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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 라이브즈 각본
셀린 송 지음, 황석희.조은정.임지윤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3월
평점 :
해성과 나영이 함께한 시간은 12살의 기억에 멈춰있다. 나영이 더 이상 나영으로 불리지 않고 '노라'로 살아가듯, 나영의 시간은 고여있지 않고 흘러간다.
추억을 붙잡는 건 해성이다. 12년 후 노라를 애타게 찾은 것도, 또다시 12년의 시간이 흐른 뒤 노라에게 달려온 사람도 그다.
두 사람이 함께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영화의 극히 일부분을 차지할 뿐이지만, 인연이라는 건 찰나의 순간으로도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랑이란 감정은 그 순간을 더없이 소중하게 만들어준다.
어린 시절의 첫사랑이라는, 닳고 닳은 익숙한 소재이지만, 영화의 키워드인 '인연'과 연출 속 적당한 여백이 만나 특별함을 부여한다. 화면에서는 주인공들의 시선으로, 각본에서는 [사이.] 의 표현으로 구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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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p.
가끔은 그게 좀 겁나.
내가 이해 못하는 말로 꿈꾸는 거.
마음속에 내가 못 가는 장소가 있는 거잖아.
좋았던 부분은, 노라의 남편 아서가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아니라 노라 곁의 존재라는 것. 두 사람의 만남 또한 노라와 아서 사이의 두터운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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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p.
이번 생에서는, 아서랑 너랑 그런 인연인 거지.
팔천겁의 인연이 모인 사람인 거야. 아서에게 너는,
곁에 남는 사람인 거야.
해성은 노라를 직접 만나고 나서야 깨닫는다. 24년 전 툭 내뱉었던 잘 가란 인사가 자신을 이곳으로까지 이끌었고, 끝맺지 못한 작별을 이제는 제대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한국에서만 존재했던 인연의 의미가 아서를 포함한 세 사람, 영화를 보는 모든 이에게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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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p.
마치 이 아이들이 바로 이 장소에서 24년을 기다렸고, 이제서야 진정으로 작별 인사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사랑을 말하는 듯한 두 주인공의 대사, 어떠한 접촉 없이 주고받는 미묘한 시선은 로맨스를 기대하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마지막 인사가 아쉽고도 후련하게 느껴진다. 이제 해성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나아갈 수 있게 됐고, 노라 역시 일말의 감정을 비로소 내려놓았으니.
영화의 첫 장면과 더불어 마지막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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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