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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시집 을유세계문학전집 13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장희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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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시집』:: 사랑을 바탕으로 국가의 신념을 통찰하다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는 대립에 대한 사유로부터, 이후에는 사적인 마음을 드러냄과 동시에 공공의 문제를 개인이 가져야 할 신념으로 확장시킨다. 이 모든 것이 세련된 은유와 상징으로 자연스레 드러난다. 대립은 곧 지금의 혐오, 그의 사랑은 곧 타자를 위한 환대로 해석해보니『사람, 장소, 환대』와 『므레모사』가 떠오르기도 했다.

두껍고 어렵기만 할 거란 첫인상과 달리 스스로 해석해볼 여지가 있는 문장들이 많다. 주석과 해설은 더더욱 쉽게 쓰여져 있어 해석한 내용에 시공간적 배경에 대한 이해를 더할 수 있다. 망연한 고전의 세계가 시대를 넘어선 독자에게까지 가까워질 수 있도록 만드는 괴테의 글에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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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으로 대담하게 투쟁한 자라면 누구든 기꺼이
영웅으로 찬양하고 그 이름을 불러 주리라.
그러나 열기와 추위의 고통을 스스로 겪지 못한 자라면
그 누구도 인간의 가치를 알아볼 수 없는 법이다. (100p)

# 마땅히 밝혀져야 할 사실과 행해져야 할 권리를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는 모든 이들이 떠올랐다. 과연 누가 그들에게 함부로 할 수 있는 걸까. 어느 누가 그들에게 잊으라 말하며 순응하라 가르치는 걸까. 누구에게도 시민을 탄압할 권리는 없다.

"행위 속에서는 오류가 언제나 반복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어로써 참된 것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 (49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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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우리의 언어가 동방으로부터 많은 것을 듬직하게 받아들인 이 시대에, 그토록 위대하고 아름답고 선량한 것을 수천 년 이래로 우리에게 전해 주었고, 앞으로도 더 많은 것을 전해 주리라 기대되는 쪽으로 우리가 보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240p)

# 괴테의 문화 상대주의적 관점을 확연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본연의 것을 인정하면서도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를 과거에도 정립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가히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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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어디를 보아도 사랑스러워요.
하지만 시인들의 세상이 가장 아름답네요.
환하게 또는 은빛으로 빛나는 알록달록한 들판에서는
밤이나 낮이나 모든 것이 광채를 말해요.
오늘따라 모든 게 장엄해요. 언제까지나 이대로 머물러 준다면!
저는 오늘 사랑의 안경을 통해 세상을 본답니다. (163p)

# 시인의 세계란 무엇이길래 이토록 광활한 걸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으로부터 작품을 써내려가야 하는 숙명과 시인으로서의 고찰에 괴테의 유쾌함이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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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를 이해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그러므로 타자를 참아 내는 능력이라도 길러야 한다, 라고 괴테가 거듭 진술하고 있는 것도 타자 망각을 극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고백하고 있는 것이리라. (491-492p)

# 내 곁을 지나치는 모두가 결국 타자라는 점을 가까운 사람일수록 쉽게 망각한다. 지금부터라도 참아보기 위해 우선 거리를 두는 법을 택했다. 타자를 온전히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듯, 누군가를 배척하는 일 또한 쉽게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시간을 들여 각자의 방법을 정립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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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은 길을 잃지 않아요.
사방이 아무리 흐릿해도요. (119p)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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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편안한 죽음 (리커버) 을유세계문학전집 여성과 문학 리커버 에디션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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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한 일이다. 죽음이 찾아오기 직전에야 서로를 이해하게 된 가족이라니.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 속, 어머니와의 소원한 사이와 가부장제 아래 살아야 했던 두 사람의 모습은, 지금의 내가 직면한 상황과 유사해서 자연스레 저자의 감정에 이입했다. 평생 부모라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마지막 순간에는 그 생각이 과연 달라질까. 


어머니가 겪은 사고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가혹할 정도로 철저하게 묘사된다. 이러한 묘사는 어머니의 몸, 그를 넘어선 영혼을 마주하며 비로소 동일선상에서 어머니의 삶을 진정으로 헤아리게 되는 보부아르의 내면을 독자에게 납득시킨다.


어머니의 이름이 불린 장례식, 그리고 이후의 애도는 어머니가 진정한 주체로서 존재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가 됐다.


