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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 - 건설 노동자가 말하는 노동, 삶, 투쟁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외 기획, 이은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평점 :

《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는 단순한 르포나 노동 보고서가 아니다. 이 책은 무너져가는 노동자의 일상과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투, 그리고 그들이 일터를 ‘사람답게’ 만들기 위한 투쟁의 서사다. 특히 이 책은 윤석열 정부의 '건폭 몰이'라는 정치적 프레임 아래 철저히 고립되고 탄압받은 건설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진솔하게 담아낸다.
건설 노동자라는 존재는, 우리가 매일 걷는 도로와 사는 집, 이용하는 공공시설 뒤편에 숨어 있다. 이들의 노동은 눈에 잘 띄지 않고, 존중받지도 못한다. 심지어 “노가다”라는 비하적 용어로 쉽게 낙인찍히며, 위험한 일, 거친 일, 저임금 노동으로 치부되어왔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그 ‘노가다’라 불리는 일이 얼마나 복잡하고 고되고,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지탱되는 가장 근본적인 노동이라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책은 총 12인의 건설 노동자들의 증언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목소리는 우리 사회가 무심코 지나쳤던 ‘노동의 진실’을 드러낸다. 여성 노동자는 “쉬운 일 하면서 돈 번다”는 차별과 싸우고, 이주 노동자는 한국 사회의 이중적 시선 속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 한편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지는 남성 노동자들은 체불임금에 울며, 위험한 현장에서 목숨을 담보로 일한다.
현장에서의 부조리는 단순히 구조적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 불법 재하도급, 장시간 노동, 임금 체불, 안전 장비 미비 등은 매일같이 반복되는 폭력이며, 이는 고스란히 노동자 개인의 삶을 짓밟는다. 그 가운데서도 그들은 묵묵히 일했고, 나아가 ‘사람답게 일할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스스로 조직하고 단결해왔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바로 이러한 절박함 속에서 탄생했고, 이후 노동 조건을 개선하며 노동자 스스로의 존엄을 되찾는 데 기여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의 목소리를 폭력으로 몰았다. 윤석열 정부는 “건폭 근절”이라는 명분 아래 수차례 압수수색과 구속, 언론 프레이밍을 통해 건설 노동자들을 범죄자 취급했다. 이 과정에서 한 노동자, 양회동 열사는 스스로 목숨을 던져 세상을 향한 절규를 남겼다. 그의 유서는 단지 한 사람의 비극이 아니라, 수많은 건설 노동자가 겪는 현실의 농축된 단면이다. “정당하게 노조 활동을 했을 뿐인데, 공갈범으로 몰린다”는 울분은 우리가 반드시 귀 기울여야 할 외침이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그 생생함과 정직함에 있다. 책에 담긴 증언은 꾸밈이 없고, 현실은 냉혹하다. ‘억울하다’는 감정, ‘두렵다’는 고백, ‘가족이 걱정된다’는 말은 단지 피해자의 증언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무관심에 대한 경고다. 동시에 그들이 다시 연대하고 투쟁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모습은 감동을 넘어 경외를 자아낸다. 노동자는 단순히 생계를 위해 일하는 존재가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서는 ‘시민’임을 이 책은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는 건설 노동자를 이해하고 싶거나, 더 나아가 이 사회의 민낯을 제대로 알고 싶은 이들에게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더 이상 ‘노가다’라는 말을 쉽게 쓰지 못할 것이다. 대신, 거리와 빌딩을 짓는 그 손들이 바로 우리 삶을 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한 가지 바람이 마음속에서 피어오를 것이다. “건설 노동자가 존중받는 세상이 되기를.” 그것이 이 책이 전하고자 한 가장 깊고 단단한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