게 아니라 할 말이 없을 뿐입니다', '얌전한 게 아니라 그저 가만히 있을 뿐입니다' 등등.. 다 너무 내 얘기라서. 제목처럼 뼛속까지 내향인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저자가 말하는 내향인의 기준이 지극히 객관적인 사실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라곤 생각하지만, 스스로를 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임은 분명했다. 물론 '내향인은 ~ 할 수 밖에 없다', '내향인은 ~ 이렇다'라는 표현들이 종종 나오는데,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내향인들 사이에서도 개인차는 분명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책의 내용을 무조건식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음을 명심해두어야 할 것 같다. 


가끔씩 누가 말한 것도 아닌데 홀로 '내가 내성적인 사람이 아니었다면 할 수 있었을 일들'에 대해 생각하고 자책할 때가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성격이기 때문에 그들과 다른 일에 초점을 맞출 수 있으며 열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아닐까. 혼자서 노는 걸 좋아하는 내가 싫지 않고, 말하는 것보다 듣는 걸 더 많이 하므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더 잘 들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내향인은 다른 사람이 먼저 다가와주는 걸 좋아한다. 더불어 조심스럽다. 내가 먼저 다가가 말을 걸면 상대가 싫어할까 봐. 괜한 걱정이지만.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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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헤어지는 중입니다 - 알코올 중독 아버지와 가스라이팅 어머니로부터의 해방일지
스마일펄 지음 / 푸른향기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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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조금 충격이었다. 같은 형태는 아니지만, 책 속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에서 부모님이 겹쳐지는 순간이 있어서.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책으로 접하게 될 줄이야.

아직 드문드문 떠오르는 기억들과 시간이 흘렀음에도 남아있는 감각들이 있다. 나와는 달리 안정되어 보이는 타인 앞에서 쉽게 말할 수도, 드러낼 수도 없는 이야기다.

가족, 혹은 같은 처지인 사람이 아니라면 내뱉는 순간 괜히 평범한 순간을 우울하고 불편하게 만들어버릴까봐. 내가 더 초라해보일까봐.

본작은 가스라이팅을 일삼는 어머니와, 알코올 의존증을 앓고 있는 아버지가 행해왔던 가정폭력으로부터 벗어나 극복해온 저자의 경험을 담고 있다.

시험 전날에도 어김없이 술을 먹고 공부하던 딸 방에 들어와 자신보다 공부가 더 중요하냐던 외침, 술을 먹고 들어올 것이 확실한 새벽이면 도어락 누르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황급히 방불을 끄고 잠든 척하며 화장실을 참았던 기억, 자고 있는 척하던 나에게 느닷없이 방문을 덜컥 열고 휴지를 내 머리에 집어던졌던 날, 밤낮 상관없이 주기적으로 냉장고를 뒤지며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으면 내다버리라며 소리를 지르고 식기를 깨뜨리던 나날. 가족들 전부가 있는 앞에서 거실 티비를 골프채로 부수고는 스스로에게 해를 입히던 날까지.

매일 아빠가 술을 먹고 들어오지 않았으면 했지만 일찍 들어오는 것도 싫었다. 집에 오지 않는 날이면 그날은 마음 편히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매일 벌어지는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아빠는 우리에게 한 행동을 기억하는 듯했다. 가끔 사과를 했고 맛있는 걸 사오는 것으로 사과를 대신했다. 내게 가장 필요한 건 잠깐의 초코과자가 아니라 아빠가 더이상 그런 짓을 하지 않는 것이었음에도.

언젠가 함께 과일을 먹고 티비를 보며 웃을 때면 그 순간이 정말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폭력과 비폭력이 일정 주기를 거쳐 끝없이 반복되는 우리집이 과연 정상적인 범주의 가정이라 말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평화는 일시적이었으니까.

이후 가정폭력에 관한 책을 펼쳐본 건 지금이 처음이다.
바로 본작을 펼쳐 깨달은 질문의 답은 '아니다'였다.

또한, 해결을 회피하던 엄마와 폭력을 행하던 아빠에게 여전히 갖고 있는 원망이란 감정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판단이 섰다. 그래도 된다는 판단. 내게 다가온 가장 큰 감정은 다름아닌 안도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의 존재가치는 충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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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도 하고 싶고 취업도 하고 싶고
현재 지음 / 푸른향기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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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취업, 바깥 세상으로의 탐험을 꿈꾸는 이들이 가장 원할 두 마리 토끼. 이 둘을 다 해내는 사람이 있긴 있구나 싶었다. 아직 비행기도 타보지 못한 입장으로서 이런 에세이를 볼 때면, 그저 부럽다. 작가의 영리함을 실감하며, 저자와의 처지를 자꾸 비교하게 된다. 칠칠치 못하게. 순서를 따지지 않고 읽었을 때 여행보다는 현실적인 고민인 '취업'에 자꾸 초점을 맞추게 되어 더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런 관점은 조금 버리고 읽어야 한다.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 취업을 위해 내가 할 수 없는 것이더라도, 타인의 방식을 본보기 삼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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