한편으로는 운이 좋았단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상대를 이해하려 들지 않고 이해할 수조차 없는 사람이라면, 죽음 이후에도 고통스러울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닫기를. 죽음이 아프지 않길 바라는 건 모두에게 해당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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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52


그러나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사람이 죽는 것은 태어났기 때문도, 살 만큼 살았기 때문도, 또 늙었기 때문도 아니다. 사람은 무언가로 인해 죽는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엄마가 돌아가실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악성 종양이 엄마에게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느꼈던 끔찍한 경악스러움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암, 혈전, 폐울혈과 같은 것들은 공중에서 비행기 엔진이 멈추는 것만큼이나 급작스럽고 예상하기 힘든 사건이다. 


꼼짝 못 하는 상태로 죽어 가면서 매 순간이 지닌 무한한 가치를 확인한 그때, 어머니는 희망을 품고 기운을 냈다. 하지만 동시에 어머니의 헛된 노력은 일상의 평범함이 만들어 낸, 불안을 달래 주는 장막을 찢어 버리기도 했다.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 인간에게 닥친 일 가운데 그 무엇도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는 그 자체로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각자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사고다. 심지어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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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서포터즈4기 #을유문화사 #고전문학

#여성과문학 #아주편안한죽음 #시몬드보부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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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 라이브즈 각본
셀린 송 지음, 황석희.조은정.임지윤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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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성과 나영이 함께한 시간은 12살의 기억에 멈춰있다. 나영이 더 이상 나영으로 불리지 않고 '노라'로 살아가듯, 나영의 시간은 고여있지 않고 흘러간다. 


추억을 붙잡는 건 해성이다. 12년 후 노라를 애타게 찾은 것도, 또다시 12년의 시간이 흐른 뒤 노라에게 달려온 사람도 그다.


두 사람이 함께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영화의 극히 일부분을 차지할 뿐이지만, 인연이라는 건 찰나의 순간으로도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랑이란 감정은 그 순간을 더없이 소중하게 만들어준다. 


어린 시절의 첫사랑이라는, 닳고 닳은 익숙한 소재이지만, 영화의 키워드인 '인연'과 연출 속 적당한 여백이 만나 특별함을 부여한다. 화면에서는 주인공들의 시선으로, 각본에서는 [사이.] 의 표현으로 구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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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p. 


가끔은 그게 좀 겁나. 

내가 이해 못하는 말로 꿈꾸는 거.

마음속에 내가 못 가는 장소가 있는 거잖아.


좋았던 부분은, 노라의 남편 아서가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아니라 노라 곁의 존재라는 것. 두 사람의 만남 또한 노라와 아서 사이의 두터운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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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p.


이번 생에서는, 아서랑 너랑 그런 인연인 거지. 

팔천겁의 인연이 모인 사람인 거야. 아서에게 너는,

곁에 남는 사람인 거야.


해성은 노라를 직접 만나고 나서야 깨닫는다. 24년 전 툭 내뱉었던 잘 가란 인사가 자신을 이곳으로까지 이끌었고, 끝맺지 못한 작별을 이제는 제대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한국에서만 존재했던 인연의 의미가 아서를 포함한 세 사람, 영화를 보는 모든 이에게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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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p.


마치 이 아이들이 바로 이 장소에서 24년을 기다렸고, 이제서야 진정으로 작별 인사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사랑을 말하는 듯한 두 주인공의 대사, 어떠한 접촉 없이 주고받는 미묘한 시선은 로맨스를 기대하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마지막 인사가 아쉽고도 후련하게 느껴진다. 이제 해성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나아갈 수 있게 됐고, 노라 역시 일말의 감정을 비로소 내려놓았으니.


영화의 첫 장면과 더불어 마지막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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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본 후에 다스리는 마음
수아지크 미슐로 지음, 이현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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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본 후에 다스리는 마음』 :: 명상이란 바다에 주저없이 뛰어들기

하루종일 누워 지칠 때까지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책상 앞에 앉을 일 없이 뒹굴거리는 시간이 사실은 쉬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명상'이 진짜 휴식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시작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바라본 후에 다스리는 마음'이라는 제목 자체가 명상의 간결한 정의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그 무엇도 하고 싶지 않을 때, 과거의 기억이나 감정이 갑작스레 머릿속을 채웠을 때, 순간 떠오르는 상념을 지나치지 않고 응시하는 것. 정의내리지 못했던 그 시간을 명상이라 부를 수 있음을 깨달았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명상은 오로지 마음을 지그시 응시한다. 자책이나 후회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필요치 않다. 그저 모든 마음을 포용하기 위해 속을 파고든다.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를 빤히 들여다보는 게 불편할 수 있지만, 동요하더라도 결국 본질에 다다르게 되는 순간이 바로 명상의 시작이며 나라는 사람을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방법이 된다.

목적 없음을 지향하는 책이기에 순서와 상관없이 읽어도 무관하지만, 명상을 생소한 개념으로 여겨왔다면 목차를 따라가는 것을 추천한다. 명상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클리셰부터 시작해 집착과의 차이점부터 명상 이후의 과정까지, 한 칸씩 계단을 오르듯 찬찬히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명상이란 진흙 속을 묘사하는 수많은 단어들은, 매 장마다 동반된 예술 작품을 통한 비유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익숙했던 화가의 작품도 명상의 관점에서 보니 색다른 해석으로 다가와 신기했다. 아무 생각 없이 작품들을 감상하기만 해도 책의 목적은 충실히 이행될 테지만, 작품을 보면 자연스레 글이 궁금해져 나도 모르게 읽게 된다. 책이 만들어내는 세계에 어울리는 음악과 영화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존재의 위태로움과 찬란함을 비눗방울로 묘사한 대목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책 전체를 통틀어 중요시되는 것은 '수용'. 도움닫기 없이 곧바로 명상에 뛰어드는 것은 어렵다. 책에서 그림을 활용했듯 내가 나를 수용할 매개를 찾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명상은 시선이 닿는 방향을 뒤집어서 매일매일 자기 얼굴을 그려 보도록 유도한다. - P33

동기야말로 명상의 토대를 이룬다. 껍데기에만 머물 것인가, 아니면 저 깊은 심연까지 내려가 탐험을 계속할 것인가. ‘나‘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는 생각을 더욱 단단히 굳힐 것인가, 아니면 거기서 더 나아가 인간의 존재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것인가. 자기 정체성에 더욱 간절히 매달릴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과감하게 뚫고 나올 것인가.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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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마거릿 렌클 지음, 최정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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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판 제목과 비교했을 때 조금의 괴리감이 있었다. 표지만 보았을 때는 단순히 자연에서 보고 경험한 것들에 대한 에세이일 줄 알았는데, 이토록 낭만적인 제목이라니. 우리의 삶과 그들의 삶은 엄연히 다르고 서로를 신경쓰지 않는, 각자가 살기에 급급한 여정이 아닌가. 서로를 향한 '작별인사'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으로 시작된 읽기는 점차 느리지만 확실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는 삶과 죽음을 겪는다는 점에서 그들과 같다. 자연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아침의 새소리와 푸르른 풍경뿐만 아니라 때로는 그의 매정하고 잔인한 면을 눈앞에서 목도할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자신의 세계를 구성하는 가족들과 오래도록 가깝고도 먼 죽음을 매일 지켜봐왔다. 초록빛 세계의 동식물을 거리낌없이 본인의 삶에 들이기도 하고, 그저 관조하기도 하며, 곁에 머무르길 바란다. 무수한 시간에 존재하는 이 고요한 물결이 스쳐지나가도록 두는 것이 바로 저자가 모두의 삶을 존중하는 방식이다. 동요없는 글과 삽화는 우리 또한 흐름에 실재하게끔 만든다.

#을유문화사 #을유서포터즈4기 #에세이추천 #도서추천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세상은 여기서 살아가기 위해 내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매일 가르쳐주고 있다.
너무 많은 움직임의 소용돌이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고요하게 있기.
조용히 하기.
귀 기울이기. - P181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을 발견했다. 그것이 그 대가로 가져간 것은 반짝이는 철망 울타리에 들끓는 개미, 햇빛 속에서 은처럼 반짝이는 수천 개의 새로운 날개였다. 동물원에서 탈출한 매가 주 의사당 계단에서 줄을 끌면서 비둘기들을 즐겁게 죽이고 있었다. 콩가리 늪 속 어느 나무 안에 똬리를 튼 갈색 물뱀의 모습은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내 창문 밖 충충나무의 유황 냄새가 번개에 의해 반으로 분열되었다. 어둠 속 가면올빼미의 울음소리. 신선한 무화과의 맛. - P189

가족 안에서 살면서 내가 뭔가 배웠다면, 그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속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밖으로, 밖으로, 밖으로, 양쪽 방향에서 확장되는 잔물결을 통해 우리는 서로에게 속한다. 그리고 초록색의 이 근사한 세계에도. - P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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